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지 사이로 밀려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도 마냥 춥고 길게만 느껴졌던 어린 시절 한겨울의 기억이 떠오른다. 엷은 창호지가 발린 여닫이 창살문 사이로 전해지는 추위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슬픈 추억을 안겨줬다. 한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이 들어올 구멍조차 없어 보이던 아파트가 아닌 개인주택에서 70년대를 지내야 했던 학창시절은 마당에서 아침 세수하는 것마저도 큰 고충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새집으로 이사를 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군복무 중 경험했던 혹한 역시 어린 시절 추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왜 나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의 겨울은 그렇게 춥게만 느껴졌을까?
최근 케이블방송을 통해 인기리 방송됐던 `응답하라 1988`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그 시절 서민들의 주거환경과 삶이 나만의 열악했던 환경이 아니라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다는 것을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연탄아궁이에서 전해지는 온돌의 따스함을 따라 마냥 아랫목으로 내려가다 보면 스텐 밥그릇에 담긴 아버지의 밥을 발견하고 이내 돌아누워 흑백TV에 시선을 꽂았던 어린 시절은 우리 집만의 풍경은 아니었던 것이다. 변변한 놀거리가 없던 시절 햇볕 잘 드는 동네 한 곁에서 구슬놀이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냥 놀다보면 어느듯 들려오는 “XX야 점심 먹게 그만 놀고 들어오느라”는 고함소리를 통해 식사 때를 알았던 풍경이 우리 동네 모습만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늦은 오후 부추전 굽는 냄새가 동네를 진동할 때쯤이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뜨거운 전을 호호 불어가며 정신없이 먹었던 추억 역시 동네 친구들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응답하라 1988`이 19.6%라는 케이블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호화 캐스팅이나 유명 탤런트가 주연을 맡은 것도 아닌데 이처럼 모든 연령대로부터 고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드라마 속에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과 복수, 패륜 등 막장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짜릿한 반전과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가 주는 희열을 맛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감하고 이해하며 다음 편을 기대할 수 있는 궁금증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우리가 생각하고 예측했던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개되어졌다. 마치 우리들의 어린 시절 생활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영상으로 확인시켜 주며 친근감을 더 해 줬기 때문이다. 덕선이를 비롯해 다섯 친구들의 우정이 만들어 낸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드라마를 통해 경험하게 해 줬고, 자신보다는 가족과 친구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쌍문동의 한 겨울을 따스하게 녹이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한겨울 마냥 춥게만 지냈던 나의 어린시절 기억을 이제 새롭게 정리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얇은 겨울 홑바지 사이로 느꼈던 차가운 겨울바람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만들어 낸 추위였지 그렇게 춥지만은 않았던 행복한 겨울이라는 것을….
필자의 어린 시절 겨울은 사랑하는 가족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이 `응팔`처럼 함께 했기에 결코 슬픈 겨울의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