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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 단풍

등록일 2014-10-21 02:01 게재일 2014-10-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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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시험을 마치고 산자연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갓바위를 올랐다. 필자의 경험상 다른 학교 학생들은 시험을 마치면 거의가 PC방을 가거나, 아니면 시내에 가서 시험 기간 동안 미루어 두었던 여가 생활을 즐긴다. 물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라고 해서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달리 참는 법을 안다.

산자연중학교에는 절대적인 강요는 없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서로가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상이 학생이라고 해서 절대 예외는 아니다. 불통의 이 사회와는 달리 산자연중학교에는 소통 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에는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이야기 나눔 시간이 많다.

하지만 이번 갓바위 산행은 필자의 주장이 좀 강하게 작용했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할 시간이 짧았던 탓도 있지만, 가을물 들기 시작한 자연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필자의 욕심이 조금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산행에 찬성은 했지만 학생들 반응이 좋을 리 없었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참는 방법도 알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방법도 안다.

산행 처음부터 고개와 땅이 수평이 되어 걷던 석현이가 말했다. “선생님, 돌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요?” 말뜻을 알기에 웃음으로 대답해 줬다. 하지만 석현이는 필자의 답을 들을 생각도 않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하기야 중간고사를 친다고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니 고개를 들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길을 오르던 석현이를 계속 보고 있으니 석현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걷는 석현이게는 분명 돌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 발 앞에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걷는 석현이를 불렀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석현아, 고개 한 번 들어볼래”, “왜요?”, “혹 뭐가 보이니?”, “나무가 보입니다” “그래 잘 보았구나. 그럼 고개를 좀 더 높이 들어봐”, “…”, “뭐가 보이니?”, “하늘이 보입니다”, “그럼 아직도 우리가 돌만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니?”, “…. 아니요!”, “석현아, 같은 길을 가더라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돌만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돌과 나무와 하늘과 계절을 같이 볼 수도 있단다”

고개 한 번 들지 못하던 석현이가 고개를 들고 스스로 씩씩거림을 씩씩함으로 바꿔 길과 나무와 하늘과 가을과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한창 단풍들기 시작한 10월 늦은 오후를 오른다. 그 모습을 보고 필자는 뒤에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귀도 들어 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릴 거야!”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더 씩씩하게 10월을 올랐다. 학생들에게는 고개를 들고 자연을 보라고 해놓고서는 정녕 고개를 들지 못한 건 필자였다. 고개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꾀꼬리단풍이 필자를 반겨 주었다. 반가운 마음에 필자는 두보의 `산행`으로 화답했다. “마차를 세워 놓고 늦은 단풍을 즐기는데(停坐愛楓林晩), 서리 맞은 단풍이 이월의 꽃보다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

그렇게 산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중턱에 도달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세환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선생님, 고양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바로 답을 못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재성이가 말했다. “세환아, 너는 왜 여기 있니?” 세환이는 재성이의 물음에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재성이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왜 여기 있니?” 재성이가 웃으며 답을 한다. 필자는 어떤 답이 나올지 정말 궁금했다.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 그 답을 듣는 순간 필자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여러 가지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한 뭔가 그럴싸한 대답을 만들고 있던 필자는 너무도 부끄러웠다. 과연 여러분이라면 뭐라고 대답 했을지? 역시 학생들은 어른들의 스승이다. 묻는다, “여러분은 왜 거기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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