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힘겨워 보인다. 이제 1월인데, 누가 사람들을 저토록 힘들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길옆에서 혼자 춤추는 바람 인형이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을 더 격렬한 몸짓으로 응원하는 2016년 1월! 연령대를 불문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엔 아쉬움과 허무함, 그리고 분노만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풀릴 수 없는 응어리가 되고 있는데 그 응어리를 풀어줄 사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필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응어리진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야기의 순서가 조금 다를 뿐이지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지난주에 막을 내린 `응답하라, 1988!`. 그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진한 향수(鄕愁)가 가득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잘 모르는 필자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 프로그램에 중독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정(人情)`과 `이웃사촌`이었다. 이 두 단어만 들어도 필자는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나라가 나름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 발전에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골목`이다. 골목이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이 사람 사는 이야기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하루 살기에 바쁜 지금 사람들은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다, 작은 일에도 `동네잔치` 하던, 그리고 진정 `우리`가 존재했던 그 시절로.
골목이 사라진 우리 사회에 `인정, 이웃사촌, 동네잔치`와 같은 사람 냄새나는 단어 대신 `문송합니다, 인구론, 공시생`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창궐하고 있다. 돌림병이 창궐하면 그 마을이 쑥대밭이 되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창궐하는 사회는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사회로 변질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금 우리 사회처럼.
`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다. 또 `인구론`은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뜻의 신조어다. 이들 단어들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청년 실업, 거기서도 더 시급한 인문계 학생들의 취업난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사회로 나가는 필수 관문이라고 하는 대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청년들은 갈 곳이 없다. 아니 오라는 곳이 없다. 특히 전통적인 인문학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 관련 학과 대학생은 더 그렇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이젠 N포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이 나라 청년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야할 저들을 누가 저토록 주눅 들게 만들었는가. `문송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필자는 도대체 이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하는지 두려워졌다. 그리고 `인구론`이란 단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의 부재 때문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을 일컫는 말 중에 `공시생`이라는 말이 있다. `공시생(公試生)`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약자이다. 공시생은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공무원 채용시험 준비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어느 학과를 막론하고 대학생이라면 한 번 쯤은 생각해봤을 공무원 채용 시험. 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올인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공무원은 취업의 한 수단이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 대학교들의 학과 이름도 `서울 지방직 행정직군 학과`와 같이 공무원 채용 종별로 바뀌지 않을까.
공대생(工大生)도 공시생이 되고 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떨까. 아마도 국민을 분노케 하는 1월의 정치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선진국의 사례를 충분히 연구해 모범답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