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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위한 보리 소나타

등록일 2014-11-18 02:01 게재일 2014-11-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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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지난주에 심은 마늘이 파란 눈을 떴습니다. 마늘은 스스로 파란 불을 켜고 매운 겨울이 오기 전에 길을 찾아올라 왔습니다. 단단한 어둠속에서도 눈을 뜰 수 있는 건 길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입니다. 곧 눈 위에 눈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길을 아는 눈은 분명 눈 속에서도 길을 찾을 것입니다. 그 길에는 봄이라는 이정표가 있을 테니까요.

비닐 구멍 속에서 파란 눈을 뜬 마늘을 보고 한 선생님께서 마늘이 촛불을 켰다고 하십니다. 땅이 피운 건지, 마늘이 스스로 피워 올린 건지, 마늘 구멍 사이로 올라온 싹이 정말 촛불 같습니다. 촛불은 어두울수록 더 빛을 발휘하듯 마늘이 피워 올린 촛불은 겨울이 매서울수록 더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함박눈도 어찌하지 못할 파란 촛불을 우리 아이들도 반드시 피워 올릴 것을 믿습니다.

그 기원을 담아 학생들과 다시 텃밭에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보리를 심기 위해서입니다. 밭을 고른 다음 학생들에게 보리 한 움큼을 선물했습니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만들어 줍니다. “선생님, 보리는 비닐을 안 씌웁니까?”, “그래, 왜 그럴까?” 또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답을 합니다. “보리는 큰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맞다, 보리는 눈이 커서 아무리 추워도 길을 잘 찾는다. 그래서 비닐을 씌우지 않아도 된단다” 아이들에게 보리 한 톨을 보여주었습니다. 보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보리를 싸고 있는 껍질을 벗겼습니다.

“얘들아, 봐. 이게 보리 눈이야” 아이들의 눈이 점점 작아집니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눈들이 보리의 눈을 찾기에 바쁩니다. 포기를 모르는 아이들의 눈은 거의 감기기 직전까지 갑니다. “얘들아, 꼭 눈으로만 보지 마. 마음으로 보면 보리의 눈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거야” 중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말 같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마음의 눈을 잘 압니다. 고추, 감자, 고구마, 옥수수, 깨 등 참 많은 눈들과 눈 맞춤 한 아이들은 텃밭이 눈을 키우는 장소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뜬 학생들이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 그럼 보리는 어떻게 심어요”, “자, 이렇게 뿌리면 된단다”, “정말요?”, “그래, 보리는 이렇게 뿌려 주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자란다.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엮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자라는 보리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뿌리가 단단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보리를 받는 아이들 손이 마치 기도를 올리는 손과 같습니다. 손 안에 담긴 보리는 그대로가 가을이 올리는 기도의 말씀입니다. 땅은 기도를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보리를 파종합니다. 보리 한 알에 담긴 큰 세상을 아이들은 이미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일주일 만에 싹을 틔운 마늘과 양파처럼, 보리도 곧 아이들의 푸른 기도를 촛불처럼 피워 올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리 한 알에 담긴 큰 세상이 보이십니까. 여러분은 아이들이 보리를 닮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보리를 닮은 우리 아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꺾는 건 보리 한 번 심어보지 못한 어른들입니다. 아니 교사들입니다.

1년 정도 이곳에 칼럼이라는 걸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직업병처럼 거의 교육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만 이놈의 교육 현실은 필자가 글을 쓰기 전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아이들은 더 힘들어 하고, 교사들은 더 형식적으로 변해가고, 학교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가기 싫은 장소가 되어 가고, 도대체 왜 이래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만 그것도 모두 옛말이 됐습니다. 필자는 오늘도 전학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공교육이 힘들게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교육비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따지듯 물으십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닌가요?” 누구나 알지만 경북교육청만 모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통령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 님,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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