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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역할 관념을 삐딱하게 들여다보기

등록일 2015-03-02 02:01 게재일 2015-03-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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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학과

“커서 뭐 되고 싶니?” 누구나 어릴 때 한번쯤은 들어본 질문이다. 필자의 어릴 적 꿈은 간호원이었다. 슈바이처 박사와 나이팅게일 전기집을 읽으며 그 위인들처럼 누군가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의사가 아닌 간호원이었던 이유는 성 고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필자가 속한 시대나 지역 모두 보수적이었다. 그런 환경 가운데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배워서 의사나 군인, 경찰은 모두 남성이 담당할 직업이고 간호원이나 비서, 주부는 여성이 해야 할 일로 여겼던 것이다.

어린 시절 병원놀이를 할 때면 필자는 주로 간호원 역할을 하고 남자아이가 의사 역할을 맡았던 기억이 있다. 전통적인 성 관념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다혈질적인 기질은 어쩔 수 없었는지 남자 아이들이 필자를 무서워했었다고 당시 유치원 담임선생님과 초등학교 동창들이 한결같이 증언했다. 남자아이들을 두려워 떨게 만든 기억은 없으나, 의사역할을 했던 남자아이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귀찮을 만큼 내게 물어보며 허락을 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으므로 그들의 증언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성인이 된 후, 도미하여 공부하는 동안 다양한 사회문화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가두었던 껍질을 깰 수 있었고, 비록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전통적인 성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 정체성을 얻을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전통적인 성 관념의 잔재들이 있다. 예컨대, 시청률을 불문하고 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성별 특성은 특히나 고정돼 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아버지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반면, 어머니는 감정 기복이 크고 수다스럽고 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남녀노소가 잘 아는 국민동요 `아기 곰 세 마리`에서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는 성에 따른 캐릭터를 정형화하는 사례다. 유아들이 좋아하는 동요 `어른 되면`에서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역시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원화해 묘사한 예가 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다양한 대중매체에 노출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편향된 관점을 체득하게 된다. 성에 관한 특정 관점을 아주 어린 시기부터 배우게 되는데 만 4세부터 성 고정관념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 만 5세가 되면 성 역할 선호가 분명해져 특정 놀이나 활동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를 “그건 남자(혹은 여자)가 하는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 역할은 특정 문화권 내에서 성별에 따라 개인이 습득하는 경향성이나 선호, 행동을 의미한다. 즉, 성역할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요구나 기대에 의해 습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아들의 성 역할 관념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정 내 부모의 가사나 양육을 분담하는 방식을 보면서, 혹은 자신에 대한 부모나 교사의 기대가 자신의 성별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형성된다.

유아들의 성 역할 경험이 정형화 돼 있을 경우, 유아의 성장 가능성의 범위나 향후 누릴 다양한 삶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유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울 필요가 있으며, 가정 내에서 가사를 가족 구성원이 분담함으로써 성별에 따른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생활 중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나 교사가 남자아이에게는 큰 직책을, 여자아이에게는 보조적인 일을 맡기거나,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에게 좀 더 호의적인 미소와 태도로 대할 때, 유아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을 배우게 된다. 유아들이 성 역할 관념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성에 따른 고정된 행동과 생각이 무엇인지 성찰해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유아들의 시각을 제한할 가능성에 대해 점검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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