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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民願)이 민원(民怨)이 되지 않기를

등록일 2014-10-14 02:01 게재일 2014-10-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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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가을이 주는 선물이 실로 놀랍다. 가을은 우리에게 매일 `아침의 이슬, 점심의 청명한 하늘, 밤의 영롱한 별`이라는 세 가지 선물을 준다. 이슬과 하늘, 하늘과 별, 별과 이슬! 이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과 이야기는 그 자체가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만하다. 우리가 굳이 먼 데 여행을 가지 않아도 가을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매일 우주를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풍성하고 눈부신 가을이 고맙다.

소풍과 운동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수식어는 뭘까? 여름 소풍, 겨울 운동회는 뭔가 낯설다. 그러면 봄은 어떨까? 봄 소풍, 좋다. 봄 운동회?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필자는 봄 운동회보다 가을 운동회가 훨씬 더 정겹다.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요즘 필자는 한 시간 남짓 출근길에 결근에 대한 수많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필자에겐 가을이 보내는 유혹에 빠질 용기가 없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필자는 매일 메모를 한다, “가을 소풍 갑시다!”라고. 그래서 필자에겐 매일 출근길이 가을 소풍이다.

`가을 소풍` 못지않게 가을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게 `가을 운동회`다. 예전엔 가족 잔치였던 가을 운동회. 손수 그린 만국기 아래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가을을 살찌우던 그 운동회가 필자는 몹시 그립다. 가을 그늘에 온 가족인 둘러앉아 먹던 투박한 김밥은 지금의 세련된 김밥과는 비교도 안된다. 학교의 많은 행사를 취소하더라도 지역민, 학부모, 학생, 교사, 그리고 계절이 하나 되는 그 예전의 가을 운동회만큼은 꼭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 그날만큼은 회사도 잠시 쉬고 모든 부모들이 반드시 참여하여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을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가을 운동회 공휴일을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도 운동회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이 형식적인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학부모 대표 몇 명이 학부모 회비로 거둔 돈으로 영혼 없는 도시락과 간식을 배달시켜 주고는 본부석 내빈용 자리에 앉아 자신의 아이만 찾는다. 학생들은 마지못해 교사들이 정한 몇 몇 경기에 억지로 참여해 시간만 때운다. 교사들은 학생 눈치, 학부모 눈치, 관리자 눈치 보느라 바쁘다. 정말 모두가 피곤한 하루다.

물론 모든 학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살린 운동회다운 운동회를 하는 학교들도 많다. 10월 3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특별한 운동회가 열렸다. 가족운동회! 서울, 경기, 대전, 울산, 부산, 창원 등 전국에 있는 학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명절날 모처럼 만난 가족들처럼 모두가 즐거웠다.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운 것이 분명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들이 만들어 가는 웃음 가득한 이야기를 가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하늘에다 옮겨 놓았다. 그 이야기들은 별이 되었다.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밤하늘에 유독 별이 많은 이유다.

그런데 운동회 내내 학부모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 이유가 교육 불평등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말 몸들 바를 몰랐다. 운동회가 끝나고 학부모 총회가 있을 거라고 것과 그 주제가 `학부모 권리 찾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필자가 교사라는 것이 너무도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필자의 무능함과 교육청의 불통에 화가 났다. 중학생이면서 교과서마저 직접 사야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불평등을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간절히 바라는 데, 그것도 정당한 것을 간절히 바라는 데도 이뤄지지 않으면 그 바람은 원망으로 변한다. 원망은 바람을 기다리는 들불과 같아서 바람만 만나면 그 힘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성군(聖君)들은 민원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귀와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놓고 그 아무리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필자는 너무 궁금하다. 경북교육청은 교육 약자들의 목소리가 들기나 하는지. 이 좋은 가을날 민원(民願)이 민원(民怨)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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