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자주 내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 12월이다. 눈이 그친 뒤에 부는 눈바람은 어떤 바람보다도 차갑게 불어 우리의 몸도 마음도 춥게 만든다. 날씨도 마음도 추운데 세상마저도 온통 싸늘한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는 이즈음이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그랬듯이 문제아적인 주인공이라야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어둡고 추운 이야기들이라야 독자들의 주목을 끄는 기삿거리가 되는 것 같다. 토막 살인사건, 자살, 폭언 등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하는 단어들이 뉴스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마음이 더욱 추울 수밖에. 마음을 춥게 하는 뉴스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 말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하고 있다. 말다툼을 하다가 우연히 밀쳤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진실을 믿어주지 않자 죽음을 선택하고, 지위가 높다고 폭언을 하고…
말 중에서도 가장 차가운 말이 막말일 것이다. 막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이다. 주로 접두사로 쓰이는 `막-`은 `거친, 품질이 낮은, 닥치는 대로 하는, 마지막`의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이 무례하게 밀어붙일 때 `막가자는 겁니까?`라는 말로 응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막가다`는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막되게 행동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무례한 말은 상대방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는 불씨가 되어 더 큰 싸움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신중하게 써야 하는 말이다. 아직 사전에는 없지만 `막장 드라마`라는 말도 있는데, 인터뷰어 김우성씨의 정의처럼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무리한 상황설정, 자극적인 장면 등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총칭하는 말`이며, 도덕성과 윤리성이 결여된 드라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막말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장예모 감독이 만든 `귀주 이야기`(1994)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장 감독과 공리가 만난 후 처음으로 찍은 영화라고 하는데, 중국 최고의 여배우 공리가 시골 촌부인 귀주의 역할을 맡아 억척같은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 영화이다. 귀주의 남편이 마을의 촌장에게 급소를 맞아 손수레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는 촌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려고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항상 돈으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문뿐이다. 귀주는 돈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촌장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 귀주의 편에 서서 영화를 보면 촌장은 사과도 할 줄 모르는 지극히 나쁜 인간일 뿐인데, 촌장의 편에 서서 보면 달라진다. 귀주의 남편이 딸만 있는 촌장에게 `평생 딸만 낳아라`라는 막말이 폭행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말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드디어는 거친 행동을 유발하는 기제가 되니, 그야말로 쓰면 위험한 말이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막말이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 마지막은 죽음일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처럼 따뜻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온도는 적어도 36.5℃로 따뜻함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따뜻한 체온을 가진 존재로부터 나오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함이 묻어나는 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라는 변수가 말의 온도를 낮추는 경우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언제나 따뜻한 집이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또 있으랴. 가수 이승철이 천 번이나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런 사람 또 없다고 하며 감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은 왠지 그 사람이 했을 말처럼 따뜻한 말이 그리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