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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국회

등록일 2015-09-09 02:01 게재일 2015-09-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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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아마도 관공서, 공기업, 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긴급 국회`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요즘 들어 공문서 중에 어찌나 긴급이 많은지 공문서를 열기가 무섭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학교 등으로 보내는 공문서들은 거의가 `긴급 보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평상시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국회의원 공문서들이 2학기 들면서 봇물 터진 마냥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보고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여차 없이 교육청으로부터 질책 강한 독촉을 받는다.

잠들어 있던 국회가 오랜만에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 필자는 기쁨 마음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그리고 우리 교육계에 산재해 있는 긴급한 현안들을 조사하는 공문서가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공문서들을 접수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필자가 바라는 공문서는 오지 않았다. 공문서 유통과정을 보면 국회의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그냥 전국 교육청에 공문서 한 장만 보내면 순식간에 교육 통계가 만들어지니 말이다.

`긴급 보고` 제목만 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고하라는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급히 해결해야할 교육계의 현안에 대한 조사보다 단순 통계를 묻는 공(空)문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혹 필자가 `긴급`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나 싶어 긴급(緊急)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긴급·매우 중요하고 급함`

사전을 찾아본 다음에서야 `긴급 보고`의 의미를 알았다. 긴급, 즉 급함의 주체는 학교나 관공서가 아니라 국회의원이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국회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국정감사니, 행정 사무 감사니 야단들이니까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카드인 `긴급 보고`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 카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쓰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랴마는 문제는 중요함과 급함 중에 급함만을 강조하다 보니 중요함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됐든 일을 하겠다는 모습에는 정말로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단순한 통계를 모으기 위해 `긴급 보고` 카드를 쓰지 말고 `매우 중요하고 급함`이라는 긴급의 의미처럼 지금 교육계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서 그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데 `긴급 보고` 카드를 써 줄 것을.

올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학교 내 인성 범죄는 도를 넘어 섰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부탄가스 폭발 사건과 전북 고창의 어느 고등학생의 여교사 몰카 사건 등이 이를 증명해 준다. 과연 교육이 무엇인지? 학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교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왜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교육 때문에 범죄자가 돼야 하는지? 정말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질문들에 대해 그토록 긴급 보고를 외쳐대던 국회는 명쾌히 답해 줄 수 있을까?

우리 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흘러가는지 정녕 국회의원들은 모르는 걸까. 다음은 대학교 수시 전형 자료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 3번 문항이다. 이 문항을 보면서 필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3번 문항과 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2항을 같이 비교해보면 대학들이 얼마나 `긴급 보고` 카드를 가진 정부 교육 당국의 눈치를 보는지를 알 수 있다.

(대입 수시 자기소개서 3번) `학교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2항) `핵심 가치·덕목이란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

국회의원들에게 긴급으로 묻는다. 과연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위의 질문에 거짓 없이 솔직하게 답 했을 경우 대학교 입시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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