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2013년 vs 2014년 여름

▲ 허재열한수원 월성교육훈련센터 교수 우리는 지난해 여름을 잊지 않고 있다. 전력수급이 원활치 않아 절전 생활화를 외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었다. 공공기관 냉방온도 제한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격층 운행, 전기사용 집중 시간대 전기사용 자제 등 수요관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는 6월부터 일찍이 `준비`나 `관심` 등 전력수급경보가 종종 발령됐었다. 한반도 기후변화와 더불어 대용량 발전소 정지가 주된 원인이었다.올해는 아직 성급한 판단인지 모르겠지만, 예년에 비해 시원한 여름을 나고 있다. 한여름에도 전력예비율이 10%를 웃돌며 여유를 보였다. 지난해와 같은 절전운동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올 여름 기온이 유난히 높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전력 공급능력이 높았던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그 덕분에 지난해 보다 약 400만㎾ 정도 높은 공급능력이 확보됐다. 예비율로는 약 5% 정도 상승효과를 보였다.각종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을 확보했거나, 상회한다.하지만, 유독 전력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들의 평균 전력예비율은 20~30%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겨우 10% 내외에서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각 국가별로 나름의 전력 환경이 있다.그 중 우리나라는 전력 `고립국`에 속한다. 주변 나라와 전기 수·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대표적인 탈원전 국가인 독일은 2010년 기준으로 예비율이 무려 96.4%에 달한다. 원자력발전을 제외하더라도 30% 중반의 예비율을 유지할 수 있다.원전을 대신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추구하고 있으나, 변동성이 극심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수십억 유로의 보조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2년간 독일 전체 발전량의 0.084%(2013년 현재) 밖에 공급하지 못해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어 딜레마에 빠져있다.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의 4배에 달한다.프랑스에서는 원전을 반대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오히려 프랑스인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원전기술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캐나다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캐나다형 원전기술을 소개한다고 한다.우리나라도 한국형 원전기술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적대시하고 터부시하는 것이 현실이다.우리는 이미 원전개발 뿐 아니라 계속운전에 대한 기술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단지 그러한 고급기술이 평가절하되는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부의 문제로 인해 전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않다.새삼 전기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의 기술을 스스로 무시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는가. 원전의 계속운전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결정의 문제는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판단돼야 한다.무작정 반대만 하다가는 자칫 소중한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야 하겠다.시원한 여름, 따뜻한 겨울은 계속돼야 한다.

2014-09-11

추석 무렵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시간 보따리를 풀어두고 고향 길을 가장 걷고 싶은 시기가 추석 무렵이다. 어머니와 마실 나갔던 뒷산은 새소리 곱고 녹음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세상살이는 세월호와 같은 참척의 고통이 닥치는 등 늘 평화롭지 못하다. 38년 만에 일찍 닥친 추석이다. 명절 선물은 휴가지에서도 모바일로 구매하면 택배회사가 가져다준다. 차례 상에 올릴 제수꺼리도 마찬가지. 지금은 송편 빚는 집도 많지 않고 따로 명절빔을 사 입히는 집 역시 드물다. 고향집 가족과 이웃집이 줄어들어 차례자리에 서 있어야할 부모, 형제, 자식의 그림자가 그립기만하다. 큰 집에 가족들이 모이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세월인가.원룸, 아파트로 대체된 거리는 가을햇살의 파리함에 곧 묻힌다.나이가 들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해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대체휴일까지 낀 추석연휴여서 여행을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이들이 늘어났다. 올 추석연휴는 잘만 활용하면 일주일은 놀 수 있어서인지 유난히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조상님 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이다.한 두세대전의 일이지만 어머니는 볕 좋은 날을 잡아 집안의 문짝은 죄다 떼어내 물로 씻고 햇볕에 바짝 말린 뒤 새 문종이를 바르셨다. 떼어낸 문짝들이 담벼락에 기대져 해바라기를 하면 추석이 오는구나고 여겼다.어머니는 지난 가을 책갈피에 끼워두었던 고운 단풍잎 두 장을 딸아이 방 문짝 고리 옆에 반듯하게 창호지로 덧발라 주시는 멋스러움도 늘 간직하셨는데 세월이 흘러 그 집들은 다 허물어지고 문종이를 발라야하는 문짝대신 유리창이 달린 시멘트집들 뿐이다.문짝을 떼어내 일 년 내내 쌓인 먼지를 물로 씻고 창호에 찹쌀 풀을 입히던 일, 풀비가 유리 닦기로 바뀌었을 뿐 집나간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오늘도 그대로이다.바깥세상에서만 돌다보니 설탕 맛,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자녀들은 어머니의 손맛이 추석 무렵이면 유독 그립다. 가마솥 뚜껑을 열고 잡곡밥위에 얹어 속살까지 구수하고 얼큰하게 만들어진 장떡하며 가지, 밀가루를 살짝 입힌 애동 고추를 꺼내며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가야 이것들도 다 제 간을 가졌다. 양념을 너무 치면 제 간을 잃는다”라고.제 간을 잃는 처사가 세상살이에 어디 한두 가지만 될까.어머니의 마음은 하나라도 자신의 것을 물려주고 싶어 하셨고 다듬지 않은 말이라도 생활의 지혜고 길잡이다.백석은 `고야(古夜)`에서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째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 집 할머니가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 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백석은 정겹고 푸근했던 어릴 적 명절맞이를 다채로운 시각·후각으로 넉넉하게 살려 냈다.“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 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 자연의 풍요로운 생명력은 한가위에 한껏 치오른다.” 김남주(1946~1994, 전남 해남)의 시(詩) `추석 무렵`이다.시인이 본 추석 무렵은 그 관능적 생산력을 귀향길 고추밭에서 마주친 여인네들의 엉덩이로 표현, 익살맞게 노래했다. “고향이 아무리 객지처럼 썰렁하다 해도 자식 보고픈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막내딸이 추석이라고 송이를 보내왔다./ 바빠서 못 온다고/ 아 내겐 송이 냄새보다는/ 사람의 냄새가 그리운 것을” (조병화의 시 `송이`)고향 명절의 추억은 어느 사이 흑백 사진처럼 빛 바래간다.

2014-09-05

윈스턴 처칠을 생각하는 한가위

한국에는 고속도로도 없고 종합제철도 없던 1965년 1월, 조강능력과 제철기술로만 따져도 `세계 3대 최강국`이었던 영국에서 한 저명한 인물이 숨을 멈추었다. 향년 91세.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장군이 “저는 술과 담배를 일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항상 건강을 100퍼센트 유지하는 비결입니다”라고 은근히 뻐기자, 곧바로 “나는 술을 무척 즐기고 담배도 아주 좋아해서 항상 200퍼센트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맞받았던 인물. 그는 윈스턴 처칠이다.한국인은 흔히 문장 하나로 처칠을 기억한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즈음, 처칠은 재야에 있었다. 세계정세를 통찰하는 인물이 가만있진 않았다. 영국의 재무장을 주장했다. 외면당했다. 그때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피로감이 영국사회를 지배했던 것이다.영국은 히틀러의 전쟁에 휘말렸다. 영국을 구해내고 승리를 거둬야하는 리더십이 요구되었다. 1940년 영국의 여론이 처칠을 총리 관저로 불러들였다. 독립심과 자존심이 세서 정당이나 의회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었던 처칠이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짊어진 총리로서 의회에 가서 연설을 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여러분께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한국에도 처칠의 저 말을 대통령 취임사에 빌려 쓴 대통령이 있었다. 19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이다. `박정희의 사람인 김종필과 박태준`의 손을 잡고 50년 만에,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며 대통령에 취임한 그가 왜 처칠의 저 말을 인용했을까? 그때는 한국이 `6·25전쟁 후 최대 국란`이라 불린, 국민이 `아이엠에프(IMF)사태`라고 기억하는, 국가부도로 내몰리는 외환위기사태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그날 김대중은 조금 울먹이며 `피와 땀과 눈물`을 말했다.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주당 10만 원씩 나가던 주식들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돌변한 시절, 그 말은 국민의 가슴을 건드렸다. `금 모으기 운동`도 범국민적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의 말들은 국민의 가슴에서 멀어져갔다. 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경사를 가슴으로는 받지 못했다.1953년 처칠은 6년 집필의 대작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뜻밖의 일로 보일 테지만, 처칠은 저술가요 화가였다. 처칠을 연구한 어느 학자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노벨문학상이 처칠을 영예롭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처칠이 그 상의 가치를 높였다고 하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라 했다. 총리가 되기도 전에 처칠은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무릇 전쟁을 수행하는 최고 사령관에게는 두 가지 사항이 필수적이다. 훌륭한 전략을 수립하는 일과 충분한 비축을 유지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현재 한국은 분단 상태고 휴전선에는 언제나 긴장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어전쟁을 전제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 정치판은 어떠한가? 날마다 총칼 없는 전쟁이다.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총칼 없는 정쟁(政爭), 이것이 이 나라의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이번 한가위에 국민에게 안기는 선물이다.박근혜 정부 19개월, 지금쯤 국민이 받아야하는 한가위 선물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현가능의 훌륭한 전략과 충분한 비축 유지의 비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전쟁이 한국의 `정치력`을 파괴해버린 상태다. 처칠의 그 `전쟁`을 `평화체제`로 바꾼다면, 이 나라의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훌륭한 전략과 충분한 비축 유지의 비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대통령은 한가위를 맞아 대(對)국민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다. 처칠의 그 한마디처럼 국민의 가슴을 움직일 수는 없을까? 국회의원들은 정쟁을 그만두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지역구에 내려오지 말고 여의도나 지키며 계속 싸우는 것이 더 낫겠다. 건강에 해롭지 않을 만큼 알맞게 단식을 하는 것은 자유선택이다.이대환 작가, 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2014-09-05

지속가능한 창조도시 포항, 지금부터 시작이다

▲ 이강덕포항시장 최근 우리 사회 최고의 화두는 `경제 살리기`다. 정부도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수출 균형경제`를 중심으로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창조경제를 통한 역동적인 혁신경제`라고 할 수 있다.우리 포항도 민선6기 출범과 함께 철강산업 일변도의 산업구조로 날로 침체해 가는 지역경제를 살리고 도시의 재생을 위해 `창조도시` 건설을 목표로 행정을 집중하고 있다.`창조도시`란 도시의 성장과 쇠퇴과정의 패러다임에서 나타난 개념으로 창조성이 도시에 반영되어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도시라고 할 수 있다.지금까지 포항은 철강산업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어 왔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신생국의 추격으로 철강산업 침체와 함께 지역경제도 장기 침체됨에 따라 지역산업 다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왔다. 이에 따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창조도시`건설을 목표로 했다.우선 철강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포스텍과 한동대 등 대학을 포함한 방사광가속기 등 지역의 우수한 첨단과학 인프라를 활용하여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을 육성할 방침이다. 신소재와 부품, 에너지, 환경, 로봇, 바이오 등 첨단 분야의 기술주도형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대기업은 물론 1인 창조기업과 벤처기업, 중소기업 등을 아우르는 기업 육성과 기업유치 활동을 펼칠 생각이다.물론 `창조도시` 만들기는 사회 각 부분의 협력과 조정을 필요로 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힘든 이유로 인해 꾸준한 추진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의 유행으로서 창조도시를 이야기해서는 안되며, 사업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3일에 `창조도시` 건설이라는 목표 실현을 위한 추진협의체로 `창조도시추진위원회`를 출범하고, 강소기업 육성과 물류산업 육성, 해양관광산업 육성, 행복기반 조성 등의 4대 전략을 마련했다.독일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 `유럽의 병자`로 불릴 만큼 경제적으로 취약했지만, 2000년대 들면서 `40-80클럽(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인구 8천만 명 이상인 국가)`에 가입할 만큼 글로벌 리딩국가로 발돋움 했다.그 이면에는 1천500개가 넘는 강소기업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강소기업들 덕분에 독일은 2004년부터 8년 연속 1천억 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유일한 선진국이며, 선진 G7 국가 중 1인당 GDP 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우리 포항이 `창조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관·학이 합심하여 창조경제가 싹트고 지식근로자들이 몰려올 수 있는 문화적 토양과 실천적 정책처방을 마련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창조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도시토양을 갖추기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모두가 상품수출과 기업 유치에 치중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와 함께 세계 유수의 창조적 인재를 유치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이들이 머무르면 관련 기업과 연구소가 올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관련 핵심 산업은 우리 포항의 중심산업으로 정착하게 될수밖에 없다.이제는 보다 큰 장사를 위해 종자돈을 풀 때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투자의 효과를 사람들이 단번에 느끼지 못하더라도 인내하고 남보다 먼저 씨앗을 뿌리고 키워나갈 생각이다.

2014-09-04

오천비행장 그리고 포도밭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포항은 울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도시다. 국가기간산업인 철강을 생산하며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성장을 견인했고, 근면·자조·자립정신의 새마을운동을 일으켜 근대화의 정신적 토대까지 마련한 도시다. 지역사회 원로이면서 현재는 해맞이회장으로 활동하는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로부터 포항의 현대화 과정에서 있었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주외지인들은 포항하면 가장 먼저 포항제철소를 떠올린다. 실제로도 포항제철소가 포항 근대화의 주연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포항의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하는데 단초와 기반이 된 조연들도 여러 있다. 그 중 하나가 오천비행장이다.현 포항공항의 전신인 오천비행장은 1943년 9월 영일군 오천면 일월동에 건설됐다. 당시 일월동을 비롯해 비행장 인근의 도구와 청림동 등이 모두 행정구역상 오천면에 속했기 때문에 아마 오천비행장으로 명명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용도는 일제의 군용비행장이었다. 누가 만들었던 간에 이로써 포항은 땅과 바다와 하늘 길을 모두 가지게 됐다.일제의 징용에 의해 끌려와 비행장 건설에 투입된 인력은 현장을 관리·감독했던 일본군들로부터 혹독한 노동을 독려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치 노예처럼…. 타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 해외 전쟁터 등으로 징용돼 많은 희생을 치렀던 반면에 포항사람들은 대부분 비행장 건설에 징용되어 상대적으로 희생이 적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오천비행장이 건설된 지역은 원래 동양 최대의 포도밭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현재의 해병사단 내에 있는 일월지와 골프장 일대, 청림동 해병숙소 일대, 그리고 동해 도구에 이르기까지 `삼륜(三輪)포도원`이 광활하게 자리했다. 이 포도원은 우리나라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된, 이른바 식민지 착취기관인 일제의 동양척식회사가 1914년 5만여 평의 국유지를 일본인들에게 헐값에 분양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포도원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영일군사(史)는 1934년 당시 이 포도원의 면적이 자그마치 60여만 평에 달해 동양 최대 규모의 포도농장이었으며, 한국인 인부도 연간 3만2천여 명이 동원되어 포도농사를 지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 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동양 최고의 포도주로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또 이 포도원은 포항지역 농업이 그전까지는 대부분 품앗이, 두레 등 전통방식과 영세규모로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비교적 큰 규모의 공동작업장을 갖추는 등 농장 형태의 첫 사례로 꼽힌다. 특히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탄생시킨 곳으로도 더욱 유명하다.이 포도원이 비행장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941년 12월 8일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부터다. 일제가 이 포도밭에 군용비행장인 오천비행장을 건설하면서 포도밭은 점차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 후 6.25전쟁을 거치고, 우리나라 해병대 기지와 골프장 등이 들어서면서 포도밭은 거의 사라졌다. 필자가 1963년 오천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오천비행장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전하면서 일본과의 인연을 마감한다. 포도밭과 비행장, 이 둘은 지역에서 일제의 수탈과 만행을 보여주는 아픈 역사를 가진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오천비행장은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만약에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오천비행장을 점령하게 되었다면 미군의 전투기가 뜨지 못하고, 군수품이 제대로 보급되지 못하여, 특히 동해안 지역의 작전수행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세기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도 오천비행장과 인연이 깊다. 그녀는 휴전 이후인 1954년 2월 인덕산 중턱에서 1만여 명이 넘는 미 해병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오천비행장에 내렸다. 오천비행장은 오늘의 포항공항으로까지 발전하기에는 숱한 영욕을 함께 했다.오천비행장이란 존재로 인해 해방 이후 미군이 포항에 용이하게 주둔할 수 있었고, 6.25전쟁 때는 미 해병1사단이, 그 이후에는 우리의 해병대가 터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군과 해병대의 주둔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게 된 것도 결국은 오천비행장의 덕이라 볼 수 있다.어쩌면 포항지도를 확 바꾼 포스코가 포항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이면에는 포항공항의 존재 사실도 한 몫 했다 할 수 있다. 오천비행장이 포항공항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돌아보면 군사시설을 넘어 지역경제의 디딤돌 역할을 했음을 회고케 한다.

2014-09-04

건강보험료 형평성, 동일한 부과기준으로 해결해야

▲ 임성옥위덕대 교수·사회복지학과 세계 각국의 대부분 제도가 그러하듯, 서로의 것을 배우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실정에 맞는 제도로 정립되기 마련이다. 사회보장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비록 도입 초기에는 일본 것을 참고 했으나 요즘은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부러워할 정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를 배우기 위해 오고 있으며 특히, 베트남에는 우리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수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건강보험 발전과정과 관련해 여전히 개선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1977년 직장의료보험으로 출발해 1988년 농어촌에 지역의료보험을 도입하면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에 대해 이원화된 부과체계를 운영해 왔다. 그러다가 2000년에 건강보험이 통합되고, 2003년 건강보험 재정까지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부과체계는 과거의 이원화 방식이 유지돼 오고 있다.직장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해 단일 재정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부과체계는 여전히 통합되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형평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건강보험의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직장가입자는 다시 보수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는 부류와 보수 이외에 연간종합소득 7천200만원 초과분에도 보험료를 납부하는 부류로 구분이 된다.또 지역가입의 경우는 종합소득이 500만원 초과하는 부류와 초과하지 않는 부류를 구분해 부과방식을 달리한다. 또 여기에서 미성년자·주부·노인 등에 대해서는, 직장 피부양자와 같이 보험료를 전혀 부담하지 않는 계층과 지역세대원처럼 성·연령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는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이처럼 다른 사회보험의 부과체계보다 복잡하게 설계된 건강보험의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에게 불만의 요소가 되고 있다.직장가입자는 직장가입자대로 소득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자영자들에 비해 높은 보험료 부담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반면, 지역가입자들은 소득 이외에 재산, 자동차 등 소득 이외의 여러 대리변수로 보험료를 산정하는 방식 때문에 불만을 토로한다.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이로 인한 보험료 관련 민원만 5천만건 이상 발생하고 공단 전체 민원의 80%를 차지하는 등 제도에 대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가입자의 부담능력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해 생계형 체납자가 양산되고 6회 이상 보험료를 체납한 급여제한자의 진료비로 건강보험 재정이 누수 되며, 경제적 부담능력이 있음에도 직장피부양자로 등재되거나 고소득 자영업자의 지역보험료 부담 회피를 위한 직장가입자 허위취득 사례 발생 등은 역설적으로 건강보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의 본질은 직역에 상관없이 합리적이고 동일한 기준 아래에서, 부담능력에 비례하여 보험료 납부가 이루어짐으로써 사회연대성 원리가 회복되는 것이다.한국처럼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대만 등 OECD주요국들은 우리와 달리 동일기준하에 소득을 기준으로 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부담능력이 현저히 줄어 들었음에도 오히려 부담료가 증가하는 이런 기형적인 상황은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는 결국 형평성의 문제로, 건강보험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제도 도입 이후 37년 동안 건강보험은 우리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많은 이바지를 해왔음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제 형평성을 확보하면서 동일한 보험료 부과체계로 개선하여 보장성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때이다.

2014-09-03

공공하수처리시설 운영관리 실태평가를 하며

▲ 이용태구미시설공단 대리 `공공하수처리장`에서 시설 관리를 맡고 있다. 일반인들이 듣기에 다소 생소한 분야의 일일지도 모르겠다. 용어 그대로, 정해진 지역 내 각 가정이나 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를 공동으로 처리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렇게 10여 년 동안 하수처리 과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던 중 대구지방환경청의 `공공하수도 운영관리 실태평가` 위원으로 참여를 하게 됐다. 평가를 받던 입장에서, 다른 하수처리장의 공정운영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해 관심과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한편 `정부3.0`의 핵심가치인 투명성 확보와 시민참여 활성화를 직접 느껴보는 좋은 경험이 아닌가 생각되어, 기대감 또한 컸다.공공하수도 운영관리 실태평가는 환경부 주관 아래 공공하수처리시설 운영관리의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있는 하수도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지방 환경관서에서 관할구역 내 자치단체별 규모별로 그룹을 구분해 매년 실시하고 있다. 관계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 민간단체 등이 평가단으로 구성이 되어 제출한 자료를 기본으로 운영관리 실태를 평가하게 된다.올해는 현장관리에 큰 비중을 두는 것 같았다. 평가위원들은 하수처리 공정을 일일이 둘러보며 예상 밖의 질문을 하는 등 한낮의 불볕더위에 버금가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막상 평가를 하는 입장이었지만,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설명하는 담당자들의 모습에 새삼 동료애를 느끼며 묘한 감정이 일기도 했다.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단지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공공하수처리시설과 폐수종말처리시설이 속속 건설·운영되고, 하천수질이 크게 개선됐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후로도 다양한 수질개선 대책의 도입과 지속적인 예산투자 등으로 하천과 강의 수질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일반적인 하수처리 공정은 대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유입된 하수를 침사지에서 스크린 설비로 이물질을 걸러주고, 1차 침전지를 거쳐 생물학적 처리를 한다. 그 다음 다시 2차 침전지를 거쳐 여과기 및 소독조를 통해 최종적으로 방류를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된 슬러지(찌꺼기)만을 모아 농축과 소화, 탈수 과정을 거쳐 매립하거나 퇴비화 또는 소각처리를 하는 등 마지막 부산물까지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아울러, 2012년 1월부터 방류수 수질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대부분의 처리시설에서 생물학적 처리공정 중 고도처리 공법을 추가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 공정에서 하천의 부영양화와 녹조를 유발할 수 있는 질소(N)와 인(P)을 제거할 수 있으므로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하수처리시설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하수처리에 대한 막대한 예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각 가정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를 줄이는 일이다. 또한 공장에서 처리되지 않은 폐수를 몰래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물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 나아가 환경을 살리는 일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다. 물을 사용하고, 처리하고, 생산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한다. 즉,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물을 아끼고 물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끝으로, 우리 지역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수많은 관계 전문가와 민간단체의 끊임없는 관심과 협조에 감사드린다. 더불어, 전국의 수자원보호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공하수처리시설 종사자들의 노고에도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돌고 도는 것이 물이다. 무심코 버린 생활하수가 먹는 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4-09-01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함께 나섭시다

▲ 이강덕포항시장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5%가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절대 다수의 국민들 사이에는 어떻게든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음식물쓰레기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데 있다.나라 전체로 볼 때,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지는 손실 비용만도 한 해 20조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우리 포항만 해도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가 약 150t에 이르고, 한해 처리비용만 약 70억원에 달한다.곧 다가올 추석과 같은 명절이나 집안의 대·소사를 앞뒤로 해서는 집집마다 음식을 넘치게 장만하는 식문화로 인해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 양은 어마어마하다. 언제부터였는지 같은 음식을 두 끼 이상 먹으면 이상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상다리가 휘어져야 보기 좋고, 남은 음식물이 버려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풍조가 생긴 것 같다.잠시 미국에 머문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나라답게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역시 넉넉했다. 아무리 덩치가 큰 미국사람들이라도 어떻게 이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의아해 했다. 미국사람들은 오랫동안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즐겼다. 어쩌다 음식이 남으면 꼭 싸가지고 갔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포장해 가면 구차한 촌스러움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주저를 하지는 않았던가?음식물쓰레기 줄이기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우선 많은 식재료를 사다가 만드는 음식의 양을 필요한 만큼 줄인다면 식재료비용과 시간 낭비, 노동력과 열에너지 및 쓰레기의 최소화 등 일석오조(一石五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한 의식만 바꿔도 시간과 비용, 노동력의 낭비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게 된다.음식물쓰레기가 늘어난다면 환경오염은 물론 막대한 처리비용은 결국 우리의 몫이 되고 만다. 따라서 음식물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는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꼭 필요한 식품만 구입해서 적당량만 요리하고, 먹을 만큼만 덜어서 남기지 않고 먹는 것도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식당에서는 먹지 않을 음식과 자신의 식사량을 미리 알려줘서 먹을 만큼만 주문하고 여럿이 먹는 음식은 개인 접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먹고 남은 음식이 담긴 그릇에 이물질을 버리지 않고, 남은 음식은 포장해서 가져가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식당에서는 남은 음식을 푸드뱅크와 같은 시설을 통해서 이웃과 나누는 것도 생활의 지혜가 될 수 있다.조상들은 벌써부터 “먹는 음식을 그냥 버리면 후손들이 굶주리는 가난을 겪는다”는 말로 음식물쓰레기가 생기는 것을 나쁘게 생각했다. 이번 추석 연휴만큼은 각 가정에서는 준비한 음식을 다 먹지 못해 일부를 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궁극적으로 환경운동이요, 나아가 국토를 사랑하는 애국운동이라고 생각한다.개인의 작은 실천이 우리 포항을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다. 포항에서만 연간 처리비용이 70억원에 달한다는 음식물쓰레기를 30%만 줄여도 약 20억원을 아낄 수 있다. 그 돈을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 등의 비용으로 사용한다면 포항은 더욱 행복한 도시가 될 것이다.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

2014-08-29

다양한 사회와 접촉점 넓혀야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시장 재임시절에 과거부터 잘 알던 모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그가 한 말을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형님, 국회의원 두 번 하니까 내가 참 무식해 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책을 볼 시간이 없더군요” 그렇다. 나도 그 말에는 완전히 공감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 볼 시간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정치인들은 시간이 더 없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은 특별히 더하다. 직업 중에서도 책(문서)를 가장 많이 보아야 할 직업은 판사인 걸로 알았다. 소송관련 문서를 보지 않고는 재판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시장을 해 보니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매일 그 많은 결재서류를 보지 아니하고는 결재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시장은 책 읽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권하고 싶다.인간은 `사회적 소산`, 즉 `사회적 결과물`이다. 살아 온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경험, 조건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표상체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 양식 또한 그 표상체계에 대체로 의존한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이나 삶의 형태가 비슷한 사람들은 그 사고와 행동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출신지가 같은 사람들, 출신 학교가 같은 사람들, 종사하는 직업이나 처해 있는 조건이 같은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따라서 표상체계가 비슷한 한 집단의 여론을 그 지역사회 전체의 여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대 정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역사성을 띤 표상체계에만 의거해 앞서가는 시대정신을 비판한다면, 우리는 시대정신에 뒤떨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지역의 여론주도층이 가지고 있는 표상체계가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이다.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역사회를 나는 `고인 사회`라고 본다. `고인 사회`에서는 결코 새로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동성마저 상실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지역경제활성화 문제를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중앙정부는 `창조경제`를 화두로 던져 놓은 상태지만 아직도 그 개념조차 불분명하다. 창조경제를 지금까지 없던 사업활동이나 사업형태로 보고 우리지역 산업의 다각화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창조경제의 개별적 효과가 어떻게 드러나더라도 창의력이 요구된다는 사실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표상체계`를 뛰어 넘는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민선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세대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교체된 앞선 세대와 뒤 이은 세대의 `표상체계`가 같다면 어떤 혁신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한마디로 `다양한 사회의 접촉점`을 넓혀야 한다. 접촉점의 확대를 위해 첫째는 `다르다`는 이유로 여론형성층에서 배제된 사람들도 차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우리 지역에는 산업화과정에서 다양한 출신지, 다양한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이들 또한 지역사회의 여론주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분야별로 뛰어난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는 점이 우리 지역의 강점이다. 지역대학과 산업체로부터 충분히 수혈받을 수 있다. 셋째,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다양한 사회의 접촉점`을 넓혀 나가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 지역의 시장은 물론 시 공무원들 모두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더 많은 책을 보기를 바란다. 지성이 없는 삶은 맹목이다. 삶(실천)이 없는 지성은 공허하다. 이강덕 시장이 우리 지역을 삶(실천)과 지성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해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끝

2014-08-28

포항-포스코, 상생(相生)의 이름으로

▲ 이정식포항제철소장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는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가 소중한 매우 가까운 관계다. 기업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기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소속된 공동체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면 기업 역시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은 자체 성장과 발전을 위해 사회를 한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세계 최대 자선단체로 41개국 1천800여곳에 지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유나이티드 웨이 월드와이드(United Way Worldwide)의 브라이언 갤리거(Brian A. Gallagher) 회장. 그가 지난 4월 한국을 찾아 전경련 초청 강연에서 강조한 `공동의 효과`야말로 포항제철소가 포항시를 위해 해야할 역할을 잘 정의해 주고 있다.이런 의미에서 며칠전 이강덕 포항시장이 `포항 그리고 포스코`라는 타이틀의 신문 기고문을 통해 포스코를 두팔 벌려 껴안아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 등 기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포항제철소 전임직원이 고마움을 느꼈다. 이처럼 단체장이 취임 일성으로 지역과 기업간의 유대강화와 동반성장을 강조하신 데 대해 잔잔한 감동의 울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기업이 지역사회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포스코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응원해 준 포항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은 포항제철소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반으로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익성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포스코가 지역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과 혜택이라 생각하며, 이 같은 수익성 창출은 신규투자의 확대로 이어져 지역주민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인재를 기업에 알맞게 육성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밑거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철강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기업활동의 `생태계`조성에 기여해, 포항시가 글로벌 철강도시로 한번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며, 지역의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으로 발전·육성시킬 수 있는 기회들도 제공할 것이다. 더불어 글로벌 철강도시에 걸맞는 진정성 있는 환경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기술개발에 매진해 포항을 세계최고의 환경과 기술 허브 도시로 만드는 일도 포스코가 추구하는 상생의 모습이다.이외에도 포항제철소를 포함한 출자회사, 외주파트너사 임직원들이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소비를 촉진하는 것과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제반 활동들이 결국 포스코와 지역과의 미래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지난 7일 포항시와 체결한 포항제철소 투자확대 양해각서 역시 포스코의 확고한 지역과의 상생마인드를 담아 포항시에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이날 포스코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철강 본원경쟁력과 안전 확보에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포항제철소는 노후설비 성능복원 및 안전시설물 확충을 위해 2016년까지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정비비 예산 등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이는 올해 제철소내 설비유지 및 보수에 투입되는 1조원의 예산과는 별도의 투자규모이다. 그래서 이러한 투자가 궁극적으로는 포항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체감적 파급효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철강업의 국내외 기업환경이 순탄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지원과 응원이 없으면 포스코의 일류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수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권오준 회장은 포항이 시민과 기업간 상생도시의 세계적 표본이 되도록 상호간 협력증대에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포스코 전 임직원 역시 지역이 없으면 기업도 없다는 결단이 있어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포항제철소에 뜨거운 성원을 아끼지 않는 포항시와 시민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서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스코와 포항시민이 굳게 맞잡은 상생의 손은 도시 성장 동력의 불씨를 계속 지펴가는 아름다운 손이 될 것이다. 포스코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53만 포항시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민선 6기 이강덕 시장이 이끄는 포항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2014-08-25

제대로 된 통일논의를 기대해 본다

▲ 김영문 한동대 교수·전 민주평통 부의장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통일준비위)가 지난 7일 첫 회의를 가지며 공식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며 통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가져본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요 반드시 이뤄야 할 국가최대의 숙원사업이므로 역대정권 마다 나름대로의 통일정책과 통일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쟁만 없었을 뿐 분단 상태의 현상유지에만 그친 소극적인 통일정책이나 대다수 국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해 오해와 저항을 받았던 통일정책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통일대상인 북한의 마음을 얻지 못한 통일정책들로 인해 분단 60여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도 통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준비위가 기존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기능과 다소 중복된다는 논란은 양 기관이 각각 장점을 살려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논의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면들만 바라본다면, 한반도통일은 과연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더욱이 국내외 정황과 국가안보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선진일류국가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하기위해서는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아무튼 정부의 통일정책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번 기대를 걸어 봤으면 한다.통일을 향한 통일정책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통일의지는 물론 남한 국민들 그리고 북한정권과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모든 요소를 갖춰야 한다. 통일준비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연초 `통일대박론`과 3월의 `드레스덴 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강력하게 담긴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준비위의 인적구성으로 보아 정부 측 위원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외교안보 분야 및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을 총 망라하고 있다. 이런 조직 구성이라면 열린 공감대 형성은 물론 온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 정부와 온 국민들의 통일을 향한 열망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와 통일을 함께 이뤄가야 할 북한을 끌어 낼 수 없다면 또다시 공수표로 돌아갈 것이다. 북한 정권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드레스덴 구상`을 `체제통일`을 향한 흡수 통일 망상이라 일축하며 줄곧 비난해 오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의 말을 빌린다면 북한주민들 간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준비위가 첫 회의에서 그 동안 연구한 과제들을 대통령께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안된 남북한이 공동이익을 얻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충분히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새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번 통일준비위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통일준비위의 보다 구체적인 활동을 기대한다면, 통일의 이점이나 편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대국민 설득력을 보강하고 통일비용에 대한 국민의 경제적, 심적 부담을 줄여갈 정책을 개발하여 국민들의 통일 열망을 제고시켜야 한다. 특히, 통일 무관심 세대라 불리 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통일의식개발은 필수적이다. 더불어 희망적이고도 긍정적인 다양한 종류의 통일담론을 조성하여 지속적으로 확산해 갈 때 온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그리고 북한을 좀 더 빠른 시일 안에 남북한 간 교류협력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회복이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야 말로 신실한 대화를 위해 “남북이 먼저 신뢰를 쌓자는 것이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보다 인내를 가지고 북한을 설득시켜야 한다. 이러한 신뢰의 바탕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과 함께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민생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양한 분야를 발굴하여 구체적으로 실행해 간다면 북한도 흔쾌히 교류 협력에 응 할 것이다.통일은 더 지체할 일이 아니다. 멀리 오래 갈 거 어디 있겠는가. 급한 대로 문화예술과 스포츠 분야의 교류부터 시작해 보자. 당장 눈앞에 닥친 인천 아시안 게임 참가나 추석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부터 성사되길 기대해 본다. 이렇게 하나하나 화해협력을 위한 서로의 신뢰를 쌓아 갈 때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번영된 조국통일의 길이 앞당겨 질 것이다.

2014-08-22

치바이스와 한국화 체계 세운 위대한 화가, 김영기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홍콩 등 국제경매시장에서 가장 고가(高價)로 잘 팔리는 세계 5대 화가 가운데 3명(제백석, 이가염, 장대천·齊白石, 李可染, 張大千)이 중국출신 작가이다. 미술 쪽에 깊이 발을 딛지 않은 사람도 세 사람의 이름은 들은 적이 있을 것. 물론 지금의 중국이 G2에 이르는 막강한 부를 업은 신 부호들의 영향이 크기도 하지만 이들 3명이 동양미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반론이 없다. 후난성 상담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치바이스(齊白石·1863~1957))는 소목장(小木匠)을 만들어 입에 풀칠이나 했다. 가구에 간단하게 입힌 초충(草蟲)류 그림솜씨가 시장 일대에 화제를 뿌렸던 시기, 제백석의 그림에 놀란 북경대학 백발의 교수가 직접 찾아와서는 치바이스에게 체계 있는 화업(畵業) 공부를 제안한다.거듭된 간청에 굴복한 치바이스는 나이 마흔이 넘어 북경대학에서 문인화 공부에 몰두, 중국 근세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가 됐으며 이가염, 장대천을 걸출한 화가로 키웠다.그가 버린 화선지는 누각을 덮었다.거리의 화가를 서울대에 입학시켰다면 나라가 들썩일 데모가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시킨 중국의 문화적 융숭함은 배울만하다. 문화 대국이란 말이 실감나는 치바이스의 성장 일화이다.간결하고 도끼로 나무를 내려찍듯이 힘차게 붓을 휘둘러 초화(草花), 새우, 벌레 등을 삶의 정취, 유머가 넘치는 화풍으로 숱한 작품을 남긴 그의 미술세계는 명·청 시대를 살았던 팔대산인(八大山人), 오창석의 화풍을 많이 따랐다. 선이 굵은 전통적 수묵 바탕에서 청신한 현대적 감각을 드러내는 독특한 화풍을 창조했었다.치바이스는 북경 미술학원 교수로, 혁명이후 말년엔 중국미술가협회 주석에 올랐다. 치바이스 밑에서 먹을 갈고 화업을 전수받은 인재가 일제 강점기 서울에서 태어난 청강 김영기(晴江 金永基·1911~2003)이다.한말의 저명한 서화가 이신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맏이로 태어난 청강은 1932년, 당시로서는 일본을 택했던 조선의 젊은이와는 달리 북경 유학길에 올랐다. 보인대학에 입학하는 한편으로는 바로 제백석의 문하에 들어가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과 정신을 익혔다. 청강은 당시 우리 화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이당(以堂)이나 청전(靑田) 등 6대가의 화풍에 물들지 않고 문인화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 독창적인 한국화를 완성시켰다.청강 김영기는 중국 일본 화풍이 섞여 혼란스러웠던 1950년대에 한국화라는 예술체계를 완성시킨 위대한 화가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그림 실력을 인정받고 귀국했으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에서 그림이 팔릴 수도 없었지만 먹고 살기조차 빠듯한 시대여서 치바이스의 작품처럼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청강은 한국전쟁 때 피난지였던 경주에서 3년간 교편(경주고등학교)을 잡았다. 그 시절 `남산과 월성`, `계림의 가을`과 같은 경주에 대한 그림을 많이 남겼으며 포항에도 자주 들러 겸제가 그렸던 `내연산 폭포`, `동빈 내항(개인소장)`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1980년대 말에도 흥해 출신 정치지망생이었던 권동수(權東守·74)씨를 따라 산장에서 묵으면서 내연산 하경을 주로 그렸다. 1957년 뉴욕에서 열린 `현대 한국회화전`때 작품 선정을 위해 서울에 온 큐레이터 프사티(Psaty)는 “당신의 새우는 스승만은 못하지만 스승 치바이스가 그리지 못한 달을 그렸다. 특히 달빛을 품고 새우가 유영하는 물결은 매혹적이었다”고 평론, 국내외 미술계에 화제를 뿌렸다.일제강점기는 물론 건국 이래 미국인 평론가로부터의 극찬은 청강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말년에 빠진 `월출산 하경`, `남해 비경`, `추당유정(秋塘有情)`과 같은 군청색 그림이나 중년의 `자화미술(字畵美術)`, `수세미(국립박물관 소장)`는 백미 중에 백미다.청강의 그림은 국제 미술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세 명의 작가가 된 제백석, 이가염, 장대천의 그림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의 경제력만큼 예술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문화적 텃밭의 차이일 뿐이다.

2014-08-22

올바른 여론 파악 위한 지혜 필요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민주주의를 말 할 때 우리는 흔히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울 때가 있다. 다수의 의견을 집약하는 `투표`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을 때에는 이 다수결이 `여론`으로 대체된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욕구를 다 같이 충족시킬 수는 없는 현실에서 흔히 여론(다수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그러나 형성된 여론이 사회전체의 의견을 진정으로 대표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다수결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의 선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산독재국가에서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의사 결정을 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진정한 여론이 아니라 강요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강요`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왜곡`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지방자치제가 중앙집권제 보다는 좀 더 정확한 주민의 여론을 시정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보다 우월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이 진정한 주민의 여론을 파악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말이다.시장에 취임한 초기에는 사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사업계획과 예산편성에 대한 결재를 한 경우도 많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사람이 단체장으로 입후보할 때면 우리 지역이 장기적으로 나아가야할 발전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뚜렷한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규모 지역개발사업과 주민의 당면한 고충의 처리, 복지의 증진을 위한 사업에 대하여는 그 실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그래서 시장 취임 후 첫 휴가기간에 우리 지역의 오지(奧地)를 찾아 그 지역 주민의 집에 민박을 하기도 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마을이 생긴 이후, 어느 시장(군수)이라도 한 번도 찾아 주지 않았던 소외된 마을이었지만, 그들도 우리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존재감을 갖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야 말로 민선1기 시장으로서 진정 할 일이었다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기계면 미현리는 안재너미, 바깥재너미라고 하는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포항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그 마을 상공을 날아가면서 소음 공해가 심하다는 것, 자동차로 죽장면 하사리로 가기 위해서는 관내를 벗어나 청송군 지역을 통과해야 하고, 하사리에서 그 남쪽 상사리로 가기 위해서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가야한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지역주민의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여론은 때때로 지역의 유력한 자들(언론기관을 포함해서)의 고의적 조작에 의해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여론을 왜곡하는 이면에는 이기적인 탐욕이 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는 여론 형성과정에서 아예 소외되어 자신들의 주민된 권리를 요구할 의지조차 없거나, 사회화 과정의 영향으로 강자의 논리가 사회적 약자의 사고 속에 내재되어 여론의 왜곡과정에 동참해 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선 시장으로서 표면에 드러난 `여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만 할 것이 아니라, 여론형성과정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충분한 정보가 없는 자, 여론 형성의 힘이 없는 자)들의 생각까지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정에 임하려고 노력하였다. 신자유주의경제체제가 일반화되어 갈수록 자치단체장의 이런 노력은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마침 우리나라를 방문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그렇게 존경을 받고 있는 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단순히 교황이기 때문에 받는 존경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있지 않는가? `죽음의 문화`,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이라는 수사에서 드러난 인간의 존엄과 자유, 공의와 정의가 흐르는 사회 건설을 위해서도 드러난 여론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지혜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2014-08-21

지피지기 (知彼知己)

▲ 연규식 구룡포수협 조합장우리나라의 최근 어업 총생산 규모는 310만여t으로 7조원을 상회하며 넙치, 전복, 김 양식기술은 세계 1위, 원양어업은 세계 3위로 수산물 생산, 가공, 유통, 수출 등 교역국이 150여개국에 이르는 수산분야의 중견 국가다.중국은 연간 수산물 총 생산량이 약 6천만t, 세계 1위로 우리나라 총 생산량의 약 20배이며,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은 3억7천만달러, 전체 수출의 17%인 반면 수입은 10억2천만달러, 전체 수입의 26.3%에 이른다.주요 생산 어종이 오징어, 갈치, 멸치, 고등어, 참조기, 병어, 꽃게 등 우리나라 생산어종과 거의 유사한 것은 조업구역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바다에서 조업하므로 중국이 잡으면 중국산이고 우리나라가 포획하면 국내산이다.12차 협상까지 진행된 한·중FTA가 시진핑 중국주석의 한국 방문으로 연내에 타결될 것이라는 우려스런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어종이 초민감 품목으로 분류되면 좋겠지만 여타 협상대상 산업의 여건을 고려하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중국은 우리나라 국민의 소비성향을 파악해 인접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활어는 물론 발달한 양식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양식으로 생산한 수산물을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수출할 것이다.하지만 두 손 놓고 걱정한다고해서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수산업이 절대절명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중국인구의 20%가 넘는 3억명의 중산층 소비자를 타킷으로 삼아 방어모드에서 공격모드로 전환하는 역발상적인 시도는 어떨까. 소득향상, 급격한 도시화, 교통수단의 발전, 온라인 쇼핑시장 급성장 등 소비를 둘러 싼 중국내 소비환경 변화는 소비증가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중산층들이 자기 나라 제품을 불신하고 외국산, 특히 한국의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사회에서의 성공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여성의 영향력은 대단한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이라면 가족구성원들의 건강을 챙기는데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인접국이라 수입이 용이하다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수출도 용이하므로 경제적 급성장을 주도하는 중국해안 대도시에서 고급제품으로 한판 승부를 걸어볼 만 하다. 위생, 포장, 보관, 유통, 가격의 모든 면에서 우리는 그들의 입 맛에 맞는 제품을 얼마든지 생산해 낼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지피지기(知彼知己). 말 그대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내 수산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일본 유학파 등 훌륭한 일본 수산 전문가는 수 없이 많지만 중국 수산전문가는 거의 없다.국가간 협상에서 조차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중국에서 민간 사업자가 고급 정보를 취득하기는 매우 어렵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취득하려면 중국통 수산 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주중 한국대사관에 단 1명의 수산관으로 14억 인구의 거대 중국시장을 파악하기란 역부족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물론 상해, 산동지역 등 주요 수산물 취급 대도시에도 수산관을 파견해야 한다.또 일본과의 갈등으로 일본산 상품구매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 중국내 대도시에 한국 수협중앙회 간판을 건 대형 판매장을 개설하고 점차 지방도시로 영역을 확대하는 비용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 줘야 한다. 그리고 중국어선들이 우리나라 수역에서의 불법어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중국 어선이 한국 수역에서 잡은 수산물을 원물 또는 가공 후 우리나라로 수출하므로 불법어획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는만큼 우리의 이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옆 동네 14억 인구가 예비 중산층임을 감안하면 어느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그들의 밥상위에 올려 놓을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절로 쿵쾅쿵쾅 뛴다.

2014-08-20

우리 영혼에 그 말씀이 남을 것인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이 유명한 노래는 영화 `에비타(Evita)`의 주제곡이다. 에비타(1919-1952)는 1945년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시민혁명으로 군사정부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올렸던 흰 도밍고 페론(1895-1974)의 아내이다. 페론의 재선이 확실시되던 1951년, 남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서 선거운동 중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후보를 사임한다.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바로 그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가 저 주제곡이라 한다. 에비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머니 같은 권력자였다. `남미의 파리`로 불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변두리에 임대료 낮은 주택들과 빈민 숙소들을 지었다. 청년들을 위한 체육관도 지었다. 어느 날 빈민촌을 방문한 에비타는 그 비인간적 참상에 충격을 받아 “마을 주민 모두는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마을을 떠나세요!”라고 한 다음에 즉시 그들을 버스에 실어 보내고 마을을 불살라 버렸다. 이것은 천사의 재림 같은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아르헨티나에서 삶(믿음과 사상)을 키운 프란치스코 교황(78세)의 방한 기간에 나는 영화 `에비타`를 방영해주는 TV채널이 없는가 하여 한참을 뒤졌다. 찾을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한국보다 더 혼란한 역경을 헤쳐 나온 아르헨티나에서 인생의 예민한 시절을 감당했던 당신의 영혼에는 에비타와 페론 그리고 저 노래의 흔적이 얼마나 깊게 남아 있을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를 흔들었던 해방신학은?대전 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전 미사. 당신은 당부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현존 자본주의의 숨길 수 없는 폐단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종교는 마치 자본주의 경쟁체제에서 서바이벌 게임에 몰두한 것처럼 왜 외형만 비대해지는가?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 음성 꽃동네에서 남긴 이 말씀을 먼저 우리 종교 지도자들이 영혼에 새길 일이다.“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돈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물질주의와 더 많은 돈을 가지려는 욕망에 휘둘린 무한경쟁체제의 폐해를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깊이 생각해볼 인격적 품위와 인간적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나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도록 격려하며,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에 담은 지극한 인간애가 과연 우리의 영혼을 건드려주는가?박근혜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에서 당신은 평화와 정의를 거론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말씀은 `피 묻지 않은 정의에 의한 평화`를 역설한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피 묻은 정의를 초월하는 정의와 평화. 과연 우리는 6·25전쟁에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그 잔혹한 과거의 불의를 어떻게 용서하고 관용하여 남북평화체제와 상호협력의 시대적 새 지평을 열어젖힐 것인가? “한 가족이 둘로 나뉜 것은 큰 고통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라는 희망이 있고, 가장 큰 희망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국 청년에게 들려준 당신의 이 말씀에 `피 묻지 않은 정의에 의한 평화`로 가는 오솔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나고 대화하라, 또 만나고 대화하라, 또다시…. 남북은 같은 언어이니, 그 언어 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정서가 혈액처럼 흐르고 있으니!무릇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적응하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도 한다. 환경은 인간의 조건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과 성격을 창조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이고 노인이다. 라틴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고통이 어른거린다. 이제 당신의 말씀은 인간적 소통의 수단을 넘어 복음(福音, Gospel)으로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라는 종교적 복음이기도 하고, 인간의 조건(사회 또는 사회체제)을 통찰하여 그것을 끝없이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역설(力說)의 사회적 복음이기도 하다.광화문 광장의 시복미사. 당신의 강론은 `종교적 복음`과 투쟁의 해방신학으로 미끄러지지 않은 `사회적 복음`의 절묘한 일체(一體)였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애초에 종교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은 일체였는지도 모른다.`나으리`라는 조선시대 호칭이 사라졌다. 농담의 호칭으로만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문학용어에 `서발턴(subaltern)`이 있다. 하위의 종속계층은 스스로를 말할 수 없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한국사회에 스스로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부자든 빈자든 누구나 SNS를 통해 정치적 발언도 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한 인간 가치`나 `피 묻지 않은 정의에 의한 평화`를 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현안 문제이다.발언들이 홍수를 이루는 한국사회를 뒤로하고,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떠난다. 가톨릭의 장엄한 행사도 당신의 소박한 행보도 머잖아 우리의 추억으로 남을 테지만, 진실로 우리의 영혼에 남아야 하는 것은 당신의 말씀이다.이번 가을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 로마를 거쳐야 하는데, 바티칸이 아니다. 아시시다. 아시시 언덕의 소담한 프란치스코성당에 가서 `새에게 설교`를 하는 그 벽화의 말씀을 네 번째로 들어보고 싶다. 내 기억에는, 프란치스코 수도사가 새들에게 이렇게 일러주는 것 같았다.“새들아, 모이를 더 먹기 위해 부리나 발톱으로 형제들을 공격하지 마라. 어린 새들과 약한 새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모이를 먹을 수 있게 해줘라.”이대환 작가, 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2014-08-18

소통 통한 협치로 발전 도모해야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1995년 10월 경상북도에서 개최된 제76회 전국체육대회에 포항시 체육회장으로 참석한 후 나는 그 이듬해부터 우리 시 예산편성시 체육진흥기금을 적립하기 시작했다. 목표 금액은 50억원으로 매년 예산에서 5억원씩 편성하기로 하고, 관련 조례도 제정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이자율로서는 이자수입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 당시의 이자율로는 50억원이면 그 발생하는 연 이자수입으로도 체육회의 연간 예산에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목표금액이 모두 적립되어 이 기금의 이자수입을 체육진흥을 위한 예산에 편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이 기금을 적립하고자 했던 의도는 따로 있었다. 포항시체육회 회장을 민간에 위임하고자 했던 것이다. 매년 개최되는 도민체전을 보면 각 시군 체육회장으로 그 지방의 자치단체장이 참석하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체육회 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치정신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항시체육회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기본 재산을 확보하고 이 단체를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하여 그 운영을 민간부문에 넘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중앙집권체제하에서 당연시 여겨져 왔던 사고와 제도에 대하여 우리는 새로운 반성과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치`를 단순히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 권력 배분의 의미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주민의 `참여`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할 때, 행정의 몸집도 줄여지고, 행정 본연의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질 것이다. 주민이 참여하는 `자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통치하는 자가 중앙행정기관에서 지방행정기관으로 `변화`되었을 뿐 결코 `발전`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이 갖추어지고 도시의 기능이 심화된 것은 분명 `변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지금은 우리 시의 지방상수도 보급률이 94%가 되어 웬만한 읍·면에는 이제 간이상수도가 아니라 지방상수도가 보급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시장에 재직 중일 때 처음으로 청하면과 송라면까지 지방상수도관을 이어가기로 결정할 때에는 나로서는 참 힘든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시골에서 도시로 물을 끌어온다는 생각을 하였지, 도시의 물을 시골로 가져간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할 때였으니까 그렇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기 전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중앙집권체제하에서 우리의 생각이 굳어져 있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다. 문화예술단체의 장의 경우도 생각해 보고, 대한체육회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사고가 무의식중에 굳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사회적 약자란 상대적 표현이다. 도시지역 주민에 비해 시골지역 주민은 사회적 약자이다. 행정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명성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그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강자와 약자를 구분해 볼 수 있다. 강자든 약자든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야 말로 문명사회이다. 이 문명화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나는 `발전`이라고 본다. 약자가 강자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인격적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불편과 불쾌함의 제거와 행복의 추구를 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 약자는 늘 강자에게 소통을 요구한다. 약자는 소통과정을 통하여 `자치`에 참여하고, 강자는 협치의 기회를 얻는다. 협치(Governance)가 광범위하게 이루어 질 때 진정한 `발전`이 있다.

2014-08-14

교황의 한국 방문을 기리며

그는 대낮에 길을 다니는 것이 고행(苦行)이었다. 팔다리가 멀쩡하고 눈도 귀도 밝았으나 그는 대낮에 길을 다니지 않으려 했다. 손가락질과 욕설 따위야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어도 날아드는 돌과 똥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그의 성명은 황일광(1757-1801). 누가 그의 이름을 지었는지 몰라도 그것이 `日光`이었다면 처절한 역설, 처절한 능욕의 이름이었다. 본디 그의 인생은 암흑이었다. 도대체 빛이 없었다. 태어난 순간, 아니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잉태된 순간, 그는 이미 빛을 상실한 생명이었다. 백정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사회적으로 노비나 금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백정. 그 황일광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내게는 천국이 둘이 있다. 하나의 천국은 여기 현세에 있고, 또 하나의 천국은 죽은 뒤에 갈 곳이다.”황일광에게 현세의 천국은 천주교 형제들이 자신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시공(時空)이었다. 그때 영혼과 일신을 천주의 품안에 맡기고 있었던 그는 아마도 평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저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 귀에는 절규처럼 들려온다. 인간다운 대우와 인간다운 자유, 그 진정한 삶의 빛과 행복을 찾은 한 인간이 외치는 `환희의 절규`로 들려온다. 어쩐지 그 음색은 7년 만에 드디어 어둔 땅속에서 세상의 빛으로 나와 버드나무 우듬지에 달라붙은 매미가 땡볕을 즐기듯 맹렬히 울어대는 그것을 닮은 듯하다.약관이라 부를 16세, 이 나이에 그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진사가 되었다. 수재였다. 임금의 총애가 그에게 오지 않을 수 없었고, 권문세가의 눈빛들이 그에게 모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황일광과 대척점에 태어나 황일광과 전혀 다르게 성장했다. 인간다운 대우는 늘 넘쳐났다. 집안에 노비들이 많아서 몸을 부리느라 땀 흘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바로 그것들이 양심적으로 부담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아니, 그것들 때문에 자신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성명은 황사영(1775-1801). 그가 현세를 마친 장면은 비장하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 전말과 천주교회 재건책을 중국 베이징의 신부에게 알리는 백서(帛書)를 작성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효수형을 당했던 것이다.황일광, 황사영. 생년의 격차가 신분의 격차만큼 벌어진 두 사람이 믿음의 천국으로 들어간 해는 같다. 1801년, 신유박해의 순교자들이다. 그로부터 213년이 지난 이 여름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에서 집전하는 미사를 거쳐 복자(福者)로 거듭날 두 순교자는 그해 순교한 정약종과도 인연이 깊다. 황일광은 그의 집에 함께 지내다가 잡혔고, 황사영은 그에게 사사를 했었다.개인적으로 나는 종교가 없다. 다만, 지구의 현존 성직자들 중 가장 존경하고 가장 좋아하는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에서 `황(皇)`자를 빼고 다른 적절한 말을 넣어야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더 어울릴 것이라는 투정을 갖고 있을 정도다.묘한 노릇이지만, 나는 또 한 분의 프란치스코(1181-1226)를 잊지 않는다. 그분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조그만 언덕 위에 벽화로 존재한다. `새에게 설교`를 하는 프란치스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성장하여 군인으로 전쟁까지 했다가 어느 돈오(頓悟)의 찰나에 삶의 길을 바꿨던 그분은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충격을 받아 문득 순례를 접고 아시시로 돌아갔다. 사제 서품을 받지 않고 수도사로 현세를 마친 그분의 한 모습을 포착한 그 벽화. 프란치스코가 나무 곁에서 비둘기를 닮은 새들에게 무슨 설교를 하고 있는 그림. 소박하고 호젓한 성당에서 `새에게 설교`하는 그 말씀을 듣고 싶어서 사십대에 아시시를 세 번이나 찾아갔던 나는 장편소설 『붉은 고래』(2004, 현암사)에서 이렇게 썼다.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사제복을 입은 성인의 온화한 얼굴을 마치 부처의 후광 같은 빛살 바퀴가 둥글게 감싸고 있는데, 그는 맨발이다. 이 맨발 앞에는 열댓 마리의 새들이 모이보다 더 진귀한 무엇을 기다리듯 머리를 세워 앉아 있고, 나무 밑 허공에는 서당 공부에 지각한 학동처럼 흰 새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고 있다. 그는 모이통을 들고 있지 않다. 빈손이다. 오른손은 내려앉고 있는 한 마리의 새를 향하고 있고, 왼손은 시선과 함께 땅바닥의 새들을 향하고 있다. 모이를 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모여든 새들.옛날에 프란치스코 수도사가 아시시의 조용한 언덕에서 새들의 심장까지 감화시키는 `말씀`을 했다면, 오늘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웅장한 대성당에서 무뎌질 대로 무뎌진 인간의 양심을 건드리고 반인간적 불평등 사회구조를 두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황일광의 처절했던 환희의 절규와 황사영의 의연했던 피범벅 죽음, 그 참뜻을 한국사회가 곰곰이 헤아려보는 계기가 되어야 당신의 한국 방문과 말씀은 이 땅에서 포근한 축복이 되는 동시에, 종교적 복음(福音, Gospel)이 사회적 복음으로 확장되는 또 하나의 축복을 부르리라. 황일광, 황사영을 순교에 이르게 했던 그 복음은 인간의 양심과 영혼을 구원하는 종교적 복음이면서 반인간적인 모순투성이의 조선 지배체제에 맞서는 첨예한 저항의 사회적 복음이 되었던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닷새 만에 한국을 떠난다. 장엄한 행사들도 곧 기록보관실로 들어간다. 그때 이 땅에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 이것은 당신의 몫이 아니다. 우리 국민, 우리 사회의 몫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과 기도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지는 못한다. 올해 5월, 당신이 예루살렘을 찾아가 이스라엘 권력자와 팔레스타인 권력자가 손을 맞잡게 했으나 누군가 그것을 비웃듯이 다시 인간에 의한 참혹한 인간 살육이 자행되고 있지 않는가. 당신의 말씀과 기도가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슬픔을 지극히 위로할 수는 있어도 한국사회의 적폐를 해소하지는 못한다.남북이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 돈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한국사회의 타성적 야만성을 다스려 나가는 일, 묵정밭을 개간하듯 고함과 몸부림을 대화와 타협의 문화로 일궈나가는 일. 이 엄청난 시대적 과제들은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이대환 작가, 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2014-08-14

구미 변화 이끄는 `희망의 3.0`

▲ 남유진 구미시장2014년 대한민국에서 크게 주목 받은 숫자가 하나 있다. 바로 `3.0`이다. `한류 3.0`, `소셜 3.0`, `웹 3.0` 등 최근 우리사회 곳곳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숫자이다. `3.0`은 단순히 웹이나 소프트웨어를 가리키는 말을 넘어, 이제는 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보가 이루어지거나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표현할 때 쓰이고 있다.`정부 3.0`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정부는 국정운영 패러다임으로 정부 3.0을 발표하고 `공급자` 위주에서 `국민중심`으로의 방향전환을 내걸었다. `개방·공유·소통·협력`을 핵심가치로 `소통하는 투명한 정부,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 시민 중심의 서비스 정부`를 구현하겠노라 밝혔다.이를 위해 부처간 칸막이도 없애고, 방대한 분량의 공공정보도 개방하여 일방향적인 행정서비스에서 벗어나 양방향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여 년이 지난 지금, 사회 곳곳에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국내 병원정보 전문제공업체인 A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5만여 개의 병원정보를 활용해 의료 서비스 전용 응용프로그램(앱)을 만들었다. 환자가 원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로 월 매출 2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이렇듯 각 부처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수많은 청년창업과 벤처기업 탄생이 이어지고, 이는 다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게다가 어린이집, 의료, 교통 등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폭이 넓어지면서 삶의 질까지 향상되고 있다.우리시와 같은 기초지자체의 경우, 그 파급효과가 더욱 클 것이다. 지자체의 특성상, 시민들과 항상 대면하고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의 모습이 확산될 수 있다.이를 잘 알기에 필자는 정부 3.0 발표 후, 관련 시책 추진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행정의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시민에게 공개하기 위해 정책별 모니터단, 서포터즈, 시민기자단 등을 활용해 다양한 의사통로를 확대했다.`소통하는 투명한 정부` 구현을 시작한 것이다.타 시·군과의 협업도 적극 추진했다. 인근 김천시와는 시내버스 광역환승제를, 칠곡군과는 보건시설이나 하수처리시설 등 제반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했다. 시민 만족도는 물론 비용 절감 효과까지 거뒀다.지난해 12월에는 전국 최초로 구미에 `화학재난 합동방재센터`도 문을 열었다. 안전행정부, 환경부, 소방방재청 등 8개 부처 36명이 합동 근무를 하고 있다. 부처가 아닌, 과제 중심의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모든 행정 서비스를 수요자 중심으로 통합·제공하기 시작하며 `시민 중심의 서비스 정부`구현에도 힘쓰고 있다. 오아시스 하우스, 행복의 사랑고리 사업 등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실시하고,`택시 안심귀가`서비스,`여성·아동 안심귀가 시범거리`조성, 방범용 CCTV 확충 및 통합관제센터 확대 운영 등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안전문제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모두 정부 3.0이 만든 구미의 긍정적인 변화들이다. 물론 `정부 3.0`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용어 때문에 이러한 변화들이 시민 피부에 와 닿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그러나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했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필자가 몸소 느꼈던 것처럼,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시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정의 벽을 허물면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명품, `세계 속의 명품도시, 구미`의 모습은 완성될 것이다.지난 7월22일 당선된 경상북도 시장·군수협의회장으로서도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23개 시군의 의견을 한 데 모아 지역간 협력으로 상생하는 경북 발전을 이끌어 가겠다.앞으로 4년, 시민과 하나 되는 시정을 펼치기로 마음먹은 만큼, 시민 행복을 방해하는 칸막이는 하나라도 더 없애겠다. 시민이 원한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 구미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기관과도 소통하고 협력하겠다. `정부 3.0`, 구미의 변화를 이끄는 `희망의 3.0`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14-08-11

向日齋, 해바라기와 迎日의 인연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포항운하 뱃길 주변에 해바라기가 지천으로 피었다. 여름 꽃 해바라기와 포항의 인연은 1446년 단종 복위에 가담했다 경상도(慶尙道) 영일(迎日) 대잠산(大岑山)으로 유배를 온 사정(司正) 권수해(權壽海)공에 의해서 시작됐다. 사정공(司正公)이 유배지(포스코 주택단지내 영일대와 효자 음악당 사이)에서 처음 한 일이 향일재(向日齋)란 편액을 걸고 적소 마당에서부터 임금을 뜻하는 해바라기를 심는 일이었다. 유배 3년이 지나면서 해바라기 밭이 끝없이 펼쳐져 해맞이 땅 영일이 해바라기 꽃과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1410년에 예천 대죽리에서 경력공(經歷公) 권관(權寬)의 넷째로 태어나신 사정공은 좌의정을 지내신 종조부 문경공(文景公,軫)으로부터 수학(修學), 경서와 사기를 즐겨 읽으면서 절의불의(節義不義)를 부르짖는 청년시절을 보냈다.1446년 단종(端宗) 복위라는 큰 뜻을 품고 밤마다 단종의 안위를 빌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다음해 단종 복위가 탄로 나자 백형 권산해(權山海, 단종의 이모부, 문종의 동서)이 자결하는 날, 경상도 연일 땅 대잠산으로 유배됐다.포스코 효자 주택단지로 바뀐 대잠산 적소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 문지방에 편액(向日齋)을 걸고 하루 4배씩 단종이 유배중인 영월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선왕(先王) 단종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나타냈다. 1990년에 발간된 영일군사(迎日郡史)에도 공의 나이가 45살(1455년) 되던 해 영일지방에 들어 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1466년 공의 나이 57세에 세상을 하직, 자신이 해바라기를 직접 심었던 대잠산 관동(단종에게 절을 올린 곳)에 묻혔다. 사후 공을 기리는 지역 주민들이 해바라기를 더 심어 대잠산 일대는 여름만 되면 지천으로 핀 해바라기로 인해 시인 묵객들이 숱하게 찾아 관산(觀山)을 했던 곳으로 이름났다.1469년 해바라기 산에 추원재(追遠齋)가 건립되어서 후손과 유림들이 묘향을 받들었으나 추원재(追遠齋) 역시 포스코 주택단지에 편입(編入), 월성군(月城郡) 안강읍(安康邑) 두류리로 이전됐으며 공의 유허비는 향일제가 있었던 곳에서 2km쯤 떨어진 포항시 대잠길 16번지에 지금도 남아 있다.이 일대에서 살았던 사정공의 후손들이 조선후기까지 해바라기 산을 가꿨으나 이후부터 차츰 줄어들다 포스코 주택단지 조성이 본격화된 1970년 들어 완전 사라졌다. 시군(市郡)으로 나눠져 있을 때는 포항시화(浦項市花)를 해바라기로 지정 하자는 여론이 있었을 정도로 상징이 됐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해바라기는 보통 4m에서 최대 8m까지 자라며 지름 30cm크기의 꽃이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한해살이다.안동권씨(安東權氏) 인물론(人物論)과 구봉(龜峯) 권선생유사(權先生遺事)집을 지은 공의 13대손 권혁근(權赫根,78) 선생과 유허비를 돌보는 후손 권혁조(74)옹에 따르면 공의 묘소(墓所)는 이 일대가 포스코 주택단지로 조성되던 1968년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비봉산으로, 2013년엔 이 일대가 폐기물 공단으로 조성되면서 안강읍(安康邑) 양월리 산려로 다시 이장(移葬)됐으며 이곳엔 묘소(墓所)와 봉산재사(鳳山齋舍) 주변에 해바라기를 심고 충절(忠節)정신을 기린다.공은 사후에도 유배생활을 했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유택(幽宅)이 안정되지 못했다. 후손들 백년(百年)금고(禁錮)형에 처해져 과거를 보지 못하고 경주, 영일 일대로 흩어져 살다 공의 현손(4대손)대에 이르러 이언적(李彦迪)의 문하에서 수학했던 권덕린(權德麟, 병조정랑)이 처음으로 대과(大科)에 급제, 그로부터 관로(管路)가 열리긴 했었지만 역적(逆賊)의 후손이라는 낙인(印)이 찍혀 궁핍(窮乏)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대과(大科)에 급제한 구봉공(龜峯公)의 아들 매헌(梅軒) 권사민(權士敏)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망우당(忘憂堂) 곽재우장군과 함께 화왕산, 노곡 전투에서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워 언양 현감(縣監)과 정려각(旌閭閣), 시호(諡號)를 받은 유명한 의병장이다. (자료인용:영일군사, 안동 권씨 인물론 등)

2014-08-08

개발시대 프레임서 벗어나야

▲ 박기환 민선1기 포항시장민선 6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경우도 역시 그랬었지만, 새 시대의 주역을 맡은 자치단체장이나, 새 프로젝트의 개발자는 물론이지만, 여론 주도층에 있는 사람들조차 가시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나타내 보이고 싶은 의욕에 사로잡혀 장기적인 안목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전략은 자원(특히 예산)의 제한적 조건 때문에 대부분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다. `선택과 집중`에는 지나온 과거와 처해 있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분석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중은 대체로 이런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여기 (now and here)”만 생각하는 것이 대중이다. 그러나 새 시대의 주역에 대한 평가는 “현재 여기 (now and here)”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 곳에서(sometime and there)”이루어진다. 따라서 당장의 가시적 성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평가는 대부분 수사적인 표현이어서 진실과 동 떨어져 있을 경우가 많아 반드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당장에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미리 미리 파악하여 제거하거나 필요한 잠재적인 인프라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최근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바에 의하면 포항테크노파크2단지 사업추진이 큰 난관에 봉착한 것 같다. 무리한 입지선정이 가져 온 결과인 것 같다. 사후 수습에 따라서는 시민의 혈세로 투자된 171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또 얼마나 많은 추가적 재정손실과 사회적 혼란을 감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2008년에 지정된 포항경제자유구역(융합기술산업지구)이 그 지정해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포항시와 경상북도 그리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이 사업시행자 변경, 사업규모 축소를 전제로 사업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결과 또한 미지수이다. 우리 지역의 차세대 성장 동력과 미래의 먹거리 마련이 심히 우려된다고 한다.이 외에도 투자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프로젝트들이 여럿 있다. 포항시청의 규모 역시 낭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투자의 실효성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는 대중의 무언의 압력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 그 곳에서(sometime and there)” 묻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우리는 흔히 포스코가 설립될 당시, 인구 불과 7만여명의 도시가 지금 53만여명으로 증가하여 영일만의 기적을 이룬 시민으로 자부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았다. 50여만의 인구를 품고 있는 현재 포항은 과거 포항시와 영일군을 합한 도농통합시이다. 그런데 포스코 설립(1968년4월1일) 직전 1967년말 포항시 인구 통계가 6만7천984명, 당시 영일군 인구 통계가 20만8천48명으로 통합포항시 행정구역으로 보면 합계 인구가 27만6천32명 이었고, 그로부터 도농통합시가 되기 직전 1994년말 인구는 50만7천207명이었다. 이 기간(1967년말~1994년말)의 우리나라 총인구 증가율은 48.16% 이었으니, 포스코가 설립되지 않았더라도 1967년말 인구 27만6천32명에 나라 전체의 증가율을 적용하면, 1994년말에는 40만8천969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포스코 때문에 증가한 인구는 1994년말 까지 약 9만8천238명으로 볼 수 있다.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인구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더라도 이러한 증가추세의 유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포항시의 적정인구규모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돈(경제)이 아니라, 최적 삶의 질을 고려한 적정인구규모, 적정한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복지적 인프라를 향한 담론이 활발해져야 할 때다. 시민들도 가시적 성과로 업적을 평가하는 개발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201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