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모두의 바람인 듯 2015년은 `희망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우리에게로 왔다. 새해 첫날 모든 언론들은 헤드라인으로 `희망찬 2015년 청양 띠 해`라고 썼다. 필자 기억으로는 2014년에도, 2013년에도 아니 그 앞 년도에도 항상 시작은 `희망찬`이었다. 어쩌면 `희망찬`이라는 말은 2015년 전부터 생겼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언어인 희망(希望)! 국어사전에서는 희망을 `앞일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라봄`,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내일이 좋기를 바란다는 것은 오늘이 안 좋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2014년은 사회, 경제, 정치, 교육 등 어느 하나 좋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희망을 부르짖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말은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2015년 동안 시작 때면 어김없이 주문처럼 외워온 `희망찬`이라는 주문이 올해는 마법처럼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바로 희망이 들어 올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희망을 부르기 전에 우리 주변부터 정리하자. 해묵은 것들을 과감히 버리자. 미련은 희망의 가장 큰 적이다. 미련으로부터의 탈출이 희망을 맞이하는 첩경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해묵은 것들을 정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을 무언가를 정리해본 사람은 잘 안다. 미련과 용기 사이에 승자는 늘 미련이라는 것도. 비록 정리를 했다고는 하나 우리 주변엔 늘 지난 것들로 가득하다. 필자는 필자부터 미련을 떨치기 위해 글을 쓰다가 잠시 중단하고 책상과 주변을 정리했다. 그랬더니 정리하지 못한 해묵은 것들이 작은 책상에서 몇 상자나 나왔다. 지난 것들은 모두 버려야할 대상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정리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늘 뭔가로 넘치던 책상이, 그래서 늘 필자를 불안하게 만들던 책상이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 됐다. 정리는 여유를 만들어 줬다. 공간의 여유도 여유지만, 마음의 여유를 줬다. 여유는 다시 생각을 가져다줬고, 생각은 눈을 뜨게 해 줬다. 나밖에 바라보지 못하던 눈이 주변을 본다. 눈은 다시 귀를 열게 했고, 귀는 몸을 움직였다. 몸은 군더더기들을 훌훌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 기분에 필자는 정리해야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나밖에 모르는 마음, 오로지 앞만 바라보는 눈,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듣지 못하는 귀,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 몸, 늘 부정적인 것들만 말하는 입. 이 중에서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할 것으로 입을 선택했다. 필자는 지금껏 “경상북도 교육청이 안 해 준다, 우리 사회는 안 된다” 등 부정적인 말들만 했다. 그랬더니 정말 되는 일이 없었다. 자기 충족 예언 효과나 피그말리온 효과 등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정말 안 된다고 하면 안 될 것이오, 된다고 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부터 말하고자 한다. 우리 교육은 올바른 인성에 바탕을 둔 참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가 곧 살아나 `장그래`도 빨리 정규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기 활성화에 바탕을 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반목과 시기로 서로 헐뜯고 있는 우리 정치도 이제 신뢰와 상생의 마음으로 서로 손 잡고 나라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또 불안한 마음이 자꾸 스멀스멀 올라오는지 모르겠다. 그 불안한 마음을 없애는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 해묵은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그리고 많이 아프더라도 정리해야할 것들은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자. 아니면 2014년이 다시 반복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