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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에 전해준 상장

등록일 2016-01-27 02:01 게재일 2016-01-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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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최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춥다”이다. 연일 언론은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다. 냉동고 한파, 북극 한파, 슈퍼 한파 등 이번 한파를 나타내는 수식어만 봐도 한파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얼어버린 바다, 강풍과 폭설로 발이 묶여 고생하는 제주 공항의 수 만 명의 여행객들 모습은 이번 한파의 위력을 증명해준다.

겨울이니까 추운 것은 당연하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기상 이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워도 너무 춥다. 그런데 이런 기상 이변이 유독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더 걱정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물론 이런 기상 이변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환경 파괴, 지구 온난화 등 인간의 이기적인 개발주의가 불러올 자연의 복수에 대해 예견했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 이변들은 마치 환경 재앙 영화를 생방송으로 보는 것 같다.

해오름 달 끝 무렵에 시작된 기록적인 한파는 뉴스의 메인 기사를 바꾸어 버렸다. 국민들을 지치게, 또 분노케 만들던 정치판 사건들이 한파 뉴스에 밀려 메인 뉴스에서 내려왔다.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다. 하늘도 선거법이니, 노동법이니, 그리고 무슨 무슨 당하며 서로 싸우는 정치판 꼴을 더 이상 보아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시샘달이 시작되기 전에 국민들을 더 아프게 하는 모든 정치 이야기들을 꽁꽁 얼려서라도 영원히 세상 밖으로 추방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제발 시샘달에는 더는 국민들의 힘을 빼는 더 나쁜 정치 이야기 대신 국민들을 신명나게 춤추게 하는 행복한 이야기들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

지난 주말 필자에겐 맹추위를 잠시 잊게 하는 행복한 일이 있었다. 그 행복감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16년 만에 주인을 찾은 상장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지난 주말 필자는 주례(主禮)를 보았다. 신랑은 16년 전 필자의 첫 제자. 아직 주례를 볼 연배가 되지 않아 수차례 사양했으나 제자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또 필자가 16년 동안 너무도 소중히 간직해 오던 상장이 있는데 그 상장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주례를 승낙했다.

신랑은 16년 전 필자가 교단에 처음 섰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6년 전 필자와 신랑은 모두 새롭게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은 늘 어설프기 마련이지만, 열정만은 최고이다. 필자와 신랑은 그것마저 비슷했다. 짧은 머리, 결코 순하지 않은 인상, 그리고 억양 강한 말투 때문에 신랑은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았다. 그 오해가 신랑과 필자를 제자와 스승으로 이어주었다. 비록 지금이야 제자와 스승은 없고, 학생과 교사만 있다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제자와 스승이 존재했다. 필자는 신랑을 통해 절대 사람은 겉모습과 행동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수많은 오해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확고한 꿈을 위해 노력하던 16년 전 학생에게 필자는 꼭 상(賞)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땐 그럴 위치가 못 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 위치가 못 된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한 신랑을 잘 알기에 필자는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주례사(主禮辭)를 상장 전달로 대신하였다. 주례사를 쓰는 마음으로 상장 문구를 썼다. “위 사람은 스승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너무도 당당히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사회인으로 잘 성장해주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이 상장을 드립니다.”

16년 만에 상장을 찾은 신랑에게 한파를 이기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큰 박수를 보냈다. 필자는 보았다. 하나같이 힘든 사람들의 모습과 그 힘듦을 이겨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결혼식 후 필자는 주문처럼 옹알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중략)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국민 여러분, 걱정하지 말고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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