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고속도로도 없고 종합제철도 없던 1965년 1월, 조강능력과 제철기술로만 따져도 `세계 3대 최강국`이었던 영국에서 한 저명한 인물이 숨을 멈추었다. 향년 91세.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장군이 “저는 술과 담배를 일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항상 건강을 100퍼센트 유지하는 비결입니다”라고 은근히 뻐기자, 곧바로 “나는 술을 무척 즐기고 담배도 아주 좋아해서 항상 200퍼센트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맞받았던 인물. 그는 윈스턴 처칠이다.
한국인은 흔히 문장 하나로 처칠을 기억한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즈음, 처칠은 재야에 있었다. 세계정세를 통찰하는 인물이 가만있진 않았다. 영국의 재무장을 주장했다. 외면당했다. 그때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피로감이 영국사회를 지배했던 것이다.
영국은 히틀러의 전쟁에 휘말렸다. 영국을 구해내고 승리를 거둬야하는 리더십이 요구되었다. 1940년 영국의 여론이 처칠을 총리 관저로 불러들였다. 독립심과 자존심이 세서 정당이나 의회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었던 처칠이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짊어진 총리로서 의회에 가서 연설을 했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여러분께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도 처칠의 저 말을 대통령 취임사에 빌려 쓴 대통령이 있었다. 19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이다. `박정희의 사람인 김종필과 박태준`의 손을 잡고 50년 만에,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며 대통령에 취임한 그가 왜 처칠의 저 말을 인용했을까? 그때는 한국이 `6·25전쟁 후 최대 국란`이라 불린, 국민이 `아이엠에프(IMF)사태`라고 기억하는, 국가부도로 내몰리는 외환위기사태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날 김대중은 조금 울먹이며 `피와 땀과 눈물`을 말했다.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주당 10만 원씩 나가던 주식들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돌변한 시절, 그 말은 국민의 가슴을 건드렸다. `금 모으기 운동`도 범국민적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의 말들은 국민의 가슴에서 멀어져갔다. 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경사를 가슴으로는 받지 못했다.
1953년 처칠은 6년 집필의 대작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뜻밖의 일로 보일 테지만, 처칠은 저술가요 화가였다. 처칠을 연구한 어느 학자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노벨문학상이 처칠을 영예롭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처칠이 그 상의 가치를 높였다고 하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라 했다. 총리가 되기도 전에 처칠은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무릇 전쟁을 수행하는 최고 사령관에게는 두 가지 사항이 필수적이다. 훌륭한 전략을 수립하는 일과 충분한 비축을 유지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한국은 분단 상태고 휴전선에는 언제나 긴장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어전쟁을 전제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 정치판은 어떠한가? 날마다 총칼 없는 전쟁이다.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총칼 없는 정쟁(政爭), 이것이 이 나라의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이번 한가위에 국민에게 안기는 선물이다.
박근혜 정부 19개월, 지금쯤 국민이 받아야하는 한가위 선물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현가능의 훌륭한 전략과 충분한 비축 유지의 비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전쟁이 한국의 `정치력`을 파괴해버린 상태다. 처칠의 그 `전쟁`을 `평화체제`로 바꾼다면, 이 나라의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훌륭한 전략과 충분한 비축 유지의 비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은 한가위를 맞아 대(對)국민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다. 처칠의 그 한마디처럼 국민의 가슴을 움직일 수는 없을까? 국회의원들은 정쟁을 그만두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지역구에 내려오지 말고 여의도나 지키며 계속 싸우는 것이 더 낫겠다. 건강에 해롭지 않을 만큼 알맞게 단식을 하는 것은 자유선택이다.
이대환 <작가, 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