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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통신

등록일 2014-10-28 02:01 게재일 2014-10-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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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잠자리의 날갯짓이 가을 하늘을 더 높게 들어 올리는 10월 말이다. 산자연중학교에는 수업 전 학생들과 교사들이 과수원 길을 걷는 `과수원 길을 따라서`라는 산책 시간이 있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과수원 길을 걸으면서 교사들과 학생들은 빨간 사과보다 더 붉고 탐스러운 이야기꽃을 피운다. 학생들은 길 위에서 저절로 시인, 화가, 과학자가 된다.

얼마 전 산책 시간에 한 학생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목소리로 필자를 불렀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거기에는 이슬을 한 몸 가득 머금은 잠자리가 풀잎에 앉아 있었다. 순식간에 학생들이 필자와 잠자리 주변으로 모였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슬과 잠자리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잠자리가 파란 하늘을 더 높이 들어 올리느라 날개에 열이 많이 난 모양이야. 그래서 그 열을 식히느라 밤새 이슬을 맞고 있었던 거고. 얘들아 하늘 한 번 봐. 정말 파랗지. 잠자리들이 날갯짓으로 만든 하늘이란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녀석들, 한 번 웃고는 잠자리 떼처럼 파란 하늘이 융단을 깐 과수원 길을 미끄러지듯 간다.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같은 길을 가면서도 필자는 왜 그 잠자리를 보지 못했는지, 부끄러웠다. 그 어떤 원망도, 미련도 없이 하늘을 나는 자세로 그대로 박제가 된 잠자리는 그 자체가 평온이었다. 자신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필자에게 잠자리는 한 수 가르쳐줬다. “평온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억지를 부리지 말로 순리에 맡기면 된다” 말의 의미를 잘 알지만, 쉽게 놓지 못하는 필자의 아둔함에 현기증이 일었다.

학생들의 웃음이 남아 있는 길 위에서 필자는 과연 필자가 놓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가 떠올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성적! 요맘때 각 급 학교의 최대 관심사는 중간고사 성적이다. 많은 학생들은 점수 때문에 주눅들 것이고, 상위권 학생들은 더 나은 성적을 위해 또 학원과 과외로 혹사당할 것이다.

시험! 점수! 성적! 왜 우리는 평생 이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 할 걸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또 많은 학생들이 점수의 희생양이 돼도 우리는 여전히 성적의 노예가 돼 살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 성적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많은 제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지만 오히려 더 큰 혼란만 야기 시키고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성적의 덫은 누가 놓은 걸까? 아마 이 사회의 성인이라면 이 물음에 대해 자신 있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덫을 놓은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기껏 아름다운 과수원 길을 걷고 나서 필자가 교실에 들고 들어간 건 중간고사 성적이었으니, 필자처럼 모순덩어리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적이라는 말에 잿빛으로 굳어지는 학생들 보면서 필자는 다시 죄인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죄인으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성적표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모았다.

“얘들아. 이제부터 새로 시험을 본다. 시험은 생각 걷기! 지금부터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의 점수에 대해서 스스로 분석 해봐. 그리고 다음 시험에 대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룰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봐. 생각을 다 정리한 사람은 한 바퀴 돌때마다 선생님한테 말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학생들이 10월 햇살 가득한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바퀴가 끝나면 필자에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공부 계획을 잘 못 세워 시간에 쫓기느라 집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잘 했다. 백점” 학생들의 표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햇살 가득한 운동장을 걸었다. 학생들은 분명 생각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죽이는 것은 시험이다. 필자부터 성적, 점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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