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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만 있다면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산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코 외로운 섬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일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과 같은 일이므로,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존재의 크나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몸의 어떤 기관처럼 느껴져 몸 안에 머물 것 같지만 몸의 바깥에 있을 때가 많다. `스스로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을 때도 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읽을 수가 있겠는가`라며 마음 읽기를 게을리 하면 밝은 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임금인 정조의 어록 `일득록(日得錄)`에 `사람의 마음은 잠시라도 놓아버리면 달아날 우려가 있고 구속만 하면 답답하게 막히는 폐단이 있으니,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이 점을 자세히 살펴 두 가지 공부를 아울러 해야 한다`는 경구가 있다. 마음의 속성은 `달아나거나 답답하거나`를 양극에 두고 시시때때로 차이를 보이며 질주를 하는 데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때도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정조 임금의 철학이다. 또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마찬가지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다.달리 공부하지 않고도 태생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브라이언 퍼시벌 감독의 영화 `책도둑`에 등장하는 한스와 루디 그리고 맥스는 주인공 소녀 리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읽어 내는 인물들이다. 한스는 리젤의 양아버지, 루디는 그녀의 친구, 맥스는 그녀의 스승으로 각각 존재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그녀 자신 이상으로 읽어낸다는 공통점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들이 갖춘 정성스런 마음 읽기는 전쟁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처한 어린 루디를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그들처럼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났다면,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세상에 배우지 않고 되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우스갯소리 같지만,가수 방주연이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턱밑에 점하나/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아 - 아 - 아 - 아/마지막 한 가지/못 그린 것은/지금도 알 수 없는/당신의 마음`이라는 구절이 가장 절절한 목소리로 들리는 사람들은 모두 공부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데는 일정한 공부가 필요하다.첫째, 상대에 집중해서 세밀한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상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읽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시차를 두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의 해결은 물론이고 세상이 온통 환하게 바뀔 것이다. 살면서, 상대의 마음 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는 매우 많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만 있다면, 날로 높아져가는 이혼율과 자살률쯤은 거뜬하게 낮출 수 있고, 싸우던 사람들이 손잡고 노래 부르는 마법 같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좋다니, 당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보자.

2014-11-17

아! 옛날이여

▲ 김기덕대구 수성아트피아 사업기획부장·성악가 불과 20여년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꽤 오래 전 이야기이다.1989년 봄 무작정 아무런 정보도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로마, 기거할 방도 구하지 않고 그저 `아는 선배 집에서 얼마간 머물다 보면은 방도 구하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떠난 그것은 소위 말하는 `유학`이었다. 예전에는 `삼단 가방`이라고 불리는게 있었는데, 그 속에 이것 저것 넣다보니 나만한 덩치의 가방만 3개나 됐다. 낑낑거리며 공항에서 짐을 보내고 20시간 이상(지금은 12시간정도) 기내에 몸을 실었다. 그저 부푼 맘뿐이었다고 할까. 신혼이지만 부부는 고생이란 걸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둘이 있으면 뭐든 다 할수 있을거라 생각한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서 그랬는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부부는 긴 시간을 좁은 비행기에 실려 피곤함도 잊고 단숨에 날아갔다. 아마 갓 결혼한 부부의 사랑은 그만큼 컸나보다.드디어 꿈에 그리던 로마에 도착. 내 이름이 적힌 선배의 피켓을 보고 마냥 기뻤다. 며칠동안의 선배집 생활후 원룸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기거하는 방 바로 옆은 주인집 지하 주차장이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방이었다. 대략 짐작은 갈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살 보금자릴 구한 셈이니 너무 기뻐 그날 조그만 파티를 열었다. 아뭏든 예술의 매력을 느끼고 몰두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돌아보지 않게 하는 것 같다. 예술의 매력에 푹 빠져들다 보니 그냥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지만 막연한 생각으로 도전했던 것 같다. 예술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음의 힘인지, 예술의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끝이 없는 곳으로 나는 도전하게 되었다.이탈리아 로마에서의 필자의 유학생활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어느날 아침 일찍이 살림살이 장만도 할 겸, 언어 공부도 할 겸 가까이에 있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역시 이탈리아인들은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도 좋아 유쾌했고, 감정 표현도 즉각적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주로 모음으로 이뤄져 있었고 일상의 대화중 이었지만 시적인 표현도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예술과 태양의 나라는 말처럼 그 곳은 매력적이었고 열정적이었다.참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유학 생활 중에 작은 에피소드다. 이탈리아 사람도 목소리가 크지만 내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기에 벌어진 사건이다. 추운 날씨 때문에 전기장판을 사러가서 양모로 된 전기장판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가격을 속이고 판 것 같아 다시 가 따졌는데, 점원이 막무가내였다. 짧은 이탈리아말로 따지는데, 그 점원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 말에 `목소리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생각나서 젊은 혈기를 최대한 발휘해 아주 큰 (목)소리로 따지고 마구 떠들어댔다. 당시는 이탈리아 언어가 안돼 우리말을 많이 사용 했다. 유학초기라 이탈리아말은 잘 안되는 상황이니 우리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랬더니 가게 점원이 깜짝 놀라며 윗층 창고로 뛰어가더니 내가 지불한 가격 보다 더 비싸고 좋은 제품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웃지못할 추억이다.어찌되었든 이탈리아도 사람 살아가는 정(情)이 있었고, 우리 나라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었다는 느낌을 그때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인간적인 정서에서, 문화와 분위기속에서 인간의 감성을 그대로 표현한 이탈리아 오페라들이 발달했고, 아름다운 창법과 노래들이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었다. 한껏 흐드러진 가을 낙엽을 보며, 가을정서와 딱 맞아떨어지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날 잊지 말아주오(Non Ti Scordar di me)`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2014-11-14

배추 가시와 서울 전학생

▲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사단풍은 바람에 몸을 맡겨 자유를 얻고, 은행(나무) 위에 집을 지은 까치는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들판은 새로운 충만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 줬으며, 산은 내려놓음의 미덕을 실천한 나무들에게 둥근 우주를 선물했다. 자연은 비움으로써 더 크게 채운다는 걸 사람들에게 몸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조급한 11월이다. 그러기에 놓을 줄 모르고 더 끌어안으려고 야단법석이다. 그 광경(狂景)을 지켜보고 있는 대문 옆 감나무만이 부끄러움에 더 붉어지는 11월이다. 감나무의 부끄러움이 깊어가는 요즘 필자는 학생들을 통해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상 진리를 배우고 있다. 지난 주 노작 시간의 주제는 배추 묶기! 대다수 학생들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전학을 온 학생들이라 매 주 노작 시간은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뭔가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 배추 묶는 방법과 간단한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곧바로 배추 밭으로 갔다. 그리고 각 자 해야 할 분량을 정해준 다음 필자는 조금 빠른 속도로 저만치 앞서 묶어 갔다.조금 지나자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저마다의 방법으로 배추를 묶고 있었다. 필자를 포함한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도 늘 마음이 불안하다. 그래서 알아서 먼저 넘치도록 모든 것을 해준다. 아이를 위한다는 게 아이를 망친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필자는 조금만 믿고 기다려준다면 학생들은 그 어떤 일도 스스로 해 낼 수 있다는 걸 산자연중학교에 와서야 확실히 알았다.열심히 배추를 묶던 한 학생이 외쳤다. “앗 따가워! 선생님 배추에도 가시가 있어요”, “맞아요, 저도 찔렸어요. 왜 말 안 해주셨어요?”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야단들이다. “조심해야지. 약하다고 자신들을 무시한 너희들에게 배추가 경고하는 거야.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수단이 있다는 것을 배추가 말해주는 거야” 배추 가시에 놀란 학생들은 모두를 더 조심해서 배추를 다시 묶기 시작했다.“얘들아, 왜 배추를 묶을까?” 학생들에게 물었다. “…”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생각하는 것이 익숙한 학생들이기에 답을 기다렸다. 학생들은 늘 놀라움으로 필자의 기다림을 보상한다. 건이가 말했다. “배추의 꿈을 위해서요”, “배추의 꿈?”, “네!” 더 이상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어른들의 어설픈 말로 그 싱그러운 꿈을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당황하고 놀라는 것은 필자뿐이었다. 느낌을 아는 학생들은 가을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꿈을 보태어 배추의 꿈을 묶어 줬다. 배추 묶기가 끝나고 학생들은 저마다 파랗게 배추 물든 손을 자랑스럽게 들어 가을 태양에 말렸다.아마 이런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낯설어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수학 공식을 외우고, 또 기계적으로 외운 공식을 대입해 경쟁적으로 수학문제집을 풀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괜히 책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적인 말로 사교육으로 잘 다져진 지금의 공(空)교육을 흔들지 말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위의 모습은 산자연중학교 노작 수업 시간의 모습이며, 아직도 학생들의 마음엔 곱고 즐거운 파란 배추 물이 들어있다.학생들이 배추 물든 손으로 양파를 심던 날 서울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 누구나 다니고 싶은, 정확히 말해서 부모라면 누구나 보내고 싶은 수도권 소재 특성화 중학교를 다닌 학생이다. 과연 그 학생이 무엇을 찾아 여기에 왔을까? 분명 한 건 영혼 없는 국어, 영어, 수학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그 학생은 필자에게 말해줬고, 필자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통해 그것이 `배추 가시`라는 것을 확신했다. `배추 가시와 배추의 꿈`은 분명 이 나라 교육의 새로운 화두임에 틀림없다.

2014-11-11

총체예술의 새로운 진화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특히 현대예술이라는 장르는 과거 예술가들이 정의 해 왔던 이론과 주장에 새로운 감각적 요소를 가미하고 창의적 가치관을 담론화 함으로써 누구를 위한 행위이며 무엇을 위한 표현인가에 대한 복잡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급기야 장르의 구분마저도 뒤범벅이 되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행위를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미술관이나 화랑 전시를 자주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전시 오프닝 행사에 맞춰 예술가의 퍼포먼스나 실험적인 무용가의 춤, 음악가들의 연주와 노래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장에 작품 대신 작가가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거나, 괴상한 몸짓을 하며 관람객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끄는 행위는 예술이라는 단순한 양식의 구분을 넘어서 원초적인 감각으로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이러한 예술행위는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주요 현상 중 하나로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예술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기 위한 행위들로 보아진다. 현대의 예술은 음악과 연극, 무용이 한데 뒤섞여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을 뛰어넘어 동시대 모든 예술들이 융·복합되는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기보다는 상업적이고 깨끗하기보다는 잡다한 오브제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가 하면, 장르의 명확한 구분 없이 애매한 예술행위들이 다 함께 모여 서로 타협하면 표현해내는 것이 현재 예술의 새로운 형태이다.과거 예술이 가지는 전통적 본질이 모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회화나 조각이 주는 재현적 요소는 음악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문학 역시 우리의 삶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광의적 의미에서 보면 모방에 의한 자연의 재현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적 표현양식은 다양성과 독창성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정체성을 통해 예술이 가지는 본질적 의미를 새롭게 표출해 내는 방식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총체예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현대미술이 가지는 존재와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창조와 생산이라는 이분법적 의미로 재해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의미가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궁전이라는 제한된 특수 관계에 의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던 과거의 미술이, 이제는 다양한 예술장르의 구분 없는 결합을 통해 다각적인 총체예술로 재구성되어지고 있다. 감상하고 즐기며 수집하던 기능에서 예술을 소비하며 새로운 예술적 가치관을 찾으려는 행동과 의식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대의 사회구조 속에서 창의적 예술정신과 표현양식을 찾아 자신의 조형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고민들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은 화실과 음악연습실에서 각각 창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장르들이 한데 어우러져 미적 가치를 극대화해 우리들에게 감동과 사랑을 선사해 줄 아름다운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과거 새로운 예술분야가 그러했듯이 총체예술 분야 역시 충격과 자극이 수반되어 우리의 미의식에 적잖은 혼돈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혼돈과 자극이 보편화되어지면 우리는 이러한 예술에 쉽게 적응하며 향유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2014-11-07

쿼바디스 포항

▲ 한영광 포항대 명예교수 포항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얼마 전 경주에 소재한 월성원자력발전소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 홍보관에서 원자력에너지의 필요성과 친환경적 에너지,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 지역경제 기여, 기후변화의 예방 등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필자는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대목에서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왜 경주는 최근 도시 발전을 위해 도시 이미지와 전혀 다른 위험하고 환경파괴적인 방폐장을 전 주민이 찬성해 유치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리기도 했다. 천년고도 경주는 그동안 관광산업의 침체로 지역경제의 불황이 계속 되면서 지역주민이 다른 도시로 빠져 나가 인구가 감소했다. 방폐장 유치로 기존의 월성원전과 더불어 원자력산업 연구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경주는 이것을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선정, 침체한 지역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또 울산 자동차산업의 영향을 받아 부품공장도 많이 설립돼 경제의 활력소를 찾고 있다. 현제 경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원전해체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원전해체산업센터 유치에 도전해 경쟁도시들과의 경쟁에 올인 하고 있다. 원전해체시장의 규모는 2050년에는 약 1천54조원의 엄청난 시장이지만 기술상 상당한 문제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주, 원자력산업연구의 도시 경주는 이질적이고 상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왜 모험을 하는가. 경주는 그동안 지역경제의 동력을 찾지 못해서 지역 발전의 어려움을 뼛속 깊이 느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험을 감수하는 하는 것이다.2014년도 한국외국어대 국가브랜드연구센터와 한국경제신문이 발표한 지방도시브랜드지수 조사 분석에 의하면 경주시는 전국 7위-경북 1위, 포항시는 전국 20위-경북 4위, 구미시는 경북 6위로 조사 됐다. 이 조사는 투자환경 주거환경 관광환경 종합평가 등 4개 분야로 19개 항목에 걸친 것이다. 경주시는 경북은 물론 전국적인 도시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부상했다. 이에 비하면 포항시는 투자환경 주거환경 관광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경북에 시 재정 규모가 1조원이 넘는 지자체는 포항 구미 경주 등 3개 시이다. 이들 도시 중 포항이 과연 경북 제1의 도시인가. 외형적으로는 인구 면적 등이 아직 구미를 앞지르고 있으나 산업적인 측면에서 포항은 철강 중심의 단일산업구조로 취약한 산업구조 이다. 반면에 구미는 전자, 섬유, 소재산업 등 다양한 산업구조로 균형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어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시이다.시 재정은 총예산 규모에서 올해부터 포항시는 구미시에 추월당했으며 재산세 부과 현황을 보면 2014년 구미시는 338억원, 포항시는 317억원, 경주시는 219억원의 순으로 돼 있다. 세입증가율은 2013~2014년 기준으로 구미시는 11.3%, 포항시는 7.7%로 구미시에 못 미치고 있어 해가 거듭 할수록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철강의존형 경제구조에 고착된 포항경제는 어제 오늘이 아니라 이미 포스코의 경영실적이 양호했던 2000년대부터도 이미 하향곡선을 나타냈다. 2013년 포항시 지방세 수입 2천874억 중 포스코가 납부한 세액은 236억 원으로 겨우 8.2%의 비중을 차지했는데 2009년에는 32.0%, 2012년에는 11.9%로 급감세가 뚜렷하다.포항은 경제성장 동력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포항은 지난 40여년을 철강산업 호황 덕에 경제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급성장 해 왔다. 포항은 다른 도시에 비하면 IMF 파고도 순조롭게 넘기고 리먼 브라더스 외환위기도 무난하게 넘겼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 철강의 과잉생산과 중국의 철강기술 향상에 따른 철강경기 부진으로 경제침체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위기를 못 느끼거나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외부적 요소에만 의존하려는 데 있다. 포항은 지금이라도 늦은 감은 있지만 새로운 창조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하고 적극 도전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2014-11-06

歸鄕日記 (귀향일기)

▲ 김학서 봉화군 봉성면장□수주대토(守株待兎)퇴근 후 노모(母)와 연속극을 본 후 운동장을 한 시간 가량 걷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걷기는 건강에도 이롭겠지만 나 혼자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거기에 밤하늘의 별은 덤이다.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맑고 깨끗함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가을 밤하늘은 유난히 진해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안주가 되곤 했던 별을 볼 수 있으니 이만한 즐거움도 어디 있겠는가. 걷기 덕분인지 막걸리를 자주 마시는 편인데도 몸무게는 그렇게 불어나지 않는 것 같다.그런데 요즘은 예전같이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걸을 수 없다. 걷다가 꼭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며칠 전 일이다. 여느 때처럼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싶어 발걸음을 돌려 달려가 보니 1천원짜리 3장이 달빛에 찬 이슬을 맞고 있었다. 운동도 하고 돈도 줍고 이게 바로 일거양득(一擧兩得) 도랑치고 가재잡고가 아닌가! 더군다나 깜깜한 밤중이라 보는 사람도 없으니….어제 저녁에도 한참 걷다가 달빛에 흰 것이 보여 발걸음을 돌렸지만 기대와는 달리 빈 담뱃갑이었다. 이젠 몇 번 속아서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자꾸 눈길이 가고 발길이 간다. 옛날 어느 어리석은 농부가 달리던 토끼가 자기 밭 그루터기에 걸려 죽은 것을 보고 토끼가 또 달려와 그렇게 죽을 줄 알고 쟁기를 내팽개치고 종일토록 그루터기만 지켰다고 하던데 요즘 내가 꼭 그 꼴이다. 어두운 밤이었으니 망정이지 한낮이면 어쩔 뻔했노.□추야정담(秋夜情談)해가 부쩍 짧아졌다. 오후 5시만 돼도 어둑어둑하다. 만물이 겨울 준비를 한다. 은행나무도 노란 잎을 하나 둘 떠나보내며 겨울로 갈 채비를 하고 다람쥐도 양 볼에 도토리를 가득 물고 제 굴로 드나들기 바쁘다. 들녘의 모든 것은 시들어 다 빛을 잃어 가는데 지난 늦여름에 갈아 놓은 무와 배추는 무슨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도 되는 양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타작의 흥겨움은 콤바인이 앗아간 지 오래지만 그래도 가을 햇살은 따사롭고 콩깍지 속에 있는 성질 급한 콩들은 온 밭을 콩콩 뛰어다닌다. 화단의 맨드라미, 백일홍, 봉숭아도 자취를 감추고 국화만이 홀로 하얗게 무서리를 뒤집어쓴 채 아침을 맞고 있다.짧아진 해 덕분에 들에 나간 어머니도 일찍 들어오신다. 퇴근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어머니와 TV 연속극을 본다. 어머니의 연속극관은 권선징악이 확실해야 한다. 주인공은 갖은 고초를 겪다가 나중에 잘 풀려야 하며 심청전의 `뺑덕어멈`이나 유충열전의`정한담` 같은 못된 조연이 있어야 제격이다. 회식이나 다른 약속이 있어 연속극을 못 본 저녁때 잘 다녀왔다는 인사 대신 “엄마 장보리는?”하고 물으면 “고 배라먹을 ×이(극중 연민정)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하신다. 내가 또 “비단이는?”하면 “아이고 어린 것이 핏줄을 우째 아는지”하며 내가 못 본 그날 방영된 연속극을 다 말씀해 주신다. 또 장보리의 신랑인 검사(극증 이재화)가 검사답지 못하고 너무 가벼운 것을 못 마땅해하신다. 이렇게 전편을 다 보고 어머니의 연속극관과 그런대로 일치하면 어머니의 총평은 한결같이 “이번 연속극 잘 됐다”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는가 보다. 연속극이 재미있어지려고 한다.먼 산 꼭대기에서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오는 단풍과 함께 모자의 가을밤은 TV 앞에서 그렇게 깊어간다.

2014-11-05

성취평가제와 엇박자 고입, 그리고 교피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필자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로 항상 10월을 연다. 노래를 들으면서 필자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엔 꼭 미뤄뒀던 책을 읽고, 10월의 시를 써야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엔 여행을 가야지!” 등 필자만의 행복한 10월을 그린다. 비록 계획한 것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계획만으로도 필자는 너무도 행복한 10월이다. 그 10월이 가고 벌써 11월이다. 11월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왜냐하면 고입(高入)과 대입(大入)이라는 높고도 큰 입시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희망하는 학교에 꼭 합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절대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가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데 기원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치명적인 오류가 고등학교 입시에 나타나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지금 중학교 3학년들은 성취평가제의 적용을 받는 첫 번째 학년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의 입시 제도를 그대로 두고 성취평가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라고 단언하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제도가 그렇듯 성취평가제 또한 이론상으로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도 대한민국 교육과 만나면 본질에서 크게 변질되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성취평가제의 이해를 돕는 글을 잠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 했는가`를 강조하는 성취평가제의 도입은 상대평가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점검하여 학생들이 교과별 학업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질을 개선하고 교육의 책무성을 강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독자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떤가. 겉만 보면 정말 좋은 제도다. 하지만 속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평가의 문제점은 극복되지 않았고, 학교 교육의 질 또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사교육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학교 행복지수는 최악이며, 학교 밖 청소년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수, 우, 미, 양, 가`를 `A, B, C, D, E`로만 바꾸면 우리도 교육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교육 관료들에게 따져 묻고 싶다.전기고등학교 원서를 쓰면서 필자는 이 성취평가제가 너무도 원망스럽다. 학교와 학생의 특성은 모두 무시하고 단지 `A, B, C, D, E`를 `5, 4, 3, 2, 1`점으로 환산한 다음, 그 점수로 학생을 선발한다니, 성취평가제를 왜 시행하라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대한민국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된 제도가 바로 성취평가제다.산자연중학교는 전국 단위 모집 학교라 3학년에는 서울, 경기도, 부산, 대구, 경북 등 5개 시도의 학생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원서도 5개 시도에 맞춰 써야 한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다년간 한 필자이지만 5개 시도의 입학 전형을 모두 알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해가 어려운 내용은 꼭 해당 시도 교육청에 전화를 해서 알아 둔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교육청 입시 장학사와 전화를 하면서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귀찮음 가득한 목소리에 필자는 수화기를 놓칠 뻔 했다 “얼마 전에 학부모님께 설명을 드렸는데, 그 때 같이 와서 들었으면 좋을 텐데…” 하도 어의가 없어 필자는 질문 대신 사과부터 했다. “같이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과 후 필자는 “왜 자기 시가 다른 시도의 석차를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지, 또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 등의 훈계를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또다시 사과를 했다. “몰라서 죄송합니다” 무안함이 어떤 것인지 필자는 이번 참에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절대 다른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혹 교피아(교육부(청)+마피아)에 대해 들어보신 적인 있으신지. 필자는 11월 시작과 함께 교피아를 만났다. 두려움보다 무안함에 원서를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성취평가제와 교피아, 두렵다!

2014-11-04

수수께끼를 풀어 행복할, 그대는 누구인가

▲ 임선애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세상에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많다. 수수께끼는 `어떤 사물에 대해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빗대어 말해 알아맞히는 놀이 또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복잡하고 이상하게 얽혀 그 내막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렇듯 수수께끼 작동 원리의 핵심은 답 또는 그 내막을 쉽게 맞히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데 있을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수수께끼를 푸는 인물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오이디푸스처럼 결말이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도 있고, 바리데기 공주와 칼라프 왕자처럼 끝이 행복한 이야기의 주인공도 있다. 불라국 오구대왕의 일곱째 공주였던 바리데기는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바다에 버려지지만, 죽어가는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동대산의 약수를 구하러 저승여행을 마다 않는 용감한 효녀였다. 멀고도 험한 저승의 여정에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빨래하는 할머니가 그녀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이 빨래를 다 해주면 길을 알려주마. 대신 검은 빨랫감은 희게 하고 흰 빨랫감은 검게 해야 한다”라는 문제였다. 그녀는 검은 빨래는 방망이로 두들겨 빨았고, 하얀 빨랫감은 검은 나뭇잎과 열매를 뒤섞어 검은 즙을 내서 빨아 할머니가 낸 수수께끼를 통과한다.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면 동대산 약수터로 갈 수도 없었고, 약수터 지킴이 청년 동수자를 만나 아들 셋을 낳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바리데기가 수수께끼를 푸는 일은 결국 아버지를 살리고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의미를 가지며 서사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일이었다.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여주인공 투란도트 공주를 우연히 보게 된 칼라프 왕자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무도 맞히지 못한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공주가 낸 첫 번째 수수께끼는 `어두운 밤에 무지갯빛으로 날아가는 환상, 모든 인류가 구하는 환영이다. 밤마다 다시 태어나지만 아침에는 죽는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은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르고, 빛깔은 석양같이 붉다`, 세 번째 수수께끼는 `네게 주는 얼음은 불꽃이요, 그 불꽃이 내게는 가장 차갑다. 자유를 바라면 노예가 되고, 노예가 되길 원하면 왕이 된다`였다. 왕자는 `희망`, `피`, `투란도트`라는 답을 차례대로 맞혔지만 투란도트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최후의 비방으로 칼라프는 공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맞혀보라는 문제를 내게 되고, 공주는 `사랑`이라는 답을 맞힌다. 이들이 수수께끼를 푸는 일 또한 사랑의 시작과 더 이상의 죽음 없음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며, 행복한 환희의 노래를 합창하게 만드는 일이었다.오래된 이야기 속에만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도 수수께끼 천지이다. 해를 거듭해 심각해지는 전세난은 어려운 수수께끼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전세난으로 세입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강도가 더한 전세대란이 닥칠 거라는 예보가 있다. 이는 답을 찾기 어려운 수수께끼이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 수요의 급증, 본격적인 저금리 정책에 따른 월세 전환의 선호, 짝수 해보다 전셋값이 더 뛰는 `홀수 해` 효과 등으로 전셋값 상승의 요인을 분석해 내고 있지만, 문제의 해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 이제 곧 날씨는 쌀쌀해질 것이고 형편이 마땅치 않은 세입자들은 추운 걸음으로 새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할 것이다.오래된 이야기 속의 주인공 바리데기 공주나 칼라프 왕자처럼, 지금 이 수수께끼를 풀어 행복할, 그대는 누구인가.

2014-11-03

11월에는?

▲ 김영식 시인`시몬, 나뭇잎 저버린 숲으로 가자 /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 낙엽은 버림 받고 땅위에 떨어져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되리니 /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구르몽의 시 - `낙엽`중) 11의 형상은 낙엽이 파르르 떨어지는 것 같고 혹은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같습니다. 누군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삶의 허무를 떠올리지 않겠습니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때 여드름 숭숭 난 까까머리 소년은 가을이면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럴 때면 밤 새워 수신인 없는 연애편지를 쓰곤 했지요. 학창시절, 구르몽의 낙엽을 한번쯤 읊조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가을이면 시몬은 우리 모두의 연인이었습니다. 오빠인가 하면 누이였고 선생님인가하면 누나였습니다.그때는 흑백사진이 유행했습니다. 너도나도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여러 모양으로 편집해줬는데 조개껍질이나 낙엽을 실루엣으로 깔고 그 안에 넣어주곤 했지요. 펜팔 할 때면 그 사진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의 포토샵 기능 같은 것인데 분위기가 있어 실물보다 훨씬 나아보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낙엽은 가끔씩 책갈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가을이면 단풍잎이며 은행잎, 감잎 등이 책장 사이에 피어나곤 했습니다.`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 우리들 사랑은 흘러간다 /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기욤 아폴리네르 시 `미라보다리` 중) 가을이면 가슴을 적시는 또 다른 시도 있었습니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다리`라는 시였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라보다리를 떠올리면 그 아래로 잔잔하게 청춘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미라보다리를 걸어보리라 생각했습니다. 라라, 베르테르라는 이름처럼 미라보다리는 아련해서 아팠고 아파서 아련했습니다. 누구든 미라보다리라는 시를 읽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느강가를 걸어보고 싶지 않겠습니까.“아직도 슬퍼?”, “전혀 슬프지 않아요. 당신 곁에 있게 돼 기뻐요”, “정말?”, “정말이에요. 어서 가요. 우린 여길 떠나야 해요”, “당신은 달아날 수 없어”, “아니에요. 이번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어요”, “그래 당신은 가면 안 돼”, “그래요”, “당신한테는 내가 있어. 모든 게 전혀 달라질 거야”, “네. 어서 가요” (한스 에리히 노자크의 소설 `늦어도 11월에는` 중) `늦어도 11월에는`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입니다. 전후 독일문학의 대표적 작품인 이 소설은 부(富)와 사회적 지위를 모두 갖춘 여인이 어느 날 가난한 소설가를 따라 가정을 떠난다는 줄거리입니다. 28세의 마리안네 부인이 자식과 남편을 버리면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충족되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인 것입니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가 마주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맙니다.1970~80년대, 산업화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물질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아름다웠고 꽃이 아름다웠으며 강과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아름다웠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고 사랑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지금의 인스턴트사랑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또 한 해의 가을을 맞으면서 우리가 문명에 휘둘리지 않았을 때를 생각합니다. 마음이 순결하고 삶이 순정하고 세계가 순수하던 때를 생각합니다.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되어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 인간이 물질에 종속되는 듯 보여도 물질은 결코 인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곧 11월입니다. 낙엽을 밟으며 교정을 거닐던 시몬과 미라보 다리 아래를 흘러가던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나간 연인들을 생각합니다. 쓸쓸하고 그리운 그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2014-10-31

내년부터 SOC 예비타당성조사 기준 상향조정

▲ 이동수 대구한의대 교수지난 8월29일 기획재정부는 제11차 재정관리협의회를 열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을 500억원 이상 사업에서 1천억원 이상 사업으로 축소하는 예비타당성조사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예비타당성조사제도는 도로나 철도 건설 등 500억 이상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하여 개략적인 조사를 통하여 경제성 분석, 투자 우선순위, 적정 투자시기, 재원조달 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함으로써 대형 신규사업의 신중한 착수와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정부가 이와 같이 제도개선을 논의한 이유는 예비타당성조사제도가 도입된 1999년 대비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재정규모 등이 변화하였으나 조사대상 규모는 도입 당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대상사업의 증가로 조사 기간 증가, 조사 효율성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SOC 분야만 상향하되, 경제규모 변화(약 2배 상승) 등을 감안해 총 사업이 1천억원(국고 500억원 포함) 이상으로 상향 조정된다. 이런 개편 방안이 관철되면 200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예타 신청사업 1천267건 중 188건(14.8%)이 예타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사업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건축분야, 예타 강화 필요성이 지적되는 정보화 분야 등 타 분야는 현행기준을 유지한다고 했다.또한 낙후지역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강화하기 위해 2006년 이후 SOC 사업에 대한 지역균형발전 평가비중 범위를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하였다. 2012년 제도개선 이후 현재 지역균형발전 가중치 범위는 20~30% 범위이다. 그러나 실제 예타 시 AHP 참여자들은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주어진 범위의 중간치(25%)보다 낮게 부여하고 있어 낙후지역 국회의원 및 자치단체 등은 지역균형발전 비중의 상향 조정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중치 하한선이 5% 상향 된 25%~30%로 조정하기로 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균형발전 가중치가 실질적으로 3%p 이상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이와 같은 제도의 개편은 낙후지역을 포함한 비수도권의 경우, 대형 SOC 사업 문턱이 낮아지기 때문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제도가 개편되면 재정에 대한 관리·감독 차원에서 예비타당성조사제도를 강화하는 기존 추세와 역행할 수 있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정치 논리로 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리고 지방 SOC사업을 중앙정부가 견제하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그러나 SOC 부문 1천억원 미만 사업은 전체 사업의 10% 정도 수준으로 현재의 조사대상 최저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대상 사업이 계속 증가할 것이고 예비타당성조사를 위한 전문 인력과 예산 확보에 현실적인 제약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도로 및 철도사업 등의 경우 정형화된 수요예측 방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타당성이 낮은 사업의 추진 위험은 낮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예산 가용재원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지 않더라도 일부 사업들은 부처와 예산당국에 의해 조정될 수밖에 없다.즉, 예비타당성조사 수행 능력 측면에서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조사 역량을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대규모 사업에 집중해서 조사의 품질을 제고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작은 규모의 다수 사업을 검토하여 오는 편익보다 소수의 대규모 사업에 대한 심층 검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크다고 할 수 있다.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정부의 제도 개편 안은 제한된 조사수행 역량을 대규모 재정사업에 집중해서 예산운용의 효율화에 보다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14-10-30

잠자리 통신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잠자리의 날갯짓이 가을 하늘을 더 높게 들어 올리는 10월 말이다. 산자연중학교에는 수업 전 학생들과 교사들이 과수원 길을 걷는 `과수원 길을 따라서`라는 산책 시간이 있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과수원 길을 걸으면서 교사들과 학생들은 빨간 사과보다 더 붉고 탐스러운 이야기꽃을 피운다. 학생들은 길 위에서 저절로 시인, 화가, 과학자가 된다. 얼마 전 산책 시간에 한 학생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목소리로 필자를 불렀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거기에는 이슬을 한 몸 가득 머금은 잠자리가 풀잎에 앉아 있었다. 순식간에 학생들이 필자와 잠자리 주변으로 모였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슬과 잠자리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그래서 필자는 “잠자리가 파란 하늘을 더 높이 들어 올리느라 날개에 열이 많이 난 모양이야. 그래서 그 열을 식히느라 밤새 이슬을 맞고 있었던 거고. 얘들아 하늘 한 번 봐. 정말 파랗지. 잠자리들이 날갯짓으로 만든 하늘이란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녀석들, 한 번 웃고는 잠자리 떼처럼 파란 하늘이 융단을 깐 과수원 길을 미끄러지듯 간다.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같은 길을 가면서도 필자는 왜 그 잠자리를 보지 못했는지, 부끄러웠다. 그 어떤 원망도, 미련도 없이 하늘을 나는 자세로 그대로 박제가 된 잠자리는 그 자체가 평온이었다. 자신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필자에게 잠자리는 한 수 가르쳐줬다. “평온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억지를 부리지 말로 순리에 맡기면 된다” 말의 의미를 잘 알지만, 쉽게 놓지 못하는 필자의 아둔함에 현기증이 일었다.학생들의 웃음이 남아 있는 길 위에서 필자는 과연 필자가 놓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가 떠올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성적! 요맘때 각 급 학교의 최대 관심사는 중간고사 성적이다. 많은 학생들은 점수 때문에 주눅들 것이고, 상위권 학생들은 더 나은 성적을 위해 또 학원과 과외로 혹사당할 것이다.시험! 점수! 성적! 왜 우리는 평생 이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 할 걸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또 많은 학생들이 점수의 희생양이 돼도 우리는 여전히 성적의 노예가 돼 살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 성적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많은 제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지만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야기 시키고 금세 사라지고 만다.그렇다면 성적의 덫은 누가 놓은 걸까? 아마 이 사회의 성인이라면 이 물음에 대해 자신 있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덫을 놓은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기껏 아름다운 과수원 길을 걷고 나서 필자가 교실에 들고 들어간 건 중간고사 성적이었으니, 필자처럼 모순덩어리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적이라는 말에 잿빛으로 굳어지는 학생들 보면서 필자는 다시 죄인이 되었다.하지만 계속 죄인으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성적표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모았다.“얘들아. 이제부터 새로 시험을 본다. 시험은 생각 걷기! 지금부터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의 점수에 대해서 스스로 분석 해봐. 그리고 다음 시험에 대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룰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봐. 생각을 다 정리한 사람은 한 바퀴 돌때마다 선생님한테 말해”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학생들이 10월 햇살 가득한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바퀴가 끝나면 필자에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공부 계획을 잘 못 세워 시간에 쫓기느라 집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잘 했다. 백점” 학생들의 표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햇살 가득한 운동장을 걸었다. 학생들은 분명 생각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죽이는 것은 시험이다. 필자부터 성적, 점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2014-10-28

海菊(해국)이 피었어요

▲ 김영식 시인1. 제 안에 치명의 비상(砒霜) 하나 품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대라는 이름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수평선 위로 고기잡이 불빛들이 피어나고 어떤 사랑은 벼랑 끝에서 돌아서지만 어떤 사랑은 벼랑을 건너가 꽃이 되기도 합니다. 끝내 어디론가 가야한다면 단 하나의 운명, 단 하나의 연민, 단 하나의 죄, 시든 포구의 이마 위로 달빛이 헤엄쳐오고 말더듬이 같은 아득한 분절음 속으로 걸어가면, 비로소 당신이라는 난파(難破) 곁에 내 난파 하나 오롯이 기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2. 올해도 어김없이 해국이 피었습니다. 구룡포 석병리에서 대보 대동배리까지. 해안가 벼랑 끝에 아스라이 돋을새김 된 저 꽃은 어떤 간절함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깎아지른 절벽을 붙들고 저처럼 처연히 서 있는 모습이겠습니까? 해국은 초겨울 꽃입니다. 구절초나 쑥부쟁이 등 국화과 무리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그 빛깔을 잃고 스러지는 가을의 끝에서 오히려 절정을 이룹니다. 신(神)이 맨 처음 만든 꽃이 코스모스이고 나중에 만든 꽃이 국화라고 합니다. 국화 중에서도 해국은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 아닌가 싶네요. 해국의 어린잎은 식용하며 이뇨제 방광염 등에 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지요. 기침이나 감기가 걸렸을 때 전초를 달여 먹이면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3. 귀를 대면 잔털 송송 피어난 거기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찌 파도뿐이겠습니까. 보랏빛 꽃잎 안에 바다가 오롯이 다 들어있지요. 해안가로 촤르르 헤엄쳐오는 멸치 떼며, 갯바위 위로 소풍가는 맵살고둥이며, 모래밭 위로 날아오르는 괭이부리 갈매기들이며. 그뿐이겠어요. 연등처럼 반짝이는 채낚기불빛이며, 소금기 묻은 샛바람이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별똥별도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 꽃잎 한 장 한 장은 연금술사가 제련한 보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와 바람과 햇살에 담금질한 저 브로치 같은 것을 그대의 가슴에 꽂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쓸쓸한 당신의 가을도 보석처럼 환하게 빛나겠지요.4. 옛날 어느 바닷가에 금슬 좋은 젊은 부부가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됐고 남편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났답니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딸을 데리고 갯바위 위에서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그만 높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뒤 날씨가 나빠 잠시 다른 섬에 피항해 있던 남편이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늦가을 남편은 높은 바위에 앉아 바다를 쳐다보다가 웃고 있는 꽃을 발견했답니다. 들여다보니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벼랑의 패인자국은 어쩌면 남편과 아내와 아이의 눈물자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난 꽃을 보면 전설의 애틋함이 묻어날 듯합니다.5. 당신은 그 꽃을 마침표 같다 말했고 나는 쉼표라고 했습니다. 모든 꽃들이 자신의 생을 개화로서 마치지만 그건 다음 생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생이 하나의 생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생을 위한 전초가 된다는 건 당연한 생명법칙이지요. 그러니 오늘 벼랑 끝에 피어난 저 해국을 끝이라고 하지 맙시다. 어떤 길들은 벼랑 앞에서 돌아서지만 어떤 길들은 벼랑을 건너 바다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꽃도 저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힘든 상황들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해도 해국처럼 끝끝내 절망을 이기고 꽃을 피워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칠흑 같은 절망을 건너가고 있는 당신을 오늘은 해국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2014-10-24

꾀꼬리 단풍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시험을 마치고 산자연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갓바위를 올랐다. 필자의 경험상 다른 학교 학생들은 시험을 마치면 거의가 PC방을 가거나, 아니면 시내에 가서 시험 기간 동안 미루어 두었던 여가 생활을 즐긴다. 물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라고 해서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달리 참는 법을 안다. 산자연중학교에는 절대적인 강요는 없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서로가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상이 학생이라고 해서 절대 예외는 아니다. 불통의 이 사회와는 달리 산자연중학교에는 소통 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에는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이야기 나눔 시간이 많다.하지만 이번 갓바위 산행은 필자의 주장이 좀 강하게 작용했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시간이 짧았던 탓도 있지만, 가을물 들기 시작한 자연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필자의 욕심이 조금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산행에 찬성은 했지만 학생들 반응이 좋을 리 없었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참는 방법도 알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법도 안다.산행 처음부터 고개와 땅이 수평이 되어 걷던 석현이가 말했다. “선생님, 돌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요?” 말뜻을 알기에 웃음으로 대답해 줬다. 하지만 석현이는 필자의 답을 들을 생각도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하기야 중간고사를 친다고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니 고개를 들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고개를 숙인 채로 길을 오르던 석현이를 계속 보고 있으니 석현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걷는 석현이게는 분명 돌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 발 앞에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걷는 석현이를 불렀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석현아, 고개 한 번 들어볼래”, “왜요?”, “혹 뭐가 보이니?”, “나무가 보입니다” “그래 잘 보았구나. 그럼 고개를 좀 더 높이 들어봐”, “…”, “뭐가 보이니?”, “하늘이 보입니다”, “그럼 아직도 우리가 돌만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니?”, “…. 아니요!”, “석현아, 같은 길을 가더라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돌만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돌과 나무와 하늘과 계절을 같이 볼 수도 있단다”고개 한 번 들지 못하던 석현이가 고개를 들고 스스로 씩씩거림을 씩씩함으로 바꿔 길과 나무와 하늘과 가을과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한창 단풍들기 시작한 10월 늦은 오후를 오른다. 그 모습을 보고 필자는 뒤에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귀도 들어 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릴 거야!”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더 씩씩하게 10월을 올랐다. 학생들에게는 고개를 들고 자연을 보라고 해놓고서는 정녕 고개를 들지 못한 건 필자였다. 고개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꾀꼬리단풍이 필자를 반겨 주었다. 반가운 마음에 필자는 두보의 `산행`으로 화답했다. “마차를 세워 놓고 늦은 단풍을 즐기는데(停坐愛楓林晩), 서리 맞은 단풍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그렇게 산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중턱에 도달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세환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선생님, 고양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바로 답을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재성이가 말했다. “세환아, 너는 왜 여기 있니?” 세환이는 재성이의 물음에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재성이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왜 여기 있니?” 재성이가 웃으며 답을 한다. 필자는 어떤 답이 나올지 정말 궁금했다.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 그 답을 듣는 순간 필자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여러 가지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한 뭔가 그럴싸한 대답을 만들고 있던 필자는 너무도 부끄러웠다. 과연 여러분이라면 뭐라고 대답 했을지? 역시 학생들은 어른들의 스승이다. 묻는다, “여러분은 왜 거기에 있는가?”

2014-10-21

창의적인 예술공간 `레지던시`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며칠 전 후배로부터 특별한 전시가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시장을 찾았다. 여느 전시와는 다른 형태로 진행된 이 전시는 작가들이 일정기간 레지던스를 통해 작업한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미술과 음악을 함께 콜로보레이션 한 작품은 기존 우리가 일고 있던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모두 마친 후 후배와 차를 한잔 마시며 창의적인 예술영역의 확장과 발전에 비해 아직까지 획일화된 운영형태의 구태의연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입주 작가 공모를 통해 원하던 레지던스에 참여했지만, 지나치게 짧은 입주기간과 무리한 결과물 요구로 인해 도리어 창의적 발상과 작업에 마이너스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욕구로 예술의 발전을 가져가야 하는 예술창작스튜디오가 예술가의 끼를 스스로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여겨진다.`레지던시(Residency)`란 예술가들에게 일정 작업공간을 제공하며 일정기간 생활하게 하는데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작가들 간에 소통, 교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창작 의욕을 환기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들의 공동체재와 지원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고 예술가들에 대한 창작 지원 방안에 대한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지원 제도를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예술창작촌 (Arists village)` 또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Arist in Residence)` 등의 이름으로 활성화돼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창작스튜디오(Creative Studio)`라는 이름으로 전국 50여개의 크고 작은 레지던스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설립, 운영 주체와 설립 취지, 입주 작가들의 성향에 따른 작업 공간과 시설 뿐 아니라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를 기획, 운영하는 전문가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의 예술창작지원 방식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300여개에 이르는 전 세계의 레지던스 중 뉴욕의 명물로 유명한 PS1미술관은 시(市) 정부가 롱아일랜드에 있던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작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내 주면서 시작된 레지던스이다. 뉴욕의 길거리 작가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키워낸 이곳은 건물 외관 전체가 낙서 같은 그림 `그래피티`로 뒤덮여 있을 정도로 자유로운 공간이다. 실험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PS1컨템포러리아트센터를 비롯해 여름 주말마다 열리는 라이브콘서트와 맥주파티에는 유료관람객들이 줄을 잇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의 성공적인 예술창작 스튜디오는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상호간의 지속적인 협업과 커뮤니티 형성에 중점을 둠으로써 예술가와 지역, 시민의 소통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 초점이 예술작업 공간의 공급에만 집중되고 있으며, 단기적인 작가 입주 지원과 일회성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치중함으로써 예술가와 지역민의 소통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창작의욕을 북돋는 데에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며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국내외의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과 소통함으로써 전통적인 역할에서 확장하여 교류공간으로서 소통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작스튜디오의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작가의 작업공간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과의 문화적 소비 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운영되어져야 할 것이다. 획일화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서 지역적 특색을 가미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야 하며,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나친 성과주의 형식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제 대구에서도 시작단계에 머물고 있는 레지던스가 새로운 지역문화를 살찌우는 활력소가 됐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2014-10-17

민원(民願)이 민원(民怨)이 되지 않기를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가을이 주는 선물이 실로 놀랍다. 가을은 우리에게 매일 `아침의 이슬, 점심의 청명한 하늘, 밤의 영롱한 별`이라는 세 가지 선물을 준다. 이슬과 하늘, 하늘과 별, 별과 이슬! 이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과 이야기는 그 자체가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만하다. 우리가 굳이 먼 데 여행을 가지 않아도 가을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매일 우주를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풍성하고 눈부신 가을이 고맙다.소풍과 운동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수식어는 뭘까? 여름 소풍, 겨울 운동회는 뭔가 낯설다. 그러면 봄은 어떨까? 봄 소풍, 좋다. 봄 운동회?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필자는 봄 운동회보다 가을 운동회가 훨씬 더 정겹다.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요즘 필자는 한 시간 남짓 출근길에 결근에 대한 수많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필자에겐 가을이 보내는 유혹에 빠질 용기가 없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필자는 매일 메모를 한다, “가을 소풍 갑시다!”라고. 그래서 필자에겐 매일 출근길이 가을 소풍이다.`가을 소풍` 못지않게 가을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게 `가을 운동회`다. 예전엔 가족 잔치였던 가을 운동회. 손수 그린 만국기 아래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가을을 살찌우던 그 운동회가 필자는 몹시 그립다. 가을 그늘에 온 가족인 둘러앉아 먹던 투박한 김밥은 지금의 세련된 김밥과는 비교도 안된다. 학교의 많은 행사를 취소하더라도 지역민, 학부모, 학생, 교사, 그리고 계절이 하나 되는 그 예전의 가을 운동회만큼은 꼭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 그날만큼은 회사도 잠시 쉬고 모든 부모들이 반드시 참여하여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을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가을 운동회 공휴일을 만들어서라도 말이다.이렇게 말하면 지금도 운동회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이 형식적인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학부모 대표 몇 명이 학부모 회비로 거둔 돈으로 영혼 없는 도시락과 간식을 배달시켜 주고는 본부석 내빈용 자리에 앉아 자신의 아이만 찾는다. 학생들은 마지못해 교사들이 정한 몇 몇 경기에 억지로 참여해 시간만 때운다. 교사들은 학생 눈치, 학부모 눈치, 관리자 눈치 보느라 바쁘다. 정말 모두가 피곤한 하루다.물론 모든 학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살린 운동회다운 운동회를 하는 학교들도 많다. 10월 3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특별한 운동회가 열렸다. 가족운동회! 서울, 경기, 대전, 울산, 부산, 창원 등 전국에 있는 학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명절날 모처럼 만난 가족들처럼 모두가 즐거웠다.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운 것이 분명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들이 만들어 가는 웃음 가득한 이야기를 가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하늘에다 옮겨 놓았다. 그 이야기들은 별이 되었다.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밤하늘에 유독 별이 많은 이유다.그런데 운동회 내내 학부모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 이유가 교육 불평등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말 몸들 바를 몰랐다. 운동회가 끝나고 학부모 총회가 있을 거라고 것과 그 주제가 `학부모 권리 찾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필자가 교사라는 것이 너무도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필자의 무능함과 교육청의 불통에 화가 났다. 중학생이면서 교과서마저 직접 사야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불평등을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간절히 바라는 데, 그것도 정당한 것을 간절히 바라는 데도 이뤄지지 않으면 그 바람은 원망으로 변한다. 원망은 바람을 기다리는 들불과 같아서 바람만 만나면 그 힘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성군(聖君)들은 민원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귀와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놓고 그 아무리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필자는 너무 궁금하다. 경북교육청은 교육 약자들의 목소리가 들기나 하는지. 이 좋은 가을날 민원(民願)이 민원(民怨)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2014-10-14

할머니, 그 오래된 미래

▲ 김영식 시인할머니들이 왁자지껄하다. 주변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꺄르르 웃으며 커피와 팥빙수를 먹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분위기다. 언뜻 봐도 일흔은 다들 넘어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실내에서 분명 이색적인 풍경임엔 틀림없다. 이른바 고령화시대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는데 한국은 2000년에 진입을 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그 속도가 급격하게 진행됐다고 하니 새로운 사회현상이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되고 평균적인 생활수준과 주변 생활환경이 개선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거리에는 할머니들이 넘쳐난다.아메리카 대륙의 라코타 인디언들은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할머니들에게 지혜를 구한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들이 다음 세대를 바르게 인도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설화에는 마고할미가 있다. 강, 바다, 섬 등을 만들었다는 마고할미는 새의 발톱처럼 긴 손톱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고 한다. 삶의 상처를 위로해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기를 점지하는 일과 출산 및 육아를 관장한다는 삼신할미도 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할머니들은 생명과 지혜, 치유의 상징이었다.어릴 때 나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서른에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된 할머니는 장남인 나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할머니와 건넛방에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함께 보냈다. 할머니의 영역은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엄마로부터 야단을 맞거나 할 때는 그 너른 품 뒤에 숨으면 무난하게 넘어가곤 했다. 요구사항이 있을 때도 할머니를 통하면 대개 해결이 되었다.할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줬다. 할아버지와 만났던 이야기, 미역을 팔기 위해 산을 몇 개나 넘었던 얘기, 부엉이가 울던 서낭당 얘기 등.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지방을 밟지 마라`, `베개를 타 넘지 마라` 등의 금기사항은 물론이고 싸리 빗자루 예쁘게 매는 법, 떫은 감 잘 삭히는 방법도 가르쳐 줬다. 과메기가 어떻게 쫄깃쫄깃 익어 가는지, 세 물때 즈음엔 왜 오징어가 잘 잡히는지도 설명해줬다. 할머니는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었다.`수상한 그녀`는 할머니를 소재로 히트한 영화다. 어느 날 `청춘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을 찍다 스무 살 꽃 처녀가 된 칠순 할머니의 이야기다. 손자뻘 나이의 청년에게 구애를 받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하지만 그녀는 끝내 늙은 모습의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젊음과 늙음, 현 세대와 지나간 세대의 시간을 오가면서 가족의 중요성과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한 영화이다.북유럽신화에 `미미르의 샘`이 나온다. 세계수(世界樹)인 이그드라질의 뿌리 밑에 있다고 하는 이 샘은 지혜의 샘이다. 나무의 소유자인 미미르는 날마다 개라르호른이라는 뿔잔으로 샘물을 마셔 지혜로워졌다고 한다. 할머니는 지혜의 샘을 가진 큰 나무다.내가 어릴 때인 60~70년대만 해도 3대(代)가 함께 사는 것은 보통이었고 어떤 집은 4대가 모여살기도 했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젊은 세대들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기를 거부한다. 할머니들도 더 이상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자식들과 살기를 꺼려한다. 할머니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는 할머니를 잃어버린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신의 가치는 사라지고 물질이 그 자리를 대신해버린 것이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지혜의 샘물 한 바가지 퍼주던 할머니가 그립다.

2014-10-13

고희(古稀)보다 종심(從心)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중 `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등 `꽃보다`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꽃보다`시리즈는 꽃의 비교 대상인 누나, 할배, 청춘이 세계 여행을 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극화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닌 지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이야기도 많고, 그 이야기를 통해 제작진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크다. 꽃보다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물론 연예인들이다, 그것도 시청자들이 다 아는, 직업상 분초를 다투는 그들이 일상을 벗어던지고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허덕이는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마 제작진들도 이것을 노렸는지 모른다. 일상을 벗어던질 수 있는 용기와 새로운 곳에 가서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여유가 꽃보다 아름다워 제목을 `꽃보다`로 정했다는 생각이 든다.`꽃보다`시리즈 중 필자는 `꽃보다 할배`에 더 많은 애정이 간다. 물론 방송을 다 본 것은 아니다. 귀 동냥, 눈 동냥으로 잠깐 보고 들은 것이 전부다. 평균 연령이 77세인 원로 배우들이 대만, 유럽 등지에서 배낭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자연스레 필자의 가친(家親)을 생각했다.필자의 가친 또한 여행을 누구보다 좋아하신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좋아하시는 것 대부분을 포기하시고 평생 땅만 일구셨다. 그래서 땅의 달인이 되셨다. 책상 앞에만 있는 필자는 아무리 해도 그 그림자조차 따라 갈 수 없다. 그래서 필자에겐 더 없이 높고 어려우신 분이다. 죄스럽지만 필자는 여태껏 감사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다.필자에게 이 시대의 아버지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필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외강내유(外剛內柔)를 들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시는, 아니 식구들 걱정할까봐 못 하시는, 그래서 어려울 때마다 더 강해지시는 아버지! 그 동안의 삶을 잘 말해 주는 온 몸에 문신처럼 돋아난 힘줄! 이젠 그 힘줄에 대한 보상을 받으실 때도 됐지만, 보상은커녕 장성한 자식 걱정에 더 큰 힘줄을 새기시는 아버지! 필자는 평생 죄인이다. 그 아버지께서 고희를 맞으셨다. 고희(古稀)는 `드문 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뜻은 대한민국의 평균 수명이 여든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필자에겐 남다르다. 그래서 고희연 등 뭔가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싶어 여러 가지를 계획했다가 “모두가 어려운 시점에 가당치 않다!”라는 큰 가르침에 필자는 마음을 크게 숙였다.70세를 이르는 말로는 고희(古稀), 종심(從心), 칠순 등이 있다. 이 중 고희(古稀)는 두보의 7언 율시인 곡강(曲江)이라는 시 함련에 나오는 말이다. `人生七十古稀 (칠십 해 인생은 예부터 드문 일이다)` 또 종심(從心)은 공자의 논어(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온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칠십이종심소유 불유구 -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그런데 70세를 기념하는 말로 고희연은 있어도 종심연이라는 말은 드물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70세의 의미는 두보가 공자의 생각을 앞질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평균 수명이 지금과 같지 않을 때의 말이고, 지금은 고희보다 종심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주변을 생각하시어 칠순 잔치를 물리신 가친의 뜻을 보면 말이다.종심의 의미를 좀 더 새겨 보면 `종심`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친의 칠순을 맞아 필자는 이 종심이야말로 모든 것이 제멋대로인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참 정신이라 생각이 들었다. 종심의 의미를 따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종심(從心)을 맞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2014-10-07

근자열(近者說) 원자래(遠者來)

▲ 정석수 구미종합사회복지관장·신부며칠 전 한 주간 몽골을 다녀왔다. 겨울을 앞둔 시기라 푸른 대초원은 볼 수 없었으나 눈이 한 번 내린 늦가을의 정취를 카메라에 담고 왔다. 마침 EBS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푸른 초원에 말들이 뛰노는 모습은 반갑고 갈 수 없었던 지역까지 볼 수 있어서 몽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고층 빌딩 숲으로 가꿔지는 울란바토르도시와는 달리 변두리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그 빈민들의 동네에서 수녀님들은 맡은 소임에 따라 유치원 두 곳과 초등학교 한 곳을 운영하며 몽골의 미래 꿈나무를 양성하고 있었다. 캄보디아를 방문하였을 때, 지뢰로 손과 발을 잃은 아이들의 학교에서 마음 아팠던 기억이 겹쳐지며 어떤 상황에서든 그래도 교육은 희망임을 발견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무리는 보지 못했으나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짧은 연극이지만 단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모습은 신선하게 와 닿았다.오노레 드 발자크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했다. 변화가 없을 것 같은 가난한 환경, 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변화로 큰 변화의 시작은 싹트는 법이다.예수님은 누구나 만나셨지만 당신을 만나는 가난한 이들, 병자와 소외받는 이들에게서 시작했고 하느님 나라에로 인도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만남의 장소는 화려한 도시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변두리요 경계지역이었다. 그처럼 수녀님들도 도시의 변두리요 경계지역에서 만남의 장이요 변화의 장을 펼치고 있었다. 몽골 사회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체재로 변화된 것이 이십 여 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 후보자가 피살 되는 극한의 혼란한 모습까지 있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고 했던 어느 재벌의 총수처럼 사기의 화식열전에도 변화의 시기가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능률적으로 생업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고용하는 자를 잘 쓰고 때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줄 안다” 한비자는 “사물에 위험한 징조가 보이면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결단을 내려야 할 위치에 있는 이에게는 시의 적절한 결단을 내리는 행위가 중요하다.공자는 “진실로 자기의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면 정치에 종사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자기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처신이 바르지 못한 위정자는 결국 불신과 반발을 사게 마련이기에 처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세월호 유족과 함께 하였던 어느 국회의원의 행위를 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흐려지게 된다. 특권과 반칙을 없애고자 애쓰는 노력이 헛물켜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초나라의 대부로 대외관계에서 적극적인 활약을 한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질문을 하였을 때, 공자의 답은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고 했다. 가까이 있는 이에게서부터 선정을 베풀어 즐겁게 할 때, 먼 곳의 이들이 찾아오듯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호트프리트 단네일스(Godfried Danneels) 추기경은 희망과 기도에서 예수님의 공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세례에서 이미 특별한 왕좌의 길을 뜻하는 섬김의 길을 가도록 선택받았는데, 몸을 굽혀 요르단 강물 아래로 잠수하심으로써 어깨를 세상 아래로 낮추셨다고 했다. 이렇게 낮아짐으로써 타인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으로써 완성하신 길을 통하여 잠시의 슬픔을 넘어 부활의 기쁨, 새로운 길이요 참 생명을 알렸다. 자신이 살려고 모르쇠로 진실을 흐려놓을 것이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처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무너지는 신뢰를 세우는 길이 잠시의 아픔을 넘어 원하는 것을 얻는 원자래(遠者來)일 것이다.

2014-10-03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기괴할까?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현대인들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을 오늘날 세계 미술계는`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라고 부른다. 정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린다는 행위의 개념을 모두 무시하고 그저 자극적이고 기괴한 형상과 흔적만을 만들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문과 고민만을 만들어 주고 있다. 현대미술이 전시되고 있는 미술관이나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가면 나 빼고는 모두들 현대미술에 대해서 이해하고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무지를 자책하며 서둘러 전시장을 빠져 나온 경험들이 현대인들을 미술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미술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는 필자 역시 기괴한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게 되면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며,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경우를 흔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을 보는 일반 관객들 대다수는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서 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처럼 복잡함과 혼돈스러움이 현대미술의 진정한 메시지인지도 모른다.이처럼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기괴한가?`라는 고민은 비단 우리들만의 문제이며, 무지의 결과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전 대구미술관에서 마련된 워크숍에서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수석편집장인 리차드 바인은 이러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고민을 진지하고 해학적으로 풀어 줬다. `아트인 아메리카`는 미술전문 잡지로서 현대미술의 중심인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이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겸 평론가가 바라보는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술에 대한 고민과 지엽적인 시각의 한계를 극복해주는데 충분한 해설과 자극이 됐다고 본다. 라차드가 바라보는 미술과 화가는 중세시대 미술이 가지는 종속적 의미와 종교적 가치에서 근대산업혁명 이후 신흥 상공인들에 의해 새롭게 변화 되어진 미술에 대한 가치관과 이후 달라진 예술가의 위치와 가치 등 복합적으로 형성되어지는 시대적 변화들을 다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인들에게 점점 자극적 의미와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이러한 미술은 진정 우리시대가 고민해야 할 인간 본질의 삶과 그 가치관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19세기 사실주의 대표적인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이라는 작품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 돼 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이 작품이 처음 그려졌을 때만 해도 관객들은 엄청난 충격과 혐오감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오늘날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은 이 작품을 대하며 더 이상 충격과 자극을 받지를 못한다. 여느 고전작품들 감상하듯 자연스럽게 감상을 이어 간다. 하지만 쿠르베의 작품 앞에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한다면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게 될까? 극사실로 묘사된 그림과 인체의 은밀한 부분을 직접 보여주는 차이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날 것이다. 미술관에 박제된 작품에서 받는 감동과 자극은 이제 보편화 되어져 버렸지만 여성의 성기가 가지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호기심을 눈앞에서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또 다른 쾌락과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건 아니 퍼포먼스는 얼마 전 오르세 미술관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며, 현재 유투브를 통해 확인 해 볼 수도 있다. 현대미술은 왜 이렇게 기괴한 걸까? 현대작가들은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과연 현대미술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의구심만 점점 쌓여간다.

2014-10-01

쌀 190㎏ - 십시일반

▲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사“폐가 안 된다면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글쎄요. 요일별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회성 봉사자들을 받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참 봉사의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 학생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교 학생들은 단순히 봉사시간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과는 다릅니다. 매주 친환경봉사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정중히 부탁드립니다”2014년 9월11일 목요일 강원도 원주 갈거리사랑촌 십시일반 사무실의 모습이다. 본교 특성화 교과 중 하나인 국내 이동 수업을 위해 필자는 8월에 이어 두 번째로 원주를 방문했다. 비록 교육청으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체험학습 전 사전답사를 두 번 실시하라는 교육청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기꺼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십시일반은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로 하루에 1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점심을 해결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극빈 독거노인, 노숙자, 장애인 등이다. 십시일반은 전적으로 후원과 기부에 의해 운영되며, 식당 문을 연 후 십 수 년 동안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봉사자들의 힘이라고 십시일반 사무국장은 말했다.비록 한 끼 봉사이지만 학생들이 십시일반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봉사의 참 의미는 물론 나눔의 힘을 알 수 있을 듯해서 꼭 학생들에게 봉사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영혼 없는 일회성 봉사자들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은 십시일반 사무국에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국내 이동 수업의 취지와 본교 학생들에 대해 몇 번이고 설명을 했다.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던 십시일반 사무국에서도 `생명·사랑·나눔`의 특성화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본교 교육 취지를 이해 줬으며, 두 번째 방문 때는 봉사활동을 허락해줬다.“중학생들은 받지 않는데,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형식적인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허락하겠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이라 학생들에게 특별히 말과 행동에 조심하도록 선생님께서 지도주세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꺼이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식당 앞에 있는 옷들을 보셨습니까. 저희는 그 옷들을 팔아 십시일반 운영 경비와 학생들 장학금으로 쓰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집에서 안 입는 옷이 있으면 기부해주시면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학교에 널리 홍보하겠습니다. 혹 다른 필요품은 없으십니까”, “십시일반은 정부 지원 없이 순수하게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게 많죠. 가장 필요로 한 것은 쌀과 부식, 그리고 주방 용품들입니다”“정부 지원 없이”라는 말이 필자에게 너무도 크게 들렸다. 중학교는 분명 의무 교육 대상이지만 산자연중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못 받고 있다. 그러기에 납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들은 남들 다 받는 세금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급식비커녕 교과서조차 학부모들이 직접 사야할 판이니 이러고도 대한민국을 복지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십시일반의 소식을 학부모들에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옷가지는 물론 과일, 생활용품 등 후원 물품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 흐뭇한 것은 쌀. 미처 쌀을 사지 못한 학부모들은 손수 집에서 먹던 쌀을 곱게 포장해서 가져다 주셨다. 의무 교육 대상이지만 의무 교육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산자연중학교 교육공동체가 모은 쌀 190㎏! 2014년 9월22일 06시30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4박5일 간의 강원도 국내 이동 수업을 떠났다.

201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