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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190㎏ - 십시일반

등록일 2014-09-30 02:01 게재일 2014-09-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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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사

“폐가 안 된다면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글쎄요. 요일별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회성 봉사자들을 받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참 봉사의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 학생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본교 학생들은 단순히 봉사시간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과는 다릅니다. 매주 친환경봉사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2014년 9월11일 목요일 강원도 원주 갈거리사랑촌 십시일반 사무실의 모습이다. 본교 특성화 교과 중 하나인 국내 이동 수업을 위해 필자는 8월에 이어 두 번째로 원주를 방문했다. 비록 교육청으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체험학습 전 사전답사를 두 번 실시하라는 교육청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기꺼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

십시일반은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로 하루에 1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점심을 해결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극빈 독거노인, 노숙자, 장애인 등이다. 십시일반은 전적으로 후원과 기부에 의해 운영되며, 식당 문을 연 후 십 수 년 동안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봉사자들의 힘이라고 십시일반 사무국장은 말했다.

비록 한 끼 봉사이지만 학생들이 십시일반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면, 봉사의 참 의미는 물론 나눔의 힘을 알 수 있을 듯해서 꼭 학생들에게 봉사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영혼 없는 일회성 봉사자들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은 십시일반 사무국에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국내 이동 수업의 취지와 본교 학생들에 대해 몇 번이고 설명을 했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던 십시일반 사무국에서도 `생명·사랑·나눔`의 특성화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본교 교육 취지를 이해 줬으며, 두 번째 방문 때는 봉사활동을 허락해줬다.

“중학생들은 받지 않는데,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형식적인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허락하겠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이라 학생들에게 특별히 말과 행동에 조심하도록 선생님께서 지도주세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꺼이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식당 앞에 있는 옷들을 보셨습니까. 저희는 그 옷들을 팔아 십시일반 운영 경비와 학생들 장학금으로 쓰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집에서 안 입는 옷이 있으면 기부해주시면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학교에 널리 홍보하겠습니다. 혹 다른 필요품은 없으십니까”, “십시일반은 정부 지원 없이 순수하게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게 많죠. 가장 필요로 한 것은 쌀과 부식, 그리고 주방 용품들입니다”

“정부 지원 없이”라는 말이 필자에게 너무도 크게 들렸다. 중학교는 분명 의무 교육 대상이지만 산자연중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못 받고 있다. 그러기에 납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들은 남들 다 받는 세금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급식비커녕 교과서조차 학부모들이 직접 사야할 판이니 이러고도 대한민국을 복지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십시일반의 소식을 학부모들에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옷가지는 물론 과일, 생활용품 등 후원 물품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 흐뭇한 것은 쌀. 미처 쌀을 사지 못한 학부모들은 손수 집에서 먹던 쌀을 곱게 포장해서 가져다 주셨다. 의무 교육 대상이지만 의무 교육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산자연중학교 교육공동체가 모은 쌀 190㎏! 2014년 9월22일 06시30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4박5일 간의 강원도 국내 이동 수업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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