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잘못 인정하는 것, 패배 인정하는 것 아니다

등록일 2015-09-07 02:01 게재일 2015-09-07 18면
스크랩버튼
▲ 임선애<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입추, 말복, 처서의 순으로 절기들이 지나가더니, 이젠 자연들이 제법 가을빛을 내고 아침 저녁의 기온도 제법 서늘해지고 있다. 낮아지는 기온과는 반대로 한국은 지금`사과`라는 키워드를 두고 열기가 뜨거운 중이다.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처럼 사과에는 두 개의 단계가 있다. 우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와 그 다음으로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가 그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면 우선 자신에 대한 철저한 사유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적 사유말이다. 칸트에 의하면 `반성`은 대상 자신의 규정에 직접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우선 대상에 관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한 주관적인 제약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칸트 사전)라고 한다.

반성의 단계 다음은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반성의 마음 상태에 접어들어도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미움 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기시미 이치로)라는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는 사과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의 심리학을 잘 말해주고 있다.

철학자 :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권력투쟁에 돌입해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그러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곧`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거라네.

청년 : 맞아요. 그런 측면이 있죠.

철학자 :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되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야. 우월성 추구란 타인과 경쟁하는 것과는 상관없네.

청년 : 승패에 연연하면 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철학자 : 그래 흐릿한 안경을 쓰면 눈앞의 승패밖에 보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게 되지. 경쟁이나 승패의 안경을 벗어야 비로소 자신을 바로 보게 되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걸세.

위의 대화에 등장하는 철학자의 말처럼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하청옥 작가가 쓰고 김근홍·박상훈 연출가가 연출한 드라마 `여자를 울려`가 지난 주말에 불륜과 야욕 등 막장 모티프를 넘어서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등장인물들 중 강회장(이순재 분)과 나은수(하희라 분)는 지독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파렴치한 인간을 표상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막장드라마라는 평을 피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지만, 이 두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오자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끝나는 것을 오히려 아쉬워했다.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도발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명백한 잘못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제스처라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