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허덕이다 지난 주 날을 잡아 종형과 함께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했다. 부모님 산소는 새로 들인 지 오래지 않아 잔디가 제법 이쁘게 자라서 비교적 쉬웠으나, 윗대 어른들 산소의 벌초는 언제나 만만치 않다. 묘소의 잡풀을 깎으며 왜 이런 말들이 떠오르는지 슬며시 웃음이 난다.“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
산천에는 가을 햇볕이 작렬하였고, 여름을 다한 풀들은 마지막 독을 뿜어 올해도 예외 없이 내게 햇볕 알레르기와 함께 풀독(접촉성피부염)을 선사했다. 치료에 몇 주 고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 한 해도 빠짐없이 그 길을 나선다.
의무감 없던 어린 시절은 추석이 다가오면 뭐든지 풍요로워 그저 신이 났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밑에서 멋모르고 자라던 시절은 잠깐이었고, 일찍 아버지 여의고 나니 오롯이 그 모든 일이 나의 몫이 됐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과 제사가 커다란 짐으로 느껴지고 그 무게만큼 죄책감 또한 만만치 않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벌초를 할 때면 아버지 덕분에 며느리 대신 딸에게 쬐어 준다는 좋은 가을햇살도 쬐고 모처럼 고향마을 곳곳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일이 좋다. 가장 기분 좋은 건 아버지 묘소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마치 아버지가 이발을 깨끗이 하신 것처럼 느껴져 내 마음이 개운하다.
이른바 신학문을 배운 나는 전통의 제례 등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속단하고 내심으로 어른들 세상 떠나시고 나면 한 가지씩 옛날 예(禮)를 줄여 간소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어머님 세상 뜨시니 당신께서 고집하시던 예도 자연스레 함께 거두어 가셔서 실제로 예전보다 훨씬 간소해졌다. 그런데 홀가분하기 보다는 마음 한 켠이 쓸쓸하니 이 어인일인가?
어머니 살아생전, 당신 손수 제사를 모실 때면 늘 이웃이 신경 쓰이는 아파트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현관문 밖에 작은 상을 따로 차리셨다. 자손이 있는 조상신 제사에 자손이 없는 조상신이 함께 따라와 얻어먹는 음식이라며 따로 두신 것이다. 이웃보기도 민망하고 번거롭기도 하여 싫은 내색을 해도 꿈쩍 않으시다가 육신이 늙고 병드셔서 참견할 기력이 없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지금은 명절과 제사에 오셔서 당신께서 손수 차리시던 제삿밥을 잡숫고 가실 것이다. 가난했어도 인정 많은 분이셨으니 아마도 온 동네 자손 없는 조상신들은 죄다 모시고 오시지 않을까?
`조상신은 자손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하늘에서 보고 마음속까지 훤히 꿰뚫어 보시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조상님들도 좋아하며 흠향하신다`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미신쯤으로 여기고 귀뚱으로 듣다 어머니 세상 떠나시고 보니 가슴 절절하게 되새겨지나 어디를 봐도 계시지 않으니 허망하고 속절없다.
그 미신 같은 말씀은 진리였다. 조상신은 다 보고 다 알고 있으니 누가 보든 안보든 올바르게 살아야함을 이르신 말씀이었고, 어른이 없어진 이 나이의 자식이 세상 함부로 살까 조상신을 새겨 주고자 하심이니 그 뜻은 하해와 같다.
60 가까이 살아보니 명절이 되면 자주 옛날 기억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마 나도 살아갈 날보다는 살아온 날이 많아지긴 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온갖 미신 같은 구전 이야기로 나를 가르치셨는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그 아이들은 나를 통해 인생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자 문득 마음이 불안해진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 묻고 혼자 답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조상님이 다 보고 계시니 누가 보든 말든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되지 않겠나. 내가 굳이 입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배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 산소를 벌초하는 내내 묘소를 뒤덮은 잡풀보다 더 많은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