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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부재 시대의 슬픈 자화상

등록일 2015-09-14 02:01 게재일 2015-09-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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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봉준<br /><br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2013년 후반,“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자보가 대학 캠퍼스 벽면을 장식한 때가 있었다. 학내의 불합리한 문제점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병폐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시선에서 바라 본 세태에 대한 풍자와 일갈이 매일매일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의 격정과 분노로 들끓던 격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글들이었고,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과 절절한 호소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발걸음이 자주 멈추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글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에게 현실의 삶이 `안녕(安寧)들 하신지`를 되묻고 있었다. 알다시피 `안녕하십니까?`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인사말이다.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났든, 아니면 오래간 만에 만났든 우리는 상대편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를 묻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2013년 대학가 벽면을 장식해 나갔던 글들의 주인공은 예사롭지 않은 목소리로 우리들의 안녕함을 되물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이 결코 안녕치 않은 현실임을 자신들의 소통방식을 통해 일깨우고자 했으며 그 파급력 또한 작지만은 않았다.

벌써 2년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 옛 기억을 되살리는 이유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안녕치 못하다는 우울함 때문이다. 지난 해 세월호 사건이 던져준 충격과 슬픔이 아직도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았는데, 지난 5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싯배가 침몰해 또 다시 많은 인명을 잃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 소식이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분노와 절망으로 번지는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이러한 사건의 연속 속에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결코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상 조건이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운항을 결정한 문제에서부터 구명조끼 착용을 비롯한 기본적 안전구호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다. 소위 `안전 불감증`이라 불리는 고질병을 여전히 고치지 못한 채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진 순간 불행은 도둑같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적 재난 시스템의 부재가 더 큰 절망과 분노로 밀려든다. 정부는 세월호 사태 이후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의 잘못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다시는 그 같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조직도 개편하고 제도도 개선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래서 2014년 11월 19일 전격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이름 그대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돌고래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 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질만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작동하고 있는지 재차 의심하게 되었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몇 달 전 `메르스 사태` 당시도 그랬듯이 우리는 시스템이 부재한 시대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듯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캄캄한 밤,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혹여나 구조의 손길이 닿을까하는 기대 속에서 서서히 생의 마지막 끈을 놓았을 이들을 조상(弔喪)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애도(哀悼)하며 정부를 향해 진심으로 호곡(號哭)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미래를 위한 초석을 새롭게 다져나가자. 진정 안녕한 사회를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의 희생은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천하고, 다듬어가자.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 밝혀둔 것처럼 `체계적인 재난안전 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하여 안전사고 예방과 재난시 종합적이고 신속한 대응 및 수습체계를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한 본래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기관의 비전을 굳게 지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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