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표훈대덕(表訓大德)`편에 향가 `안민가`의 배경설화로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24년 3월 3일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거리로 나가 영복승(榮服僧)을 한 사람 데리고 오라 명한다. 이에 신하들은 화려하게 옷을 차려 입은 승려를 왕의 앞으로 데려왔지만 돌려보냈다. 마침 누더기를 걸친 중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경덕왕은 오히려 그를 기쁘게 맞아들였고 이 사람이 `찬기파랑사뇌가`를 지은 `충담`임을 알고는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를 하나 지어달라고 요청한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 창작된 노래가 10구체 향가 `안민가`다.
이 시의 낙구는 `君如臣多支民隱如爲內尸等焉 國惡太平恨音叱如`로 표기돼 있다. 향가 해독의 권위자 양주동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충담은 백성들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임금이 임금다울 때, 신하가 신하다울 때, 그리고 백성이 백성다울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무엇답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다움`의 가치와 `다움`이 지닌 힘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충담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라의 태평성대는 무엇보다도 통치자의 애민의식과 민본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그는 임금을 아버지에 비유하면서 신하를 어머니, 그리고 백성을 어린아이로 각각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 집안의 가장격인 임금이 가장 먼저 그 역할과 본분을 다해야하며, 더불어 어머니에 해당하는 신하들도 그들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평안이 이뤄질 것임을 강조한다. 한 나라의 위정자들이 지녀야 할 기본적 소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담이라 해서 다른 시각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점은 앞서도 언급한 `다움`의 실천에 대한 역설이다. 충담은 임금답게, 신하답게, 그리고 백성답게 각자의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나라가 태평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만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일에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아울러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누구 한 사람만의 반성과 결단만이 요구되어서도 안 된다. 모두에게는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각자에게 부여된 소임이 있다. 본분에 맞게, 깜냥에 맞게, 각자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할 때 불협화음은 사라진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은 어떠했는지를 겸허히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기본적 역할조차 완수하지 못한 채 불평만으로 가득한 삶이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 한 조직은 결단코 궁극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과연 얼마나 `답게`처신하고 있는지, `다움`의 가치에 공감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다사다난했던 2015년 을미년(乙未年)이 지나갔고 이제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의 새날이 밝았다. 새로운 시작과 더불어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 한해만큼은 부디 나라와 가정, 직장과 사업 등이 무사태평하기를 기대하고 소망할 것이다. 필자도 독자 여러분들의 모든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불황의 늪에서 언제 벗어날 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안녕(安寧)과 건승(健勝)을 간절히 염원해 본다. 아울러 이러한 개인적, 국가적 소망의 성취를 위해 우리 모두 더욱 분발하는 한 해가 될 것을 기대하며, 충담의 가르침대로 `다움`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