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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등록일 2014-12-10 02:01 게재일 2014-12-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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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덕 대구 수성아트피아 사업기획부장

이탈리아 유학시절의 추억들은 참 다양하고 재미난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저 편안한 유학 생활을 보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지금 아이들이 이야기하는`알바`를 해 가면서 다양한 유학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나 또한 얼마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첫딸 단아가 태어날 무렵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먹을 것 조차 줄이고 결혼비용 아껴서 가져온 돈도 정말 쪼개어 가며 생활했지만 역시 힘들었다. 그 무렵 아내의 순산을 돕기위해 장모님까지 오셔서 여러 가지 도와주시곤 하셨다.(사위로서 제대로 해드리지 못해 지금도 항상 죄스럽다)

1991년 겨울이 채 가기전 첫 딸이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가에서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저러다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생활비도 동이나고 집세 줄 돈도 없었다. 고민하던 중 집사람이 여보! 오늘 저녁 우리 누군가(?) 에게 기도한번 해보자고 제의했다. 신에 대한 독실한 믿음은 없었지만 저녁먹고 아홉시쯤 침대 머리 맡에서 기도하길 시작했다(어려움을 이기게 해달라고). 어찌됐던 무지하게 열심히(간절히) 기도 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나서 악보를 보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 김기덕씨 댁이죠? 여기 한국 여행사인데요 혹시 이탈리아 언어가 되시면 개인 가이드 한번 하실래요? 하고 말이다 일당은 150불 이라는 둥 팁도 받고 이익금도 생긴다는 둥의 이야길 듣고 망설임 없이 좋다고 답을 했다. 약속 날짜는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탈리아 유적의 역사를 거의 모르는 터라 그날 저녁 바로 아내와 유럽역사책 하나 달랑 들고 유적지를 돌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다음날 로마공항에서 노부부를 맞이했다. 너무 예의 바르시고 신사다운 분이셨다.

첫째날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을 처음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둘쨋날 나폴리, 소렌토를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뜻 밖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다름아닌 남편분이 바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이며, 몇 년전 작고하신 우리 조부님의 막역한 친구분이 아니신가. (조부님은 일찍이 일본에 가셔서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을 운영 하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평소에 손자인 나의 이야기 특히 성악공부하러 이탈리아에 간다는 등의 이야길 많이 하셨다 하시면서 머나먼 이탈리아에서 보니 너무 감격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도 친 조부님을 뵙는 것 같아 정성을 다해 안내하며 보살펴 드렸다.

드디어 일본으로 돌아 가시는날 공항에서 내 손을 잡으며 건강하게 학업을 잘 이루라는 말씀과 함께 평소에 사업을 하면서 어려울 때 친구의 덕을 많이 보았는데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고 싶다 하시며 봉투를 건내시는게 아닌가 몇 번 사양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눈물로 보내드리고 아내에게 자초 지종 이야길 하고 봉투를 열어 보니 몇달치 정도의 생활비가 들어 있는게 아닌가. 너무 놀라고 감사한 마음이 지금도 가득하여 코 끝이 찡하다. 간절한 기도의 덕분인지 조부님의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활 속에서 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내 생활속에 일어 난 것이었다.

그때는 젊고 어려운 시기에 매사에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살았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고 내가 하는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사람은 정말 어려울 때 간절히 자기가 바라는 뭔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간절함이 사라져 매사에 진실과 정성이 흐려지는 것 같다. 예전의 어려웠고 간절한 시절의 일을 생각하고 산다면 지금보다 좀더 삶을 정성껏 열심히 노력하며 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좀더 풍요롭고 은혜로운 삶을 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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