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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다양한 사회와 접촉점 넓혀야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시장 재임시절에 과거부터 잘 알던 모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그가 한 말을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형님, 국회의원 두 번 하니까 내가 참 무식해 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책을 볼 시간이 없더군요” 그렇다. 나도 그 말에는 완전히 공감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 볼 시간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정치인들은 시간이 더 없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은 특별히 더하다. 직업 중에서도 책(문서)를 가장 많이 보아야 할 직업은 판사인 걸로 알았다. 소송관련 문서를 보지 않고는 재판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시장을 해 보니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매일 그 많은 결재서류를 보지 아니하고는 결재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시장은 책 읽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권하고 싶다.인간은 `사회적 소산`, 즉 `사회적 결과물`이다. 살아 온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경험, 조건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표상체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 양식 또한 그 표상체계에 대체로 의존한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이나 삶의 형태가 비슷한 사람들은 그 사고와 행동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출신지가 같은 사람들, 출신 학교가 같은 사람들, 종사하는 직업이나 처해 있는 조건이 같은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따라서 표상체계가 비슷한 한 집단의 여론을 그 지역사회 전체의 여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대 정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역사성을 띤 표상체계에만 의거해 앞서가는 시대정신을 비판한다면, 우리는 시대정신에 뒤떨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지역의 여론주도층이 가지고 있는 표상체계가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이다.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역사회를 나는 `고인 사회`라고 본다. `고인 사회`에서는 결코 새로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동성마저 상실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지역경제활성화 문제를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중앙정부는 `창조경제`를 화두로 던져 놓은 상태지만 아직도 그 개념조차 불분명하다. 창조경제를 지금까지 없던 사업활동이나 사업형태로 보고 우리지역 산업의 다각화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창조경제의 개별적 효과가 어떻게 드러나더라도 창의력이 요구된다는 사실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표상체계`를 뛰어 넘는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민선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세대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교체된 앞선 세대와 뒤 이은 세대의 `표상체계`가 같다면 어떤 혁신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한마디로 `다양한 사회의 접촉점`을 넓혀야 한다. 접촉점의 확대를 위해 첫째는 `다르다`는 이유로 여론형성층에서 배제된 사람들도 차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우리 지역에는 산업화과정에서 다양한 출신지, 다양한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이들 또한 지역사회의 여론주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분야별로 뛰어난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는 점이 우리 지역의 강점이다. 지역대학과 산업체로부터 충분히 수혈받을 수 있다. 셋째,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다양한 사회의 접촉점`을 넓혀 나가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 지역의 시장은 물론 시 공무원들 모두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더 많은 책을 보기를 바란다. 지성이 없는 삶은 맹목이다. 삶(실천)이 없는 지성은 공허하다. 이강덕 시장이 우리 지역을 삶(실천)과 지성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해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끝

2014-08-28

포항-포스코, 상생(相生)의 이름으로

▲ 이정식포항제철소장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는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가 소중한 매우 가까운 관계다. 기업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기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소속된 공동체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면 기업 역시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은 자체 성장과 발전을 위해 사회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세계 최대 자선단체로 41개국 1천800여곳에 지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유나이티드 웨이 월드와이드(United Way Worldwide)의 브라이언 갤리거(Brian A. Gallagher) 회장. 그가 지난 4월 한국을 찾아 전경련 초청 강연에서 강조한 `공동의 효과`야말로 포항제철소가 포항시를 위해 해야할 역할을 잘 정의해 주고 있다.이런 의미에서 며칠전 이강덕 포항시장이 `포항 그리고 포스코`라는 타이틀의 신문 기고문을 통해 포스코를 두팔 벌려 껴안아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 등 기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포항제철소 전임직원이 고마움을 느꼈다. 이처럼 단체장이 취임 일성으로 지역과 기업간의 유대강화와 동반성장을 강조하신 데 대해 잔잔한 감동의 울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기업이 지역사회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포스코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응원해 준 포항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은 포항제철소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반으로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익성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포스코가 지역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과 혜택이라 생각하며, 이 같은 수익성 창출은 신규투자의 확대로 이어져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인재를 기업에 알맞게 육성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밑거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철강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기업활동의 `생태계`조성에 기여해, 포항시가 글로벌 철강도시로 한번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며, 지역의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발전·육성시킬 수 있는 기회들도 제공할 것이다. 더불어 글로벌 철강도시에 걸맞는 진정성 있는 환경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기술개발에 매진해 포항을 세계최고의 환경과 기술 허브 도시로 만드는 일도 포스코가 추구하는 상생의 모습이다.이외에도 포항제철소를 포함한 출자회사, 외주파트너사 임직원들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는 것과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제반 활동들이 결국 포스코와 지역과의 미래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지난 7일 포항시와 체결한 포항제철소 투자확대 양해각서 역시 포스코의 확고한 지역과의 상생마인드를 담아 포항시에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이날 포스코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철강 본원경쟁력과 안전 확보에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포항제철소는 노후설비 성능복원 및 안전시설물 확충을 위해 2016년까지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정비비 예산 등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이는 올해 제철소내 설비유지 및 보수에 투입되는 1조원의 예산과는 별도의 투자규모이다. 그래서 이러한 투자가 궁극적으로는 포항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체감적 파급효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철강업의 국내외 기업환경이 순탄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지원과 응원이 없으면 포스코의 일류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수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권오준 회장은 포항이 시민과 기업간 상생도시의 세계적 표본이 되도록 상호간 협력증대에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포스코 전 임직원 역시 지역이 없으면 기업도 없다는 결단이 있어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포항제철소에 뜨거운 성원을 아끼지 않는 포항시와 시민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서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스코와 포항시민이 굳게 맞잡은 상생의 손은 도시 성장 동력의 불씨를 계속 지펴가는 아름다운 손이 될 것이다. 포스코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53만 포항시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민선 6기 이강덕 시장이 이끄는 포항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2014-08-25

제대로 된 통일논의를 기대해 본다

▲ 김영문 한동대 교수·전 민주평통 부의장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통일준비위)가 지난 7일 첫 회의를 가지며 공식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가져본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요 반드시 이뤄야 할 국가최대의 숙원사업이므로 역대정권 마다 나름대로의 통일정책과 통일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쟁만 없었을 뿐 분단 상태의 현상유지에만 그친 소극적인 통일정책이나 대다수 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해 오해와 저항을 받았던 통일정책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통일대상인 북한의 마음을 얻지 못한 통일정책들로 인해 분단 60여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도 통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준비위가 기존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기능과 다소 중복된다는 논란은 양 기관이 각각 장점을 살려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논의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면들만 바라본다면, 한반도통일은 과연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더욱이 국내외 정황과 국가안보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선진일류국가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하기위해서는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아무튼 정부의 통일정책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번 기대를 걸어 봤으면 한다.통일을 향한 통일정책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통일의지는 물론 남한 국민들 그리고 북한정권과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모든 요소를 갖춰야 한다. 통일준비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연초 `통일대박론`과 3월의 `드레스덴 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강력하게 담긴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준비위의 인적구성으로 보아 정부 측 위원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외교안보 분야 및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을 총 망라하고 있다. 이런 조직 구성이라면 열린 공감대 형성은 물론 온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 정부와 온 국민들의 통일을 향한 열망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와 통일을 함께 이뤄가야 할 북한을 끌어 낼 수 없다면 또다시 공수표로 돌아갈 것이다. 북한 정권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드레스덴 구상`을 `체제통일`을 향한 흡수 통일 망상이라 일축하며 줄곧 비난해 오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의 말을 빌린다면 북한주민들 간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준비위가 첫 회의에서 그 동안 연구한 과제들을 대통령께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안된 남북한이 공동이익을 얻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충분히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새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번 통일준비위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통일준비위의 보다 구체적인 활동을 기대한다면, 통일의 이점이나 편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대국민 설득력을 보강하고 통일비용에 대한 국민의 경제적, 심적 부담을 줄여갈 정책을 개발하여 국민들의 통일 열망을 제고시켜야 한다. 특히, 통일 무관심 세대라 불리 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통일의식개발은 필수적이다. 더불어 희망적이고도 긍정적인 다양한 종류의 통일담론을 조성하여 지속적으로 확산해 갈 때 온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그리고 북한을 좀 더 빠른 시일 안에 남북한 간 교류협력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회복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야 말로 신실한 대화를 위해 “남북이 먼저 신뢰를 쌓자는 것이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보다 인내를 가지고 북한을 설득시켜야 한다. 이러한 신뢰의 바탕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과 함께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민생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양한 분야를 발굴하여 구체적으로 실행해 간다면 북한도 흔쾌히 교류 협력에 응 할 것이다.통일은 더 지체할 일이 아니다. 멀리 오래 갈 거 어디 있겠는가. 급한 대로 문화예술과 스포츠 분야의 교류부터 시작해 보자. 당장 눈앞에 닥친 인천 아시안 게임 참가나 추석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부터 성사되길 기대해 본다. 이렇게 하나하나 화해협력을 위한 서로의 신뢰를 쌓아 갈 때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번영된 조국통일의 길이 앞당겨 질 것이다.

2014-08-22

치바이스와 한국화 체계 세운 위대한 화가, 김영기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홍콩 등 국제경매시장에서 가장 고가(高價)로 잘 팔리는 세계 5대 화가 가운데 3명(제백석, 이가염, 장대천·齊白石, 李可染, 張大千)이 중국출신 작가이다. 미술 쪽에 깊이 발을 딛지 않은 사람도 세 사람의 이름은 들은 적이 있을 것. 물론 지금의 중국이 G2에 이르는 막강한 부를 업은 신 부호들의 영향이 크기도 하지만 이들 3명이 동양미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반론이 없다. 후난성 상담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치바이스(齊白石·1863~1957))는 소목장(小木匠)을 만들어 입에 풀칠이나 했다. 가구에 간단하게 입힌 초충(草蟲)류 그림솜씨가 시장 일대에 화제를 뿌렸던 시기, 제백석의 그림에 놀란 북경대학 백발의 교수가 직접 찾아와서는 치바이스에게 체계 있는 화업(畵業) 공부를 제안한다.거듭된 간청에 굴복한 치바이스는 나이 마흔이 넘어 북경대학에서 문인화 공부에 몰두, 중국 근세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가 됐으며 이가염, 장대천을 걸출한 화가로 키웠다.그가 버린 화선지는 누각을 덮었다.거리의 화가를 서울대에 입학시켰다면 나라가 들썩일 데모가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시킨 중국의 문화적 융숭함은 배울만하다. 문화 대국이란 말이 실감나는 치바이스의 성장 일화이다.간결하고 도끼로 나무를 내려찍듯이 힘차게 붓을 휘둘러 초화(草花), 새우, 벌레 등을 삶의 정취, 유머가 넘치는 화풍으로 숱한 작품을 남긴 그의 미술세계는 명·청 시대를 살았던 팔대산인(八大山人), 오창석의 화풍을 많이 따랐다. 선이 굵은 전통적 수묵 바탕에서 청신한 현대적 감각을 드러내는 독특한 화풍을 창조했었다.치바이스는 북경 미술학원 교수로, 혁명이후 말년엔 중국미술가협회 주석에 올랐다. 치바이스 밑에서 먹을 갈고 화업을 전수받은 인재가 일제 강점기 서울에서 태어난 청강 김영기(晴江 金永基·1911~2003)이다.한말의 저명한 서화가 이신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맏이로 태어난 청강은 1932년, 당시로서는 일본을 택했던 조선의 젊은이와는 달리 북경 유학길에 올랐다. 보인대학에 입학하는 한편으로는 바로 제백석의 문하에 들어가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과 정신을 익혔다. 청강은 당시 우리 화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이당(以堂)이나 청전(靑田) 등 6대가의 화풍에 물들지 않고 문인화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 독창적인 한국화를 완성시켰다.청강 김영기는 중국 일본 화풍이 섞여 혼란스러웠던 1950년대에 한국화라는 예술체계를 완성시킨 위대한 화가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그림 실력을 인정받고 귀국했으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에서 그림이 팔릴 수도 없었지만 먹고 살기조차 빠듯한 시대여서 치바이스의 작품처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청강은 한국전쟁 때 피난지였던 경주에서 3년간 교편(경주고등학교)을 잡았다. 그 시절 `남산과 월성`, `계림의 가을`과 같은 경주에 대한 그림을 많이 남겼으며 포항에도 자주 들러 겸제가 그렸던 `내연산 폭포`, `동빈 내항(개인소장)`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1980년대 말에도 흥해 출신 정치지망생이었던 권동수(權東守·74)씨를 따라 산장에서 묵으면서 내연산 하경을 주로 그렸다. 1957년 뉴욕에서 열린 `현대 한국회화전`때 작품 선정을 위해 서울에 온 큐레이터 프사티(Psaty)는 “당신의 새우는 스승만은 못하지만 스승 치바이스가 그리지 못한 달을 그렸다. 특히 달빛을 품고 새우가 유영하는 물결은 매혹적이었다”고 평론, 국내외 미술계에 화제를 뿌렸다.일제강점기는 물론 건국 이래 미국인 평론가로부터의 극찬은 청강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말년에 빠진 `월출산 하경`, `남해 비경`, `추당유정(秋塘有情)`과 같은 군청색 그림이나 중년의 `자화미술(字畵美術)`, `수세미(국립박물관 소장)`는 백미 중에 백미다.청강의 그림은 국제 미술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세 명의 작가가 된 제백석, 이가염, 장대천의 그림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의 경제력만큼 예술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문화적 텃밭의 차이일 뿐이다.

2014-08-22

올바른 여론 파악 위한 지혜 필요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민주주의를 말 할 때 우리는 흔히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울 때가 있다. 다수의 의견을 집약하는 `투표`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을 때에는 이 다수결이 `여론`으로 대체된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욕구를 다 같이 충족시킬 수는 없는 현실에서 흔히 여론(다수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그러나 형성된 여론이 사회전체의 의견을 진정으로 대표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다수결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의 선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산독재국가에서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의사 결정을 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진정한 여론이 아니라 강요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강요`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왜곡`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지방자치제가 중앙집권제 보다는 좀 더 정확한 주민의 여론을 시정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보다 우월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이 진정한 주민의 여론을 파악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말이다.시장에 취임한 초기에는 사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사업계획과 예산편성에 대한 결재를 한 경우도 많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사람이 단체장으로 입후보할 때면 우리 지역이 장기적으로 나아가야할 발전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뚜렷한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규모 지역개발사업과 주민의 당면한 고충의 처리, 복지의 증진을 위한 사업에 대하여는 그 실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래서 시장 취임 후 첫 휴가기간에 우리 지역의 오지(奧地)를 찾아 그 지역 주민의 집에 민박을 하기도 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마을이 생긴 이후, 어느 시장(군수)이라도 한 번도 찾아 주지 않았던 소외된 마을이었지만, 그들도 우리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존재감을 갖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야 말로 민선1기 시장으로서 진정 할 일이었다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기계면 미현리는 안재너미, 바깥재너미라고 하는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포항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그 마을 상공을 날아가면서 소음 공해가 심하다는 것, 자동차로 죽장면 하사리로 가기 위해서는 관내를 벗어나 청송군 지역을 통과해야 하고, 하사리에서 그 남쪽 상사리로 가기 위해서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가야한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지역주민의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여론은 때때로 지역의 유력한 자들(언론기관을 포함해서)의 고의적 조작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여론을 왜곡하는 이면에는 이기적인 탐욕이 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는 여론 형성과정에서 아예 소외되어 자신들의 주민된 권리를 요구할 의지조차 없거나, 사회화 과정의 영향으로 강자의 논리가 사회적 약자의 사고 속에 내재되어 여론의 왜곡과정에 동참해 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선 시장으로서 표면에 드러난 `여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만 할 것이 아니라, 여론형성과정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충분한 정보가 없는 자, 여론 형성의 힘이 없는 자)들의 생각까지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정에 임하려고 노력하였다. 신자유주의경제체제가 일반화되어 갈수록 자치단체장의 이런 노력은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마침 우리나라를 방문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그렇게 존경을 받고 있는 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단순히 교황이기 때문에 받는 존경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있지 않는가? `죽음의 문화`,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이라는 수사에서 드러난 인간의 존엄과 자유, 공의와 정의가 흐르는 사회 건설을 위해서도 드러난 여론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지혜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2014-08-21

지피지기 (知彼知己)

▲ 연규식 구룡포수협 조합장우리나라의 최근 어업 총생산 규모는 310만여t으로 7조원을 상회하며 넙치, 전복, 김 양식기술은 세계 1위, 원양어업은 세계 3위로 수산물 생산, 가공, 유통, 수출 등 교역국이 150여개국에 이르는 수산분야의 중견 국가다.중국은 연간 수산물 총 생산량이 약 6천만t, 세계 1위로 우리나라 총 생산량의 약 20배이며,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은 3억7천만달러, 전체 수출의 17%인 반면 수입은 10억2천만달러, 전체 수입의 26.3%에 이른다.주요 생산 어종이 오징어, 갈치, 멸치, 고등어, 참조기, 병어, 꽃게 등 우리나라 생산어종과 거의 유사한 것은 조업구역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바다에서 조업하므로 중국이 잡으면 중국산이고 우리나라가 포획하면 국내산이다.12차 협상까지 진행된 한·중FTA가 시진핑 중국주석의 한국 방문으로 연내에 타결될 것이라는 우려스런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어종이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되면 좋겠지만 여타 협상대상 산업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중국은 우리나라 국민의 소비성향을 파악해 인접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활어는 물론 발달한 양식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양식으로 생산한 수산물을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수출할 것이다.하지만 두 손 놓고 걱정한다고해서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수산업이 절대절명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중국인구의 20%가 넘는 3억명의 중산층 소비자를 타킷으로 삼아 방어모드에서 공격모드로 전환하는 역발상적인 시도는 어떨까. 소득향상, 급격한 도시화, 교통수단의 발전, 온라인 쇼핑시장 급성장 등 소비를 둘러 싼 중국내 소비환경 변화는 소비증가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중산층들이 자기 나라 제품을 불신하고 외국산, 특히 한국의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사회에서의 성공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여성의 영향력은 대단한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이라면 가족구성원들의 건강을 챙기는데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인접국이라 수입이 용이하다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수출도 용이하므로 경제적 급성장을 주도하는 중국해안 대도시에서 고급제품으로 한판 승부를 걸어볼 만 하다. 위생, 포장, 보관, 유통, 가격의 모든 면에서 우리는 그들의 입 맛에 맞는 제품을 얼마든지 생산해 낼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지피지기(知彼知己). 말 그대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내 수산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일본 유학파 등 훌륭한 일본 수산 전문가는 수 없이 많지만 중국 수산전문가는 거의 없다.국가간 협상에서 조차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중국에서 민간 사업자가 고급 정보를 취득하기는 매우 어렵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취득하려면 중국통 수산 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주중 한국대사관에 단 1명의 수산관으로 14억 인구의 거대 중국시장을 파악하기란 역부족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물론 상해, 산동지역 등 주요 수산물 취급 대도시에도 수산관을 파견해야 한다.또 일본과의 갈등으로 일본산 상품구매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 중국내 대도시에 한국 수협중앙회 간판을 건 대형 판매장을 개설하고 점차 지방도시로 영역을 확대하는 비용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 줘야 한다. 그리고 중국어선들이 우리나라 수역에서의 불법어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중국 어선이 한국 수역에서 잡은 수산물을 원물 또는 가공 후 우리나라로 수출하므로 불법어획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는만큼 우리의 이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옆 동네 14억 인구가 예비 중산층임을 감안하면 어느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그들의 밥상위에 올려 놓을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절로 쿵쾅쿵쾅 뛴다.

2014-08-20

우리 영혼에 그 말씀이 남을 것인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이 유명한 노래는 영화 `에비타(Evita)`의 주제곡이다. 에비타(1919-1952)는 1945년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시민혁명으로 군사정부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올렸던 흰 도밍고 페론(1895-1974)의 아내이다. 페론의 재선이 확실시되던 1951년, 남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서 선거운동 중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후보를 사임한다.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바로 그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가 저 주제곡이라 한다. 에비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머니 같은 권력자였다. `남미의 파리`로 불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변두리에 임대료 낮은 주택들과 빈민 숙소들을 지었다. 청년들을 위한 체육관도 지었다. 어느 날 빈민촌을 방문한 에비타는 그 비인간적 참상에 충격을 받아 “마을 주민 모두는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마을을 떠나세요!”라고 한 다음에 즉시 그들을 버스에 실어 보내고 마을을 불살라 버렸다. 이것은 천사의 재림 같은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아르헨티나에서 삶(믿음과 사상)을 키운 프란치스코 교황(78세)의 방한 기간에 나는 영화 `에비타`를 방영해주는 TV채널이 없는가 하여 한참을 뒤졌다. 찾을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한국보다 더 혼란한 역경을 헤쳐 나온 아르헨티나에서 인생의 예민한 시절을 감당했던 당신의 영혼에는 에비타와 페론 그리고 저 노래의 흔적이 얼마나 깊게 남아 있을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를 흔들었던 해방신학은?대전 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전 미사. 당신은 당부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현존 자본주의의 숨길 수 없는 폐단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종교는 마치 자본주의 경쟁체제에서 서바이벌 게임에 몰두한 것처럼 왜 외형만 비대해지는가?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 음성 꽃동네에서 남긴 이 말씀을 먼저 우리 종교 지도자들이 영혼에 새길 일이다.“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돈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물질주의와 더 많은 돈을 가지려는 욕망에 휘둘린 무한경쟁체제의 폐해를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깊이 생각해볼 인격적 품위와 인간적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나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도록 격려하며,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에 담은 지극한 인간애가 과연 우리의 영혼을 건드려주는가?박근혜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에서 당신은 평화와 정의를 거론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말씀은 `피 묻지 않은 정의에 의한 평화`를 역설한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피 묻은 정의를 초월하는 정의와 평화. 과연 우리는 6·25전쟁에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그 잔혹한 과거의 불의를 어떻게 용서하고 관용하여 남북평화체제와 상호협력의 시대적 새 지평을 열어젖힐 것인가? “한 가족이 둘로 나뉜 것은 큰 고통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라는 희망이 있고, 가장 큰 희망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국 청년에게 들려준 당신의 이 말씀에 `피 묻지 않은 정의에 의한 평화`로 가는 오솔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나고 대화하라, 또 만나고 대화하라, 또다시…. 남북은 같은 언어이니, 그 언어 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정서가 혈액처럼 흐르고 있으니!무릇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적응하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도 한다. 환경은 인간의 조건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과 성격을 창조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이고 노인이다. 라틴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고통이 어른거린다. 이제 당신의 말씀은 인간적 소통의 수단을 넘어 복음(福音, Gospel)으로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라는 종교적 복음이기도 하고, 인간의 조건(사회 또는 사회체제)을 통찰하여 그것을 끝없이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역설(力說)의 사회적 복음이기도 하다.광화문 광장의 시복미사. 당신의 강론은 `종교적 복음`과 투쟁의 해방신학으로 미끄러지지 않은 `사회적 복음`의 절묘한 일체(一體)였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애초에 종교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은 일체였는지도 모른다.`나으리`라는 조선시대 호칭이 사라졌다. 농담의 호칭으로만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문학용어에 `서발턴(subaltern)`이 있다. 하위의 종속계층은 스스로를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한국사회에 스스로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부자든 빈자든 누구나 SNS를 통해 정치적 발언도 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인간 가치`나 `피 묻지 않은 정의에 의한 평화`를 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현안 문제이다.발언들이 홍수를 이루는 한국사회를 뒤로하고,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떠난다. 가톨릭의 장엄한 행사도 당신의 소박한 행보도 머잖아 우리의 추억으로 남을 테지만, 진실로 우리의 영혼에 남아야 하는 것은 당신의 말씀이다.이번 가을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 로마를 거쳐야 하는데, 바티칸이 아니다. 아시시다. 아시시 언덕의 소담한 프란치스코성당에 가서 `새에게 설교`를 하는 그 벽화의 말씀을 네 번째로 들어보고 싶다. 내 기억에는, 프란치스코 수도사가 새들에게 이렇게 일러주는 것 같았다.“새들아, 모이를 더 먹기 위해 부리나 발톱으로 형제들을 공격하지 마라. 어린 새들과 약한 새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모이를 먹을 수 있게 해줘라.”이대환 작가, 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2014-08-18

소통 통한 협치로 발전 도모해야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1995년 10월 경상북도에서 개최된 제76회 전국체육대회에 포항시 체육회장으로 참석한 후 나는 그 이듬해부터 우리 시 예산편성시 체육진흥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목표 금액은 50억원으로 매년 예산에서 5억원씩 편성하기로 하고, 관련 조례도 제정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이자율로서는 이자수입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 당시의 이자율로는 50억원이면 그 발생하는 연 이자수입으로도 체육회의 연간 예산에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목표금액이 모두 적립되어 이 기금의 이자수입을 체육진흥을 위한 예산에 편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이 기금을 적립하고자 했던 의도는 따로 있었다. 포항시체육회 회장을 민간에 위임하고자 했던 것이다. 매년 개최되는 도민체전을 보면 각 시군 체육회장으로 그 지방의 자치단체장이 참석하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체육회 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치정신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항시체육회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기본 재산을 확보하고 이 단체를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하여 그 운영을 민간부문에 넘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중앙집권체제하에서 당연시 여겨져 왔던 사고와 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새로운 반성과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치`를 단순히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 권력 배분의 의미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주민의 `참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할 때, 행정의 몸집도 줄여지고, 행정 본연의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질 것이다. 주민이 참여하는 `자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통치하는 자가 중앙행정기관에서 지방행정기관으로 `변화`되었을 뿐 결코 `발전`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이 갖추어지고 도시의 기능이 심화된 것은 분명 `변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지금은 우리 시의 지방상수도 보급률이 94%가 되어 웬만한 읍·면에는 이제 간이상수도가 아니라 지방상수도가 보급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시장에 재직 중일 때 처음으로 청하면과 송라면까지 지방상수도관을 이어가기로 결정할 때에는 나로서는 참 힘든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시골에서 도시로 물을 끌어온다는 생각을 하였지, 도시의 물을 시골로 가져간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할 때였으니까 그렇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기 전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중앙집권체제하에서 우리의 생각이 굳어져 있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다. 문화예술단체의 장의 경우도 생각해 보고, 대한체육회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사고가 무의식중에 굳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사회적 약자란 상대적 표현이다. 도시지역 주민에 비해 시골지역 주민은 사회적 약자이다. 행정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명성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그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강자와 약자를 구분해 볼 수 있다. 강자든 약자든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야 말로 문명사회이다. 이 문명화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나는 `발전`이라고 본다. 약자가 강자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인격적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불편과 불쾌함의 제거와 행복의 추구를 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 약자는 늘 강자에게 소통을 요구한다. 약자는 소통과정을 통하여 `자치`에 참여하고, 강자는 협치의 기회를 얻는다. 협치(Governance)가 광범위하게 이루어 질 때 진정한 `발전`이 있다.

2014-08-14

교황의 한국 방문을 기리며

그는 대낮에 길을 다니는 것이 고행(苦行)이었다. 팔다리가 멀쩡하고 눈도 귀도 밝았으나 그는 대낮에 길을 다니지 않으려 했다. 손가락질과 욕설 따위야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어도 날아드는 돌과 똥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그의 성명은 황일광(1757-1801). 누가 그의 이름을 지었는지 몰라도 그것이 `日光`이었다면 처절한 역설, 처절한 능욕의 이름이었다. 본디 그의 인생은 암흑이었다. 도대체 빛이 없었다. 태어난 순간, 아니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잉태된 순간, 그는 이미 빛을 상실한 생명이었다. 백정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사회적으로 노비나 금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백정. 그 황일광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내게는 천국이 둘이 있다. 하나의 천국은 여기 현세에 있고, 또 하나의 천국은 죽은 뒤에 갈 곳이다.”황일광에게 현세의 천국은 천주교 형제들이 자신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시공(時空)이었다. 그때 영혼과 일신을 천주의 품안에 맡기고 있었던 그는 아마도 평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저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 귀에는 절규처럼 들려온다. 인간다운 대우와 인간다운 자유, 그 진정한 삶의 빛과 행복을 찾은 한 인간이 외치는 `환희의 절규`로 들려온다. 어쩐지 그 음색은 7년 만에 드디어 어둔 땅속에서 세상의 빛으로 나와 버드나무 우듬지에 달라붙은 매미가 땡볕을 즐기듯 맹렬히 울어대는 그것을 닮은 듯하다.약관이라 부를 16세, 이 나이에 그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진사가 되었다. 수재였다. 임금의 총애가 그에게 오지 않을 수 없었고, 권문세가의 눈빛들이 그에게 모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황일광과 대척점에 태어나 황일광과 전혀 다르게 성장했다. 인간다운 대우는 늘 넘쳐났다. 집안에 노비들이 많아서 몸을 부리느라 땀 흘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바로 그것들이 양심적으로 부담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아니, 그것들 때문에 자신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성명은 황사영(1775-1801). 그가 현세를 마친 장면은 비장하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 전말과 천주교회 재건책을 중국 베이징의 신부에게 알리는 백서(帛書)를 작성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효수형을 당했던 것이다.황일광, 황사영. 생년의 격차가 신분의 격차만큼 벌어진 두 사람이 믿음의 천국으로 들어간 해는 같다. 1801년, 신유박해의 순교자들이다. 그로부터 213년이 지난 이 여름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에서 집전하는 미사를 거쳐 복자(福者)로 거듭날 두 순교자는 그해 순교한 정약종과도 인연이 깊다. 황일광은 그의 집에 함께 지내다가 잡혔고, 황사영은 그에게 사사를 했었다.개인적으로 나는 종교가 없다. 다만, 지구의 현존 성직자들 중 가장 존경하고 가장 좋아하는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에서 `황(皇)`자를 빼고 다른 적절한 말을 넣어야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더 어울릴 것이라는 투정을 갖고 있을 정도다.묘한 노릇이지만, 나는 또 한 분의 프란치스코(1181-1226)를 잊지 않는다. 그분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조그만 언덕 위에 벽화로 존재한다. `새에게 설교`를 하는 프란치스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성장하여 군인으로 전쟁까지 했다가 어느 돈오(頓悟)의 찰나에 삶의 길을 바꿨던 그분은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충격을 받아 문득 순례를 접고 아시시로 돌아갔다. 사제 서품을 받지 않고 수도사로 현세를 마친 그분의 한 모습을 포착한 그 벽화. 프란치스코가 나무 곁에서 비둘기를 닮은 새들에게 무슨 설교를 하고 있는 그림. 소박하고 호젓한 성당에서 `새에게 설교`하는 그 말씀을 듣고 싶어서 사십대에 아시시를 세 번이나 찾아갔던 나는 장편소설 『붉은 고래』(2004, 현암사)에서 이렇게 썼다.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사제복을 입은 성인의 온화한 얼굴을 마치 부처의 후광 같은 빛살 바퀴가 둥글게 감싸고 있는데, 그는 맨발이다. 이 맨발 앞에는 열댓 마리의 새들이 모이보다 더 진귀한 무엇을 기다리듯 머리를 세워 앉아 있고, 나무 밑 허공에는 서당 공부에 지각한 학동처럼 흰 새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고 있다. 그는 모이통을 들고 있지 않다. 빈손이다. 오른손은 내려앉고 있는 한 마리의 새를 향하고 있고, 왼손은 시선과 함께 땅바닥의 새들을 향하고 있다. 모이를 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모여든 새들.옛날에 프란치스코 수도사가 아시시의 조용한 언덕에서 새들의 심장까지 감화시키는 `말씀`을 했다면, 오늘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웅장한 대성당에서 무뎌질 대로 무뎌진 인간의 양심을 건드리고 반인간적 불평등 사회구조를 두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황일광의 처절했던 환희의 절규와 황사영의 의연했던 피범벅 죽음, 그 참뜻을 한국사회가 곰곰이 헤아려보는 계기가 되어야 당신의 한국 방문과 말씀은 이 땅에서 포근한 축복이 되는 동시에, 종교적 복음(福音, Gospel)이 사회적 복음으로 확장되는 또 하나의 축복을 부르리라. 황일광, 황사영을 순교에 이르게 했던 그 복음은 인간의 양심과 영혼을 구원하는 종교적 복음이면서 반인간적인 모순투성이의 조선 지배체제에 맞서는 첨예한 저항의 사회적 복음이 되었던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닷새 만에 한국을 떠난다. 장엄한 행사들도 곧 기록보관실로 들어간다. 그때 이 땅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이것은 당신의 몫이 아니다. 우리 국민, 우리 사회의 몫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과 기도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지는 못한다. 올해 5월, 당신이 예루살렘을 찾아가 이스라엘 권력자와 팔레스타인 권력자가 손을 맞잡게 했으나 누군가 그것을 비웃듯이 다시 인간에 의한 참혹한 인간 살육이 자행되고 있지 않는가. 당신의 말씀과 기도가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슬픔을 지극히 위로할 수는 있어도 한국사회의 적폐를 해소하지는 못한다.남북이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 돈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한국사회의 타성적 야만성을 다스려 나가는 일, 묵정밭을 개간하듯 고함과 몸부림을 대화와 타협의 문화로 일궈나가는 일. 이 엄청난 시대적 과제들은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이대환 작가, 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2014-08-14

구미 변화 이끄는 `희망의 3.0`

▲ 남유진 구미시장2014년 대한민국에서 크게 주목 받은 숫자가 하나 있다. 바로 `3.0`이다. `한류 3.0`, `소셜 3.0`, `웹 3.0` 등 최근 우리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숫자이다. `3.0`은 단순히 웹이나 소프트웨어를 가리키는 말을 넘어, 이제는 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보가 이루어지거나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표현할 때 쓰이고 있다.`정부 3.0`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정부는 국정운영 패러다임으로 정부 3.0을 발표하고 `공급자` 위주에서 `국민중심`으로의 방향전환을 내걸었다. `개방·공유·소통·협력`을 핵심가치로 `소통하는 투명한 정부,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 시민 중심의 서비스 정부`를 구현하겠노라 밝혔다.이를 위해 부처간 칸막이도 없애고, 방대한 분량의 공공정보도 개방하여 일방향적인 행정서비스에서 벗어나 양방향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여 년이 지난 지금, 사회 곳곳에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국내 병원정보 전문제공업체인 A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5만여 개의 병원정보를 활용해 의료 서비스 전용 응용프로그램(앱)을 만들었다. 환자가 원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로 월 매출 2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이렇듯 각 부처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수많은 청년창업과 벤처기업 탄생이 이어지고, 이는 다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게다가 어린이집, 의료, 교통 등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폭이 넓어지면서 삶의 질까지 향상되고 있다.우리시와 같은 기초지자체의 경우, 그 파급효과가 더욱 클 것이다. 지자체의 특성상, 시민들과 항상 대면하고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의 모습이 확산될 수 있다.이를 잘 알기에 필자는 정부 3.0 발표 후, 관련 시책 추진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행정의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시민에게 공개하기 위해 정책별 모니터단, 서포터즈, 시민기자단 등을 활용해 다양한 의사통로를 확대했다.`소통하는 투명한 정부` 구현을 시작한 것이다.타 시·군과의 협업도 적극 추진했다. 인근 김천시와는 시내버스 광역환승제를, 칠곡군과는 보건시설이나 하수처리시설 등 제반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했다. 시민 만족도는 물론 비용 절감 효과까지 거뒀다.지난해 12월에는 전국 최초로 구미에 `화학재난 합동방재센터`도 문을 열었다. 안전행정부, 환경부, 소방방재청 등 8개 부처 36명이 합동 근무를 하고 있다. 부처가 아닌, 과제 중심의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모든 행정 서비스를 수요자 중심으로 통합·제공하기 시작하며 `시민 중심의 서비스 정부`구현에도 힘쓰고 있다. 오아시스 하우스, 행복의 사랑고리 사업 등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실시하고,`택시 안심귀가`서비스,`여성·아동 안심귀가 시범거리`조성, 방범용 CCTV 확충 및 통합관제센터 확대 운영 등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안전문제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모두 정부 3.0이 만든 구미의 긍정적인 변화들이다. 물론 `정부 3.0`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용어 때문에 이러한 변화들이 시민 피부에 와 닿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그러나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했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필자가 몸소 느꼈던 것처럼,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시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정의 벽을 허물면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명품, `세계 속의 명품도시, 구미`의 모습은 완성될 것이다.지난 7월22일 당선된 경상북도 시장·군수협의회장으로서도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23개 시군의 의견을 한 데 모아 지역간 협력으로 상생하는 경북 발전을 이끌어 가겠다.앞으로 4년, 시민과 하나 되는 시정을 펼치기로 마음먹은 만큼, 시민 행복을 방해하는 칸막이는 하나라도 더 없애겠다. 시민이 원한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 구미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기관과도 소통하고 협력하겠다. `정부 3.0`, 구미의 변화를 이끄는 `희망의 3.0`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14-08-11

向日齋, 해바라기와 迎日의 인연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포항운하 뱃길 주변에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피었다. 여름 꽃 해바라기와 포항의 인연은 1446년 단종 복위에 가담했다 경상도(慶尙道) 영일(迎日) 대잠산(大岑山)으로 유배를 온 사정(司正) 권수해(權壽海)공에 의해서 시작됐다. 사정공(司正公)이 유배지(포스코 주택단지내 영일대와 효자 음악당 사이)에서 처음 한 일이 향일재(向日齋)란 편액을 걸고 적소 마당에서부터 임금을 뜻하는 해바라기를 심는 일이었다. 유배 3년이 지나면서 해바라기 밭이 끝없이 펼쳐져 해맞이 땅 영일이 해바라기 꽃과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1410년에 예천 대죽리에서 경력공(經歷公) 권관(權寬)의 넷째로 태어나신 사정공은 좌의정을 지내신 종조부 문경공(文景公,軫)으로부터 수학(修學), 경서와 사기를 즐겨 읽으면서 절의불의(節義不義)를 부르짖는 청년시절을 보냈다.1446년 단종(端宗) 복위라는 큰 뜻을 품고 밤마다 단종의 안위를 빌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다음해 단종 복위가 탄로 나자 백형 권산해(權山海, 단종의 이모부, 문종의 동서)이 자결하는 날, 경상도 연일 땅 대잠산으로 유배됐다.포스코 효자 주택단지로 바뀐 대잠산 적소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 문지방에 편액(向日齋)을 걸고 하루 4배씩 단종이 유배중인 영월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선왕(先王)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나타냈다. 1990년에 발간된 영일군사(迎日郡史)에도 공의 나이가 45살(1455년) 되던 해 영일지방에 들어 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1466년 공의 나이 57세에 세상을 하직, 자신이 해바라기를 직접 심었던 대잠산 관동(단종에게 절을 올린 곳)에 묻혔다. 사후 공을 기리는 지역 주민들이 해바라기를 더 심어 대잠산 일대는 여름만 되면 지천으로 핀 해바라기로 인해 시인 묵객들이 숱하게 찾아 관산(觀山)을 했던 곳으로 이름났다.1469년 해바라기 산에 추원재(追遠齋)가 건립되어서 후손과 유림들이 묘향을 받들었으나 추원재(追遠齋) 역시 포스코 주택단지에 편입(編入), 월성군(月城郡) 안강읍(安康邑) 두류리로 이전됐으며 공의 유허비는 향일제가 있었던 곳에서 2km쯤 떨어진 포항시 대잠길 16번지에 지금도 남아 있다.이 일대에서 살았던 사정공의 후손들이 조선후기까지 해바라기 산을 가꿨으나 이후부터 차츰 줄어들다 포스코 주택단지 조성이 본격화된 1970년 들어 완전 사라졌다. 시군(市郡)으로 나눠져 있을 때는 포항시화(浦項市花)를 해바라기로 지정 하자는 여론이 있었을 정도로 상징이 됐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해바라기는 보통 4m에서 최대 8m까지 자라며 지름 30cm크기의 꽃이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한해살이다.안동권씨(安東權氏) 인물론(人物論)과 구봉(龜峯) 권선생유사(權先生遺事)집을 지은 공의 13대손 권혁근(權赫根,78) 선생과 유허비를 돌보는 후손 권혁조(74)옹에 따르면 공의 묘소(墓所)는 이 일대가 포스코 주택단지로 조성되던 1968년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비봉산으로, 2013년엔 이 일대가 폐기물 공단으로 조성되면서 안강읍(安康邑) 양월리 산려로 다시 이장(移葬)됐으며 이곳엔 묘소(墓所)와 봉산재사(鳳山齋舍) 주변에 해바라기를 심고 충절(忠節)정신을 기린다.공은 사후에도 유배생활을 했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유택(幽宅)이 안정되지 못했다. 후손들 백년(百年)금고(禁錮)형에 처해져 과거를 보지 못하고 경주, 영일 일대로 흩어져 살다 공의 현손(4대손)대에 이르러 이언적(李彦迪)의 문하에서 수학했던 권덕린(權德麟, 병조정랑)이 처음으로 대과(大科)에 급제, 그로부터 관로(管路)가 열리긴 했었지만 역적(逆賊)의 후손이라는 낙인(印)이 찍혀 궁핍(窮乏)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대과(大科)에 급제한 구봉공(龜峯公)의 아들 매헌(梅軒) 권사민(權士敏)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장군과 함께 화왕산, 노곡 전투에서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워 언양 현감(縣監)과 정려각(旌閭閣), 시호(諡號)를 받은 유명한 의병장이다. (자료인용:영일군사, 안동 권씨 인물론 등)

2014-08-08

개발시대 프레임서 벗어나야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민선 6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경우도 역시 그랬었지만, 새 시대의 주역을 맡은 자치단체장이나, 새 프로젝트의 개발자는 물론이지만, 여론 주도층에 있는 사람들조차 가시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나타내 보이고 싶은 의욕에 사로잡혀 장기적인 안목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전략은 자원(특히 예산)의 제한적 조건 때문에 대부분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다. `선택과 집중`에는 지나온 과거와 처해 있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분석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중은 대체로 이런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여기 (now and here)”만 생각하는 것이 대중이다. 그러나 새 시대의 주역에 대한 평가는 “현재 여기 (now and here)”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 곳에서(sometime and there)”이루어진다. 따라서 당장의 가시적 성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평가는 대부분 수사적인 표현이어서 진실과 동 떨어져 있을 경우가 많아 반드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당장에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미리 미리 파악하여 제거하거나 필요한 잠재적인 인프라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최근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바에 의하면 포항테크노파크2단지 사업추진이 큰 난관에 봉착한 것 같다. 무리한 입지선정이 가져 온 결과인 것 같다. 사후 수습에 따라서는 시민의 혈세로 투자된 171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또 얼마나 많은 추가적 재정손실과 사회적 혼란을 감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2008년에 지정된 포항경제자유구역(융합기술산업지구)이 그 지정해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포항시와 경상북도 그리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사업시행자 변경, 사업규모 축소를 전제로 사업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 또한 미지수이다. 우리 지역의 차세대 성장 동력과 미래의 먹거리 마련이 심히 우려된다고 한다.이 외에도 투자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프로젝트들이 여럿 있다. 포항시청의 규모 역시 낭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투자의 실효성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는 대중의 무언의 압력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 그 곳에서(sometime and there)” 묻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우리는 흔히 포스코가 설립될 당시, 인구 불과 7만여명의 도시가 지금 53만여명으로 증가하여 영일만의 기적을 이룬 시민으로 자부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았다. 50여만의 인구를 품고 있는 현재 포항은 과거 포항시와 영일군을 합한 도농통합시이다. 그런데 포스코 설립(1968년4월1일) 직전 1967년말 포항시 인구 통계가 6만7천984명, 당시 영일군 인구 통계가 20만8천48명으로 통합포항시 행정구역으로 보면 합계 인구가 27만6천32명 이었고, 그로부터 도농통합시가 되기 직전 1994년말 인구는 50만7천207명이었다. 이 기간(1967년말~1994년말)의 우리나라 총인구 증가율은 48.16% 이었으니, 포스코가 설립되지 않았더라도 1967년말 인구 27만6천32명에 나라 전체의 증가율을 적용하면, 1994년말에는 40만8천969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포스코 때문에 증가한 인구는 1994년말 까지 약 9만8천238명으로 볼 수 있다.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인구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더라도 이러한 증가추세의 유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포항시의 적정인구규모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돈(경제)이 아니라, 최적 삶의 질을 고려한 적정인구규모, 적정한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복지적 인프라를 향한 담론이 활발해져야 할 때다. 시민들도 가시적 성과로 업적을 평가하는 개발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2014-08-07

예천군 청사 신축이전을 생각한다

▲ 김주일전 외교통상부 대사 50여년 전 국민소득 80불 시대 1960년(필자가 예천군청 잠시 재직,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준년도) 온 국민이 “잘 살아 보세”하고 피와 땀을 흘린 대가로 압축된 경제성장을 이룩해 지금은 2만6천불 시대를 넘어 선진국 문턱을 넘나 보고 있다.60년 그 당시 예천군 본청은 내무과와 산업과(과장은 주사) 두개 과 뿐이었다. 이때 본청 근무 인력은 63명으로 군정을 능히 수행할 수 있었으나 그 후 경제개발과 근대화에 부수하여 행정의 역할과 기능도 그 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어린아이가 성장하면 자라는 만큼 옷도 몸에 맞도록 크게 입혀야 하고 생활양식과 지능도 점점 고도화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행정도 점차 세분, 다양, 고도화됨에 따라 이를 수행하는 관청도 인력증가와 동시에 몸에 맞도록 확장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1930년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예천군 본청 근무 인력은 1962년말 기준 2개과 63명, 1981년에 개축한 당시 본청 정원은 113명이었으나 현재는 1실 11과 2단 283명이 그 때와 같은 규모의 청사에 열악한 환경(좁은 면적) 속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때 늦은 감이 있긴 하나 근자에 와서 군청 청사이전 확장 계획이 관계 당국에 의하여 성안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실로 예천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하게도 예천군은 20여년 전에 청사이전 부지를 미리 확보해 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군청 청사 이전부지 확보와 관련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필자와의 사연이 있다. 90년대 초 본인이 예산총괄국장으로 재직할 당시였다. 때마침 예천담배원료공장이 문을 닫게 됐다. 이 부지는 일반 국유지로 재무부 소관에 귀속된다. 일반국유지 재산은 반드시 공개경쟁입찰로만 매각할 수 있다.그러나 잡종재산으로 분류되면 관할 지자체가 필요에 의하여 매입을 원하면 이를 장부가격으로 매입이 가능토록 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를 일반국유재산에서 잡종국유재산으로 지목을 변경해 장부가격대로 수의계약에 의해 23억8천만원(4만1천386㎡)에 예천군이 매입하게 됐다.이와 같이 꼭 필요한 용도로 어렵게, 소위 특혜를 받아가면서 구입한 청사용도 부지가 4반세기가 지나도록 방치되고 있었다는 것은 실로 아쉽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군 청사 이전과 관련하여 군민의 이해가 상반되는 복잡한 사연들이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후세대를 위해, 지역균형개발을 위해, 근대화의 시대조류에 부합되는 신청사가 건립되기를 기대한다.전국의 시군청사의 규모와 위치로 눈을 돌려 보자. 한 장소에 시군청사가 교통이 가장 혼잡하고 인구가 밀집한 시내 한 복판에 자리 잡은 오래된 군청사는 예천뿐이 아닌가 추측된다.군청 청사와 주차장이 협소해서 차를 몰고 군청을 방문하는 군민들의 주차 불편을 배려하지 못하고, 이미 확보해 놓은 군청 부지를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해 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인근 봉화군이 군청 청사를 외각지대에 지나치게 큰 규모로 호화롭게 건립하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바 있다. 30년,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면 필자는 이를 오히려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신 도청시대 개청과 함께 우리 군민은 많은 기대감과 희망을 갖고 있다. 이러한 호기에 웅비예천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균형개발을 유도하는 길은 이미 25년 전에 확보해 놓은 청사건립 후보지에 신청사를 건립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14-08-06

장애인이 웃으면 소나무·전나무가 함께 뿌리내린다

▲ 강경의지체장애 1급 바야흐로 오늘날은 21세기 최첨단 시대를 실현하는 시뮬레이션 글로벌 사회이다. 이런 디지털 시뮬레이션 사회에서 아직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무리가 있으니 이름하여 `장애인`이다.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에도 장애에 대한 이분법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귀족의식, 민간·사대부 신분의 격차가 격심했던 그 전통사회에서도 장애인의 의식은 `장애`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장애인사였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복지정책 또한 조선 후기에는 상당한 선진국 수준이었다고 한다.실학자 최한기의 `인정(人政)`과 홍대용의 `담현서`에서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대해 강조했고, 중증장애인은 정부가 직접 나서 구휼했다고 한다.세계적으로는 1948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라고 세계인권선언서에 선포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장애인들의 입지는 어떠한가.사소한 이동권에서부터 크게는 생활권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정점에 이른 것이 별로 없다.그 예로 지난 6·4 지방선거 때이다. 투표소는 다행히 집과 근거리여서 휠체어로 이동했기에 나 개인적으로는 별 불편함이 없었다.허나, 문제는 기표대의 높이였다. 막상 투표를 하려고 하니 장애인을 배려한 기표대는 한 곳도 없었다.비장애인의 키 높이에 맞춘 기표소에서 휠체어에 앉아서 투표해야 하는 유권자는 등줄기에 땀나는 작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감까지 포함된 7개의 도장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 과정인데 말이다.현장의 배려로 파일을 무릎에 놓고 연결된 기표봉을 당겨 투표는 했지만 그 참담한 장애인 유권자의 심정을 한 번쯤 알음 해 보는 건 어떨까. 그 여러 개의 기표소 중 한 곳만 기표대를 낮추면 만사 평정할 단순한 배려조차 염두에 없는 저들의 7·30 재·보궐선거에 참여도를 또 한 번 더해야 하나 의구심도 들고 회의감도 느낀다.1990년대 대선 때에는 휠체어가 2, 3층 계단을 타고 3~4명의 봉사자들에 의해 짐짝처럼 드리워져 신변보장 안전장치 하나 없이 모험에 가까운 내 한 표를 내어준 적도 있었다.이젠 대한민국도 2013년 기준으로 경제력 순위 GDP(국내기준) 15위나 되고 지방자치제도도 지난 1991년 부활돼 23년째로 접어들었다. 버금가 성숙한 시민의식부터 개의되어 장애·비장애에 대한 이분법의식 버리고 위정자, 출마자들 또한 당리당락·사리사욕·이권 다 내려놓고 국민의 마음을 살피고 약자의, 음지의 장애인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해 주길 염원한다.나도, 우리 장애인도 국세, 지방세, 기타요금, 생필품, 요식 등의 부가가치세도 어김없이 내며 생존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모리스 크랜스턴은 이렇게 서술했다. “인권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인권은 특수한 위치에서 파생하는 권리가 아닌 인권은 단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속하는 권리다”고.우리 모두가 지역, 신분, 경쟁력에 있어 공통분모를 만들어 소나무, 전나무가 함께 뿌리 내리는 그날을 염원한다.

2014-08-01

활선다도(活禪茶道)

▲ 권오신 로타리 코리아 상임고문그동안 자리를 잃었던 우리 차(茶)문화가 숨을 돌려 회복할만하니 이젠 중국차에 밀려 홍역을 치르고 있다. 우리 차(茶)문화 정신을 살리기 위해 힘썼던 선고차인(先考茶人)에게 민망스러운 경우가 허다하다.중국의 차(茶)상인들은 한국인을 앞세워 대형매장마다 보이차 철관음 대홍포 등 중국 명차를 쌓아두고 차인들을 유혹하고 있다.차인구가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우리 차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많다. 제다, 품질, 품평회가 차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못했을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 차인은 물론 학자나 심지어 차 도구를 만드는 도예작가까지 차의 정신과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에 대해 정리할 시점이다.우리 차의 야생 찻잎은 중국차에 비해서 약효가 뛰어나다. 녹차, 발효차, 떡차 등 종류도 다양해져 경쟁력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는데도 중국차에 왜 밀릴까. 우선 내가 마시는 차부터 생각해 봤다.연전 어느 TV방송 뉴스에서 찻잎에서 농약검출이란 뉴스를 보고난 이후부터 우리 차 봉지를 밀어내고 중국차를 앉히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철관음을 마신 것이 중국차를 선호하게 된 이유였다. 물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발효차를 선호했던 이유도 숨어 있다.명차를 마시겠다는 우월주의나 허영심이 없었는데도 중국차가 차상에 놓인 이유다. 크게 보면 명차, 시장 경제에 밀려난 다도(茶道)정신, 돈만 벌면 되는 차(茶)상인들의 상술이 크게 작용 했을 것이다.우리 차는 이외로 역사가 깊다. 가야시대까지 연원을 댈 수 있으며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화두는 사찰을 중심으로 천년을 넘게 산중에서 자리 잡았다. 최근엔 한류활선(韓流活禪)으로 원불교(圓佛敎) 다산(多山) 종사(宗師)의 이론이신 함다토성(含茶吐聖·물을 주고받고 차를 머금고 그 정신의 미묘함이 마음의 빗장을 열며 모두가 벗이다) 정신도 유명하다.처음엔 녹차를 주로 마시지만 산과 가까이 하다보면 까치밥차, 머위, 냉이, 구지뽕잎, 칡꽃, 산복숭아 꽃으로도 만들 수 있으며 100가지 이상 풀을 모아 덖고 말려 백초차(百草茶)를 만들어 마신다.우리 차는 마음감기를 다스리는데도 좋고 오미자·연차는 한식요리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심신이 하나 되는 융합(融合)의 접신(接神)이나 합일(合一)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곧 다도(茶道)이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차의 깊은 맛에 더 다가 설 수 있다. 이것이 한다(韓茶)의 특징이다. 특히 우리나라 차는 색(色), 향(香) 미(味)를 살리면 살릴수록 명차가 되는데도 연구가 따르지 못했으며 공동체의 정신도 부족했다.세계인들이 하루 25억 잔씩 마시는 커피 인기로 인해 지금 한국의 찻집은 한적한 호숫가나 뒷길로 밀려 난지 오래다.커피 전문점은 2009년 5천200여 곳에서 지난해엔 1만8천곳으로 급팽창했으며 연간 커피는 242억잔(일인당 연평균 484잔), 4조6천억원어치의 커피를 마신다는 게 업계의 통계다.커피믹스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우리 일상을 슬그머니 보는 듯하다. 원두커피 한 잔으로 시간을 즐기는 게 외국인의 커피(茶)문화라면 시간에 쫓기듯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나온 커피를 `들이키는 게` 우리사회의 티타임이다.우리 차가 갖는 차가 갖는 생명력을 모르기 때문이다.찬 기운이 수시로 몸을 파고드는 겨울엔 감기가 잦다. 이 감기를 약으로 다스리면 약화를 입기 마련이지만 우리 차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시키면 감기가 쉽게 들어오지 못할 뿐 아이라 면역력이 길러져 건강상태가 좋아지기 마련이다.한잔 차를 통해서 자연이 내리는 한없는 은혜를 음미해 보고 내 몸을 구성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의 감각을 깨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 차만이 갖는 특성, 즉 활선다도(活禪茶道)의 길인 혜안(慧眼)은 덤으로 얻는 체험이다.

2014-08-01

시민의식과 공무원 역량 통합을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본격적인 휴가철이다. 포항으로 오가는 사람들, 거쳐 가는 사람들로 흥해읍 대련리를 지나는 시가지 우회도로는 더욱 번잡해 진다. 이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포항 시가지를 통과할 수밖에 없어 시가지 교통난이 극심하였다. 당시 이 도로가 준공되면 강동~흥해 지역의 교통문제는 많이 해소되겠지만 남·북구를 오가는 지역주민들의 교통문제는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 지금의 `영일만대로`의 원형은 이미 계획되어 설계까지 된 상태였지만, 3천200여억원이나 소요되는 예산을 포항시가 부담해야만 개설할 수 있었다. 사실 포항시가 그만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고, 혼잡한 시내 교통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 도로를 빠른 시간 내에 개설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래서 찾은 이가 당시 건설교통부에 근무하던 최주영씨였다. 그 분은 포항출신으로서 당시 건설교통부 도로심의관(3급·부이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분의 소개로 그 부서에 있던 여러 과장들과 인사를 나누며, 포항 지역의 교통난에 대한 애로사항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야당시장이 되어 중앙예산을 잘 확보하지 못한다`고 포항 시민들의 원망을 받기도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때만 하더라도 공무원들조차 `국도대체 우회도로`라는 개념을 잘 모르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나의 애로사항을 듣고 있던 그 분이 `국도대체 우회도로`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고, 포항 시가지 교통이 혼잡한 것은 그 원인이 포항 시내를 통과하는 7번, 31번 국도 때문이니 국가가 예산을 들여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국비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명분이 된 것이었다. 결국 이 `국도대체 우회도로`의 건설이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채택되었고, 1998년 봄부터 착공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 분은 관련되는 여러 과장들에게 “우리 동네 큰 사업 하나 도와주시오. 그러면 당신네 동네 사업 있을 때 나도 도와주겠소”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 주셨다.그 때 나는 공무원들도 서로 서로 주고 받기 식으로 협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인재를 육성해 중앙무대에 많이 진출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준공되어 지금은 우리 지역 교통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지금 시가지우회도로(국도28번)는 대련에 입체교차로가 있다. 이것도 사실은 그분의 도움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당초 계획에는 이곳이 평면교차로로 신호등을 설치하게 되어 있어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들이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처지였다. 안전을 위해 입체교차로를 건설하는 데는 당시 약 2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였다.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예산 항목을 확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분과 협의한 결과 새로운 예산 항목을 확보하기 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28번국도건설공사의 설계를 변경하여,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편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이 도로는 외관상 다 준공된 듯한 상태에서 1년 이상 준공이 미루어졌다.사정을 모르는 언론과 시민들의 갖은 원망과 비난은 감수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결과 우리는 안전한 입체교차로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내가 이런 일을 용케도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포항시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시민의 참여의식, 공무원의 사명감과 창의력이 지역발전의 가장 주요한 원동력이다. 시장은 이를 조장하고, 통합하며, 전략을 세워 추진할 뿐이다. 정치인은 협력의 주요한 대상일 뿐, 결코 의존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과 공을 다툴 필요도 없다.

2014-07-31

사방기념공원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

▲ 이경식포항시 산림녹지과 담당 탁트인 바다와 사방사업 전시모습이 잘 이뤄진 아름다운 사방기념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여름바람이 불어오고 녹색향기가 온 공원에 퍼질 때 농촌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관광버스가 연이어 들어온다. 오랜시간을 살아오신 세대이기에 그 분들의 깊은 주름에서 느껴지는 삶은 애잔함을 더 느끼게 한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시면서 60, 70년대 사방사업에 참가했던 상황들을 말씀하신다. 그 시대의 어려운 경제 상황속에서도 산에 나무를 심으며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던 지난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있어 좋다고 말씀하신다. 1975년 오도리지역의 사방이 이뤄졌을 때의 감동을 못잊는 분들도 많이계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사방이 뭔지 모를거라며 염려를 하시며 사방기념공원이 그 역할을 해달라며 당부의 말씀도 잊지않으신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학년별로 단체 체험학습을 오기도한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떠드는 소리에 시끌벅적하다. 사방사업을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기에 사방에 대한 설명과 영상물을 소개한다. 영상물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새삼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표정이다. 임도를 따라 길을 걷다보면 바다를 한눈에 볼 수도 있고, 바다바람을 느낄 수 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들뜬 마음으로 숲에서 얻을 수 있는 휴식도 함께 얻을 수 있다. 가슴을 펴고 크게 호흡하며 소리도 질러본다.사방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곳 사방기념공원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코이카를 통해 새마을 연수 프로그램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사방기념 전시관에 있는 사방의역사 및 사방의 종류와 미래까지도 알게된다. 영상물을 통해 우리의 치산녹화과정을 볼때는 숨을 죽이고 집중하며 관심있게 시청하게 된다. 13분 정도의 영상물이 끝날때는 박수를 치며 `Amazing`, `Great`를 연발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야외전시장에 잘 전시돼있는 사방의 공종들과 디오라마를 통해 더 큰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단끊기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디오라마를 보며 실제장면인줄 알았다며 미소를 보내기도 한다. 타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이나 포항 인근지역에서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도 사방기념공원은 좋은 휴식처이자 훌륭한 교육장이다. 관리가 너무 잘 됐다는 칭찬도 빼놓지않고 해주신다. 여유롭게 사방기념공원을 산책하며 사방사업의 흔적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정말 좋다는 말씀을 해 주신다. 포항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시며 사방기념공원을 매일 찾으시는 노부부가 계시다. 언제나 유쾌한 웃음을 들려주시는 어르신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림은 수많은 분들의 수고와 노력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씀하신다. 잘 관리하고 보전하여 후대가 그 정신을 잘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에 위치한 사방기념공원은 우리나라 사방기술의 우수성과 치산녹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사방기념공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황폐지 조기녹화 지시에 따라 1973년부터 1977년까지 포항 영일만 일원의 4천538ha의 황폐지에 특수사방을 실시해 울창한 산림으로 변모시킨 지역이다.전국 최대 규모의 사방사업 성공지인 영일지구 사방사업의 역사성 보전 및 중요성과 우리나라 사방사업 100주년을 기념해 국내외 사방기술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 지난 2003년 추진계획을 수립, 2007년 11월7일에 문을 열었다.`또각 또각`, `탁탁 ` 사방기념관을 찾는 데크위에 발자국소리가 들려온다.더 많은 사람들이 사방기념공원을 방문해 이 곳의 아름다운 의미를 알게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4-07-28

긴장은 사회발전의 잠재 에너지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민선 시장으로서 처음으로 지방자치제를 통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그 지역의 보수성을 깨뜨려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정체된 사회가 아닌 한 언제나 삶의 형태와 사고방식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농촌과 어촌 사회였던 포항이 포스코로 인하여 산업화된 도시로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자치제로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포항은 많은 변화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보수성의 탈피와 새로운 변화에의 주도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변화는 반드시 긴장을 초래한다. 특히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자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반발은 여러 형태로 은밀하게 갈등을 조장하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에는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 진정한 자치단체장이라면, 그리고 진실로 그 지역사회의 발전을 염원하는 단체장이라면 그 `긴장`을 단순히 줄여야하는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발전의 잠재된 에너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일반적으로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된 도시는 두 부류의 시민이 혼재되어 있다. 원래부터 그 지방에서 나서 살아오고 있는 시민(이를 `원주시민`이라고 하자)과 산업화 과정에서 이주해 온 시민(이를 `이주시민`이라고 하자)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주시민은 정서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향토단체를 결성하는 경향이 있고, 이 단체는 그 결성의 근본 취지에 입각하다보면 자연히 이주시민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배타성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향토단체회원이 무심코 표현하는 `포항사람`이라는 말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이주시민은 자연히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사라지는 심리적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총체적 시민의 역량을 결집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깊이 숙고해야 할 현상이다.우리 사회는 민주사회이다. 민주사회는 여론의 형성과 그 여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올바른 작동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주시민의 참여가 결여된 상태에서 형성된 여론이 지역공동체 전체의 여론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원주시민들 중 지역사회여론의 주도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산업화 이전의 전통사회의 경제적 기득권자들로서, 새로운 산업시대, 자치시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지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주시민은 그 속성상 전통사회라는 테두리내에서 살아왔던 원주시민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점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구각(舊殼)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포항은 학계를 비롯하여 각 산업계에 포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지성들이 많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실 내가 시장에 재임 중일 때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박사급 인재들만 300여명이 있었다. 이들을 시정을 위한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시키는 정도를 넘어, 지역사회의 각종 여론 형성과정을 위한 사교계에 적극 참여시킬 사회적 시스템을 창출할 생각이었다.야당시장이 당선되어 조성된 긴장이 결코 포항시의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았듯이 이들이 지역사교계에서 조성할 긴장이 또한 포항의 발전에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는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갈등을 끌어안으면서 창조성으로 전환시켜 새로운 생각과 행동 양식 그리고 서로에게 개방적일 수 있는 시민과 시민 지도자들에 의해서 작동되어야 한다”는 파커J. 파머의 말에 동의한다. 단체장은 가장 중요한 시민 지도자이다.

2014-07-24

합법이면 곧 무죄일까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용흥동 우방타운 앞 남쪽 언덕위에 지금도 짓다 만 아파트가 있다. `금광포란재`라는 단지명으로 315세대가 아직도 준공을 못하고 콘크리트 골조만 벌거벗은 모양으로 서 있다. 지금 새삼스러이 이 아파트의 허가 문제와 관련하여 내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합법`이라고 해서 곧 모두가 `무죄`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1998년 6월 지방선거에 다시 입후보 한 나는 이 아파트 공사의 허가와 관련하여 지역 주민들로부터 적절치 못한 허가라고 의혹과 비판을 받았었다. 높은 경사도, 진입로 등 도로 상태를 고려할 때, 그런 곳에 아파트 건축을 허가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주민들의 지적 사항이었다. 사실 내가 보아도 그 허가는 결코 적절한 것 같지 않았다.사정은 이러했다. 통합 전 포항시의 인구증가로 인해 주거지역이 턱없이 부족하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임야로 있던 그 곳을 주거지로 변경해 주었고(도농통합 전 포항시), 주거지로 변경된 후 아파트를 건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그 토지를 매입한 사업자가 아파트를 짓겠다고 사업허가(건축허가)를 신청하는데, 당시(도농통합후 포항시) 행정의 책임자로 있던 시장으로서 행정의 일관성, 통일성, 신뢰성이라는 측면에서 허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말하자면 아파트 부지로 지정된 땅위에 아파트를 못 짓게 하는 그런 행정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어진 행정으로 인해 내 심정은 참 답답하였던 것이다.포항은 1995년 1월 1일부로 영일군과 통합하여 소위 도농통합시로 새로 출발하였다.영일군과 통합하기 전 포항시의 면적으로는 도시 인구의 증가에 따른 적정한 주거지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만한 처지에 있었을 법 했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만 하였을 것이다.그러나 도농이 통합된다면 포항시 전체 면적으로 볼 때에는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아파트를 지을 만한 땅이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하는 것이었다.도농통합정책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통합 전 포항시 도시행정을 책임지고 있던 사람들로서는 곧 도농통합이 될 것이고, 통합 후에는 더 적합한 주거지의 공급이 보다 원활히 이루어 질 것이라는 정도의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어야 하는 것이었다.엉뚱하게 허가 당시 시장으로 있던 내가 오해도 받고, 비판도 받았지만, 향후 지방자치행정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임야를 주거지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합법적 절차를 거쳤겠지만 합법이라고 해서 모두가 곧 무죄라고 인정하는 법률적 사고의 관습에서 행정책임자나 주민들이 과감히 벗어날 때 진정한 주민자치,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합법은 때때로 폭력을 동반할 수도 있다. 합법화된 폭력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당연히 저항할 수 있음을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세월호 사건을 보고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때 이 고백이 반드시 법률적인 불법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행정책임자든 지역주민이든 모두가 숙고해야 할 것이다. 히틀러의 독재도 모두 합법이었다고 하지 않았는가?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Prestupleniye i nakazaniye)`에서 사용한 러시아어 Prestupleniye(죄)는 `도를 넘다`라는 뜻으로, overstep에 가까운 뜻이고, nakazaniye(벌)은 사법적 벌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가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때다.

2014-07-17

원전 계속운전, 공정한 논의의 장 필요

▲ 김동규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서 시작된 고리1호기 폐쇄운동 및 월성1호기 계속운전 허가 반대 움직임이 지난 6·4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떠나 이 땅에 원자력발전이 도입된 지 40여년이 흐른 지금, 고리1호기·월성1호기뿐만 아니라 향후 도래할 여타 원전의 운영허가기간 만료에 대비해서도 원전 계속운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논의의 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최근의 계속운전 반대론자의 움직임은 나름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계속운전 최종 결정권자인 국민들이 계속운전의 장단점을 심사숙고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하고 균형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느냐는 측면에 비춰보면 계속운전 반대론자들의 주장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반대론자들은 원전의 안전성과 관련한 사례로 체르노빌원전 및 후쿠시마원전 사고만을 언급하고 그와 비슷한 미국 TMI 원전 사고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다.하지만 그들이 의도적으로 생략한 TMI 원전사고 또한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노심용융이 발생했으나 앞선 두 사고와 달리 원자로건물 외부로 방사능물질이 누출되지 않고 인명피해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나라 원전은 TMI와 유사한 노형이기 때문에 TMI사고는 우리나라 원전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원전보다는 월등하게 안전성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한편 반대론자들은 원전 폐로 이후 발생할 에너지 부족사태에 대한 대안제시 및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총 발전량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원자력발전의 빈자리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대체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전기료 상승은 현재의 두배를 넘지 않을 것이므로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회비용임을 감안하면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논리이다.그러나 현재 태양광이나 풍력을 이용한 발전은 입지적 제약으로 원자력발전과 같이 대규모의 안정적 전력을 공급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전기료가 두 배 오를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전기요금 상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유 가격 인상에 따라 제과·제빵·빙과류·커피 등 여타 제품 가격의 동반상승으로 이어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료의 인상에 따른 파급효과는 국가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로 인해 물가상승과 기업채산성 악화, 대량실업문제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도외시할 수 없다.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와 미래의 자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국가 에너지수급 방안은 최종적으로 국민들의 합의된 의사에 따라야한다.따라서 기존의 운영허가기간이 만료된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을 둘러싼 찬반 양측 진영에서는 그들의 주장과 함께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정보를 근거로 제시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양측의 논리와 근거를 건전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정한 논의의 장이 세워지길 기대해본다.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