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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머니의 꿈

등록일 2016-01-08 02:01 게재일 2016-0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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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지난해 12월 30일 수요일 정오. 서울시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어김없이 `수요 집회`가 열렸습니다. `수요 집회`에 작은따옴표를 한 이유는 `수요 집회`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수요 집회`는 1211차 집회였습니다. 자그마치 24년 동안이나 지속하였으니 단군 이래로 가장 오래된 집회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관련 단체, 시민, 청소년들이 `수요 집회`를 통해 바라는 것은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합당한 배상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8일 극적으로 타결된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협상은 자못 실망스럽습니다. `사죄`란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는 뜻입니다. 어떤 조건이나 단서가 붙은 사죄는 사죄가 아닙니다.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온몸으로 사죄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처럼 일본의 아베 총리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마땅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 모쪼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달랠 수 있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합당한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1940년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사계절, 2010)는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기획한 `평화그림책`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알다시피 전쟁은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입니다. 전쟁은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줍니다. 근대 이전의 수많은 전쟁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전쟁과 내전, 테러의 주요 희생양은 여성과 어린이들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꽃할머니도 그중에 한 분입니다. 꽃할머니가 열세 살이던 1940년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전쟁터로 내몰리고, 곡식이며 놋숟가락까지도 모조리 거두어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날도 꽃할머니는 나물을 캐러 언니와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커다란 트럭을 타고 온 군인 두 명이 꽃할머니와 언니를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꽃할머니와 언니는 배에 옮겨 태워졌습니다.

꽃할머니와 언니가 도착한 곳은 대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꽃할머니는 언니와 헤어졌고 다시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꽃할머니가 떠밀려 들어간 곳은 작은 방이 칸칸이 있는 막사였습니다. 꽃할머니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군인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나가고 또 들어왔다 나갔습니다. 열세 살 꽃할머니의 아랫도리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꽃할머니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아무도 꽃할머니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꽃할머니도 어딘가로 끌려다녔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더 흐르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쟁터에 버려진 꽃할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반겨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작가 권윤덕은 고백합니다. `스케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이 책을 끝낼 즈음이 되니 이웃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전쟁과 폭력, 무지와 야만, 차별과 무시에 반대하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꽃을 좋아해 꽃누르미(압화)를 즐겨 하셨던 `꽃할머니`의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는 2010년 12월 5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천 은해사에 안장된 꽃할머니의 꿈은 “사람이 꽃 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입니다. 꽃할머니의 향기로운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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