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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부일체`

등록일 2014-12-12 02:01 게재일 2014-12-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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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찬 경북도립대 교수·화가

수업을 하다보면 요즘 학생들은 지각도 결석도 마음대로이다. 과제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한다. 잠이 오면 마음대로 엎드려 자고 떠드는 학생은 선생님이 안중에도 없다. 매를 들 수없는 교육 현실에 방법이라고는 방치해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속된말로 건드렸다가는 무슨 원망과 지탄을 받을지 모른다. 사회가 무섭고 학부모가 두렵다.

물론 전체의 흐름은 이와는 상반된다. 전체의 큰 흐름은 선생님의 사랑과 아이들의 존경심이 어우러진 가운데 교육은 잘 이뤄지고 잘 못 비춰진 부분은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교육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아이들의 학습교육에만 치우쳤지 인성교육은 제로에 가깝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지금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 시절은 선생님이 무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숙제를 안 해 가거나 준비물을 빠트리거나 지각을 하면 꾸지람과 체벌이 기다린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그만큼 교육이 엄한 시절이었다. 하기야 상식 밖의 행동으로 폭행을 하는 교사들도 있었으니, 학생도 부모도 선생님과 대화하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던 시절로 어쩌면 그때의 추억이 지금의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변하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자유로움 그자체이다. 교육과 사랑은 식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꾸지람과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그저 학생들의 행동을 관대하게 지켜 볼 뿐이다.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학부모들이 가만있질 않는다. 귀한 자식 털끝하나 건드리면 세상이 시끄러운 경우가 될 수가 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떠들거나 싸움질하거나 말썽꾸러기를 교육시키는 방법으로 학생을 위해 타이름이 부족하면 꾸짖음과 간단한 체벌을 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책만 보고 공부만하면 된다는 부모들의 생각은 선생님과 학생간의 관계를 이제 남남으로 학교에서나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만 보는지 모르겠다. 한쪽 편을 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지는 몰라도 요즘 학생들은 인성교육이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관이나 도덕심, 예절 같은 교육에 너무 떨어져 사는 듯하다. 그것은 나라의 정책에 가장 큰 문제가 있고 가정에서의 부모가 자식에 대한 교육이 안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교육현실은 선생님과 학생간의 존경과 사랑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여기다가 한수 더 떠서 저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평가하니 선생님으로부터 따끔한 충고나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어떤 점수를 매길지 상상이 간다. 세상에 가르치는 스승을 평가 하다니 그만큼 선생님을 못 믿는다는 얘기인데 그것으로 인해 제자에 대한 열정이 식음을 왜 모르는지. 그러니 선생님도 좋은 것이 좋다고 아이들 마음 안 상하게 하고 방치하는 것이 더 좋은 평가 성적이 나올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부 잘하면 당장 성적은 좋게 나온다. 하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아가서 그들이 부모와 스승을 어떻게 대하고 사회에서 존경 받을 만한 인물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모를 잘 모시고 스승을 존경하는 시대는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선생님은 졸업하면 다시 보지 않을 인물, 부모님은 나이 들면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시대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다.

부모와 스승은 하나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말이다. 그래서 스승을 사부라 하고 학생을 제자라 한다. 스승도 부모이고 가르치는 학생은 자식이라 했다. 그만큼 사이가 밀접한 관계이고 가족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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