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오랜만에 찾아온 극심한 추위는 우리의 일상을 혼잡스럽게 했다. 적당히 내리는 눈만큼 우리의 정서를 황홀한 경지로 이끌어가는 것이 어디 또 있으랴마는, 일부 지역에 내린 폭설은 점령군의 억압과 폭력처럼 저항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의 변화 앞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움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런 이상 기후 현상은 인간이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반동 현상에서 오는 것이라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연재해를 당할 때마다 자연의 역습에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좁고 얕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마음을 무시할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이지.
인간이 자신들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대로`라는 말이 갖는 함의를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는데, 적어도 상대의 처지를 고려한 `마음대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최근 들어 인간이 자연을 두고 마음대로 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함부로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가족들 간에서 벌어지는 존속살해사건은 인륜과 천륜을 배반하는 일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신호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힘없고 나약한 어린 자식들, 돈이 많은 부모들, 배우자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아내와 남편….
이들의 공통점은 일방적으로 살해 이유를 설정하고, 상대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습하는 방식으로 목숨을 헤치는 데 있다. 불교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태어나는 인연은 1만년 생. 부부로 맺어지는 인연은 8천 생 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이처럼 참으로 오랜 기다림 뒤에 소중한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들이, 인간으로서는 차마 상상하기 힘든 이유들로 존재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아버지`(1966, 김정현)는 췌장암 말기에 이른 주인공 한정수가 보여주는 애틋한 가족애를 그린 소설로, 당시 100만부의 판매 부수를 올리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한국 사회는 가족을 위해 돈벌이에 바쁜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가족들에게 무심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지탄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사회였다.
한정수라는 인물은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 남성들의 가족에 대한 무관심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성애를 한껏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더욱 받았던 인물이다. `아버지`가 시공을 초월해서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여주는 그의 가족애이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처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한 사실을 넘어서 있는 비정한 부모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5일의 마중`(2014, 장예모)은 부부 간의 애틋한 기다림과 정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화다. 중국의 문화 혁명 당시 사상범으로 잡혀간 남편 루옌스(진도명 분)를 기다리다 아내 펑완위(공리 분)는 심인성기억장애증을 앓게 된다.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5일에 도착한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토록 기다리던 루옌스가 돌아오게 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펑완위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남편의 노력들은 눈물 없이 영화를 볼 수 없게 하는 시퀀스들이다. 딸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바리데기`공주는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일을 묻지 않고,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험난한 여정을 마다 않은 지극히 효심이 깊은 자식이었다. 이들이 우리에게 두고두고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들이 가족을 생각할 때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을 초월한 존재의 무게감을 인지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가족은 마음대로 처치해도 될 가벼운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