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철없는 사회

등록일 2015-09-23 02:01 게재일 2015-09-23 18면
스크랩버튼
▲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전국에 가을 물이 곱게 들고 있다. 느티나무와 벚나무들이 울긋불긋 거리를 물들이기 시작했고, 은행나무는 샛노란 가을 들판에 색을 더하기 위해 한껏 노란 색을 모으고 있다. 가을이 풍성한 이유는 이렇듯 색이 넘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가을 향기는 어떨까. 필자가 생각하기엔 가을 향기는 색과는 대조적으로 하나일 것 같다. 그 향기는 바로 그리움의 향기가 아닐지. 그리움의 향기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움은 감정의 촉매제로 작용하여 많은 감정들을 양산(量産)한다. 행복, 설렘, 두근거림, 그리고 아쉬움, 먹먹함, 아픔 등은 모두 그리움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중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추석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 아마도 그 결과가 올 해 우리의 가을 향기를 말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걸 향기라고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여론 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올 해 추석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담에 대한 강도가 더 심하다고 말했다. 부담의 주범은 취업난. 요즘 젊은 세대를 일컫는 유행어 중에 하나가 삼포 세대다. 불안한 일자리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사회는 삼포 세대라고 한다. 그런데 이젠 오포를 넘어 칠포 세대까지 나왔다고 한다. 칠포세대가 포기한 일곱 가지는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지금 사회의 모습을 4단 카툰으로 그린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아마도 첫 장면엔 트렁크 살인 사건과 그 범인이 썼다는 살생부가 나올 것 같다. 그 다음 장면엔 성적을 조작한 어느 고등학교 교사 이야기, 세 번째 장면엔 막장 쇼로 가고 있는 국정감사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장면엔 역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 바쁜 정치권 이야기와 그들의 싸움에 고통 받고 있는 칠포 세대의 암울한 얼굴들이 그려진 장면이 나올 것 같다.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앞두고 오히려 더 우울해지는 칠포 세대, 정말 이들에겐 희망이 없을까. 이들에게 희망을 얘기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도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밥값도 못하고 오로지 밥 그릇 싸움만 하고 있는 지금의 여의도에서는 더욱더 적임자가 보이지 않는다.

칠포 세대들은 한가위를 앞둔 지금 시점에서는 아프게도 팔포 세대가 된다. 그들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귀향이다. 취업에 대한 주변의 눈이 두렵고, 말이 무서워서 그리운 고향 가기를 포기한 팔포 세대. 어쩌면 그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면서 지금의 사회를 원망하며 이백의 한시 `정야사(靜夜思)`를 읊조릴 지도 모르겠다. “머리 들어 산마루 달을 보다가 / 머리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있다. 예전부터 우리의 한가위는 그만큼 풍성한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분명 예전에 비해 사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3대 신용 평가 기관들은 지금 우리나리의 신용등급을 중국이나 일본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숫자 놀음에 대해 팔포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구 온난화 등 아무리 환경 파괴가 심해도 계절은 잊지 않고 때가 되면 때에 맞는 자신의 일을 한다. 자연은 분명 철이 들었다. 그래서 그리움 가득한 자연의 가을 향은 풍성하다.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우리 사회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 그리기에 우리 사회엔 역겨운 냄새만 가득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자연을 볼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는 계절에 대한 감각마저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철없는 모양이다.

사람 향기 가득한 철든 사회, 과연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일까.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