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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시집 보내기

등록일 2014-12-24 02:01 게재일 2014-12-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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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결혼 관련 말 중 유독 슬픈 말이 있다. 시집보내기! 겨울 방학을 앞두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어느 결혼식에 주례를 섰다. 중학생이 주례를 선다는 것에 당황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식의 종류에 따라 이 일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산자연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주례를 선 결혼식의 주인공은 바로 토끼! 잔치 집은 언제나 그렇듯 토끼집도 여느 잔치 집과 다르지 않게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보내려는 자와 남으려는 자의 실랑이가 잔치 집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토끼와 아이들은 지난 봄여름가을 동안 한집살이를 했다. 다른 학생들이 학원과 과외에서 죽은 지식들을 배울 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자연의 품에서 토끼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다. 자연은 토끼에게 주라며 아이들 손에 “닭의장풀”, “환삼덩굴”, “명아주”, “까마중” 등을 쥐어주었다. 토끼를 통해 아이들은 길가에 핀 야생초 하나에도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아이들 덕분에 토끼 식구는 계절이 비좁을 만큼 풍성해졌다. 또 아이들은 토끼 덕분에 마음이 넉넉해졌다. 아이들과 토끼는 그렇게 한식구가 되었다.

좁지 않은 토끼장이지만 아이들의 하늘같은 정성으로 토끼장은 만원이었다. 더 이상의 토끼 식구는 어쩌면 토끼들한테는 재앙이 될지도 몰랐다. 토끼를 위해서라도 분명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시장! 토끼를 시장에 내어놓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동의를 했다.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토끼를 시장으로 보내는 날. 모든 시험을 마친 3학년들이 토끼와 함께 시장에 가기로 했다. 토끼장 앞에 모인 학생들의 표정은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표정과 같았다. 비록 토끼를 시장에 보내기로 동의는 했지만, 서운함이 컸던지 모두들 토끼장 앞에서 머뭇거렸다. 머뭇거림의 의미를 잘 알기에 필자는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얘들아, 오늘 너희는 토끼를 시집보내는 거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퉁명스러운 말대답이 날아왔다. “선생님, 토끼 파는 거잖아요.” 그 말에 아이들의 표정은 더 무거워졌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필자는 정성을 다해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지금 토끼장에는 토끼들이 너무 많아. 토끼가 한 마리만 더 늘어도 여긴 아수라장이 될 거야. 토끼에게는 지금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해.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토끼를 더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자.”

주저함의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이들이 토끼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토끼몰이는 쉽지 않았다. 토끼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협동하기 시작했다. 그 협동에는 분명 정성과 배려가 가득했다. 한 바탕 소통이 끝나고 열댓 마리 토끼가 상자 속에 가득 찼다. 아이들은 행복한 마음을 가득 담아 시장으로 갔다. 가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떠나고 남는 삶의 이치와 떠나보내는 자세에 대해 배웠다. 비록 의무교육과 경북 교육청으로부터는 괄호 밖 아이들이 되었지만, 필자는 믿는다, 떠나보내는 자세를 아는 이 아이들이 만들어나갈 밝고 희망찬 미래를.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등 세상이 가면 갈수록 흉포악려(凶暴惡戾)되어 가는 사회에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외딴 섬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렇게 들릴지 몰라도 필자는 언젠가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온기를 잃은 이 사회에 따뜻한 빛이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다, 서로 아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기꺼이 희생하라고.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학생들은 시험용으로 배운다. 시험용 지식들은 휘발성이 매우 강해 시험이 끝나는 순간 모두 날아가 버린다. 학교가 각박해지니 사회가 각박해질 수밖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류 구원”의 날인 성탄절! 하루 빨리 이 사회와 학교가 시험에서 구원 되어 학생들이 사랑의 의미를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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