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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다와 거인

등록일 2016-01-29 02:01 게재일 2016-01-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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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양배추 절임과 소시지 모듬, 파이 반죽에 싸서 구운 거위 간 푸딩, 송로 버섯 젤리를 곁들인 송아지 고기 튀김, 폼파토 사라 베르나르, 라스푸틴 초콜릿 소스, 신데렐라 식 칠면조 구이, `거인의 기쁨`이라고 하는 설탕물에 졸인 과일과 숟가락 모양의 비스킷, 아이스크림 케이크….

요즘은 먹는 방송, 일명 `먹방`이 유행입니다. 요리하는 방송, `쿡방`도 대세지요.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셰프(chef)가 상위를 차지한 지 꽤 됐습니다. 한국심리학회에서는 `먹방`, `쿡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진단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 가족의 해체현상, 소비트렌드의 변화, 소비자의 욕구변화가 그것입니다.

언제부턴가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낯설지 않은 말이 됐습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모래알 사회로 변해 가는 중입니다. 모래알은 서로 뭉치지 못하고 한 알의 알갱이로 존재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았지만 지금은 한 알의 모래마다 날카로운 외로움이 삐죽 빼죽 솟아 있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토미 웅거러의 `제랄다와 거인`(비룡소)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니다. 그림책 표지가 굉장히 뜻밖입니다. 예리한 칼을 든 거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한 소녀를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거인을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은 한없이 다정합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그림입니다.

책의 첫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옛날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혼자 외로이 살고 있었습니다.` `혼자, 외로이`에 곁점을 찍습니다. `혼자, 외로이`가 아니었다면 사람을 특히,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거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에 사는 농부와 어린 딸 제랄다만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픈 어느 날, 제랄다는 혼자 장에 물건을 팔러 갑니다. 그때, 거인은 제랄다를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너무 허둥대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져 정신을 잃고 맙니다. 제랄다는 쓰러진 거인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줍니다. `화란 냉이 크림 스프, 소스를 친 훈제 송어, 달팽이 마늘 버터 볶음, 통닭 구이 한 쟁반, 새끼 돼지 한 마리….`

거인은 제랄다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보고는 어린아이들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됩니다. 거인이 살던 성의 요리사가 된 제랄다는 이웃에 사는 남자 거인, 여자 거인들을 위해 잔칫상을 차립니다. 그때부터 거인들은 아이들을 먹지 않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랄다 덕분에 숨어 있던 곳에서 밖으로 나와 함께 어울려 지내게 됩니다.

제랄다가 거인들에게 해준 `음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거인들은 제랄다의 음식을 나눠 먹고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정신을 잃은 거인에게 제랄다가 정성껏 차려준 음식은 따뜻한 `모성`이자 함께 밥을 먹는 `식구`를 의미합니다. `혼자, 외로이`였다면 아마도 거인은 사람 잡아먹는 습성을 여태 버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거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따뜻한 공동체의 `모성`을 회복하고, 함께 밥을 먹는 `식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1931년 프랑스 스트라스브루에서 태어난 토미 웅게러는 어린 시절, 가난과 전쟁을 겪으며 방황했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토미 웅게러가 그림책을 통해 반전과 평화, 인간에게 숨겨진 양면성을 주로 다룬 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전쟁의 상처 때문이라고 합니다. `꼬마 구름 파랑이`, `크릭터`, `세 강도`, `달 사람`, `곰 인형 오토` 등의 주옥같은 토미 웅게러의 그림책이 도서관에서 독자들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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