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유비무환의 정신

등록일 2015-08-11 02:01 게재일 2015-08-11 18면
스크랩버튼
▲ 임선애<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입추(立秋)를 기점으로 적은 양이지만 소나기가 내려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를 약간이나마 식혀주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더위 사이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페스트와 레지오넬라균 감염자들의 사망 소식은 전염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현생 인류에게 적지 않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겨우 메르스 확산의 위기를 피해갔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기에는 세계인의 교류가 너무 활발하고, 이에 따라 전염병은 일 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인의 공통된 고민거리임이 자명한 사실이 되고 있다. 지난 달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캠프장을 다녀간 한 소녀가 페스트균에 감염됐다가 회복됐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9년 만에 페스트 감염 사례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페스트는 쥐 등에 기생하는 벼룩이 사람에게 박테리아균을 옮겨서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지난 4일에는 콜로라도 주에서 한 성인 남성이 페스트균에 감염돼 숨졌다고 한다. 2015년 콜로라도 주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돼 숨진 사례는 지난 1월 16살 소년에 이어 모두 2건이라고 한다. 미국 뉴욕에서는 레지오넬라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와 감염자 수가 다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염병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며칠 전 KBS 1TV를 통해서 4부작 `한국인의 건강은 어떻게 변해왔나` 제3회 `전염병` 편을 방영했다. 전염병의 70년사였는데, 대한민국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잿더미의 땅에서 피어오르는 온갖 전염병, 바이러스에 취약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1960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143.4명이 각종 전염병에 걸렸지만, 1970년대 중반 생활환경이 변화하며 극적인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는 두창(천연두)을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전염병이며, 태어날 때부터 이뤄지는 각종 예방접종을 통해 홍역, 일본뇌염 등 백신이 있는 전염병의 발병도 피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메르스, 에볼라 등 세계인들의 교류로 인해 생겨나는 각종 신종 전염병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편이다.

세계은행이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국민 4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다음에 다가올 유행에 국가가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테러나 기후변화보다 보건의료와 감염병 유행이 더 심각한 국제적 문제라고 인식했다. 김용 총재는 감염병 대유행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준비해야 할 점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첫째는“의료의 질 관리, 질병 감시, 진단 정확도 등 보건의료 시스템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감염병 유행 위험이 높은 에티오피아, 르완다 같은 개발도상국에도 보건의료 전문가 양성 등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에볼라 유행 시 국경없는 의사회의 신속한 활동으로 감염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미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제기구, 민간 분야, 비정부기구 사이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셋째는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정에 호소해 자금 조달을 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충분치 않다. 세계은행은 전염병 유행 시 긴급자금조달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이달 초 전남대학교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열었다. 여기에서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감염되는 각종 인수공통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치료·예방할 대책을 개발하고 검증해서 국내외에 보급한다고 한다. 과감한 투자와 성실한 연구로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지고,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기관이 되길 바란다.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