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마을 학교

등록일 2014-11-25 02:01 게재일 2014-11-25 18면
스크랩버튼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요일 아침 과수원 산책 시간.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두 계절이 공존하는 때라 비록 몸은 적응하느라 힘들지만 눈만은 즐거운 요즘이다. 서리 가득 앉은 시골 길을 학생들과 걷는 행복이란 매일 매일을 첫눈을 보는 느낌이다.

“새결아, 이 식물 이름 뭐니?”, “찔레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모두가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다. 새결이는 식물 박사다. 백화점식 교육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지만 개별화 교육, 맞춤 교육, 행복 교육, 생태 교육을 추구하는 산자중학교에서는 빛나는 학생이다. “그래 맞다. 찔레다”, “잎마다 하얗게 내린 서리가 마치 찔레꽃 같다. 찔레꽃은 참 슬픈 꽃인데, 오늘 숙제는 그 슬픈 이야기를 알아보는 거다”

학생들은 열심히 생태도감에 찔레를 옮겼다. 가시들이 힘을 빼주었다. 필자는 생태도감에 옮겨지는 찔레를 보며 어느 뮤지션의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옹알거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노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필자이기에 학생들이 쳐다본다. 그리고는 금세 생태도감에 하얗게 찔레꽃을 피운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 혼자 옹알거렸다. 학생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순간 다행히 길이 같이 옹알거려 주었다. 그리고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무 한 발만 실어주면 안 되겠닝교” 주름 가득한 말이 앞 뒤 상황을 모두 생략해 줬다. “네, 할아버지. 되죠”, “그럼 어서 타소” 아침 과수원 길에서 학생들과 필자는 할아버지 야타족을 만나는 큰 행운을 얻었다.

고급 리무진보다 더 맛깔스럽게 고급인 경운기! 서울에서 온 세환이는 경운기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길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줬다. 아침 찬바람을 가르며 경운기는 학생들을 태우고 달렸다. 경운기를 운전하시는 할아버지 뒷모습에서 찔레꽃 마지막 소절이 들리는 듯 했다.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노래 소리가 끝날 무렵 경운기는 학생들을 텅 빈 과수원에 내려주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과나무와 별로 가득했던 과수원. 하지만 별은 온 데 간 데 없고 허리 잘린 사과나무만이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얗게 서리 앉은 들풀들이 지난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 했다. 하얀 서리보다 더 하얀 말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굵은 둥거리만 좀 실어주소” 허리 잘린 말에 아무것도 물어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전기톱으로 남은 사과나무를 자르셨다.

“선생님, 왜 사과나무를 잘라요?”, “온난화 때문에 이제 이 지역에서는 사과 농사가 잘 안 된단다”, “할아버지 많이 속상하시겠다” 가르치지 않아도 학생들은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보면서 스스로 알아간다. 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필자가 말하기도 전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머리보다 더 굵은 나무둥치들만 골라 경운기에 정성껏 실었다. 장갑이 없다고, 옷이 더러워진다고 말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필자는 여기서 또 한 번 교육이 뭔지를 생각한다. 물 수능, 난이도 실패, 출제 오류, 수능 무용론까지 연일 수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흔들리는 수능에 무너지는 교육이 보인다. 정말 진지하게 교육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아니 많이 늦었다. 할아버지의 단호한 결단처럼 우리도 섞은 교육 나무를 과감히 베어내야 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난주에 교육학과 대학생들 앞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죽은 지식들을 달달 외워서 월급쟁이 교사 될 생각하지 말고, 교육학과라면 지금의 이 병든 대한민국 교육을 치유할 방법을 찾으세요. 산자연중학교는 그런 방법을 연구합니다. 그 중 하나가 마을 학교입니다” 마을 학교가 무너진 교육을 재건하는 발판이 되길 기원한다.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