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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찔한 홀로그램의 세계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어찌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인지, 도무지 따라가기가 벅차다. 새해 벽두를 장식하는 기사들 중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이 과학기술이 인간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940년대에 이미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막연한 상상력이 아니라 실행가능한 창조적인 상상이다`라고 하며 상상력과 실현가능성 둘 다에 무게를 둔 이야기를 했었다. 상상력이 현실로 실현되기 어려운 세계에서 했던 그의 말은 한동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그 울림이 줄어든 말이다. 실물을 영상으로 대체하며, 현실감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상상력은 홀로그램(Hologram)의 세계를 창조해 보여주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서울에서 모 가수가 홀로그램 공연을 한다고 한다. 무대 위에는 실재 가수가 아닌 3D 입체 영상의 가수가 등장을 하니, 영상 속 가수가 노래를 부르거나 실재가 아닌 진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런 방식의 홀로그램 공연은 이미 2014년 1월 동대문에서 KT가 미래창조과학부, YG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홀로그램 전용관 `K라이브`를 열어 `한류 콘텐츠`를 알리는 공연들에서 볼 수 있었다. 이 홀로그램 전용관에서는 한류 스타들이 직접 공연을 하지는 않지만, 빅뱅, 2NE1, 싸이 등 유명한 한류 스타들의 공연을 매우 실감 있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관람한 5만여 명의 관객은 국내 최대 공연장인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가득 메울 수 있는 수준의 인원이라고 한다.홀로그램 공연이 고해상도의 미디어 연출을 통해 마치 실제 공연장에 가서 즐기는 것과 같은 현실감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원인은 14.2채널의 서라운드 음향시스템과 화려한 조명, 건물 전체를 스크린으로 활용해서 영상을 보여주는 시스템 등 다양한 홀로그램 관련 기술적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한다. 홀로그램 기법은 공연뿐만 아니라 선거유세에도 유용하게 쓰인다고 한다. 2014년 인도 15대 총리가 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총선에서 보다 효율적인 선거운동 아이디어를 짜내던 중 홀로그램을 기법을 떠올려, 가상 선거 유세전을 시도했다고 한다. 무대 상단에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무대 위에 모디의 3D 홀로그램 영상을 비추자, 무대 위에 나타난 홀로그램 후보에게 인도의 유권자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영국 물리학자 데니스 가보르(Dennis Gabor, 1900~1979)가 1948년에 홀로그램의 원리를 발견해서 명명했고, 레이저 광선의 발견 이후 홀로그램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개의 레이저광이 서로 만나 일으키는 빛의 간섭 효과를 이용해 3차원 입체 영상을 기록한 결과물이 홀로그램이다. 실감 미디어 영상의 최종적인 기술 개발은 3D 홀로그램 영상으로 귀결된다고 하는데, 홀로그램은 `완전하다`는 `holos`와 `그림`이라는 `gram`의 합성어로 `완전한 그림`이라는 뜻을 지닌 용어이다. 결국 홀로그램이 완전한 그림이니 실물과 똑같은 그림이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한류 스타들을, 모디 유권자를 실제로 만나는 것만큼의 감동을 주는 리얼함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림이 주는 효과를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홀로그램 영상기술에다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NT(나노기술) 등의 RD(연구개발)이 첨가되면, 실제로 화려한 음식 냄새를 직접 맡으며 영상을 즐기는 실감형 TV의 등장은 물론이고, 홈쇼핑 방송을 보면서 상품의 질감도 촉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렇게 어찔한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할 수 있는 인간만이 진짜 인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15-01-12

해묵은 것들부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모두의 바람인 듯 2015년은 `희망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우리에게로 왔다. 새해 첫날 모든 언론들은 헤드라인으로 `희망찬 2015년 청양 띠 해`라고 썼다. 필자 기억으로는 2014년에도, 2013년에도 아니 그 앞 년도에도 항상 시작은 `희망찬`이었다. 어쩌면 `희망찬`이라는 말은 2015년 전부터 생겼을지도 모른다.인류의 언어인 희망(希望)! 국어사전에서는 희망을 `앞일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라봄`,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내일이 좋기를 바란다는 것은 오늘이 안 좋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2014년은 사회, 경제, 정치, 교육 등 어느 하나 좋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희망을 부르짖는지도 모른다.반복되는 말은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2015년 동안 시작 때면 어김없이 주문처럼 외워온 `희망찬`이라는 주문이 올해는 마법처럼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바로 희망이 들어 올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희망을 부르기 전에 우리 주변부터 정리하자. 해묵은 것들을 과감히 버리자. 미련은 희망의 가장 큰 적이다. 미련으로부터의 탈출이 희망을 맞이하는 첩경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해묵은 것들을 정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을 무언가를 정리해본 사람은 잘 안다. 미련과 용기 사이에 승자는 늘 미련이라는 것도. 비록 정리를 했다고는 하나 우리 주변엔 늘 지난 것들로 가득하다. 필자는 필자부터 미련을 떨치기 위해 글을 쓰다가 잠시 중단하고 책상과 주변을 정리했다. 그랬더니 정리하지 못한 해묵은 것들이 작은 책상에서 몇 상자나 나왔다. 지난 것들은 모두 버려야할 대상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정리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늘 뭔가로 넘치던 책상이, 그래서 늘 필자를 불안하게 만들던 책상이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 됐다. 정리는 여유를 만들어 줬다. 공간의 여유도 여유지만, 마음의 여유를 줬다. 여유는 다시 생각을 가져다줬고, 생각은 눈을 뜨게 해 줬다. 나밖에 바라보지 못하던 눈이 주변을 본다. 눈은 다시 귀를 열게 했고, 귀는 몸을 움직였다. 몸은 군더더기들을 훌훌 털어내기 시작했다.그래도 뭔가 찜찜한 기분에 필자는 정리해야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나밖에 모르는 마음, 오로지 앞만 바라보는 눈,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듣지 못하는 귀,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 몸, 늘 부정적인 것들만 말하는 입. 이 중에서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할 것으로 입을 선택했다. 필자는 지금껏 “경상북도 교육청이 안 해 준다, 우리 사회는 안 된다” 등 부정적인 말들만 했다. 그랬더니 정말 되는 일이 없었다. 자기 충족 예언 효과나 피그말리온 효과 등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정말 안 된다고 하면 안 될 것이오, 된다고 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부터 말하고자 한다. 우리 교육은 올바른 인성에 바탕을 둔 참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가 곧 살아나 `장그래`도 빨리 정규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기 활성화에 바탕을 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반목과 시기로 서로 헐뜯고 있는 우리 정치도 이제 신뢰와 상생의 마음으로 서로 손 잡고 나라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할 수 있다.그런데 왜 또 불안한 마음이 자꾸 스멀스멀 올라오는지 모르겠다. 그 불안한 마음을 없애는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 해묵은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그리고 많이 아프더라도 정리해야할 것들은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아니면 2014년이 다시 반복될 지도 모른다.

2015-01-07

서로를 배려하는 2015년 됐으면…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문화·예술계는 조용한 곳이 별로 없다. 충격과 감동, 그리고 반전에서 오는 사고의 전환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수많은 모습들이 각 시대와 나라별 문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질병, 정치적 문제점은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과 사건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듯 오늘도 세계의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문화의 사건들이 일어나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진화 시켜 나가고 있다.갑오년 청말띠인 지난해는 국내외적으로 유난히 사건과 사고가 많았던 한해였던 것 같다. 청말 띠의 해로, 어둠을 뚫고 힘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힘차게 내딛은 첫 발은 `세월호 참사`라는 크나 큰 시련으로 인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때 보다 힘들어졌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분쟁과 테러의 불안감속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이 국제적 경제위기로 이어지며,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지역의 문화예술계 역시 지난 한해 또한 순탄치 못한 한해를 보내며 많은 아쉬움과 회한을 남겼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기획한 `야요이 쿠사마전`이 관객 33만 명이라는 흥행에도 불구하고 계약직 큐레이터 재계약 거부라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김선희 관장은 본의 아니게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뒤이어 발생한 대구미술관 Y프로젝트 참여 작가의 표절논란은 국내 예술계의 오랜 고질병으로 여겨지고 있는 지적 소유권에 대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대구미술관의 전문성에 적잖은 흠집을 내기도 했다.한편 대구미술협회 박병구 회장은 기존 회장임기를 3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회칙을 개정하고 제20대 대구미술협회 회장 재임에 성공했다. 2008년 전임 대구시장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야기된 `이우환 미술관`은 5년여 기간 동안 수많은 잡음과 문제점을 남기고 사업 포기라는 아쉬운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한편 경북 영천시안미술관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시간의 흔적들`, `레지던시 리포트-체류(Sojourn)`와 같은 다채로운 기획전을 마련하였으며, 경북의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자리에 모여 마련한 `2014 경상북도 박물관·미술관 교육박람회-우리 동네 박물관 연합전시`이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마련돼 다채로운 예술체험을 만끽 해 볼 수 있었다.그리고 포항시립미술관 역시 불법 수의계약과 부정 인사개입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김갑수 관장의 재선임 여부가 초미의 관심이 되기도 했다.`경주화백컨벤션센터`가 12월 새롭게 개관하며, `2015 아트경주`개최를 위한 조직위원회가 출범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 버릴 사소한 일들이지만, 일련의 이러한 예술 운동과 사건들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선진화되고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한번쯤은 겪어야 하는 성장통인지도 모른다.차가운 혹한을 뚫고 빨갛게 피어나는 동백꽃처럼 지난 한해 역시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한 힘든 시련으로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새롭게 밝은 을미년 2015년은 양 중에서도 청양띠라고 한다. 양(羊)의 성질은 온순하여 무리를 지어 살며,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와 인내를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이다. 이러한 양의 습성처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2015년이 됐으면 한다.

2015-01-02

흉포악려(凶暴惡戾)에서 거안사위(居安思危)로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2013년을 마무리 하는 칼럼으로 필자는 “갑오년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의 마무리에서 “참 답이 안 나오는 나라다. 아마도 2014년 올해의 한자는 `공도동망`(共倒同亡·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해도 같이 망한다)이 되지 않을까!”라고 글을 맺었다. 그런데 그 말이 예언처럼 적중한 듯하다. 철도파업의 연장선으로 시작한 2014년, 청마의 푸른 기운은 다 어디가고 안타깝게도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린 해였다. 아프지만 마무리를 잘 하자는 의미에서 2014년 사건 사고를 정리 해본다.(1월) 대형 카드사 고객 정보유출 사고, (2월)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3월) 송파 시내버스 추돌 사고, (4월) 28사단 윤일병 사망 사건, 그리고 세월호 참사, (5월) 고양터미널·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고, (6월) 22사단 GOP 임병장 총기 난사 사건, (7월) 구룡마을 화제, 무궁화호 열차충돌 사고, (8월) 청도 오토캠핑장 사고, (9월) 레이디스코드 사고, (10월)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11월) 담양 펜션 화제 사고, (12월) 수원 팔달산 살인 사건, 오룡호 침몰, 땅콩 리턴,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정말 사건 사고가 사회 전 분야, 그리고 하늘과 바다, 육지에서 릴레이 경주 하듯 발생한 2014년이다. 모두가 사건 사고들이 종료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건 사고들은 현재를 넘어 미래 진행형으로 진화가 있다. 큰 사건 사고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젠 웬만한 사건 사고는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많은 사건 사고들이 어쩌면 안전 불감증, 원칙 둔감증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그럼 이 많은 사건 사고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무책임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또 끝까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졌다면 결단코 이 많은 사건 사고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조금만 힘들거나 어려우면 우리는 포기하거나 회피하거나, 대충하고 말았다. 우스갯소리 중 이런 말이 있다. “나만 아니면 돼!” 장황한 설명 필요 없이 이 한마디면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 사고들의 원인을 다 설명할 수 있다.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으로 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행위를 비유함)를 선정했다. 무책임과 허위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말이다. 그런데 이 보다 더 2014년 대한민국을 잘 나타내는 말은 흉포악려(凶暴惡戾)다. 정말 2014년 대한민국은 흉악과 포악의 절정이었다. 그 2014년이 이제 마무리 되고 있다.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던 끝이다. 끝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에 희망적이다.2015년 을미년. 양띠 해, 그것도 청양띠 해란다. 그런데 트라우마 때문인지 왠지 푸른색이 달갑지 않다. 큰 사건 사고들이 유독 많았던 2014년이 청마의 해였기 때문이다. 푸른색은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색인데, 이러다 사건 사고를 상징하는 색이 될까 염려스럽다. 2015년엔 그 푸른색의 의미가 제발 원래의 의미를 되찾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거칠어 질대로 거칠어진 말이 숨을 고르고, 푸른 기운의 양처럼 이 나라도 안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그런데 을미사변, 2003년 계미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 양과 관련된 과거를 떠올려보면 올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해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과연?2015년을 시작하는 사자성어로 충신 위강이 임금 도공에게 말한 거안사위(居安思危)를 제시한다. “생활이 편안하면 위험을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준비를 해야 화를 면할 수 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 우리 모두 거안사위의 마음으로 을미년을 잘 맞이하자.

2014-12-31

노마드와 모나드

▲ 강영화 ㈜진심식품 대표이사·시인인간은 스스로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인류가 지속적으로 선택해 온 가장 보편적인 삶의 패턴을 정착과 유목으로 나누는 것을 따른다면, 우리는 질문에 대한 일정한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정착한 삶과 유목의 삶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하려면 동일한 관점이 있어야 한다. 이 관점으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사용한 `시각`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다.가령 `장미꽃이 피었다`고 할 때, 장미의 입장에서 보면 꽃을 피우려는 자신의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장미 자신의 시각을 나타낸 것이고 이를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모나드(monad)라 했다. 모나드는 원래 `1` 또는 `단위`를 뜻하는 수학 용어였으나 모든 존재는 장미처럼 어떤 속성을 지녔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속성이 나타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런 무수한 모나드들이 다양성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장미꽃이 핀 것을 밖에서 보면 장미가 벌인 사건일 뿐이다. 세계에는 이 같은 무수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들뢰즈는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라 하고 노마드(nomade)의 세계라 설명한다.나아가 모나드가 자기 한계 내에서 자신의 시각에 만족하는 것이라면, 노마드는 그 한계가 자기를 비하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인류의 대부분이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게 된 것은 자기 비하임에도 불구하고 자족의 삶을 도모한 결과일 것이다. 모나드에는 `안전하다`는 뜻의 다른 어원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성급한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그런데 2014년 오늘의 우리는, 오늘의 포항은, 오늘의 경북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과연 정착한 삶을, 그래서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포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행히도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 우리의 포항이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는 소식만큼은 대단히 희망적이다. 우리가 영위해온 오랜 삶의 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정착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광활하고 거친 그리고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유목의 땅에 내던져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으로도 어림없는 세상이다. 모나드의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은 안 된다.`이젠 더 이상 눈을 뚫어 말리지는 않는다./아예 목을 자르고/둘로 갈라진 몸통으로/물구나무서서/꼬리에 걸린 전신의 무게를/바닷바람에 실어 보내는 나날,//볕이 좋으면 기껏해야 사나흘이지만/그래도 온 몸을 자신의 물과 기름으로/적셔내야 하는 노역./그대는 베드로다.//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가!/그 대가를 치러낸 그대를,/우리는 껍질을 벗기고 있다./벗기면서, 군침을 흘리면서/곧 그대를 곱씹으며 지을 미소를,//본다.//살점 사이로/입 안 가득 돌아드는 그 쫀득한 고소함./그대의 껍질을 벗기면서/그대가 걸어갔었고/그대가 매달렸던/푸른 바다의 파도 소리,/비린 덕장의 바람 소리,//듣는다.` (`2014년 과메기 껍질을 벗기면서`, 필자의 시)필자는 시인을 `대상을 다르게 보는 훈련이 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이 시를 통해 과메기장아찌라는 새로운 맛을 만들었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예전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들뢰즈는 `노마드의 세계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를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다. `나와 함께 하자`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참된 반복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다. 함께 차이를 만들자. 차이는 높은 가치를 선물로 준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를 비하시켜서는 아니 된다.

2014-12-26

토끼 시집 보내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결혼 관련 말 중 유독 슬픈 말이 있다. 시집보내기! 겨울 방학을 앞두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어느 결혼식에 주례를 섰다. 중학생이 주례를 선다는 것에 당황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식의 종류에 따라 이 일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산자연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주례를 선 결혼식의 주인공은 바로 토끼! 잔치 집은 언제나 그렇듯 토끼집도 여느 잔치 집과 다르지 않게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보내려는 자와 남으려는 자의 실랑이가 잔치 집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토끼와 아이들은 지난 봄여름가을 동안 한집살이를 했다. 다른 학생들이 학원과 과외에서 죽은 지식들을 배울 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자연의 품에서 토끼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다. 자연은 토끼에게 주라며 아이들 손에 “닭의장풀”, “환삼덩굴”, “명아주”, “까마중” 등을 쥐어주었다. 토끼를 통해 아이들은 길가에 핀 야생초 하나에도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아이들 덕분에 토끼 식구는 계절이 비좁을 만큼 풍성해졌다. 또 아이들은 토끼 덕분에 마음이 넉넉해졌다. 아이들과 토끼는 그렇게 한식구가 되었다.좁지 않은 토끼장이지만 아이들의 하늘같은 정성으로 토끼장은 만원이었다. 더 이상의 토끼 식구는 어쩌면 토끼들한테는 재앙이 될지도 몰랐다. 토끼를 위해서라도 분명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시장! 토끼를 시장에 내어놓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동의를 했다.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토끼를 시장으로 보내는 날. 모든 시험을 마친 3학년들이 토끼와 함께 시장에 가기로 했다. 토끼장 앞에 모인 학생들의 표정은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표정과 같았다. 비록 토끼를 시장에 보내기로 동의는 했지만, 서운함이 컸던지 모두들 토끼장 앞에서 머뭇거렸다. 머뭇거림의 의미를 잘 알기에 필자는 다시 한 번 설명했다.“얘들아, 오늘 너희는 토끼를 시집보내는 거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퉁명스러운 말대답이 날아왔다. “선생님, 토끼 파는 거잖아요.” 그 말에 아이들의 표정은 더 무거워졌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필자는 정성을 다해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지금 토끼장에는 토끼들이 너무 많아. 토끼가 한 마리만 더 늘어도 여긴 아수라장이 될 거야. 토끼에게는 지금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해.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토끼를 더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자.”주저함의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이들이 토끼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토끼몰이는 쉽지 않았다. 토끼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협동하기 시작했다. 그 협동에는 분명 정성과 배려가 가득했다. 한 바탕 소통이 끝나고 열댓 마리 토끼가 상자 속에 가득 찼다. 아이들은 행복한 마음을 가득 담아 시장으로 갔다. 가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떠나고 남는 삶의 이치와 떠나보내는 자세에 대해 배웠다. 비록 의무교육과 경북 교육청으로부터는 괄호 밖 아이들이 되었지만, 필자는 믿는다, 떠나보내는 자세를 아는 이 아이들이 만들어나갈 밝고 희망찬 미래를.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등 세상이 가면 갈수록 흉포악려(凶暴惡戾)되어 가는 사회에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외딴 섬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렇게 들릴지 몰라도 필자는 언젠가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온기를 잃은 이 사회에 따뜻한 빛이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한다.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다, 서로 아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기꺼이 희생하라고.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학생들은 시험용으로 배운다. 시험용 지식들은 휘발성이 매우 강해 시험이 끝나는 순간 모두 날아가 버린다. 학교가 각박해지니 사회가 각박해질 수밖에.“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류 구원”의 날인 성탄절! 하루 빨리 이 사회와 학교가 시험에서 구원 되어 학생들이 사랑의 의미를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2014-12-24

`2014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을 마치고

▲ 류영재 2014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운영위원장`2014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2012년에 시작하여 두 번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난항이 거듭된 탓에 축제를 마친 지금까지도 가끔씩 가위눌림 같은 걸 느낀다. 페스티벌을 주관하였던 사무실은 무사히 마친 안도감에 약간의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하나 여전히 정산업무와 세미나 준비, 도록제작 등 뒷정리에 여념이 없다. 포항은 영일만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제철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근대화를 견인해 온 도시이며, 그런 연유로 필자도 포항시민인 것이 언제나 자랑이었다. 한반도를 밝히는 신성한 새해를 맞이할 때도, 우리고장 포항과 함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 용광로의 검은 연기를 바라볼 때도, 연기 색깔의 검기보다 더 큰 자부심을 무럭무럭 피워 올리곤 하였다.철들며 배운 것이라고는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인간의 영혼에 관계되는 일들이어서 산업역군으로 선진도시 포항을 건설하는 데는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축제니 문화운동이니 하며 도시의 격을 높이기 위하여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밤새가며 궁리하다 작은 성취에 감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였던 세월이 얼마이던가. 역사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법, 다행스럽게도 우리 포항엔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한반도의 새벽을 여는 도시 포항의 정체성을 규명하여 불빛축제의 개념을 만들고, 스틸컨벤션시티의 실마리를 찾아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개념을 만들고, 이 꿈같은 일이 이루어지게 한 사람과 사람들.올해로 세 번째인 `2014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해도근린공원에서 열렸다. 예년과 달라진 예산지원 방식과 지자체 선거 일정으로 축제 계획을 미리 세울 수가 없는 사정이라 애만 태우던 날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야외 행사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추위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참여 작가 섭외에 필요한 시간 뿐 아니라 개막행사와 축제프로그램 대행업체와 작품의 운송, 설치 등을 대행할 업체 선정을 위한 일정을 최소화하여 11월 15일을 개막일로 잡았다. 혹시라도 유찰이라도 되는 날에는 그 날짜조차 맞추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개막일, 수십 수백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된 날이었지만 하늘이 파랗다. 날씨 부조가 절반이라는데 우리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감사했다. 폐막일, 종일 비가 내렸다. 늦가을의 추위와 함께 추적추적 내리던 비, 해도공원의 밤을 적시며 끝없이 울어대던 `세헤라자데`의 나팔소리(마지막 날 프로그램 오류로 같은 소리만 끝없이 되풀이 됨) 또한 잊을 수 없다. 존재론적 서술, `세헤라자데`는 절정으로 치닫는데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염려되어 결국은 스피커에 연결된 전선을 잘랐다. 해도공원은 내리는 비와 함께 정적에 잠겼다. 박석원 선생의 `핸들`도, 김영원 선생의 `사람 꽃`도 축제기간 내내 한결같은 모습으로 절하던 `인사하는 사람`도 비에 젖은 채 그렇게 막을 내렸다.전국 각 지자체에서 연간 열리는 축제가 무려 3천여 개라 한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도 그 중 하나이지만, 단순히 숱한 축제 중의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항의 정체성을 담은 세계 유일의 스틸아트 축제이다. 그렇지만 걸음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현실적인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마음같이 실행할 수 없는 부분 또한 많다.이젠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타 도시와의 경쟁력,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 스틸작품에서 흘러내리는 녹물의 관리와 작품 보존 문제, 조각공원, 스틸비엔날레, 스틸어워즈…. 조급하지 말자. 성급하게 성과를 판단하지 말고 차근차근 한 걸음씩 가자. 문화 예술이 원래 가랑비 내리듯 소리 없이 스미지만 응축된 폭발력은 엄청난 법이니까. 굳이 엄청이 아니면 또 어떠리. 우리고장 포항의 동서와 남북이 아트웨이로 하나 되어 축제의 여운이 오래토록 이어진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한 바람과 기대로 알 수 없는 이 무거움도 견뎌낼 일이다.

2014-12-23

따뜻한 말이 그리운 계절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눈이 자주 내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 12월이다. 눈이 그친 뒤에 부는 눈바람은 어떤 바람보다도 차갑게 불어 우리의 몸도 마음도 춥게 만든다. 날씨도 마음도 추운데 세상마저도 온통 싸늘한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는 이즈음이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그랬듯이 문제아적인 주인공이라야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어둡고 추운 이야기들이라야 독자들의 주목을 끄는 기삿거리가 되는 것 같다. 토막 살인사건, 자살, 폭언 등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하는 단어들이 뉴스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마음이 더욱 추울 수밖에. 마음을 춥게 하는 뉴스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 말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하고 있다. 말다툼을 하다가 우연히 밀쳤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진실을 믿어주지 않자 죽음을 선택하고, 지위가 높다고 폭언을 하고… 말 중에서도 가장 차가운 말이 막말일 것이다. 막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이다. 주로 접두사로 쓰이는 `막-`은 `거친, 품질이 낮은, 닥치는 대로 하는, 마지막`의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이 무례하게 밀어붙일 때 `막가자는 겁니까?`라는 말로 응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막가다`는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막되게 행동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무례한 말은 상대방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는 불씨가 되어 더 큰 싸움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신중하게 써야 하는 말이다. 아직 사전에는 없지만 `막장 드라마`라는 말도 있는데, 인터뷰어 김우성씨의 정의처럼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무리한 상황설정, 자극적인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총칭하는 말`이며, 도덕성과 윤리성이 결여된 드라마를 가리키는 말이다.막말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장예모 감독이 만든 `귀주 이야기`(1994)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장 감독과 공리가 만난 후 처음으로 찍은 영화라고 하는데, 중국 최고의 여배우 공리가 시골 촌부인 귀주의 역할을 맡아 억척같은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 영화이다. 귀주의 남편이 마을의 촌장에게 급소를 맞아 손수레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는 촌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려고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항상 돈으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문뿐이다. 귀주는 돈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촌장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귀주의 편에 서서 영화를 보면 촌장은 사과도 할 줄 모르는 지극히 나쁜 인간일 뿐인데, 촌장의 편에 서서 보면 달라진다. 귀주의 남편이 딸만 있는 촌장에게 `평생 딸만 낳아라`라는 막말이 폭행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말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드디어는 거친 행동을 유발하는 기제가 되니, 그야말로 쓰면 위험한 말이다.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막말이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 마지막은 죽음일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처럼 따뜻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온도는 적어도 36.5℃로 따뜻함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따뜻한 체온을 가진 존재로부터 나오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함이 묻어나는 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라는 변수가 말의 온도를 낮추는 경우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따뜻한 집이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또 있으랴. 가수 이승철이 천 번이나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런 사람 또 없다고 하며 감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은 왠지 그 사람이 했을 말처럼 따뜻한 말이 그리운 계절이다.

2014-12-22

진정한 사랑이 담겨진 `달콤한 키스`가 주는 미학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사랑(love)`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광의적 의미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 즉 교제를 성립시키는 대상이 `절대적인 존재`이거나 `이성` 혹은 `사물`이라는 매개에 따라 가지는 감정의 변화는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세계 미술사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다루어져 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사랑`이 가지는 비중은 인간이 예술을 표현 도구로 삼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중 육체적이고 성적인 매력에 매료된 사랑이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뛰어 넘어 예술의 오랜 모티브로 지속적으로 이어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성간의 아름다운 사랑은 아름다운 회화나 조각으로 표현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이 예술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그저 잊혀지기도 한다.클림트의 `키스`와 로댕의 `키스`, 브랑쿠시의 `입맞춤`, 뭉크의 `입맞춤` 등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참된 아름다운 감정이 밀도감 있게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명화들이다. 그 중 쿠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키스(The kiss)`는 화려한 색채와 선으로 환상적인 남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세계적인 명화를 리프러덕션 아트(복제화)로 제작해 유통하는 회사에서 지난 10년간 판매결과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한 쌍의 연인이 껴안고 있으며 남자가 여자의 뺨에 입맞춤을 하고 여자는 마냥 달콤함에 취해 있는 듯하다. 마치 아찔한 벼랑 위에서 피어난 황홀경이 죽음에 이를 만큼 짜릿한 극치감을 느끼고 싶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포즈 때문에 여자의 굳게 다문 입술은 황홀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ene Rodin, 1840~1917)의 작품 `입맞춤(The kiss)`은 “영혼과 영혼은 연인의 입술 위에서 만난다”는 표현이 절대적 조형미로 재현되어진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뤄질 수는 없지만 애절한 남녀간의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로댕의 대표작 `지옥의 문`에 슬픈 연인의 운명으로 남겨져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작품 `키스(The kiss)` 연작 역시 미술사에 있어 사랑을 묘사한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너무나 사랑해 입맞춤 하는 순간 화석으로 변해버린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이들 모습에서 진정한 에로스적인 사랑을 다시금 느껴 보게 된다. 석회암에 극도로 절제된 묘사와 조형미를 가진 이 작품은 아프리카 조각, 나아가 당시 입체주의 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R. 가네트의 말처럼 “사랑의 말은 달콤하며, 사랑의 생각은 더 달콤하고, 사랑이 말도 않고 생각도 않는 것이 가장 달콤하다”는 표현에서 진정한 이성간의 사랑과 표현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되짚어 보게 된다. 남녀관계에 있어 진정한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한 이성을 선택하고 그 이외의 다른 사람은 바라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름다움만큼이나 화려한 사랑은 짜릿한 키스를 통해 확인 되듯이 소중한 연인들의 황홀하고 진솔한 시간을 통해 참다운 에로스(Eros) 사랑을 새롭게 느껴본다.

2014-12-19

KTX 개통에 대비하는 포항의 유통인프라

▲ 김진홍 한국은행포항본부 부국장최근 포항지역경제는 그간의 부진에서 벗어나고 있다. 확연하게 눈에 뜨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발목부터 조금씩 경기가 차오르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지역경제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최초의 시그널은 포스코를 비롯한 지역 철강업의 생산 활동에서 나타난다. 생산이 살아나면 철강제품을 실어 나르는 운수업이 움직이며 생산설비의 수리, 확충과 창고의 신증축 등 건설업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철강업과 이와 연동되는 운수 및 건설업의 3두 마차가 포항경제를 이끄는 주역이다. 이 3대 산업이 활력을 보이면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지갑도 열려 음식숙박업, 서비스업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지역 내수도 살아난다. 결국 지역경제의 활력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포항시민의 소비지출로 알 수 있다.다만 지역경기의 처음 시그널인 생산지표의 움직임이 마지막으로 가계소비의 움직임으로 최종 확인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지역 내 가계소비에 대한 확실한 지표가 없어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한 포항시 중대형마트 판매액의 증가율이 최근 감소에서 증가로 전환됐다. 하지만 10월 들어 처음 증가로 돌아선 것인 만큼 아직 지역 내 소상공인들의 체감경기는 아직 풀리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그런데 그동안 포항시 가계의 소비지출, 특히 그중에서도 음식료품의 판매가 약세를 보인 것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 것인가? 정말로 시민들의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아 작년에 비해 먹는 것을 줄이기라도 한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이 지역내 마트나 백화점을 이용하지 않고 대구, 울산, 부산 등 대도시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구의 코스코 등에서 대량구매로 할인받으면 차비는 충분히 남는다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지역민이 지역에서 소비를 할수록 물류유통이 더욱 활발해져 지역 소상공인들의 물품 도입단가도 저렴해질 것이며 새로운 물품도 포항에 진출할 여지가 생겨나며 결국 대구, 울산이 부럽지 않은 소비 기반이 포항에도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이제 포항도 내년이면 KTX시대를 맞이한다. 지금보다 대도시로 접근성이 강화되면 포항이 갖추지 못한 명품 쇼핑이나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울, 부산 등지를 찾는 시민들이 많아져 포항시내의 유통 등 소비인프라가 더욱 취약해질까 걱정된다. 즉, 빨대효과가 우려되는 것이다. 대구에서도 KTX 개통 이후 도소매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개통 이후 매출이 늘어난(13.7%) 것 보다는 감소(35.3%)하였다는 응답이 많았다. 포항이라고 다르겠는가?앞으로 1년 이내에 포항시내의 소비관련 유통부문에는 큰 변화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포항시민들의 소비행동이 포항시내에만 국한될 것이라는 보장은 현재보다 더욱 희박해질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지역 내의 소비기반과 관련된 상공인들은 지금까지의 경영패턴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과거 교통오지였던 포항에서야 소상공인들이 물건을 들여오는데 필요한 부가비용을 더한 이른바 포항프리미엄가격이 적용되더라도 포항시민들은 이를 감내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포항시민들의 발을 묶어둘 교통오지 포항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새로운 변화에 하루빨리 적응한 도소매업, 음식숙박업의 경영자만이 내년부터 다가올 빨대효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서울 등 수도권 지역 사람들까지 포항에 소비하러 오게끔 할 수도 있을 것이다.포항시민은 포항에서 소비하고, 포항시내 소비기반에 종사하는 모든 상공인들은 다른 곳에 굳이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변화하여야만 KTX포항 노선의 개통을 모두가 기뻐할 수 있다. 그래야만 포항도 철강도시만이 아니라 수도권 주민들이 주말에 방문하고 싶은 문화관광소비도시로서의 명성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014-12-17

은행 위의 담소(談笑)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냄새나요” 노작 시간, 은행 줍기를 하다가 세환이가 던진 말에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장난기 가득한 눈길들이 킁킁거리며 필자를 보며 웃는다. 그 웃음에 은행을 털던 바람이 따뜻해진다. 은행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필자한테서 은행 냄새가 난다는 것인지, 반점(쉼표)이 있고 없고를 아는 아이들의 장난기가 필자는 너무 좋다. 진한 암모니아 향의 은행 냄새를 모두 아실 것이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냄새. 간혹 어르신들께서 소일거리로 은행을 줍는 모습을 본 적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은행을 줍는, 그것도 수업 시간에 은행을 줍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은 누구나 편한 일만 하려하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귀하게 자란 요즘 학생들에게는 은행 줍기와 같은 힘든 일은 더 말 할 것도 없으니까.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학생들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 리 없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려라는 말은 청소년들에게는 외계인의 말이다. 어려움을 모르는 청소년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사회는 이런 청소년들을 보면서 혀를 찬다. 부모들은 더 이상 어떻게 잘해줘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짓는다. 결국 모든 잘못을 철없는 아이들 탓으로만 돌린다.학생들이 처음부터 배려와 희생, 절제를 몰랐던 것은 절대 아니다. 분명 어떤 무언가가 우리 아이들을 자기 안에, 또 디지털 속에 가둬 버렸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에 대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바로 정확한 원인 분석이다. 우리 아이들이 왜 저토록 나약해졌는지, 우리 아이들이 왜 저토록 자기밖에 모르는지, 우리 아이들이 왜 저토록 아픈지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냥 아이들 탓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필자는 앞으로 발표될 교육 연구 결과에 앞서 주장한다. “이제부터라도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라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놓아줄 용기, 어른들의 욕심을 버릴 용기가! 그런데 과연 어른들은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절대 불가능하다. 내 아이만큼은 의사가 돼야 하고, 내 아이만큼은 법조인이 돼야 한다고 모든 부모들은 생각하고 있으니까. 은행나무 밑에서 코를 막고 즐겁게 은행을 줍는 아이들을 보면서 필자는 필자부터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의미 없는 교과서와, 더 의미 없는 점수 따위와, 그리고 더 더 의미 없는 필자의 말 따위에 학생들을 가두지 않기로!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솔직히 이 다짐을 지킬 자신이 필자에게는 없다. 핑계 같지만, 점수 맹신주의 사회에 우리 아이들만 외딴 섬에 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장 고등학교 입시도 치러야 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또 다른 아이들과 점수 경쟁을 해야 하고, 생존 법칙에서 지면 도태되고 마는 냉엄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다.이런 저런 생각에 은행을 줍다가 필자만 혼자 심각해졌다. 한참을 웃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필자가 생각났던지 필자를 본다. 그리고 한 마디 던진다. “선생님, 무슨 생각하세요?”, “선생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생각했다” 아이들이 다시 웃는다. 정말 필자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좋은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만약 미안함에도 냄새가 있다면 필자에겐 온 몸 가득 미안함의 냄새뿐일 것이다.세환이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선생님, 이 냄새나는 노동을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앞으로 500개만 더 줍자!” 하나, 둘, 셋을 헤아리던 아이들이 금방 숫자는 잊어버리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기에 바쁘다. 앞으로 있을 고등학교 입시 이야기, 병원에 있는 후배 이야기 등. 12월 은행이 아이들에게 인내와 끈기, 그리고 이야기를 선물해줬다.

2014-12-16

`두사부일체`

▲ 권정찬 경북도립대 교수·화가수업을 하다보면 요즘 학생들은 지각도 결석도 마음대로이다. 과제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한다. 잠이 오면 마음대로 엎드려 자고 떠드는 학생은 선생님이 안중에도 없다. 매를 들 수없는 교육 현실에 방법이라고는 방치해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속된말로 건드렸다가는 무슨 원망과 지탄을 받을지 모른다. 사회가 무섭고 학부모가 두렵다.물론 전체의 흐름은 이와는 상반된다. 전체의 큰 흐름은 선생님의 사랑과 아이들의 존경심이 어우러진 가운데 교육은 잘 이뤄지고 잘 못 비춰진 부분은 일부일 것이다.하지만, 요즘 교육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아이들의 학습교육에만 치우쳤지 인성교육은 제로에 가깝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지금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 시절은 선생님이 무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숙제를 안 해 가거나 준비물을 빠트리거나 지각을 하면 꾸지람과 체벌이 기다린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그만큼 교육이 엄한 시절이었다. 하기야 상식 밖의 행동으로 폭행을 하는 교사들도 있었으니, 학생도 부모도 선생님과 대화하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던 시절로 어쩌면 그때의 추억이 지금의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변하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자유로움 그자체이다. 교육과 사랑은 식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꾸지람과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그저 학생들의 행동을 관대하게 지켜 볼 뿐이다.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학부모들이 가만있질 않는다. 귀한 자식 털끝하나 건드리면 세상이 시끄러운 경우가 될 수가 있다.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떠들거나 싸움질하거나 말썽꾸러기를 교육시키는 방법으로 학생을 위해 타이름이 부족하면 꾸짖음과 간단한 체벌을 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책만 보고 공부만하면 된다는 부모들의 생각은 선생님과 학생간의 관계를 이제 남남으로 학교에서나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만 보는지 모르겠다. 한쪽 편을 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지는 몰라도 요즘 학생들은 인성교육이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관이나 도덕심, 예절 같은 교육에 너무 떨어져 사는 듯하다. 그것은 나라의 정책에 가장 큰 문제가 있고 가정에서의 부모가 자식에 대한 교육이 안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교육현실은 선생님과 학생간의 존경과 사랑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여기다가 한수 더 떠서 저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평가하니 선생님으로부터 따끔한 충고나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어떤 점수를 매길지 상상이 간다. 세상에 가르치는 스승을 평가 하다니 그만큼 선생님을 못 믿는다는 얘기인데 그것으로 인해 제자에 대한 열정이 식음을 왜 모르는지. 그러니 선생님도 좋은 것이 좋다고 아이들 마음 안 상하게 하고 방치하는 것이 더 좋은 평가 성적이 나올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부 잘하면 당장 성적은 좋게 나온다. 하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아가서 그들이 부모와 스승을 어떻게 대하고 사회에서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를 잘 모시고 스승을 존경하는 시대는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선생님은 졸업하면 다시 보지 않을 인물, 부모님은 나이 들면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시대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다.부모와 스승은 하나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말이다. 그래서 스승을 사부라 하고 학생을 제자라 한다. 스승도 부모이고 가르치는 학생은 자식이라 했다. 그만큼 사이가 밀접한 관계이고 가족과 같았다.

2014-12-12

아! 옛날이여

▲ 김기덕 대구 수성아트피아 사업기획부장이탈리아 유학시절의 추억들은 참 다양하고 재미난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저 편안한 유학 생활을 보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지금 아이들이 이야기하는`알바`를 해 가면서 다양한 유학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나 또한 얼마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첫딸 단아가 태어날 무렵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먹을 것 조차 줄이고 결혼비용 아껴서 가져온 돈도 정말 쪼개어 가며 생활했지만 역시 힘들었다. 그 무렵 아내의 순산을 돕기위해 장모님까지 오셔서 여러 가지 도와주시곤 하셨다.(사위로서 제대로 해드리지 못해 지금도 항상 죄스럽다) 1991년 겨울이 채 가기전 첫 딸이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가에서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저러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활비도 동이나고 집세 줄 돈도 없었다. 고민하던 중 집사람이 여보! 오늘 저녁 우리 누군가(?) 에게 기도한번 해보자고 제의했다. 신에 대한 독실한 믿음은 없었지만 저녁먹고 아홉시쯤 침대 머리 맡에서 기도하길 시작했다(어려움을 이기게 해달라고). 어찌됐던 무지하게 열심히(간절히) 기도 했던 것 같다.다음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나서 악보를 보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저, 김기덕씨 댁이죠? 여기 한국 여행사인데요 혹시 이탈리아 언어가 되시면 개인 가이드 한번 하실래요? 하고 말이다 일당은 150불 이라는 둥 팁도 받고 이익금도 생긴다는 둥의 이야길 듣고 망설임 없이 좋다고 답을 했다. 약속 날짜는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탈리아 유적의 역사를 거의 모르는 터라 그날 저녁 바로 아내와 유럽역사책 하나 달랑 들고 유적지를 돌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 아닐수 없다.다음날 로마공항에서 노부부를 맞이했다. 너무 예의 바르시고 신사다운 분이셨다.첫째날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을 처음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둘쨋날 나폴리, 소렌토를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뜻 밖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다름아닌 남편분이 바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이며, 몇 년전 작고하신 우리 조부님의 막역한 친구분이 아니신가. (조부님은 일찍이 일본에 가셔서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을 운영 하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평소에 손자인 나의 이야기 특히 성악공부하러 이탈리아에 간다는 등의 이야길 많이 하셨다 하시면서 머나먼 이탈리아에서 보니 너무 감격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도 친 조부님을 뵙는 것 같아 정성을 다해 안내하며 보살펴 드렸다.드디어 일본으로 돌아 가시는날 공항에서 내 손을 잡으며 건강하게 학업을 잘 이루라는 말씀과 함께 평소에 사업을 하면서 어려울 때 친구의 덕을 많이 보았는데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고 싶다 하시며 봉투를 건내시는게 아닌가 몇 번 사양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눈물로 보내드리고 아내에게 자초 지종 이야길 하고 봉투를 열어 보니 몇달치 정도의 생활비가 들어 있는게 아닌가. 너무 놀라고 감사한 마음이 지금도 가득하여 코 끝이 찡하다. 간절한 기도의 덕분인지 조부님의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활 속에서 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내 생활속에 일어 난 것이었다.그때는 젊고 어려운 시기에 매사에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살았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고 내가 하는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사람은 정말 어려울 때 간절히 자기가 바라는 뭔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간절함이 사라져 매사에 진실과 정성이 흐려지는 것 같다. 예전의 어려웠고 간절한 시절의 일을 생각하고 산다면 지금보다 좀더 삶을 정성껏 열심히 노력하며 살지 않을까 싶다.그러면 좀더 풍요롭고 은혜로운 삶을 살지 않겠는가.

2014-12-10

붕어빵과 신부님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또 나라가 한 사람 때문에 시끄럽다.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기에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흔들릴 수 있는지. 갑자기 용비어천가 제2장이 생각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게 피고 열매가 많습니다.` 오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나라의 뿌리는 지금 어떤 상태이기에 이다지도 쉽게 흔들린단 말인가. 그 흔들림에 열매는커녕 꽃 봉우리도 맺지 못하고 있다. 정말 대한민국의 뿌리는 어떤 상태일까?식물 국회가 오랜만에 시끄럽다. 여당은 수사 먼저, 야당은 진실 규명 먼저라고 서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국회가 활기를 되찾아 반갑기는 하다만 속내를 알고 보면 또 한숨부터 나온다. 국민은 선진 국민인데, 국회는 후진 국회라는 말이 이번에도 여실히 통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써야 할 힘을 국회는 또 서로 싸우는데 쓰고 있다. 여야는 제발 먼저를 외치기 전에 무엇이 먼저인지를 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 나라에서 제일 먼저여야 할 것은 국회 정상화라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모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웃기고,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이 번 주말을 보내면서 필자는 대한민국 여의도를 정의 할 수 있는 말을 찾았다. 그건 바로 건수(件數) 정치다. 건수만 노리는, 한 건만 물었다 하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이 되어 버리는 참 슬프고도 아픈 영화 같은 이야기의 배경이 여의도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건수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에 국민이, 또 나라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국민들은 어떻게든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 애쓰는데, 높은 데 계시는 분들은 왜 더 흔들려고만 하는지, 멀미에 누렇게 뜬 이 나라의 모습이 정말 보이지 않는지 묻고 싶다. 세종대왕께서 지금의 나라 모습을 보시면 어떤 글을 지으실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분명 이 말씀은 하셨을 것이다. “오호 통재(嗚呼 痛哉)라!” 아니면 “오호 애재(嗚呼 哀哉)라!”여의도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답답함이 커서 이야기가 좀 길었다. 글을 쓰면서 필자는 여의도에 꼭 산자연중학교 붕어빵을 배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 산자연중학교 붕어빵 이야기를 하면 다음과 같다.11월 들면서 학교 쉼터에 양어장이 생겼다. 그런데 이 양어장은 좀 독특하다. 물이 아닌 불에서 고기들이 자란다. 다른 물고기들은 물 조절을 잘 해줘야 하지만, 이 양어장의 고기들은 불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치어기가 없이 바로 성어가 되는 양어장! 성어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분 남짓. 필자는 이 양어장을 통해 불이 물보다 더 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거나, 때를 놓치면 비단 붕어대신 새까만 붕어가 나온다. 학교 아이들은 이런 붕어를 선탠 붕어라고 부르며 거침없이 입속으로 넣는다.자연을 배우는 학교에서 붕어를 한 입에 넣는 모습이 도대체 말이나 되느냐고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치가 빠르신 분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을 것이며, 선탠 붕어라는 말에 어쩌면 큰 웃음을 웃었을 것이다. 혹 여러분은 이 양어장에 대해 눈치를 채셨는지? 그렇다, 바로 필자가 여의도에 꼭 보내고 싶은 붕어빵을 만드는 기계다. 그럼 이 양어장 지기는 누구일까?여러분께서 산자연중학교를 방문하면 운동장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한 사람이 있다. 먼지 가득 앉은 모자를 눌러 쓴, 시커먼 잠바에 몸을 깊게 묻은, 손에는 계절을 맞이하는 도구들이 항상 들려 있는 그 분을 여러분은 절대 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분과 인사를 나누면서 여러 분은 자연스레 보게 될 것이다. 하얗게 빛나는 로만 칼라를! 늘 낮은 곳에서, 늘 낮은 자세로, 당신보단 항상 학생과 세상 모든 이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또 그들을 위해 기꺼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신부님! 학생들을 위해 신부님께서 직접 만드신 붕어빵을 여의도에 꼭 보내고 싶다.

2014-12-09

규제 개혁과는 먼 나라, 경북교육청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12월 매듭달이다. 초등학교 1학년 나경이가 묻는다. “왜, 13월은 없어?” 12월이면 누구나 한번 즈음은 외치는 말, “벌써!” 정말 벌써 12월이다. 되돌아 볼 수 있는 게 많으면 좋을 텐데, 지난 시간들이 백지 같다. 그래서 13월을 더 간절히 소망하는 지도 모른다. 필자가 최근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일에 있어 시작과 중간도 중요하지만, 더 없이 중요한 게 끝이다. 끝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동안의 부족함이 채워지고, 또 새로 시작할 힘을 얻는다”독자 여러분들은 마무리를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분명 잘 하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마무리가 안 된, 또 마무리가 잘못된 일들이 너무 많다. 세계를 아프게 한 세월호는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고, 국회는 세금만 축내고, 경제는 호흡을 멈췄고, 교육계는 답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 같다.정부는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각종 공익광고를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그런데 수능 뒤처리에 바빠서인지 교육청에 계시는 분들은 공익광고를 볼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정부는 이 나라가 당면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어떻게든 모든 규제들을 없애거나 풀려고 하고 있는데 지자체들은, 특히 경상북도 교육청은 오히려 규제를 더 만들고 있으니 나라 꼴 정말 우습다. 공익광고조차 볼 여유가 없는 경북교육청 관계자들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 교육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익광고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설마 이것조차 읽을 시간이 없지는 않겠지.“건축규제, 진입규제, 전자상거래 규제, 수출입규제, 불필요한 규제를 푸는 일, 우리 모두의 내일을 여는 일입니다. 청춘의 가능성을 열고, 경제의 창의성을 열며, 시장의 아침을 깨우는 일입니다. 규제개혁, 내일을 위한 도약입니다” 공익 광고 내용대로라면 경북 교육의 내일은 없다. 왜, 경북 교육청은 규제 개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머니까. 교육부조차 의아해 하는 규제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마치 절대 법인 양 신봉하는 경북교육청의 내일은 분명 없다.필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정당한 민원에 늘 죄인으로 살고 있다. “선생님,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닙니까?” 이 말만 나오면 필자는 정말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필자만으로는 도저히 이 민원에 대해 답을 할 수가 없어 대통령께 물어 보았지만, 역시 답을 들을 수 없었다.필자는 답을 못하고, 대통령께서는 답을 아니 하시니 화가 난 학부모들께서 교육청에 민원(民怨)을 넣으신 모양이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민원에 대한 회신을 받으신 모양이다. 회신의 내용은 정말 규제의 달인다운 것이었다. “선생님,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답을 주려고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답니까?” 정말 화가 많이 나신 학부모님의 전화에 필자는 더 큰 죄인이 됐다. 죄송, 미안이라는 말들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여기서 민원 내용을 다 말 할 수는 없지만 큰 주제는 다음과 같다.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들은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다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중학생이므로 대한민국 중학교 학생들이 받는 교육 서비스를 동일하게 받고 싶다” 독자 여러분은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님들의 민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에서 상처받은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원망도 없습니다. 또 그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건 너무 합니다. 우리가 뭐 대단한 걸 요구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우리 아이들을 중학생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그렇게 잘 못 된 것입니까. 그럼 교육청이나 예전 학교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아파할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있었습니까. 정말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 왜 말이 없으십니까.” 정말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 옳은 말씀이니까! 12월, 경상북도교육청의 현명한 마무리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는 외친다. “교육 규제 개혁, 경북 교육의 내일을 위한 도약입니다.”

2014-12-03

절대자와 소통하는 나무 화가(畵家)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아침부터 겨울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가 싶더니, 휴대폰으로 전해 듣는 부고 문자 메시지가 주말아침을 슬프게 만든다. 지역에서 화가로 한평생을 살아 오셨던 서양화가 서창환(徐昌煥·1923년) 선생님의 별세 소식은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소식을 전해 듣고 보니 선생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크고 작은 추억들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무의 아름다움과 강직함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작가는 나무가 사람들에게 주는 유익함과 윤택함을 한평생 화폭에 담아 왔었다. 창작활동을 통해 제작된 1천여 점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나무의 아름다움과 나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연의 보편적인 진리를 표현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나무를 좀 더 사랑하고 생활 속에 나무숲 그림을 통해 나무들과 친숙해지기 위한 노력을 몸소 실천 했던 작가였다.1923년 함경남도 흥남에서 태어난 그는 1940년대 일본 유학(일본 대학교)을 통해 서양화라는 미술양식을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해방 후 월남하여 1946년 경북 영주에서 교사의 길에 접어들며 평생을 교육자와 화가라는 두 길을 함께 걸어가는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다. 1947년 포항에서 교직생활 때는 포항 영일군청 회의실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변변한 전시공간이 없던 시절을 반영하듯 청포도 다방, 애린 예식장 등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항에서 개인전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1999년 26회 개인전부터 필자가 근무하는 갤러리에서 이어진 전시에서는 고희 기념과 화집 발간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시회를 가질 때마다 함께 했던 술자리에서는 과거 일본유학시절부터 1970년대 활발했던 젊은 시절 작가활동을 하던 시기를 무용담처럼 재미나게 들려줬다. 어린 시절 부족할 것 없었던 집안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즐겼던 유년시절과 해방 후 공산정권을 피해 모든 재산을 남겨두고 홀몸으로 남하하며 고생했던 청년시절은 평생 검소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값진 경험이었다. 영주와 포항을 거처 대구에서 중등학교 교사생활을 이어 가며 경험했던 대구화단은 작가를 마치 그의 그림속 나무처럼 변함없이 한자리에 서있게 만들었다. 1960년대 대구화단이 새롭게 만들어지며 정치적 권력에 의해 예술적 가치를 평가 받던 시절에도 그는 고집스럽게 화실을 지키며 꼿꼿이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나무처럼 창작활동에만 열중했다. 늘 변함없는 푸른 나무를 좋아했고 초록색 푸른색을 즐겨 담았던 그의 작품 속에는 초록나무가 뱉어 내는 신선한 산소가 가득 했었다. 선생님 보다는 인생의 선배처럼 늘 거리감 없이 대해 주었고, 누구보다 가족들에 대한 사랑으로 늘 자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마음씨 좋고 넉넉한 할아버지셨다.무작정 하늘로 솟아 오른 나뭇가지들은 신앙에서 오는 절대자와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로 일관해 왔던 선생님은 이제 그의 믿음을 몸소 경험하실 것이다. 나무와 땅의 색조가 왜곡되어 나타나는 표현은 신비와 환상적 무드에서 오는 유토피아적 꿈을 찾기 위한 끊임 없는 그의 노력들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의 믿음이 되어 결국 그림이 된 셈이다. 한겨울 온가족이 모여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는 그림에는 굴뚝의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마 이처럼 사랑스런 장면은 선생님이 늘 꿈꾸어 왔던 그림일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 많이 그려주시길 기도하며 이제 선생님을 나의 마음속에서 떠나보낸다.

2014-12-02

절제의 미학을 공부해야 할 때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오늘은 12월의 첫날이다. 어느 시인들의 시구에서처럼 마지막 달력을 벽에 걸며,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고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리라.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미숙해 고마워하는 마음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왠지 아쉬움이라는 감정의 언저리에만 얼쩡거리고 있을 따름이니 이를 어쩌랴. 아쉬움은 `필요할 때 없거나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미련이 남아 서운하다`의 뜻으로 풀이되는 일종의 감정어이다. 특히 인생의 최고 정점에서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의 아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느껴진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전 제주지검 모 검사장, 서울대 모 교수 등의 충격적인 소식은 과다한 경쟁사회가 낳은 재난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층의 인사라는 점에서 우리의 충격 체감 정도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식의 성장을 지켜 본 부모들은 잘 알겠지만, 한 인간의 성장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를 찾아가는 길만큼이나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성장하고, 더구나 그 분야의 최고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인내와 노력이 덧대져야 가능할 것이다.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던 인재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이유를 도덕성의 결여에서 흔히 찾는다. 하지만 얼마쯤은 절제심의 부족에서 찾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 선비들은 공부를 할 때 글공부뿐만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공부까지 아울러 행했다.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가는 신독(愼獨), 자신의 인격을 가장 먼저 갈고 닦은 다음 가정과 국가 그리고 세상을 생각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등은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절제(節制)란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해 제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절제의 미학을 아는 사람은 적절한 수위의 정도는 물론이고, 모자람과 넘침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근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 온 교육을 되짚어 보면, 자신을 다스리고 점검하는 일은 아예 무시하고, 단순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점수와 등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수치의 노예가 되는 교육을 받다 보니 언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 일어난 충격적이고 불행한 사건들은 그동안 우리가 무시했던 절제심의 귀환으로 볼 수 있다. 인간에게는 공부뿐만 아니라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절제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경고음 같은 사건이기도 하며, 우리 교육의 패턴이 방향 전환을 해야 할 시점임을 암시하는 사건이기도 하다.이광수의 `유정`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최석은 당대 사회에서 존경 받는 교장선생님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친구의 딸 남정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 정성을 다해 돌본다. 최석은 부모를 잃은 어린 남정임을 연민의 정으로 대하다가, 그녀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자, 어느날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의 그런 감정을 절제하기 위해서 가정도 학교도 다 버리고 시베리아로 도피해서 추위와 허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여타의 통속소설처럼 최석이 남정임과 시베리아로 밀월여행을 떠났더라면, `유정`은 명작으로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절제의 미학만이 명작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절제의 미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2014-12-01

무릎

▲ 김영식 시인공중을 내려놓고 깃 속에 낮의 부리를 묻는 새를 무릎이라 부르면 어떨까? 종일 밖을 나부끼던 잎들을 불러와 고요해진 느티를 무릎이라 부르면 어떨까? 새의 무릎, 나무의 무릎. 어스름에 기대서서 나는, 직립의 시간들이 돌아와 제 심연과 따뜻하게 마주 앉는 것을 본다. 산자락 불빛들이 감국처럼 피어나고, 어두워진 골목이 담벼락 아래 길을 눕고, 꽃향유 향기는 두런두런 꽃대 위로 귀가하고, 쥐며느리는 지금쯤 부엌 살강 밑으로 스며들고. 물소리를 벗어놓고 잠시 흘러온 골짜기를 돌아보는 하구를 무릎이라 부르면 어떨까? 하루를 식탁 위에 차려놓고 둥글게 둘러앉은 저녁의 창문을 무릎이라 부르면 어떨까? “무릎”하고 말하면 입술은 잠시 밖을 향해 둥글게 몸을 내밉니다. 그러다 가만히 안쪽으로 닫힙니다. 내밀어진 입술은 노동이고 닫힌 입술은 휴식입니다. 노동을 내려놓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릎을 굽히는 것입니다. 새들도 나무들도 종일 힘들었던 직립(直立)을 내려놓고 제 심연과 따뜻하게 마주앉는 자리가 무릎의 시간이죠. 고단했던 심신이 바야흐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건, 불빛들이 감국처럼 피어나는 산자락이고, 흘러온 골짜기를 돌아보는 하구이고, 불빛이 잘그락대는 저녁의 창문이기도 합니다.클림트의 그림 중에 `다나에`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다나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의 왕인 아크리시오스의 딸입니다. 아크리시오스는 다나에가 낳은 아들에 의해 죽는다는 신탁을 받고 딸을 지하에 있는 청동 방안에 가두어놓습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도 접근할 수 없도록 하지요. 그러나 하늘에서 이를 지켜본 제우스가 빗물로 변신하여 그녀의 두 무릎 사이로 스며들어가 교접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페르세우스가 태어나고 훗날 원반경기 중 외손자가 던진 원반에 의해 아크리시오스는 사망하게 됩니다. 무릎을 굽히고 좁은 방안에 갇혀 누운 다나에의 모습은 관능적이라기보다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은 딸의 절망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로뎅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무릎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고요하게 사색에 잠겨 있는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술을 전공한 담임선생님은 학교 운동장 한켠 느티나무 아래 생각하는 사람을 시멘트로 조각했습니다. 유관순이나 이순신 등 역사적 인물의 동상에만 익숙해있던 어린 우리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근육질의 팔과 다리와 구부린 등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인 사실감을 느꼈지만 그것보다는 무릎을 꿇고 생각에 잠긴 그의 표정에 더 매료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어느 종교든 기도는 대체로 무릎을 꿇고서 하는 것입니다. 신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그것이 가장 정직하게 자아와 대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도는 신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과 가장 날 것으로 만나는 의식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차가운 교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녀는 무엇을 간구했을까요?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아직도 제 뇌리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아버지는 두어 달의 뱃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어린 우리들에게 무릎을 밟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마사지였던 셈이었는데 당신은 파도가 출렁대는 바다에서 제대로 무릎을 굽혀 쉬지도 못하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그 고단한 항해를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 아버지의 무릎에선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오래 들리곤 했습니다.무릎은 인체에서 가장 큰 관절입니다. 무릎 위의 체중을 모두 지탱해야하기 때문에 상당한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일도 무릎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발이 욕망을 지향한다면 무릎은 쉼을 지향합니다. 발이 물질이라면 무릎은 정신입니다. 가을입니다.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무릎에 얼굴을 묻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고단했던 삶이 조금은 위안을 받지 않을까요.

2014-11-28

마을 학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요일 아침 과수원 산책 시간.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두 계절이 공존하는 때라 비록 몸은 적응하느라 힘들지만 눈만은 즐거운 요즘이다. 서리 가득 앉은 시골 길을 학생들과 걷는 행복이란 매일 매일을 첫눈을 보는 느낌이다.“새결아, 이 식물 이름 뭐니?”, “찔레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모두가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다. 새결이는 식물 박사다. 백화점식 교육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지만 개별화 교육, 맞춤 교육, 행복 교육, 생태 교육을 추구하는 산자중학교에서는 빛나는 학생이다. “그래 맞다. 찔레다”, “잎마다 하얗게 내린 서리가 마치 찔레꽃 같다. 찔레꽃은 참 슬픈 꽃인데, 오늘 숙제는 그 슬픈 이야기를 알아보는 거다”학생들은 열심히 생태도감에 찔레를 옮겼다. 가시들이 힘을 빼주었다. 필자는 생태도감에 옮겨지는 찔레를 보며 어느 뮤지션의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옹알거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노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필자이기에 학생들이 쳐다본다. 그리고는 금세 생태도감에 하얗게 찔레꽃을 피운다.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 혼자 옹알거렸다. 학생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순간 다행히 길이 같이 옹알거려 주었다. 그리고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무 한 발만 실어주면 안 되겠닝교” 주름 가득한 말이 앞 뒤 상황을 모두 생략해 줬다. “네, 할아버지. 되죠”, “그럼 어서 타소” 아침 과수원 길에서 학생들과 필자는 할아버지 야타족을 만나는 큰 행운을 얻었다.고급 리무진보다 더 맛깔스럽게 고급인 경운기! 서울에서 온 세환이는 경운기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길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줬다. 아침 찬바람을 가르며 경운기는 학생들을 태우고 달렸다. 경운기를 운전하시는 할아버지 뒷모습에서 찔레꽃 마지막 소절이 들리는 듯 했다.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노래 소리가 끝날 무렵 경운기는 학생들을 텅 빈 과수원에 내려주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과나무와 별로 가득했던 과수원. 하지만 별은 온 데 간 데 없고 허리 잘린 사과나무만이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얗게 서리 앉은 들풀들이 지난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 했다. 하얀 서리보다 더 하얀 말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굵은 둥거리만 좀 실어주소” 허리 잘린 말에 아무것도 물어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전기톱으로 남은 사과나무를 자르셨다.“선생님, 왜 사과나무를 잘라요?”, “온난화 때문에 이제 이 지역에서는 사과 농사가 잘 안 된단다”, “할아버지 많이 속상하시겠다”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들은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보면서 스스로 알아간다. 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필자가 말하기도 전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머리보다 더 굵은 나무둥치들만 골라 경운기에 정성껏 실었다. 장갑이 없다고, 옷이 더러워진다고 말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필자는 여기서 또 한 번 교육이 뭔지를 생각한다. 물 수능, 난이도 실패, 출제 오류, 수능 무용론까지 연일 수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흔들리는 수능에 무너지는 교육이 보인다. 정말 진지하게 교육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아니 많이 늦었다. 할아버지의 단호한 결단처럼 우리도 섞은 교육 나무를 과감히 베어내야 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지난주에 교육학과 대학생들 앞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죽은 지식들을 달달 외워서 월급쟁이 교사 될 생각하지 말고, 교육학과라면 지금의 이 병든 대한민국 교육을 치유할 방법을 찾으세요. 산자연중학교는 그런 방법을 연구합니다. 그 중 하나가 마을 학교입니다” 마을 학교가 무너진 교육을 재건하는 발판이 되길 기원한다.

2014-11-25

교육을 위한 보리 소나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주에 심은 마늘이 파란 눈을 떴습니다. 마늘은 스스로 파란 불을 켜고 매운 겨울이 오기 전에 길을 찾아올라 왔습니다. 단단한 어둠속에서도 눈을 뜰 수 있는 건 길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입니다. 곧 눈 위에 눈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길을 아는 눈은 분명 눈 속에서도 길을 찾을 것입니다. 그 길에는 봄이라는 이정표가 있을 테니까요.비닐 구멍 속에서 파란 눈을 뜬 마늘을 보고 한 선생님께서 마늘이 촛불을 켰다고 하십니다. 땅이 피운 건지, 마늘이 스스로 피워 올린 건지, 마늘 구멍 사이로 올라온 싹이 정말 촛불 같습니다. 촛불은 어두울수록 더 빛을 발휘하듯 마늘이 피워 올린 촛불은 겨울이 매서울수록 더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함박눈도 어찌하지 못할 파란 촛불을 우리 아이들도 반드시 피워 올릴 것을 믿습니다.그 기원을 담아 학생들과 다시 텃밭에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보리를 심기 위해서입니다. 밭을 고른 다음 학생들에게 보리 한 움큼을 선물했습니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만들어 줍니다. “선생님, 보리는 비닐을 안 씌웁니까?”, “그래, 왜 그럴까?” 또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답을 합니다. “보리는 큰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맞다, 보리는 눈이 커서 아무리 추워도 길을 잘 찾는다. 그래서 비닐을 씌우지 않아도 된단다” 아이들에게 보리 한 톨을 보여주었습니다. 보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보리를 싸고 있는 껍질을 벗겼습니다.“얘들아, 봐. 이게 보리 눈이야” 아이들의 눈이 점점 작아집니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눈들이 보리의 눈을 찾기에 바쁩니다. 포기를 모르는 아이들의 눈은 거의 감기기 직전까지 갑니다. “얘들아, 꼭 눈으로만 보지 마. 마음으로 보면 보리의 눈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거야” 중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말 같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마음의 눈을 잘 압니다. 고추, 감자, 고구마, 옥수수, 깨 등 참 많은 눈들과 눈 맞춤 한 아이들은 텃밭이 눈을 키우는 장소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마음의 눈을 뜬 학생들이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 그럼 보리는 어떻게 심어요”, “자, 이렇게 뿌리면 된단다”, “정말요?”, “그래, 보리는 이렇게 뿌려 주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자란다.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엮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자라는 보리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뿌리가 단단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보리를 받는 아이들 손이 마치 기도를 올리는 손과 같습니다. 손 안에 담긴 보리는 그대로가 가을이 올리는 기도의 말씀입니다. 땅은 기도를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보리를 파종합니다. 보리 한 알에 담긴 큰 세상을 아이들은 이미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일주일 만에 싹을 틔운 마늘과 양파처럼, 보리도 곧 아이들의 푸른 기도를 촛불처럼 피워 올릴 것입니다.여러분은 보리 한 알에 담긴 큰 세상이 보이십니까. 여러분은 아이들이 보리를 닮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보리를 닮은 우리 아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꺾는 건 보리 한 번 심어보지 못한 어른들입니다. 아니 교사들입니다.1년 정도 이곳에 칼럼이라는 걸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직업병처럼 거의 교육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만 이놈의 교육 현실은 필자가 글을 쓰기 전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아이들은 더 힘들어 하고, 교사들은 더 형식적으로 변해가고, 학교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가기 싫은 장소가 되어 가고, 도대체 왜 이래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글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만 그것도 모두 옛말이 됐습니다. 필자는 오늘도 전학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공교육이 힘들게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교육비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따지듯 물으십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닌가요?” 누구나 알지만 경북교육청만 모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통령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 님,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닙니까?”

201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