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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계층 이동 사다리

등록일 2015-09-02 02:01 게재일 2015-09-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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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타오름달답게 정말 대한민국이 활활 타올랐던 8월이 가고 맺음달이 왔다. 8월의 이글거리던 태양을 한껏 삼킨 사과나무들이 가지마다 태양보다 더 붉은 결실을 준비 중이다. 개망초에 둘러싸인 달맞이꽃은 마치 결실의 계절을 축하하기 위해 봄이 미리부터 준비해 둔 꽃다발 같다.

결실의 계절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교육활동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 있다. 그런데 이 계절은 자연과는 다르게 너무 혹독하다. 그것은 바로 고입, 대입으로 불리는 입시철! 입시 지옥이라는 말처럼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피를 말리는 입시! 모든 수험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합격의 문을 꼭 열기를 기원한다.

필자가 있는 산자연중학교도 고등학교 입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원서를 낸 곳은 `특수 목적 고등학교`다. 그 학교는 많은 학부모들이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학교이다. 그 과정에서 사교육의 도움도 적잖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원서를 쓴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했다. 어떤 사람은 대안학교에서 어떻게 그런 학교에 원서를 쓸 수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기까지 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원서접수창구에서도 받았다. 필자는 원서접수를 위해 직접 해당 학교에 갔다. 접수창구는 한산했다. 준비해 간 원서를 접수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창구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접수를 하던 사람이`이 건 뭐지`하는 표정으로 몇 번이나 원서를 살피더니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학교 이름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짧게 답했다. 원서와 자신의 컴퓨터를 번갈아 보던 접수원이 말했다, 자신들의 통계에는 산자연중학교가 없다고.

필자에겐 익숙하다 못해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겪는 통과의례가 되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학교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설명 끝부분에 필자는 힘주어 말했다. “산자연중학교는 올해 경북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 중학교 부문에서 경상북도 최우수교로 뽑힌 학교입니다” 그랬더니 마지못한 소리로 “아, 네!”라고 한다. 원서 접수를 끝내고 학교로 오는 내내 필자는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 지상주의에 치를 떨었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이번 주에도 원서를 쓴다. 꿈과 개성이 강한 학생들답게 고등학교 원서도 획일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특성에 맞게끔 다양하게 쓴다. 너무 다양한 입시 전형을 분석한다는 것이 조금 힘겹지만 그래도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8개 시도의 고등학교 원서를 쓰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필자가 원서를 쓸 때를 생각해보았다. 분명 요즘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이야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끼로 고등학교를 선택하지만, 필자 때만 하더라도 원서를 쓰는 기준은 점수였다. 점수는 곧 그 학생의 성공 척도였다. 많은 학생들은, 특히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은 피나게 노력하여 점수를 높였고, 그것이 곧 성공으로 이어졌다. 연말이면 항상 텔레비전에 대입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학생의 인터뷰가 나왔다. 주인공은 대부분이 열심히 일하지만, 항상 경제적으로 힘든 집안의 학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용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라고 한다. 신분 상승의 통로였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세습(世襲)에 의해 끊어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세습이냐고 하겠지만, 실제적으로 현대판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모의 학벌과 직업은 물론 경제 사정까지 세습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돈이 돈을 낳는 시대에는 절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 꿈이 부재한 시대, 꿈이 상실된 사회, 노력할 가치가 없는 나라! 참 슬프다!

끊어진 계층 이동 사다리를 다시 잇기 위해서는 진정한 학벌 지상주의가 없어져 대안학교도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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