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로 항상 10월을 연다. 노래를 들으면서 필자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엔 꼭 미뤄뒀던 책을 읽고, 10월의 시를 써야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엔 여행을 가야지!” 등 필자만의 행복한 10월을 그린다. 비록 계획한 것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계획만으로도 필자는 너무도 행복한 10월이다.
그 10월이 가고 벌써 11월이다. 11월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왜냐하면 고입(高入)과 대입(大入)이라는 높고도 큰 입시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희망하는 학교에 꼭 합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절대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가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데 기원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치명적인 오류가 고등학교 입시에 나타나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지금 중학교 3학년들은 성취평가제의 적용을 받는 첫 번째 학년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의 입시 제도를 그대로 두고 성취평가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라고 단언하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제도가 그렇듯 성취평가제 또한 이론상으로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도 대한민국 교육과 만나면 본질에서 크게 변질되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성취평가제의 이해를 돕는 글을 잠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 했는가`를 강조하는 성취평가제의 도입은 상대평가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점검하여 학생들이 교과별 학업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질을 개선하고 교육의 책무성을 강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독자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떤가. 겉만 보면 정말 좋은 제도다. 하지만 속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평가의 문제점은 극복되지 않았고, 학교 교육의 질 또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사교육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학교 행복지수는 최악이며, 학교 밖 청소년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수, 우, 미, 양, 가`를 `A, B, C, D, E`로만 바꾸면 우리도 교육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교육 관료들에게 따져 묻고 싶다.
전기고등학교 원서를 쓰면서 필자는 이 성취평가제가 너무도 원망스럽다. 학교와 학생의 특성은 모두 무시하고 단지 `A, B, C, D, E`를 `5, 4, 3, 2, 1`점으로 환산한 다음, 그 점수로 학생을 선발한다니, 성취평가제를 왜 시행하라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대한민국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된 제도가 바로 성취평가제다.
산자연중학교는 전국 단위 모집 학교라 3학년에는 서울, 경기도, 부산, 대구, 경북 등 5개 시도의 학생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원서도 5개 시도에 맞춰 써야 한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다년간 한 필자이지만 5개 시도의 입학 전형을 모두 알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해가 어려운 내용은 꼭 해당 시도 교육청에 전화를 해서 알아 둔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교육청 입시 장학사와 전화를 하면서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귀찮음 가득한 목소리에 필자는 수화기를 놓칠 뻔 했다 “얼마 전에 학부모님께 설명을 드렸는데, 그 때 같이 와서 들었으면 좋을 텐데…” 하도 어의가 없어 필자는 질문 대신 사과부터 했다. “같이 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과 후 필자는 “왜 자기 시가 다른 시도의 석차를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지, 또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 등의 훈계를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또다시 사과를 했다. “몰라서 죄송합니다” 무안함이 어떤 것인지 필자는 이번 참에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절대 다른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혹 교피아(교육부(청)+마피아)에 대해 들어보신 적인 있으신지. 필자는 11월 시작과 함께 교피아를 만났다. 두려움보다 무안함에 원서를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성취평가제와 교피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