노란 색은 모든 것을 내어준 색이다. 그래서 따뜻한지도 모른다. 가을 들판이 풍성한 이유는 모든 것을 내어 준, 또 내어 줄 준비를 마친 황금 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가을 들판은 곳간이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엔 곳간지기인 허수아비들이 참새 떼들로부터 벼들을 지켰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치는 요즘엔 허수아비도 실직을 했다. 그래서 가을 들판은 때론 황량하게 보인다. 낯선 행사장에 떼로 모여 있는 허수아비들을 보면 왜 그렇게 처량해 보이는지.
참새와 허수아비가 떠난 가을 들판을 메뚜기와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쫓는 자와 쫒기는 자 같다. 그들 사이에 펼쳐지는 추격전은 너무도 평화롭다. 포르르 저만치 메뚜기가 날아가면 쫓는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그만큼 따라간다. 그 웃음소리는 가을 햇볕보다 더 곱다. 그렇게 몇 번 경합을 펼치다가 메뚜기는 고생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다. 그러면서 세상에 묻는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라는 말의 뜻을 아는지.
지난 주 금요일에 천주교대구대교구 대안 교육 세미나가 열렸다. 어느 기자는 이 세미나의 보도 제목을 `위기 교육의 해법`이라고 썼다. 그리고 `학교 밖 길 잃은 아이들 길 찾게 품어야`라고 부제를 붙였다. 세미나의 취지를 잘 이해한 기사 내용에 발표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미나 현장을 방문해 준 기자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하나 품었다. 사실 길 잃은 학생들은 학교 밖보다는 학교 안에 더 많이 있는데 이들을 위한 세미나도 곧 마련되길.
`위기의 교육, 지금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역사 교육이다. 교육계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죽기 살기로 교과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도 참 밝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메뚜기가 필자의 이런 생각을 비웃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물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아느냐고.
그리고 재차 따져 물었다. 교과서만 바꾸면 뭐하느냐고.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교과서를 아무리 잘 만들면 뭐하느냐고. 어차피 대한민국 교실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똑같아질 것을. 역사를 통해 사관(史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단순히 역사 지식을 무의미하게 외울 것이고, 천편일률적인 시험을 통해 점수의 노예가 될 것인데. 십 수 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영어 울렁증에 빠져 대화 한 마디 못하는 이 나라 교육제도에서, 그리고 객관은 없고 주관만 난무하는 이 시대, 이 나라에서 교과서만 바꾸면 도대체 뭐하느냐고.
메뚜기의 분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들 밥그릇 싸움을 위해 역사를 팔아먹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과연 진정한 역사의식이 존재하기나 하냐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서러움도 해결주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들이 저렇게 많으냐고. 저들은 양심에 무엇을 발랐기에 저렇게 낯들이 두껍냐고.
지금 많은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 참여에 반대한다고 한다. 정말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교과서 논쟁에 끼어든 것 자체가 그들 또한 객관적인 사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가 꼭 필요하다면 필자는 집필진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EBS 강사`이다. 설마 아직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역사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메뚜기 자리에 여의도를 넣어 읽어보자. “메뚜기도 한 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