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새벽잠에서 깨어나 TV앞에 앉는다. 칠레에서 열리는 `2015 FIFA U-17 월드컵`의 잉글랜드와 경기를 보기 위해서이다.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닌데 새벽녘에 선뜻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예선 첫 경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브라질과의 대결에서 통쾌한 1승을 거둔 것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의 투지와 강인한 승부욕이 90분 내내 생생하게 전해 줬던 것이 새벽잠을 쫓은 것 같다. 비록 성인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팀들과 경기를 하며 체력과 기술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 약간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 월드컵과 아시안컵, 올림픽 등 크고 작은 국제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내용을 되짚어 보면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했다고는 하지만 체력과 조직력에서 늘 실망감을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한국 특유의 강한 투지를 가지고 참여했던 경기에서도 결정력 부족에서 오는 패배는 늘 아쉬움을 안겨줬다. 그런데 이번 청소년 국가대표팀이 보여주는 현란한 발기술과 월등한 스피드 그리고 유럽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성인축구에 대한 희망을 미리 예감해 본다. 비록 29일 16강전에서 벨기에에 0대2로 패해 8강행이 좌절됐지만 말이다.
어린선수들의 파이팅과 선수들 간의 협업에서 오는 조직적인 경기운영 방식도 뛰어났지만, 그들이 눈빛 하나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호흡을 맞출 수 있게 훈련시킨 최진철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을 먼저 칭찬해 주고 싶다. 한국 축구의 전설로 전해져 오는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통해 짜릿한 승리의 기쁨과 조직력이 주는 현대축구의 힘을 직접 경험해 봤던 최감독에겐 승리가 주는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승리를 위해선 우리나라 선수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선발된 선수들과 함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왔다. 몸으로 하는 축구가 아닌 머리로 하는 축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수립했고, 지속적인 반복훈련에서 오는 경험들을 축적해 실전을 대비했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에서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철벽 스리백을 구축하며 수비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박지성, 이영표, 황선홍과 같은 공격수들의 활약에 가려 언론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0대2패배로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역으로 돋보였다. 경기도중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은 최진철은 붕대를 동여매고 경기를 진행하는 투혼의 선수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일명 `붕대투혼`으로 알려진 최진철은 승리에 대한 애착과 승부욕을 무기로 국가대표 선수에서 지도자로 변신을 시도했다. 프로축구팀 코치로 활동하며 그의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 받아 U-17 대표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국가대표시절 히딩크 감독에 의해 완벽하게 짜여진 조직력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그것이 가져다 준 승리의 기쁨, 그리고 붕대투혼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조직력이 주는 무기력함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모두 경험했던 최감독이기에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해야 선택의 순간들을 만나게 뙨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확신과 지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선택은 결국 수많은 경험에서 오는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험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며,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보통의 자신의 삶은 자신이 후회하는 일들을 통해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말은 고통을 준 경험들이 자신의 삶에 알게 모르게 방향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