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파릇하던 초임시절,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는데, 그 당시 예능교과 교사들의 숙명이었던 상치과목 중 `교학상장`이라 배우며 가르치던 한문시간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당시 중학교 3학년 한문교과서에 `수욕정풍부지, 자욕양친부대(樹欲靜風不止 子欲養親不待)`라는 대목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국 한나라의 학자 한영이 쓴 시경(詩經) 해설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전해오는 구절이다.
`나무가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말이다. 부모님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한을 나무와 바람에 빗대어 풍수지탄(風樹之嘆)이니 풍목지비(風木之悲)니 하는 고사성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언제나 부모님에 대한 사무침으로 가슴 저 밑바닥이 저릿해지곤 한다.
신바람 박사로 유명한 고 황수관 교수의 까치이야기는 유명하다. 83세 아버지가 53세의 아들에게 마당에 날아 온 까치를 보며 묻는다, “저게 뭐냐?” “까치입니다”. 금세 잊어버린 아버지는 조금 있다가 다시 “저게 뭐냐?” “까치라니까요”, 또 조금 있다가 다시 “저게 뭐냐” “아, 까치라 했잖아요!”. 53세의 아들은 버럭 짜증을 낸다. 83세의 아버지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오래된 일기장을 가지고 나왔다. 그가 33세이던 때 쓴 일기장이다. 3세이던 아들이 “아빠 이게 뭐야?”를 23번 연거푸 물었고, 23번을 연속해서 같은 대답을 하며 기쁘고 행복해했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가 만년에 그린 대작 `돌아온 탕자`는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무조건적이고 끝없는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불후의 명작이다. 유복했던 환경과 뛰어난 재능으로 각광 받던 젊은 시절을 낭비한 탓으로 불행한 만년을 맞이한 그가 혼신의 힘으로 작가정신을 가다듬어 스스로 어버이가 되어 집 떠난 자식을 기다리고, 스스로 탕자가 되어 어버이가 된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작품이 `돌아온 탕자`가 아닐까 한다.
높은 언덕에 서서 아들이 돌아올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눈이 짓물러버린 아버지의 눈은 초점이 없게 그려져 있고, 거렁뱅이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등을 말없이 어루만지고 있다.
헨리 나우웬은 이 그림의 포스터를 보고 충격적인 감명을 받아 `탕자의 귀향`이란 책을 저술하였고, 후에 러시아를 방문하여 원작을 보고는 온종일 그림 앞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하며, 결국 하버드대학교의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인을 위하여 평생 봉사하는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고 나니 허전하여 가끔은 몹시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이들도 내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새삼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러다 방학을 하여 6개월 만에 딸아이가 집에 왔다. 없을 때는 그렇게 허전하고 그립더니 막상 나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곁에 두고 보며 사흘이 지나니 은근한 짜증과 진심어린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시도 때도 없이 까톡거리는 스마트폰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밤새 컴퓨터게임을 하고는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결국은 싫은 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께 야단맞은 기억이 별로 없다. 나도 그 분들께 똑같은 자식이었고 마찬가지로 철이 없었을 텐데….
일찍 집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한 큰 누님이 가끔 집으로 부모님께 보내오던 편지를 몰래 읽은 기억이 난다. 첫머리엔 언제나 부모님전상서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커서 부모님께 저렇게 편지해야지 했으나 막상 그런 편지를 쓴 기억은 없고,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친부대`가 절실하게 가슴에 닿는다.
잔소리를 듣다가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은 딸내미가 카톡으로 자기생각을 조목조목 보내왔다. 현대판 아버님전상서인가?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이여, 아이들 철없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