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용산역 부근에서 일어난 마술 같은 일을 언론을 통해 보았다. 길 가던 사람들이 정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대낮 길거리에서 마술 쇼라도 열렸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마술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는 뭔가 없어졌을 때 농담조로 말 한다.“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그런데 멀쩡히 길 가던 사람들이 땅으로 꺼져버렸다.
몇 해 전부터 중요하게 보도되고 있는 싱크홀 사건이다. 다행이 깊이가 깊지 않아 큰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강조되고 있는 안전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은 싱크홀을 안전한` 도시를 위협하는 새로운 재난` `도시를 삼키는 구멍`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싱크홀은 인류가 당면한 현대 재난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들은 규모가 작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예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길을 걷기가 겁난다.
그럼 싱크홀은 왜 생기는 걸까. 그 이유를 검색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지하수가 빠져 나간 곳에 지반이 약해져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분별한 도시개발 때문이라는 견해다. 이 중 어떤 것이 정확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지금껏 우리가 안심하고 서 있는 땅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열자(列子)` `천서(天瑞)편`에 나오는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때 쓰는 말인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杞)나라에 하늘이 떨어지고 땅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되어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걱정하던 친구가 그 친구에게 말했다. “하늘은 기(氣)가 쌓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기란 어디에도 있는 것이어서 우리가 몸을 굽혔다 폈다 한다든지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는 것 등 모든 것이 다 하늘 속에서 하고 있는 것이 된다네. 그러니 하늘이 떨어질 리가 있는가?” “땅이란 흙이 모인 것으로, 흙이란 천지사방을 모두 메우고 있기 때문에 걷고 밟고 하는 모든 것이 땅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네. 땅 역시 무너질 리가 없지.”
이 말은 그 당시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분명 틀린 말이다. 땅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현대에 살아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싱크홀만 본다면 분명 기우에 대한 뜻풀이는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고 기(杞)나라 사람처럼 걱정에 파묻혀 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우려야 할 때가 된 건 확실하다. 땅이 무너지고 있는데 하늘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유독 땅만이 아니다. 가장 크게 무너진 것은 민심이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청년들의 가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큰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으로 희망과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 사회 지도층들은 틈만 나면 말한다. “청년이 나라의 희망이자 힘”이라고. 과연 이 말에 대해서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말대로 한다면 지금 이 나라의 청년들은 희망도 힘도 다 잃었으니까 이 나라도 희망과 힘을 잃은 것이 된다. 즉 미래가 없는 나라가 이 나라라는 말이 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논리가 어쩌면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병자호란보다 더 무섭다는 실업난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 나라의 청년들! 이순신처럼 장렬히 전사하지 말고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 이 나라의 새로운 희망과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기성세대들도 지금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면 우리 청년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자신의 기득권을 청년들에게 조금씩 양보해야 할 것이다.
교문마다 입학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신입생들은 희망을 가지고 3월 교문을 들어 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교육 싱크홀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빼앗기고 만다. 부디 2015년에는 단 한명의 학생도 교육 싱크홀에 빠져 사라지는 학생들이 없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