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스타일의 세계화 측면에서 경북 신도청 시대 중심지인 안동을 `한글 도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하면 반문하는 이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우리 안동을 흔히 한국 속에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 한글문화가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 한국인을 나타내는 정체성은 6가지 상징으로 대별할 수 있다. 한옥, 한식, 한복, 한음악, 한글, 한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한국적 문화 유전자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가운데 안동의 경우 한옥, 한식, 한지, 한복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지는 안동이 전국 최대 생산지이고, 한옥은 전국 고택의 25%, 다수의 국가 및 지방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그야말로 `선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복 또한 반가 규중의 전통 침선 솜씨에다 안동포가 주도하고 있어 어디에 내놓아도 월등하다는 평을 받는다. 한식 세계화 분야 역시 그러하다.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온주법 등 고 조리서가 만들어진 고장으로서 그 기반도 튼실하다.
그런데 이 기준에서라면 한글이야말로 빼 놓아선 안 될 요소라고 판단된다.
현존하는 한글 해례본은 단지 두 권에 불과하다. 그 중 한권은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데, 국보 제70호 한글 해례본이 그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권은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있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고, 얼마 전 점유자의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전 국민을 마음 졸이게 했던 가칭 `상주본(尙州本)`이다.
그런데 이 두 권의 한글 해례본 모두는 실제로 `안동본(安東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하나는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70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간송본은 바로 광산(光山) 김씨(氏) 예안파(禮安派) 긍구당(肯構堂) 소유의 한글 해례본이었다.
두 권의 한글 해례본이 어떤 이유이든 간에 우리 지역에서 반출되었다는 데서 자괴감이 없지 않지만, 세상에 단 두 권밖에 남아 있지 않은 한글 해례본이 모두 안동본인 것은, 안동지방이 목판 문화의 산실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서후면 소재 천년 고찰인 광흥사는 조선조 목판 인쇄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백성들에게 이를 널리 한글을 보급하고자 출판한 석보상절,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이 목판으로 제작되고 인쇄 보급된 장소였다.
이러한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온 사실이 있었기에 현재 안동은 목판 7만여 장을 수집·보관한 도시가 된 것이다.
안동시에서 이를 기반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해 놓은 상태지만, 정작 훈민정음 한글 목판 원본은 남아 있지 않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점은 크나큰 흠결(欠缺)이며 그래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따라서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안동시가 현존하는 두 권의 한글 해례본의 원적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훈민정음해례본을 목판으로 새겨 남기는 일은 시급하고도 시의 적절한 사업이라 하겠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의 글씨를 그대로 본뜬 목판을 만들어 보관하고 그 목판으로 인쇄한 한글 해례본도 다수 제작해 이를 보급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말과 글을 잃게 되면 그 나라, 그 민족은 영영 사라지고 만다.”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일생을 바친 애국지사 정인승 선생이 남긴 어록이 새삼 느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