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후배로부터 특별한 전시가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전시장을 찾았다. 여느 전시와는 다른 형태로 진행된 이 전시는 작가들이 일정기간 레지던스를 통해 작업한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미술과 음악을 함께 콜로보레이션 한 작품은 기존 우리가 일고 있던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모두 마친 후 후배와 차를 한잔 마시며 창의적인 예술영역의 확장과 발전에 비해 아직까지 획일화된 운영형태의 구태의연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입주 작가 공모를 통해 원하던 레지던스에 참여했지만, 지나치게 짧은 입주기간과 무리한 결과물 요구로 인해 도리어 창의적 발상과 작업에 마이너스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욕구로 예술의 발전을 가져가야 하는 예술창작스튜디오가 예술가의 끼를 스스로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여겨진다.
`레지던시(Residency)`란 예술가들에게 일정 작업공간을 제공하며 일정기간 생활하게 하는데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작가들 간에 소통, 교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창작 의욕을 환기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들의 공동체재와 지원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고 예술가들에 대한 창작 지원 방안에 대한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지원 제도를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예술창작촌 (Arists village)` 또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Arist in Residence)` 등의 이름으로 활성화돼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창작스튜디오(Creative Studio)`라는 이름으로 전국 50여개의 크고 작은 레지던스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설립, 운영 주체와 설립 취지, 입주 작가들의 성향에 따른 작업 공간과 시설 뿐 아니라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를 기획, 운영하는 전문가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의 예술창작지원 방식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300여개에 이르는 전 세계의 레지던스 중 뉴욕의 명물로 유명한 PS1미술관은 시(市) 정부가 롱아일랜드에 있던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작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내 주면서 시작된 레지던스이다. 뉴욕의 길거리 작가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키워낸 이곳은 건물 외관 전체가 낙서 같은 그림 `그래피티`로 뒤덮여 있을 정도로 자유로운 공간이다. 실험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PS1컨템포러리아트센터를 비롯해 여름 주말마다 열리는 라이브콘서트와 맥주파티에는 유료관람객들이 줄을 잇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외국의 성공적인 예술창작 스튜디오는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상호간의 지속적인 협업과 커뮤니티 형성에 중점을 둠으로써 예술가와 지역, 시민의 소통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 초점이 예술작업 공간의 공급에만 집중되고 있으며, 단기적인 작가 입주 지원과 일회성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치중함으로써 예술가와 지역민의 소통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창작의욕을 북돋는 데에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며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국내외의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과 소통함으로써 전통적인 역할에서 확장하여 교류공간으로서 소통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작스튜디오의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작가의 작업공간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과의 문화적 소비 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운영되어져야 할 것이다. 획일화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서 지역적 특색을 가미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야 하며,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나친 성과주의 형식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제 대구에서도 시작단계에 머물고 있는 레지던스가 새로운 지역문화를 살찌우는 활력소가 됐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