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일컬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불리기를 즐겨했었다. 그런데 굳이 `즐겨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못 박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과거에 비해 이 표현을 입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 과연 `예의`를 입에 올릴 상황인지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예의에서 벗어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저질러질 뿐더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예의에 벗어난 일인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이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는 사소한 다툼으로 낯을 붉히는 일에서부터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지기 일쑤다. 이런 지경이니 어찌 동방예의지국을 쉽사리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을 동방예의지국으로 부르게 된 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說)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약 2천300년 전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썼다고 알려진`동이열전(東夷列傳)`에 따르자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 나라는 크지만 교만하지 않고 그 병사는 강하나 침략하지 않는다. 풍속이 순후하여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고 먹는 자는 밥을 미루고 남녀는 따로 거처하니 가히 동방 예의(禮儀)의 군자국이라 하겠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출처: 대종 언어 연구소 기자관련 논고 중에서 재인용)
교만하지 않으며, 비록 강하다 해서 약자를 함부로 헤치지 않는 성품을 지녔었다. 또한 양보의 미덕과 체면을 중시하는 순후한 풍속을 지닌 민족이었다. 하지만 공자께서도 살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을 정도의 나라 체면이 지금은 말이 아닌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한 주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이른바 `인분 교수` 논란만 하더라도 그렇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차치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충격적 사실이 매일 매일의 보도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에 낯을 들기 민망하다.
도덕이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의 극단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불과 얼마 전 우리 문단의 대표 작가가 보여준 표절 논란과 그에 대한 대응방식의 변변치 못함도 그러하고, `××남``××녀` 딱지를 붙여 오르내린 여러 사태들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여과 없이 들춰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분 교수 논란과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의 대학사회는 연이어 터져 나온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층의 비위를 들춰내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니 아예 말하지 않으련다. 더 심각한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인륜마저 무참히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의 찬사가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아련하게 느껴짐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국어사전에서 염치(廉恥)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풀이되어 있다. 그래서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염치없는 놈`이라 손가락질한다. 우리 모두가 성인군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깊이 잠자고 있는 `염치`란 놈을 깨워내고 불러낼 때가 지금이라 생각한다. 염치만 있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두렵기도 하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과연 염치 있는 놈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슬그머니 고개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