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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 도심재생을 위한 호소

▲ 손형석 포항도시재생위원회 위원장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도시재생선도지역 지정 공모를 했다. 포항은 최근 5년간 인구감소, 노후불량 주택 수 등을 기준으로 우선 선정돼야 할 곳이었으나 전임 시장의 관심 부족 등 여러 원인으로 탈락했다. 당시 전국 13개 선도지역에는 모두 5천300억원이 투입됐다. 경남·북에서 영주시가 353억원, 창원시가 1천765억원을 지원받고 2017년까지 도시주택기금 2천500억원이 또 투입된다. 포항시는 이미 크나큰 손실을 보았다. 포항도시재생위원회가 앞장서 2013년 여름 중앙아트홀에서 도시계획전문가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여는 등 노력을 한데 비해 포항시는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포항시는 도시재생사업의 용역을 발주하기 위한 공고를 하고 있다. 지난번 선도지역 공모를 위한 용역 때도 2억5천만원의 혈세를 투입한데 이어 이번에도 상당한 예산이 투입된다. 이번 과정을 통해 용역사가 선정되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시재생 용역이 착수된다면 과연 얼마나 지역을 새로운 변화된 삶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을지, 적어도 20~30년 앞을 볼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포항운하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전임 시장의 야심찬 포항운하는 새로운 시장이 마무리해야 할 과제이다. 포항~대구 간 고속도로도 개통된지 벌써 7년이 넘고 주말이면 하루 평균 1만5천~1만9천대의 차량이 포항으로 오고 있으나 변변한 주차장 하나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지경이다. 대흥동 포항역사가 3월 흥해의 신역사로 이전하게 되면 최우선으로 포항시가 해야 할 일은 이강덕 시장이 열린 마인드를 바탕으로 지역주민과 대화하는 것이다. 포항역 이전과 동시에 용흥동 현대2차 아파트에서 오거리로 관통할 수 있는 도로 개설은 하루가 시급하다. 죽도성당에서 개풍약국으로 향하는 구간에도 기존 유료 주차장들이 여러개 있으나 주말 외지 차량들을 소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 포항시가 엉뚱한 곳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타워 주차장을 만들었으나 역시 역부족이다.포항역 주변은 아직 50여년 전 주택가의 모습 그대로이며 그 주민들도 아직 연탄을 때고 슬레이트 지붕의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며 소외된 영세민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여러 시장이 바뀌도록 수십년간 봐 왔다. 구미시가 포항 인구를 머지않아 추월할 것이라 본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정치인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포항의 자존심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제발 원도심을 살려주시길 간절히 호소한다.이 같은 상황에서 늦게나마 포항시가 도시재생과를 신설한 것은 다행이라 생각된다. 도시재생특별법은 세월호특별법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고 숨어 있었으나 우리 삶의 질 향상에 아주 좋은 법이다. 주차장 완화, 용적률 완화, 건폐율 완화를 통해 도심 재생에 걸림돌이 되는 건축법 등을 완화해서라도 도시재생을 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로 제정 공포된 법이다. 이를 잘 활용해 시 조례도 개정하고 공용주차장 조성 자금은 부설주차장 매입 금액을 포항시가 분담금 형태로 받아 재원으로 충당한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포항시는 전문 TF팀을 구성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시민이 깜짝 놀랄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KTX 개통과 동시에 포항의 랜드마크가 될 기발한 아이디어를 공모해 포스코를 넘어 관광명소를 개발할 마스터 플랜이 나오기를 기대한다.예를 들어 육거리에 파리 에펠탑과 유사한 가칭`포항타워`를 만들어 회전 전망대 레스토랑에다 LED 조명을 장식한다면 그야말로 환상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포항 앞바다에는 여객선을 띄워 선상카페를 만들고 중앙초등학교 부지는 비즈니스 관광 호텔을 지어서 숙박시설 부족으로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빈동의 골목 마다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죽도시장까지 테마거리를 조성한다면 한편의 영화 같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이 일대의 노후된 주택을 개량해 그 옛날 모습의 대장간, 주막촌, 선술집에다 과메기를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도시재생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한낱 꿈만은 아닐 것이다.

2015-03-03

월성1호기 안전성 판단해야 지역민이 안심한다

▲ 조현배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경영지원실장 `퉁퉁 불어터진 국수`가 지난 24일자 인터넷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박 대통령이 23일 경제 정책의 타이밍을 강조하며 부동산 3법의 늑장 처리를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해 화제 검색어에 오르게 된 것이다. 타이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이 제대로 되려면 너무 빨라도 늦어도 안된다. 설익은 과실을 서둘러 따버리면 떫고 시어서 먹을 수 없고 추수 시기를 너무 늦추면 물러버려 맛도 없고 상품 가치도 떨어진다. 일을 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때를 놓치면 일 자체를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대부분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문제이다. 무르익지 않은 일을 급히 추진하다 문제가 생기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지만, 적기를 지나쳐 늦어지면 일을 해놓고도 효과가 반감되고 `퉁퉁 불어터진 국수`처럼 맛이 없어진다. 일이 늦어져 기회를 놓치고 원통해서 탄식까지 하게 된다는`만시지탄`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월성원전1호기 계속운전에 대한 결정도 지나치게 늦어져 국가의 경제적 손실과 함께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월성1호기가 운영허가기간(설계수명)이 지나 정지 후 계속운전 결정을 기다린 지 2년 3개월이 지났다. 월성1호기가 한 해 동안 생산하는 발전량은 51억kWh로 대구와 경북 지역 가정용 전기 소비량의 80%에 해당한다. 월성1호기가 서있는 동안 LNG를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추가 대체발전 비용은 연간 약 4천억~5천500억원이다. 2년 3개월 간 정지해있는 동안 추가 발생된 발전비용은 얼추잡아도 1조원에 이른다. 올해 전국 저소득층 초·중·고생 100만 명에게 지급되는 교육비에 해당된다.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더 엄청나다. 계속운전 결정이 늦어지면서 월성원전 인근 지역민의 갈등 문제가 커지고 있다. 주민 단체들이 결성되고 연일 시위를 벌이는 것도 두 달 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5년 넘게 끌고 있는 계속운전 결정이 조금만 더 일찍 났더라도 줄일 수 있는 일이었다.심사 기간이 5년을 넘어가자 세간에는`월성1호기에 문제가 있어서 늦어지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고 일부 환경단체들은 원전 핵심 안전과 연관되지 않은 일까지 들먹이며 월성1호기를 쟁점화하고 있다.원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있고 정확한 정보는 없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언론 등에서 원전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환경단체가 이슈화하는 것 자체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해 9월 월성1호기 계속운전에 필요한 기술적 인·허가에 대해서 이미`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는 월성1호기를 재가동하는데 기술적으로 안전하다는 의미이다. 또 극한 자연재해 상황이 닥쳤을 때를 가상한 스트레스테스트에 대한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검증단과 민간검증단의 평가 결과도 나왔다. 1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극한상황을 대비해 양측이 원전 안전성을 더 강화하라고 개선사항을 내놓았고 이에 대한 이행계획을 한수원이 수립 중이기 때문에 조치사항을 냉엄하게 지켜보면 좋겠다.월성원전에서 일하고 있는 간부로서 월성1호기 재가동 준비는 완벽한 수준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월성1호기의 기술적 안전성을 설명하지만 지역민들은 불안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때 필요한 것이 보다 중립적이고 기술적 권위를 확보하고 있는 전문가집단의 판단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미 월성1호기 안전점검 이후 “계속운전에 대한 기술적 안전성이 확보돼 있다”고 판단을 했고 5년 간 세밀한 검증작업을 한 원자력안전기술원도 기술적 적합 판정을 내렸다.조만간 지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월성1호기 안전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안전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꼭 필요하다.

2015-02-26

국민인성회복운동을 촉구하며

▲ 이승헌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지금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가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도처에서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모든 정치인 종교인·경제인·교육자가 더 이상 대한민국이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누구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일어난 국민적 대각성과 분노가 대한민국의 인성을 회복할 수 있는 큰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기회를 안타깝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의지하고 신뢰했던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도 특별한 인격자이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지금은 정보화 시대이다. 정보의 질과 양에 있어서 특별한 사람이 없는 사회이다.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던 시대는 갔다.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나 국민이나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말없이 걱정하면서 끌려가고 있다.국가와 국민의 간격을 좁히는 길은 우리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며, 거룩하고 높은 정신문화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는 대한민국의 가치이다. 대한민국의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목적이 홍익인간을 육성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홍익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우리`라는 가치가 살아있는 공동체 의식이다.하지만 지금 이 사회에서는 가정도 학교도 정치도 종교도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신을 등한시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의 가치와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시대착오적인 사고로 여겨져 경시되고 있다. 국가관이 없는 사람, 대한민국의 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애국자가 되며, 충성스러운 국민, 충성스러운 공직자가 될 수 있겠는가.지금의 애국심과 충성심은 그 의미가 변질되고 왜곡되어 있다. 그것은 어려운 시대를 견뎌온 국민의 마음에 국가지도자들이 실망과 불신의 깊은 상처를 남겼고, 분별없이 받아들인 수많은 외래 문화가 우리의 고유한 전통 문화를 잠식하고 파괴하여 개인의 혼과 국가의 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인성 파괴는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에 와 있다. 모두가 분단 이후 고도성장의 결과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경제력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한국이 겪고 있는 이러한 사회적인 혼란은 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 일본, 중국에서도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혼란이 극심해지고 있다. 인성이 없는 정치 경제 종교와 지식, 인성이 없는 권력과 부와 명예는 모두에게 독(毒)이다. 대한민국의 정신이 그 답이다.지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 인류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제 다시 홍익철학을 중심 가치로 세워 대한민국의 정신을 회복하는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인성회복운동`이다. 국민인성회복운동을 통해서 대한민국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나는 확신한다. 대한민국은 힘이 있다. 우리는 정말로 우수하고 뛰어나며 능력 있는 국민이다. 옳고 바른 마음을 회복한 우리 국민들이 지금 일어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선택하는 찬란한 마음이 있다. 국민 모두가 그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가번영과 남북통일을 이루며, 세계를 이끌 정신지도자가 한국에서 한국의 정신으로 나올 것이다.그러한 때가 오기를 기대하며,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과 지도자, 교육자들이 대한민국의 가치 회복과 실현을 위한 선택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5-02-23

공공기관의 플랫폼은 가능한가

▲ 권영세 안동시장일반적으로 플랫폼하면 기업 생태계가 먼저 떠오른다. 그것도 최근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눈부신 성장세가 주목받는 탓에 일견 IT기업에 국한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큰 가치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면 공무원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공공기관 플랫폼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가치를 발견해 이를 빠르고도 강력하게 뿌리내리게 한다면 그 자체가 혁신과 변화를 이룬 하나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플랫폼은 경쟁의 법칙마저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나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 플랫폼 환경이다. 반면 남을 잘 북돋아주면서 그걸 연결고리로 나도 성장하는 보람찬 공조직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특히 어느 공조직이든 내 외부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공공기관 플랫폼의 가장 큰 요점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단 존재하는 것의 장점을 배가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한 효과적 재배치 정렬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정책개발을 어떻게 하고 이것을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동참시킬 것인가, 주민과 행정이라는 구조에 신선한 동기를 부여할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것들은 이미 공공조직의 공통적인 구조이자 교집합이다.내 지역에 가장 알맞은 사업은 무엇인가? 이것이 향후 지역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선순환의 고리로 연결될 것인가? 하나하나의 퍼즐이 전체의 목표와 정확하게 일치하며 흘러가고 있는가? 외부환경에서 바라본 지점과 내부의 정책방향은 같은 방향인가? 지역이 가진 자산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발견할 수 있는가? 등으로 분류해보면 특산품 플랫폼, 도로관련 플랫폼, 도시 디자인 플랫폼, 행정조직 역량 플랫폼, 도시발전 플랫폼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종합하고 분석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요소를 찾아내 어떠한 핵심을 강화해야 하는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 공공기관 플랫폼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안동시의 경우 현재 도시의 전략적 비전을 점검하고 모든 활동을 비전과 일치시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성주풀이(민속), 종가문화(유교), 목조문화(불교)는 다른 지역에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체성을 강화해 도시의 매력지수를 높여 사람을 불러들이고 다시 자산에 투자해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육성하는 핵심 전략을 강화하는 것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멈추지 않은 성장세를 이어가는 목표를 구사하고 있다.공공기관 플랫폼은 지역을 찾는 수요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이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조직이 플랫폼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조직내부의 역량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의 거시적 변화를 통찰하는 힘도 갖추어야 한다. 기업 플랫폼이 기술개발이라는 무한 경쟁의 한 측면에 놓여 있다면 공조직 플랫폼은 지역 색깔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이고 통찰력이다.플랫폼의 활용은 어렵거나 용도가 제한적일수록 도시의 가치는 하락한다. 플랫폼의 비밀은 절대 변하지 않은 것을 통해 가장 빠른 변화를 이룩해 내는 것일지 모른다. 주민여망을 수렴하고 도시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공조직의 플랫폼이다. 결국 어느 조직이 이 철학을 공고히 실천하느냐에 따라 공조직 플랫폼의 향배가 판가름 나지 않을까?

2015-02-16

성덕댐 용수 길안천 취수를 반대하는 이유

▲ 김자현 안동시의회 사무국장안동에서 길안천 한밤보 취수 논란이 뜨거운 쟁점이 된 것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성덕댐 완공을 앞두고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일대 길안천에서 취수시설을 설치하기위한 공유수면 점용 및 사용계획승인을 신청하면서다. 길안천 상류인 청송군 안덕면에 위치한 성덕댐은 당초 한밤보에서 용수를 취수해 영천댐으로 이송, 금호강 하천 유지수와 포스코의 공업용수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따라 길안천은 하루 5천800㎥의 물이 흐르는 개울 정도의 하천을 유지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안동시는 실시계획 변경 협의와 함께 한밤보 취수계획을 취소하고, 성덕댐 직접취수 또는 길안천 종점부로 취수지점 변경을 요청 한 바 있다. 길안천 건천화와 농사 및 냉해 피해 등의 우려에 대한 취수 대책 마련과 반대 민원이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지난 2012년에는 안동시의회와 안동상공회의소 주도로 농민회와 일부 주민들이 참가한 반대위원회를 구성하고 한밤보 취수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백지화를 촉구했다. 그 이듬해에는 한밤보 취수 반대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나아가 한밤보 취수 반대토론회를 개최하는 한편, 성덕댐 관리단 항의방문, 한밤보 취수 저지 범시민 대책위의 길안천 한밤보 취수반대 기자회견과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등 반대운동을 전개해왔다.지난해 11월 안동시의회가 성덕댐 용수 길안천 취수 반대 결의안 채택과 함께 반대 특별위원회를 발의해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안동시의회가 이렇게 길안천취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우선 길안천이야 말로 안동시민의 식수원인 용상취수장에 유입되는 가장 맑은물로 안동사람들의 생명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안동·임하 양 댐으로 이미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데 다시 길안천 건천화 정책을 밀어붙이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안동은 이미 양 댐건설과 더불어 하류 지역민들에 대한 맑은 물 공급과 공업용수 제공을 위한 희생을 감수해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로인해 인구감소와 행정구역 축소 뿐 아니라, 실향민 발생과 수운관리사무소 운영 등에 따른 부담도 가중되어온 현실이다. 게다가 댐으로 인한 환경 및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질병 발생과 농작물피해, 그리고 각종 개발제한과 소득원의 상실 등도 빼놓을수 없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지금까지 이같은 피해 상황에 대한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대안제시가 없었다. 그런데 안동시민들의 절규를 무시한 채 안동 유일의 생태하천인 길안천 취수계획을 다시들고 나오니 격안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수자원공사는 댐으로 인한 안동시의 누적된 피해상황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자연환경 보전 지역 해제, 댐 주변 도로개설, 댐으로 인해 낙후된 SOC사업지원, 지역 인프라사업 구축 등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그리고 성덕댐을 빌미로 26㎞ 하류에 위치한 길안면 송사리에서 자연유수를 취수하려는 계획을 철회하라는 안동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수자원공사가 성덕댐을 빌미로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에서 취수하려는 계획을 수립 한 것은 성덕댐의 물뿐만이 아니라 길안천에 흐르는 물을 함께 취수하려는 속내임을 안동시민들이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길안천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주민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정기관이나 자치단체의 소유물 또한 더더욱 아니다. 수자원공사는 당면한 사태와 관련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안동시·안동시의회와 협의하고, 시민단체와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하천과 시도민이 상생하는 대안을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할것이다.

2015-02-06

노인·장애인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니다

▲ 한상호포항시 노인장애인복지과 노인요양담당 매년 연말연시면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외치며 기업과 개인들이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 앞 다퉈 선행을 한다. 하지만 그때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행도 많겠지만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선행으로 인해 오히려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은 커녕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염려 되기까지 한다.이런 가운데 언제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의 대부분이 도심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특히 이 같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고령과 신체적 제약으로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입장이지만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혐오시설`로 낙인찍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건립되는 자체를 꺼리는 님비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나이 들거나 만일의 불행한 사고로 인해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 될 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2007년의 일이다. 마침 장애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한 사회복지법인으로부터 장애인 생활시설을 마련해서 운영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을 위한 생활시설이 크게 부족했던 상황이었던 터라 정식 절차를 거쳐 빠르게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부지가 선정되고부터는 도무지 일이 진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장애인시설이 지역에 들어오게 되면 부동산 가격 하락은 물론 장애인들이 보균하고 있는 질병들이 공기와 호흡기를 통해 지역 내에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루머가 퍼져 더 이상 사업을 추진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왜 시설이 필요한지부터 지역 주민들의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주민들은 요지부동이었고, 공사현장을 몸으로 막아서며 장비의 출입을 막는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시설이 건립하게 됐다.장애인시설 뿐만 아니라 노인시설 역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만 나돌면 주민들은 지역 곳곳에 습관처럼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어떤 경우에는 마을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주민들이 생활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해당 지역의 이름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세게 반대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이 같은 일들로 인해서 사회적 약자이자 소외받는 이웃인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들은 설치 자체가 무산되거나 시 외곽으로 장소를 옮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올해 포항시 노인인구는 전체 11.8%인 약 6만2천118명, 장애인은 정체 인구의 4.9%인 2만5천770명에 이른다. 이중 노인시설에는 1.5%, 장애인시설에는 1.2%만이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사실 이들 대부분은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장기치료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우리 부모형제이자 이웃이다.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고, 주변 환경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사랑스러운 가족과의 만남이 어렵고, 이웃들의 도움의 손길이 찾기 어려운 외딴 곳에 위치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을미년 새해, 양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포항이 되기를 소망한다.

2015-02-03

오드리 햅번의 아프리카 행복론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연말연시의 기부 실적이 별로라고들 한다. 경제 영토를 넓히고 소비 수준으로 보면 소득 3만 달러 시대로 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민 한사람의 기부액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래도 기부에 한번 맛들인 사람들은 경기가 어렵다고는 하나 조금씩이라도 보탠다. 미국의 자선가 록펠러는 33살에 백만장자, 10년 후엔 미국 최대갑부, 53살엔 세계 최대부자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53살이던 해 불치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던 날, 딸의 입원비 문제로 울부짖는 환자의 어머니의 딱한 처지를 보고 소녀를 도울 결심을 한다. 록펠러는 후일 그 소녀를 입원 시켜 새 생명을 열어준 날이 가장 행복스러웠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55년을 쫓기며 살았지만 자기 것을 나누기 시작한 후반기 43년이 가장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았으며 세기적 기부 왕으로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치명적인 심장병까지 앓았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몸엔 문신이 없다. 문신을 하면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소말리아에 300억원을 기부했으며 아동 구호 운동가로 경기장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축구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몸값을 받는 호날두의 연간 기부액은 개발도상국 중진 국가의 국민이 낸 기부금액보다 많다.필자가 기부권유 강연에서 자주 인용하는 말은 세기적 영화배우였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1929~1993)의 어록이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나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돕는 손이다./” 오드리 햅번이 1993년 1월 20일 눈을 감기 1년 전쯤 자녀들 앞에서 세상에 남긴 말이다.햅번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늘 마음은 가난 했었다. `스티브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1989년)에 우정 출연, 노익장을 뽐내었을 즈음부터 아프리카 돕기에 뛰어들면서 달라졌다.유니세프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 그의 보수는 1년에 1달러. 교통비 숙박비 지원이 전부였으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아프리카는 물론 방글라데시. 엘살바도르 등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은 50개국이 넘는다.“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곧 축복이다” 병에 걸리고 먹지 못해 눈빛을 잃어버린 아이들, 피고름이 범벅이 된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안고 눈물을 줄줄 쏟는 장면이 미국과 유럽에 방영되면서 기부금과 구호물자가 쏟아졌다.1992년 내전에 시달리던 소말리아를 방문한 헵번은 마을 빈터에 버려진 자루더미가 굶고 병들어 죽은 아이들의 시체라는 말을 원주민들로부터 듣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소말리아에 더 강한 애착을 보인 동기가 됐다.그녀의 행복론은 지인의 권유로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돼서부터 더 빛났다. 미국에서 열린 연말 기금모금 행사에서 출발, 아프리카 아이들의 핏기 잃은 현장을 누비면서 영화에서 꺼져가던 자신의 열정을 살려 냈다.1929년 브뤼셀의 한 병원에서 백일해로 간신히 살아났으며 나치의 추종자였던 아버지가 떠나고는 할아버지 손에서 꿈 많은 소녀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추억을 갖고 있었다.데뷔작 `로마의 휴일`은 동화 같은 공주님의 사랑 얘기다. 기자 역으로 열연한 그레고리 펙과 함께 로마를 무대로 한 1시간 30분짜리 영화는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영원한 연인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로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 세기적 스타덤에 올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페어 레이디`등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햅번 스타일이 된 짧은 커트는 지금도 유명하다. 세기적 배우가 됐지만 행복스럽게 만들지는 못했던 헵번은 아프리카 땅만 밟으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빈민가를 미친 듯이 뒤졌다고 하며 나눔에 대한 철학적 이론가로도 세상에 드러났다. 평생 중독되지 않을 행복 마약을 펑펑 쏟아낸 그의 얘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2015-01-26

우리경제 효자 노릇한 해외건설

▲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근래 들어 이슬람 강경파들의 테러가 이어지면서 종교 갈등이 세계적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경제의 불황이 예고되면서 유가가 급락을 거듭하는 등 이래저래 중동지역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중동지역은 우리나라 경제발전과도 지대한 관계에 있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몇 차례 고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중에는 중동지역 중심의 해외건설도 큰 효자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해외건설은 현대건설이 주도하였다. 현대건설은 1965년 11월 태국에서 98Km의 2차선 고속도로를 수주하면서 우리나라의 해외건설이 시동을 걸었다. 현대는 악조건이었던 이 공사에서 3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았지만 장비운용과 아스콘생산, 인력관리방법 등 귀중한 노하우를 얻었다.당시 우리나라 건설업체 대부분은 주한미군 발주공사로 연명하였지만 현대는 이 공사로 국제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1967년부터 시작된 경부고속도로 공사는 본격적인 해외건설 진출의 밑거름이 됐다. 1970년대까지는 전쟁 중에 있었던 베트남이 우리나라 해외건설의 중심지였고, 대부분 미군이 발주한 공사였다. 또한 1972년에는 현대건설이 인도네시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는데, 공사비가 3천200만 달러로 당시로서는 해외건설 최대 규모여서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1973년에는 삼환기업이 사우디 고속도로 공사를 했으나 250만 달러의 적자를 봤다. 이유는 세계적 유류파동으로 자재비가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물가상승에 대한 보상계약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적자는 불을 보듯 뻔했던 것. 큰 대가를 치른 후에야 설계도와 시방서 간에 차이가 있을 때는 시방서에 따른다는 소중한 국제관례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해외건설 행정업무가 매우 지연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입찰부터 시공까지 각 부처 간 협의가 복잡해서 행정업무 때문에 해외건설이 지연,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그래서 1974년 김재규 건설부장관 재임 당시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해외건설촉진법`이 제정되었고, 건설부에 `해외건설국`이란 직제가 신설됐다. 당시 필자는 해외협력관실에서 이 법의 시안을 담당한 주무계장으로 근무했다. 이 법에 따라 해외건설 도급허가를 얻게 되면 입찰자격, 송출 자재 및 인력 등 모든 부처의 업무를 생략하는, 즉 관계부처 협약 없이 해외건설 업무가 속전속결로 처리될 수 있었다.건설부는 또한 한국기업들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국내의 20대 대기업으로 컨소시엄을 구성, 해외건설주식회사도 설립했다. 입찰 때는 정부에서 보증까지 서 줬다.이러한 경험과 제도를 축적한 우리나라 해외건설은 1973년의 오일쇼크를 거쳐 1975년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공사는 바로 1976년 2월 현대건설이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렸던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만 공사를 거의 기적적으로 수주한 일이다.당시 현대건설이 입찰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방해 작업은 그들의 체면을 구길 정도였다. 그것은 세계 최대의 토목공사를 기술력이 부족한 현대건설에 맡길 수 없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되었다.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이 합작한 회사가 15억2천만 달러로 최고입찰가를 보였지만 현대건설은 고작 9억3천만 달러를 써 냈다. 최저가격이었다. 이마저도 네고를 통해 계약을 맺었지만 선수금만도 2억 달러에 달하였다. 현대가 수주했던 공사금액 9억3천만 달러는 당시 우리나라 정부예산의 5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현대건설은 이 공사를 통해 일약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부상했다. 현대건설의 이런 수주에 대해 국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최소 15억 달러의 공사를 9억3천만 달러로 최저 입찰했으니 현대건설의 앞날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우였음을 현대건설은 증명했다. 이 공사는 연인원 400만 명을 필요로 했으며, 하루에 200명의 기술자와 3천600명의 기능공들이 필요했다. 해외건설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였던 1977년에는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무려 18만여 명이나 됐다.포항에서도 500~600여 근로자들이 해외건설에 진출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포항상공회의소 강신우 회장이 이들의 해외진출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오면 필자가 이를 받아 처리하기도 했다.해외파견 근로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불상사도 빚어졌다. 1977년 3월 3천여 근로자들이 주베일 공사현장에서 인간적인 대우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폭등에 가까운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물론 이 사건의 발단은 사무국 직원들의 오만과 기능직 직원들이 피해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서로의 불신이 깊어진데 그 원인이 있었지만 해외진출 수요가 급증한것도 한 원인으로 파악됐다. 고급기술을 갖고 먼저 진출한 근로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기술이 낮고 후에 진출한 근로자들이 노임을 오히려 더 많았던 것도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들 근로자들은 기능공이 아닌 기능직 사원이라는, 신분을 높인 명칭으로 중동현장에 파견되었고, 그들의 기술 수준 또한 크게 향상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당시 중동을 다녀온 근로자들은 TV와 냉장고 등을 구입하는 등 삶의 질이 달라지면서 중산층 대접을 받기 시작하였다.우리나라 현대건설이 세계 최대의 공사로 불리던 사우디 주베일 공사를 수주했던 1977년부터 1983년까지의 8년간은 해외건설의 황금기였다. 이때는 연평균 65억 달러에 달하는 수주가 이루어졌다. 괄목할 성장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부족할 뿐이다.

2015-01-15

심맥회(心脈會)를 아십니까

▲ 조진 전 포항시의원1960~70년대 포항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학생모임 심맥회가 있었다. 66학번 선배들이 1기인데 우리는 기(期)라 하지 않고 맥(脈)으로 불렀다. 한 기수별로 10명 정도 회원이 가입했고 이후 13맥까지 이어져서 회원이 130여 명에 이르기도 했다. 필자는 7맥이다.필자가 대학 1학년 즈음에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서울 동숭동 중국집에서 주로 만났다. 고향을 떠난 선후배가 모여 향수를 달래며 술잔을 기울이던 옛 추억이 새삼스럽다.1970년대 초 여름이면 송도해수욕장 백사장 청소 등 봉사활동을 하고, 방학때 중학교에서 과외수업 지도를 해오다가, 1973년 겨울 우리는 포항에서 순수 학생들로써는 최초로 연극공연을 개최했다. `수업료를 돌려주세요`라는 연극이었는데 기획, 연출, 출연 등 모두 심맥회원이 맡았다. 생전 연극이라곤 처음 해보는 초보들이 한달 이상 대본을 들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밤 늦게까지 혼신을 다해 드디어 생애 첫 공연을 했으니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을까? 공연 무대에 오를 때 난생 처음 분화장을 하고 빌려온 양복을 헐렁하게 입고 연기하면서 서로를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당시 포항문화원(지금의 경찰문화센터) 강당에서 공연을 했는데, 다행히 수백명의 관객이 좌석은 물론이고 통로까지 꽉 차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준비한 회원들도 스스로 놀라 행사를 정말 잘 했다며 안도했다. 경비는 포스코를 비롯한 지역 기업체, 인사들의 도움과 약간의 자체 재원으로 충당했다. 공연에 참여했던 회원들이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를 하는데 어린마음에 그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한밤중에 송도해수욕장을 배회하던 그날 기억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이후 심맥회는 3~4년에 걸쳐 `여우`라는 연극을 한차례 더 하고, 음악회도 수차 개최했는데 당시 시민회관(현재 중앙아트홀)과 죽도동 국제극장 등을 이용했으며, 가곡공연에는 엄정행, 김원경, 김청자 교수 등이 출연했고, 국악공연에는 조상현, 조통달 선생 등이 출연했다. 당시 서울음대 성악과에 다니던 6맥 박정하 선배(전 나사렛대 교수)의 활약이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음악회 역시 관객이 넘쳐 대성황을 이뤘다.심맥회는 당시 회지(會誌) `심맥`도 제작, 발간했는데 회 소식과 회원들의 시, 수필 등 문학작품 및 회원동정 등을 실었다. 당시 철필(鐵筆)로 쓴 인판지를 등사해 일일이 제본해 만들었다. 오직 회원들의 열정으로 잡지발행까지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에는 회원들의 군입대가 잇따르고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그런 활동이 계속 이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도 60여 명의 회원들이 포항과 서울에서 각각 모임을 이어가며 일년에 한번 합동 모임도 하고 있다.현재 포항회장은 1맥 남성규 (주)진영산업 대표이사이고, 서울회장은 3맥 이균호 전 동부화재 부장이다. 회원들은 사회에 진출해 각계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회원 몇 분을 소개하면 1맥 문충배(전 포항사랑병원장), 손민(동해기연 사장), 김해규(서울 진주약국 약사), 2맥 오임상(전 서울대 교수), 3맥 고 권종락(전 외교부 차관), 오창록(정형외과 전문의), 4맥 이희달(전 산업은행 부행장), 정용호(화일약품 부사장), 5맥 김용길(고대교우회 포항지회장), 문대성(전 인천대 교수), 배영철(징콕스코리아 사장), 6맥 금태환(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 겸 포항뿌리회장), 김진오(전 광주고검 부장검사), 7맥 박승대(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박정찬(전 연합뉴스 사장), 황영명(효산출판사 대표), 8맥 조병현(서울고등법원장), 김철구(전 포항MBC 보도제작국장), 9맥 이석철(천일가스 사장), 도성환(홈플러스 사장), 10맥 백남도(전 포항시 자원봉사센터 이사장), 11맥 문충도(일신해운 사장) 등이 있다.지금은 어느덧 황혼을 바라보는 회원들이 40여년 전 고향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애쓰던 젊은 시절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추억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2015-01-09

KBS 포항방송국 태동과 에피소드

▲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1960년대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라디오가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물론 신문과 TV가 있었지만 보급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라디오는 보물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라디오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PR`(Public Relation)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한 시기가 5·16군사정부를 전후해서다. PR은 기관·단체·기업 등이 대중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표와 의지, 즉 의사전달의 수단으로서 선전·설득하는 행위로 정의되는데, 대중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군사정부는 자신들의 혁명 공약 등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성이 많았다. 실제 군사정부는 가장 먼저 전국의 각 시·군에 `공보실장`이라는 직제를 새롭게 만들었다. 영일군에는 포항고 4회 출신인 이상원 전 상공부 국장이 초대공보실장으로 임명됐다. 또한 `행정방송`이라는 것을 실시하였다. 경상북도에서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를 통하여 각종 행정사항을 각 시·군에 전파하였고, 각 시·군에서는 이 방송내용을 타자수가 타이핑하여, 이를 공문으로 만들어 각 읍·면·동으로 하달하였는데, 이를 이른바 `행정방송`이라 했다.행정방송은 오늘날 세계 굴지의 기업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되는, 뜻밖의 결과를 낳는다. 당시 금성사에서는 3천여 대의 라디오를 생산했으나 판매가 어려워 부도직전에 몰렸는데, 군사정부가 행정방송을 목적으로 이를 대량으로 구매해 각 시·군으로 내려 보냈다. 이로 인해 부도위기에 몰렸던 금성사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정부내에서는 잘 알려진 일화다. 군사정부는 처음에는 국영방송이었던 KBS를 통해 방송차량을 이용한 이동방송국을 운영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아예 행정방송을 만들어 정권 옹호 수단으로 활용했다.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이는 결과적으로 오늘날 방송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포항에도 행정방송이 태동하기 이전부터 KBS이동방송국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공보부 소속이었던 KBS는 방송차량에 장비를 싣고 방송국이 없는 지역들을 돌며 방송 서비스에 나섰는데, 1957년 10월 그 중 한 대가 포항초등학교에 자리를 틀면서 포항방송국이 태동하게 됐다. 신기한 라디오방송 현장을 구경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보기 위해 방송차량 주변은 늘 구경꾼들로 넘쳤다고 한다.그 이듬해인 1958년 이동방송차량이 철수하고, 포항 동빈동 한 건물에 방송장비를 설치한 후 정규방송을 시작했으며, 1961년 6월 포항시 덕산동 소재 2층 건물 포항교육청에 세를 들면서 마침내 정식방송국으로 승격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개국 당시의 출력이 250W에 불과해 야간에는 흥해에서도 청취가 불가능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포항방송국 초창기부터 아나운서로 입사해 13년 넘게 재직했고, KBS대구방송총국 편성제장국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한 후 아직도 KBS포항방송국 출신들의 친목모임을 이끌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최규열 회장은 포항방송국 태동과 발전을 지켜본 산증인이다.그는 언제 어디서나 “팔순을 앞두고 있는 내 인생에서 포항방송국을 빼고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포항방송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최 회장은 개국 당시부터 스타 아나운서로 명성을 얻었으며, 향토방송인 출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최 회장에 의하면 포항방송국은 개국 당시 국장, 방송과장, 기술과장 등 13명의 직원이 전부였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미니 방송국에 불과했지만 당시로는 첨단시설이었고, 아나운서들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1960~1970년대 그가 맡았던 `직장대항 노래자랑` `해병의 밤` `농어민의 시간` `방송백과(문화, 경제, 산업, 체육 등을 다룸)` 등의 프로그램 역시 인기가 많았다고 전했다.또한 지금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국영방송국이었던 탓에 당시 방송국 청사에는 `합심하여 이룬 혁명 단결하여 완수하자` `반공으로 국가통일 재건으로 혁명완수` 등의 군사정부 구호가 걸려 있었다고 했다. 방송사정이 이렇다보니 갖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신청곡과 사연을 엽서에 적어 보내면 노래를 들려주는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돈을 빌려주지 않거나 데이트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녀 간의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사연을 소개해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 1971년경 모 전국구 국회의원은 차기 지역구 출마를 계획했는데, 조항산 중계소 준공기념식에 자신이 예상하는 정적을 단상으로 모신 것에 불만을 품고 국장실에서 책상을 치며 소동을 일으켰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에게 10분간의 의정보고 방송시간을 할애하는 해프닝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포항방송국은 이동방송국에서 동시에 정식방송국으로 승격됐던 속초·여수·포항방송국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다. 속초와 여수방송국은 지난 2004년 지역방송국 기능이 조정되면서 문을 닫았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터를 닦은 포항방송국이 더 큰 발전을 이뤄 지역을 선도하는 국영방송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2015-01-08

포항이 각성해야 할 도심의 위기

▲ 손형석포항도시재생위원회 위원장 1970년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이 잘살아보자는 국민의 뜻을 모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속에 포항종합제철소(현 포스코)를 세워 오늘의 번영을 이뤘다. 1995년 포항은 민선시장이 선출되면서 영일군과 통합됐고, 인구 80만 도시라는 목표 아래 장성, 양덕 택지 개발이 이뤄졌고 오천, 문덕, 대이동 등 약 250만평의 택지가 개발됐다. 하지만 현재 포항에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다. 문제는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이다. 원인은 전임 시장의 8년 임기 동안 약 320만평 택지가 지금까지도 개발되면서 원도심의 인구가 신도시 아파트 건립지로 이주했고, 2006년에는 포항시청 마저 현 청사로 이전했기 때문이다.모든 세상의 이치는 중심이 무너지면 대안이 없다. 포항의 통합 당시, 전주시와 청주시는 포항과 비슷한 인구였다. 지금 청주시는 인구 64만이 넘고, 전주시 역시 63만이지만 포항시의 인구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필자는 45년 동안 대흥동에서만 살아왔다. 돌이켜 생각하면 IMF시기에도 지난 한해만큼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중앙동, 대흥동 등 원도심에 작은 사업장이라도 가졌노라면 아침에 눈을 떠서 자신의 사업장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들 이구동성 말한다. 그 만큼 작금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 KTX가 포항 경제를 일으키는 동력 인양 이슈가 되지만 교통이 편리해지면 이용하는 고객이 편리한 곳으로 빨대현상이 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대형유통업체의 입주는 행정으로 막는 것도 한계가 있고, 울산 고속도로가 내년에 완공되면 신세계 백화점 입점과 동시에 포항사람은 많은 쇼핑을 갈 것이다. 동대구 역사부지에 신세계백화점이 입점해도 마찬가지다.포항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할 것인지, 정치권은 이 사실을 진지하게 주목해야 한다.지난해 12월 26일 포항mbc에서 `포항역사 활용방안`에 관한 시사토론이 있었다. 당시 나온 대안들은 하나같이 지역 실정과 무관한 선진 외국 사례들이다. 과연 선진 미술관이나 공원 등의 입지가 지역 주민의 경제생활을 얼마만큼 향상시킬 수 있을지 진정으로 고민은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포항 역사부지는 주변 개인 소유를 포함해서 그동안 정말로 지역주민들에게 끼친 피해도 많다. 주변은 시설부지로 묶여서 재산권 행사도 못하는 주민들도 있다. 진정 무엇이 이 지역에 필요한 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답은 주민들에게 있다. 주민들은 떠나간 이웃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한다. 사람이 거주하고 사람이 찾아오는 사람 냄새 나는 도심이 되기를 바란다.특히 중앙동은 포항 상권의 중심이었고, 현재도 상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도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주거를 했으나, 주변 지역의 개발로 신도시 아파트에 입주하며 모두 떠났으며, 이곳은 이제 노인과 오랜 건물들만 남았다. 거기에 주거환경 역시 최악의 상태로 도시가스 조차 설치되지 않고, 도심 한복판에서 아직도 연탄을 사용하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시장님과 시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신지 진정으로 민심을 읽어줬으면 한다.그럼에도 포항의 지방세수(稅收)는 중앙동이 어느 지역보다 높으며, 토지 공시지가는 장성, 양덕, 오천, 이동의 10배이다. 이러한 포항의 원도심이 서서히 병들고 뿌리는 썩어가고 있다.원도심의 주민으로서 시장님과 시·도의원들께 건의한다. 시민이 뽑은 시장님은 시민의 뜻을 살펴주고, 지역주민이 뽑은 시의원, 도의원은 그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현재의 직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뽑아준 주민과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행정은 실패한다. 주민과 전체 시민의 뜻을 잘 헤아린다면 오랫동안 지역민과 함께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15-01-08

월성 발굴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월성은 2천년 역사를 지킨 경주인의 자존심이 서린 곳이다. 월성을 중심으로 경주엔 국가 지정 문화재만 205건으로 우리나라 전체문화재의 70%가 존재하는 곳이며 도심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적 유적 도시이다. 경주의 땅은 원삼국시대 이전 유적부터 층층이 잠자는 곳이다.더욱이 월성은 세계 역사에서 찾을 수 없는 천년 왕궁이 있었던 자리다.토성 속에서 어떤 문화재가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실크로드를 오간 신라인들이 남긴 호사스럽고 예술미가 극에 이른 생활유물들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성덕대왕신종에 돋을새김으로 남긴 일승(一乘)원음의 정신세계를 뒷받침하는 유적들이 나올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될 지역이다.지금은 옮겨갔지만 월성 가운데쯤 숭신전이 있을 땐 숲과 골기와 집 전각을 지나 석빙고 안압지(옛지명), 귀정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최고의 이야기 길이자 답사코스여서 천 번은 더 오르고 내린 길이다.이 월성이 앞으로 10년간에 걸쳐 발굴된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12일 고유제를 올리고 예산 500억원이 들어가는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1970년대 경주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천마총과 황남대총, 안압지, 황남동 일원의 발굴조사에 이어 황룡사 발굴을 뛰어넘는 대규모 조사다.문화재 당국은 발굴조사에 앞서 전자탐지기로 월성 일대를 조사해보니 곳곳에서 건물 구조 흔적이 나왔다고 한다. 이런 흔적을 중심으로 트렌치를 넣어 유구를 찾아내고 실측, 유물 수습, 복원과정을 거친다.월성은 토성이지만 성의 뼈대는 돌로 쌓여져 있다.파사왕 기록을 보면 홍수로 서쪽 성의 일부가 훼손되자 남천바닥의 돌로 성의 기초 즉 토성의 심으로 삼았다. 월성은 남천, 북천의 바닥돌과 남산에서 옮겨온 돌로 기초를 만들고 흙을 덮는 고난도의 축성(築城)기술이 동원 됐다.필자가 문화방송 기자로 신라 통나무배와 금관 등을 특종보도를 했던 1970년대 경주는 미추왕, 내물왕, 황남대총과 천마총 가는 길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미나리 밭, 호박이 달린 채소밭이었다.현재 복원된 월정교에서 반월성으로 오르는 귀정문은 신라당시부터 유명했다. 차(茶) 통을 등에 짊어진 충담사가 귀정문을 통해 궁성으로 들어와 경덕왕에게 저 유명한 향가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70년대 경주문화를 이끌었던 윤경렬, 박지홍, 최남주 선생이 신라 천년의 흥망을 지켜본 귀정문에서 제1회 신라문화제 서제를 올려 후생(後生)의 도를 세운 곳이기도 하다.명주실 한 방구리가 들어간다는 숭신전 석정(石井)의 전설로 겁먹은 소년들은 그믐밤엔 접근조차 못했던 신비스런 곳이다.월성에 올라 경주를 바라보면 신라 왕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돌아서면 불국토로 가는 기와집 길이 들어서고 옆으로 서면 남산으로 가는 월정교와 해자(垓字)가 된 가로막는 지형이다.문천엔 원효와 요석공주, 김유신을 사랑한 천관녀의 얘기가 있고 김유신의 두 누이였던 문희 보희가 꿈을 사고 팔았던 전설의 집터가 월성 언저리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가야에서 서라벌로 온 탈해(4대)가 숯덩이를 미리 묻어두고 호족에게 뺏은 명당자리가 월성이다. 파사왕이 왕궁을 지어 들어왔고 경순왕 9년 신라가 망할 때까지 천 년 간의 수도요, 왕궁이었다.경주는 어설픈 발굴로 출토당시대로 보존되지 못한 뼈아픈 과거사도 간직하고 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주령구를 불태우고 햇빛을 보는 순간 칠기의 그림이 날아가 버리는 등 그동안의 발굴조사를 보듯이 잘못된 발굴은 되돌릴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며 바로 멀쩡한 문화재를 파괴하는 현장이 된다. 일본은 나라시대 왕궁을 50년을 조사하고서도 아직 반밖에 하지 못한 조사과정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 역시 신중에 생명을 건 병마용 조사도 그렇다. 땅 밑에서 어떤 문화재가 출토될 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완벽한 기술이 없으면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늦추는 것도 방법이다.

2015-01-05

길 잃은 공직사회, 茶山에게 길을 묻다

▲ 김만수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로`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오는 말로 `사슴(鹿)을 가리켜 말(爲)이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즉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정치적으로는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들은 “2014년에는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고, 세월호 참사,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등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어쩌다가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함양미달의 사람들이 정치권은 물론 공직사회, 종교, 교육 등 사회전반에 걸쳐 실권을 장악하다보니 그들에게 굴종하는 `간신모리배`들이 마치 자신들이 나라와 소속집단의 주인인양 권력을 농단하는 그야말로 순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그렇다면 우리가 이 어두운 질곡에서 벗어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인가? 그 해답은 조선시대 민본(民本)사상을 기본으로 한 가장 이상적인 관료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시했었다. 다산 선생은 이미 200여 년 전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줄기의 의지로 75년의 생애를 썩고 병든 조선을 개혁하고, 관리들의 횡포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하려는 애민과 위민정신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통해 구해내고자 치열하게 살다간 최고의 실학자이자 유네스코가 인정한 역사적 인물이다.정치 경제 조세 법률 의학 문화 과학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다재 박식했던 다산은 수 천년에 걸쳐 동양의 정신을 지배해왔던 유학을 철저히 고증하며 중앙 관리는 물론 지방 행정의 수장, 암행어사 행각 등 공직현장에서 경험한 생생한 견문과 실학사상을 토대로 병든 조선을 개혁해 부국강병을 꿈꾸다 40세가 되던 해에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포항 장기에 유배를 시작으로 18년 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러나 다산은 좌절 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한문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500권이 넘는 주옥같은 저서를 남겼다. 수많은 불후의 명저들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목민심서`는 부패가 극에 달한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조선 후기 최악의 사회 상태와 정치현안들을 민생문제와 결부시켜 공직자(목민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자격과 공직자의 책무를 총 12부 72조에 거쳐 일일이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공직윤리를 강조했다.특히 다산은 공직자가 되려면 먼저 인성과 품성과 덕성을 기르고 갖춘 후에 공직에 나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공직자의 윤리는 능력과 분수를 지키는 일이며, 봉급 외에는 먹지 않는 청렴함과 “목민관은 술을 끊고, 여색을 물리쳐야 하며, 거칠고 방탕하게 놀아선 안된다”는 삼금론(三禁論), 그리고 뇌물은 아무리 비밀리에 주고받더라도 하늘이 알고 (天知), 땅이 알고(地知), 상대가 알고(子知), 내가 안다(我知)는 사지론(四知論)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산은 공직 생활을 잘하는 요체로 두려워할 외(畏)자를 꼽았다.다산의 이 같은 사상과 공직윤리는 시공을 초월해 존경받고 있다. 가깝게는 통일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 호치민도 부패한 공직자들을 척결하기 위해 다산의 `목민심서`를 항상 머리맡에 두고 애독하고 공무원들에게 지침서로 애독케 했다고 한다.이 땅의 공직자들에게 당부드린다. “공직자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공직자들이여, 목민심서를 읽고 다산을 만나라. 거기에 길이 있고,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2014-12-30

사회적 공감을 부른 `미생(未生)`의 시청률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지상파 3사가 시청률 사투를 벌이는 곳이 드라마다. 그런 지상파를 누르고 케이블 tvN의 드라마 `미생(未生)`이 시청률 상위권에 올라 화제다.“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미생`의 대사가 팍팍하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30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등 연말을 맞아 속이 허전한 시청자들을 TV앞에 묶어둠으로써 매주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지상파 3사는 아침저녁 황금 시간대를 시청자들이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눈물겹도록 고마운 편성을 했는데도 `미생`에 밀려버린 셈이다. 지상파의 주중 드라마가 올해는 거의 10%대 시청률에 머물렀던 반면 시청률로 고전했던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를 뜨게 했다.지금 지상파의 드라마는 갈등을 부추기는 소재가 흔하다.출생의 비밀, 뒤틀린 인연, 숨겨진 과거 얘기 등 소재가 진부하고 비슷비슷하다. 사극도 퓨전이어서 시청자들이 금방 싫증을 내고 채널을 돌려버린다. 실제로 어느 지상파의 겨울 개편 설명회에서 예전처럼 이지 고잉(easy going·적당히 하는 것)을 하면 안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지상파 3사가 드라마를 뺀 금요일 황금시간대를 이용한 편성도 돋보인다.금요일 시청자를 토요일까지 붙들어두는 편성 전략도 돋보이지만 그 흔한 출생의 비밀이나 멜로를 집어넣지도 않고 안방극장을 평정했다. 기존의 드라마 형식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성공한 사례를 만들은 셈이다.드라마는 `땅콩 회항사건` 등 우리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갑을 관계를 재미있고 현실감 있게 펼쳤다. 직장에선 항상 마이너라고 할 여성과 직장맘의 위상이 그렇고 스펙을 쌓지 못한 비정규 사원의 신세가 리얼하게 그려졌다.장그래(임시완 분)가 사업아이디어를 냈지만 돌아온 결과는 정규직 사원의 공로가 된 반면 자신에게 돌아온 엄청난 심리적 고통으로 인생의 무게가 실려지는 과정을 그렸다.바둑 입단(12월5일 방송)에 실패한 장그래는 말 그대로 문제의 청춘이었다.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장그래는 팀장이 준 10만원으로 양말과 속옷을 사서 팔러 나가지만 바둑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그는 기원을 찾아가지만 금방 분위기가 싸늘해 진 것을 눈치 챈다.양말과 팬티는 사우나 앞에 가서 팔아야 성공한다는 영업사원의 비밀을 풀기까지의 과정이 현장감 있게 풀어내는 등 구성자체가 탄탄하다. 드라마는 사회적 약자의 심적 아픔을 풀어보려는 친구들의 배려, 어느 곳에서든 살아있는 정의의 움직이는 존재감에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는 대사역시 혼돈으로 치닫는 우리사회를 건지는 평범한 진리일 뿐이다.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소비수준으로 보면 4만달러 시대에 사는데 국민의 행복감은 소득 5천 달러 국가와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쟀더니 27위, 사회적 갈등부분은 끝에서 2위이니까 바닥 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의 공정성은 끝에서 1위였다.얼마 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정직지수조사(흥사단 윤리연구센타)에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정직 윤리의식은 58.3점으로 지난해 이맘 때 조사한 청소년 정직 지수에 비해서 무려 15.7점이 낮았다.이런 사회 분위기를 드라마 `미생`의 작가는 놓치지 않았고 또한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 위해서 용기를 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료들이 늘 뒷받침하는 심리적 공감대야 말로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게 된 배경일 것이다.30대에서 `미생`이 요동치는 현장은 정직과 현실이 갖는 의미의 차이에서 나온 것일까.물론 퓨전 사극의 틈에서 정통사극을 성공시킨 `정도전`의 시청률(종영 무렵 19%, 닐슨코리아)이나 중국 한류를 다시 끌어낸 `별에서 온 그대(최고 시청률 28.1%)`, `밀회`, `장보리` 등 지상파의 몇 몇 드라마 시청률은 알아줄만 했다.

2014-12-19

“국민의 안전 골든타임, 119가 지켜드리겠습니다”

▲ 성정민구미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지방소방사 저는 간호사의 자격을 갖고 구급대원으로써 시민의 위급상황에서 응급처치가 필요할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아주 높고 공익을 위하는 일이라 보람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감사한 직업이란 생각 듭니다.구급대원은 특성상 참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슬픈사연, 황당한사연, 가슴아픈사연 및 질병, 교통사고, 산악사고, 각종 사고부상 등등….그런 현장을 출동해 수습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럴때면 현장에 환자나 요구조자들은 전적으로 저희 대원들을 기다리며,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그리고 환자의 상태 파악 등 필요 시 산소투여, 약물투여, 출혈처치, 모니터로 환자감시 또 상황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병원에 통보하는 역할을 합니다.저의 처치로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될 때 저는 무한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일이 종종 발생되어 이렇게 글울 쓰게 되었습니다.119구급차는 정말 응급 할 때만 이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아플때면 119, 힘들 땐 119라는 인식이 많이 홍보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위급상황이 아님에도 119요청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전체출동건수에 과반수이상이 단지 단순병원 이송만 하는 비응급환자로 보여 집니다. 단순 병원 이송하는 게 뭐 대수겠습니까? 도움이 된다면 도와드리는 게 좋지요. 급성심장질환, 사고로 인한 중증외상 환자의 생사는 정말이니 촌각을 다투는 시간싸움입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지요? 최대한 빨리 발견하고 구조하며 응급처치 후 병원이송, 병원에서의 처치들이 하나하나 빠짐없이 이뤄져야만 생명 하나를 다시 온전히 살릴 수 있습니다.하지만 한 센터에 배정된 구급차는 한 대이고 그 한 대가 출동 중이면 인근 더 멀리 있는 구급차가 우리 관내까지 오는 데 시간은 2배 이상 걸리게 됩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싸움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지는 것입니다.이런 사례는 실제로 여러번 겪었습니다. 주취자와 병원 이송여부를 두고 실랑이 할 동안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곳 바로 뒤 화사에서 급성심정지 환자가 발생했고 저희 구급차는 이미 주취자와 씨름 중이었고 타 관내 구급차가 현장도착하기 까지 십여 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빠른 재세동처치가 이뤄졌다면 그분은 살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그분의 심장은 안타깝게도 다시 소생하지 못했습니다.구급차란 무엇일까요? 언제 이용하는 것일까요?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구급차라고 함은 응급환자의 이송 등 응급의료의 목적에 이용되는 자동차 등을 말하는 것이며, 응급환자라 함은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한마디로 요약하면 구급차는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것이며 응급환자는 응급처치가 아니면 생명에 지대한 영항을 미치는 환자를 말합니다.119구급차, 여러분은 어떻게 이용하시겠습니까?긴박할 때 적절한 응급처치가 기본이 되어야겠지요? 여러분의 올바른 의식이 하나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2014-12-18

해맞이, 포항 호미곶으로 오세요

▲ 오원기포항시 호미곶면장 2000년 밀레니엄 국가 행사로 지정되면서 포항 호미곶 해맞이가 전국 최고의 해맞이 명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소통과 화합의 상징인 영·호남의 `상생의 손`사이로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희망의 태양`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포항 호미곶을 찾고 있다.해맞이의 시초는 바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태양의 정기를 되찾기 위한 제사에서 비롯됐으며 연오랑과 세오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포항은 전국에서 으뜸가는 일출명소이다.올해도 어김없이 간절한 소망을 담고 웅장한 일출을 보기 위해 수십만 인파들이 포항 호미곶으로 발길을 향하고 포항의 유명한 `구룡포과메기`와 `대게`, `호미곶 돌문어`, `검은돌장어` 등 별미를 즐기고 도란도란 가족, 친지들과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해맞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은 1년 동안 분주하게 달려왔던 일상에 저속 기어를 넣고 삶의 속도를 늦춰 진정한 쉼을 얻는 신선한 청량제이며 가슴 설레는 여행준비를 하는 것부터 여행이 시작된다.호미곶 면민들은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오는 을미년을 풍성하게 계획하기 위해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전국의 관광객들을 위해 마을안길 청소, 주차장 준비, 친절봉사, 바가지 요금 근절 등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 놓고 있다.해맞이 여행과 더불어 204㎞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진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양관광 도시인 포항의 환상적인 해안선을 드라이빙 하면서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등대박물관`, `대보항 트릭아트` 등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근대문화역사거리는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 과거의 아픈 역사도 보존해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의 장소이기도 하며 일본식 가옥들을 보존해 `일본인 가옥거리`로도 불리며 6개월 뒤에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이색적인 느린우체통이 있는데 새해에 가족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써도 좋을 것이다.호미곶 대보항에 조성된 세계 최장 160m 트릭아트는 기네스북에 오른 중국의 148.63m 보다도 12m가 더 긴 실물처럼 보이는 트릭아트 벽화길이 조성돼 방파제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아쿠아리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포항시청 페이스북에 공유돼 단 하루만에 12만 명이 게시물을 보는 등 온라인상에 상당한 반향을 보이며 1천200여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또한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해맞이 광장의 `새천년기념관`에는 수 만 년 지구의 역사를 가늠케 해주는 `화석박물관`과 한국수석회 회원들이 기증한 전국 각지에서 수집된 진기한 모양의 수석들이 전시돼 있는 `수석박물관`도 있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해맞이 이후 포항영일대해수욕장나 죽도시장, 구룡포를 찾아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포항에서 가장 내세울만한 것은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서 보는 일출이다. 누가 뭐라해도 전국 최고의 일출 명소가 틀림없다. 이곳은 강원도 정동진이나 울산 간절곶보다도 더 뛰어난 일출 풍광을 자랑한다. 상생의 손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한 해의 소원을 빌어보라. 이루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새해 첫날 해맞이를 간다는 것은 바로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맞으러 가는 적극적인 행동이며 한 해의 새 계획과 비전들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바라는 아름다운 마음의 향연이다.일출의 명소 해맞이 광장에서 새해를 맞이한다면 행복과 기쁨이 풍부하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 확신한다.

2014-12-15

다음 생에서 남편 피하는 법이 있을까

▲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얼마전 통계청이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남자는 43.6%가 하고 싶다는 답을 내놓은 반면 여자는 44.8%가 “해도 좋고 안해도 된다”는 심드렁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이 들수록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는 남편을 두고 늙은 아내는 기겁할 일이다.종종 사람들이 묻는 말이긴 하지만 배우자를 보는 시각에 따라 애꿎은 질문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박완서의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도 입만 열면 도덕책 같은 소리를 되풀이해 넌더리를 내던 아내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자 딸의 뒷바라지를 핑계 삼아 서울로 가 별거에 들어갔다. 은퇴 이후에도 연금을 꼬박꼬박 받으면서도 남편을 찾지 않았다. 많은 아내들이 벼른다. “한번 늙어만 봐라”고.부부의 인연법에 대해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1891~1943) 대종사의 해법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그 시절에도 그런 부부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종경을 보면 부부사이가 늘 나빴던 그는 남편을 미워하고 “다음 생엔 부부의 인연을 맺지 아니 할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그 말을 들으신 소태산은 “그 남편과 인연을 맺지 아니하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두지 말고 오직 무심(無心)으로 대하라”고 일러주었다.일상에서도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옆자리가 잘 비워 있는가 하면 출근길 차 속에서도 자주 마주친다. 이걸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해 “저 인간만 마주치지 않으면 좋겠는데”하는 마음을 먹으면 미움을 사는 일을 덧칠을 하는 셈이다.석가모니를 연원불로 한 소태산의 진단은 예상 밖이다.참회(懺悔)가 아닌 무심(無心)이었다. 소태산은 인연 농사를 잘 지을 것을 강조했다. “너와 나의 선 긋기는 거리를 더 늘이는 방법이다” 그럴수록 선의 두께만치 인연의 두께가 쌓이는 것. 소태산은 대종경선외록(大宗經選外錄)등 여러 곳에서 미워하는 인연일수록 `밧줄로 둘을 묶어 버리게 된다`고 강조하셨다.소태산의 설법자체는 흥미롭다. “미워하지 말라거나 좋아하도록 노력해 보라”가 아니고 무심으로 만나는 거여서 실제 사용하기에도 거부감이 없다. 무심은 마음 작용은 되지만 미움이란 마음 찌거기를 남기지 않고 시공(時空)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쓰는 방법이 법구(法句)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몇 년 사이 자유로운 명상(冥想)수련으로 이름을 날린 마음수련원 창시자 우명 선생은 “인간의 집착은 마치 좋은 장면으로 사진으로 남겨 영구보존을 하려는 것처럼 집착으로 남는다. 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말씀하셨다.2천500년 전에 다녀가신 석가모니는 “세상에 살면서도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열반(涅槃)의 가치관(價値觀)을 증득(證得) 할 수 있다”고 설법했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늘 재색명리를 찾기 위해 번뇌스런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의 생사(生死)를 윤회로서 파악, 생명의 인연(因緣)은 자신의 행위 결과에 따라서 나고 죽는 일을 반복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윤회사상은 불교 뿐 아니라 힌두나 자이나(Jainism)교의 근본 교설(敎說)이기도 하다.밥 한 그릇도 지을 줄 모르는 남편일수록 나이 들면 아내 곁에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으니 늙은 아내는 기겁할 일이다. 부부를 끌어당기는 고무줄은 탄력이 좋을수록 더 좋다.50대 백수가 흔한 요즘 같은 세상을 잘 헤쳐나가려면 남편이야말로 아내 뜻과 크게 다르지 않는 생활을 위해 굽혔다 폈다가 자유스러운 유연성을 40대부턴 길러야 할 것 같다. 말년이 춥고 고달프지 않는 길을 미리 찾아 두는 것도 인연농사를 잘 짓는 법이다. 이 칼럼이 신문에 나면 나의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부터 입가에 웃음이 핀다.

2014-12-12

포항 민원 창구 `영포목우회`

▲ 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지난 2010년 7월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하나 터졌다.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특히 야당은 이와 관련, 포항 출신들을 몰아세웠다. 이모 공직윤리지원관 등 포항출신들이 국정농단을 했다며 연일 정부와 여권을 물고 늘어졌다. 여권에서 악의적인 정치공세라며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를 지켜본 포항출신 출향인들은 물론 포항시민들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급기야 전국 신문과 방송 등에서 `영포게이트` `영포회` `영포라인`에 이어 `영포목우회`를 거론하며, 이들을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오도하고 매도하기까지 했다. 포항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지만 국민여론은 차가웠다. 결국 이 일로 대통령을 배출했던 포항이 국민들에게 마치 불법사찰을 일삼는, 불순하고 파렴치한 집단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포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모래 섞인 밥을 먹으며 포스코를 세워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포항시민들은 명예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당시 필자를 비롯하여 뿌리회 등 지역시민단체들은 일부 정치권의 악의적인 포항 매도에 단단히 화가 났다. 더이상 포항 매도를 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에 이어 야당 당사를 항의 방문하고, 한 중앙지에 포항의 분노를 글로 싣기도 했다. 사실 포항과 민간인 사찰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녀사냥의 표적이 됐던 영포목우회는 2010년 사단이 나기 15년 전인 지난 1985년 10월 영일과 포항 출신으로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사무관 이상 공무원들이 만들었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우의를 도모하고, 더불어 고향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창립했던 것이다. 이 모임의 초대회장은 필자가 맡았고, 이어 최주영 전 건설부 도로국장, 박명재 현 국회의원, 박승호 전 포항시장 등이 회장을 맡았다. 이렇게 수구초심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영포목우회를 야당은 느닷없이 국정을 농단하는 파렴치 집단으로 둔갑시켜 향토출신 공직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서울에는 예나 지금이나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전국의 230개 지자체 출신들이 대부분 향토 출신별로 구성된 모임을 두고 있다. 동향출신 공직자 모임은 허다하며, 영포목우회는 그중 한 모임에 불과했던 것인데, 야당은 엄청난 화력을 쏟으며 초토화시켰다. 영포목우회는 그때 너무 큰 상처를 받아 아예 활동을 중단했고, 아직도 재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초대회장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당시 영포목우회를 탄생시킨 가장 큰 배경에는 고향에서 올라오는 민원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영포목우회가 창립되기 5~6년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1972년부터 1988년까지 16년 동안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고 강신우 삼일회장도 영포목우회 탄생에 영향을 주었던 분이다. 강 회장이 포항상의를 맡은 이후 중앙부처로 가져오는 고향민원이 날로 늘어났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고향출신 공직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래서 각 부처 사무관급 이상이 고향민원에 대해 행정적인 안내를 하자는 마음이 모아지면서 영포목우회가 태동했다. 당시 고향민원은 대부분 건설부, 상공부, 농수산부, 문화공보부 관련 소관이었다. 강신우 회장이 고향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상경하던 초기만 해도 필자가 이를 받아 각 부처에 근무하는 향토출신 공직자들에게 다시 안내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고향민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운 상황이 되면서 건설부는 필자, 총무처 박명재, 상공부 이상원, 농수산부 이기해, 문공부 이상용 등이 민원을 나눠 분담해 소위 `고향 관련 민원창구` 역할을 했다. 고향민원 중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해외건설 취업관련 민원이었는 데, 1970년 말에서 1880년대 초까지 대략 600여건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돌이켜보면 당시 포항 영일 출신 사무관 이상 영포목우회 회원들은 오직 고향발전에 힘을 보탠다는 목적 하나였고, 뜻이 모아져서인지 의지도 대단했으며, 성과 또한 많았다. 각 부처 예산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지 고향 포항에 내려보내려고 애썼다. 이런 것은 다른 자치단체 출신도 다 마찬가지였으니 그게 문제될 건 없었다. 상호 업무협조와 고향에서 올라오는 민원을 올바르게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영포목우회. 하루빨리 기력을 되찾아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한다. 경북매일신문이 2015년 1월 16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재경포항출향인 신년교례회를 개최한다고 하니 아픈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고향발전을 위해 함께 모이길 간곡히 당부드린다. 글로벌 철강경기 침체로 지금 포항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대들의 지혜 하나라도 아쉬운 마당이다.

2014-12-11

경주시의회 싱가포르 해외연수

▲ 한순희경주시의원·수필가 호텔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돌았다. 전 세계 지구인들이 찾아와서 24시간 살아 꿈틀거리는 젊은 도시다. 젊은 사람들 취향의 옷가게와 카페, 그리고 식당들은 지난밤을 이야기 하듯 어지럽고 골목마다 여행 가방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로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시시각각 구름과 햇빛이 펼치는 하늘의 모습을 보았으며 지금 현재는 비가 내리지만 우산이 없어도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건물 구조가 이 나라의 기후 조건을 잘 반영한 듯하다. 형형색색의 아파트와 예쁜 파스텔톤의 색감이 예쁜 건축물들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같은 구조의 건물은 국가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아 설계에서부터 예술성이 가미된 독특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 세련된 도시다. 한 번 심은 나무는 바람이 없는 관계로 아름드리 고목으로 자라 도심 속 공원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푸른 도시로 부르고 싶다. 정치가 안정이 되어야 연속적인 계획된 도시를 만들 수 있어 경제 부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부러운 나라다. 장애인을 돌보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을 찾았다. 중증장애인들이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곳으로 후덥지근한 날씨로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고 있는데 장애인을 보는 순간 내 마음까지 더워지는 것 같다. 대부분 누워서 생활하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가정에서 돌보지 못하는 1급장애인들만 돌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시설을 둘러보며 프로그램 운영 방법과 자원봉사 교육을 받고 식사 배식을 했다.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를 침대를 세워놓고 죽을 떠 먹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숟갈 두 숟갈 정성껏 떠 먹였다. 경주시 노인전문 요양병원 등 다른 장애인 시설에도 가끔씩 봉사활동을 했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환자를 돌보는 곳은 처음이다.버스로 2시간을 이동해서 납골당(니르나바)을 찾았다. 장엄한 장송곡이 흐르는 곳이 아니고 5성급호텔에 휴식을 취하러 온 것 같은 분위기다. 싱가포르 자국민 절반가까이 안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호텔보다 더 호화롭게 장식돼 있어 탄성이 흘러나왔다.주룽새공원을 탐방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숲 속을 달리는데 새 소리의 오케스트라와 공기의 상쾌함이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새들의 지상천국이다. 플라밍고의 군무 그리고 앵무새의 아름다운 소리 등 새들의 공연을 보며 경주시의 버드파크를 떠 올렸다. 어제 탐방한 국립식물원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 온 것을 실감하며 시의원과 공무원들이 좀 더 빨리 벤치마킹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식물원도 새공원도 원초적 자연과 어우러지게 인공이 가미되면 보는 사람들이 한층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면밀한 검토에 따라 장소 선정에서부터 선행돼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신라천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본다. 동궁원과 버드파크는 갓 쓰고 양복 입은 건물의 외향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제2동궁원은 버드파크로 확장하고 식물원은 화랑교육원 앞 경북산림연구소 주변으로 남산을 끼고 계획해 봄이 어떨까 감히 진언해본다. 지금은 세계인이 찾는 `황금도시`경주다. 선택과 집중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파리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에펠탑, 모스크바는 붉은 광장의 크렘린 성, 덴마크는 인어공주다. 싱가포르는 무엇일까. 머라이언상이다. 머리는 사자 몸은 물고기다. 머라이언 조각상이 있는 머라이 공원은 일년에 해외 관광객이 1억3천만 명이 찾는 싱가포르 관광명소 중 하나다. 1972년 리콴유 총리가 사자의 도읍이라는 싱가포르 전설을 각색하고 기획하여 철저하게 마케팅을 해서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명소로 만들었다. 경주하면 떠오르는 세계적인 조각 금관은 어떨까. 전 세계 금관 7개 중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금관 6개가 황금도시 경주시에서 발굴됐다. 누구나 좋아하는 `황금`, 경이적이지 않는가?

2014-12-08

수술복 대신 앞치마

▲ 정숙영포항시 홍보담당관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과연 이 아이의 재능은 어디에 있을까, 그 재능을 한 번 키워보고 싶다`기 보다는 남들이 다 가는 편안한 길로 넓은 관문으로 묻혀 가는 평범함이 최선의 선택일 거라 믿는 부모들이 부지기수다.자녀에게 부모란 필요의 존재일지 모르지만 부모에게 자녀란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아이에게 이 다음에 커서 슈바이쳐 박사의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아이가 커서 사람들의 다양한 미각을 만족시키는 요리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대다수 부모의 솔직한 심정은 이왕이면 의사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미국 유명 의대 졸업을 1년여 남겨 두고 “어머니, 저는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의대는 그만두겠습니다”라는 아들 앞에 어느 부모든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란 가슴 진정이 안 될 것이다.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두 살부터 혼자 힘으로 키운 외아들이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의 길로 간다고 했을 때 그 어머니는 반대했다고 한다. “안 된다. 실수하는 거야. 남자에게 요리는 취미일 뿐이다” 하지만 아들은 의대에 자퇴서를 내고 뉴욕의 요리학교(ICC·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에 등록해 수술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수술칼 대신 식칼을 들었고 어머니와 아들은 1년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레스토랑 `다니엘`의 인턴을 마치고 정식 채용돼 일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손님으로 찾아오셨고 품격 있고 격조 높은 정중한 서비스와 완벽한 음식을 맛 본 어머님은 “네가 요리를 좀 하는가 보구나”하며 아들의 남다른 선택을 인정해 주셨고 아들은 그 이후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남다른 선택을 한 그는 바로 김훈이(42·미국 이름 후니 김)씨다.그가 시작한 뉴욕 52번가 한식당 `단지`(Danji)는 한식당으로서는 최초로 미식계의 `성서`로 불리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의 별 하나를 받았다.“과학을 좋아해서 과학고에 진학했고 코네티컷대 메디컬스쿨 4년 과정 중 3년 과정까지 배우고 그만두고 요리의 길로 갔는데 자신을 요리사로 만든 건 요리 못 하는 어머니라고 한다, 패션 디자이너이신 어머니는 요리할 시간이 별로 없었고 변호사인 아내 또한 어머니 보다 더 요리를 못 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부지런히 식당을 돌아다녀야 했다고 덕분에 미각이 일찌감치 발달했고 어느 날 내 손으로 직접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요리 학원에 다니다 완전히 요리와 사랑에 빠져 들게 됐다고 한다.탄탄대로를 달리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미궁의 인생 뉴턴을 하기란 쉽지 않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결정에 과감한 결단력에 찬사를 보낸다.뉴요커들에게 한식전도사로서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 서고 있으며 배우 나탈리 포트먼도 빌 클린턴 딸도 고객으로 만들면서 된장찌개와 은대구조림 같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요리로 비범하게 뉴욕을 사로 잡아 한식의 새 지평을 열고 있으며 대표 메뉴는 `Dwenjang jjigae(된장 찌개)`고 다른 거의 모든 한식에도 된장을 사용하기로 유명한데 그가 쓰는 된장은 바로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시상식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포항시 공동브랜드인 `영일만친구`, `죽장연`에서 가져다 쓰는 된장이라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피를 말리던 수능이 끝이 나고 수험생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남을 도와 주고 싶어서 의사의 길로 갔다가 남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다시 요리의 길로 향로를 바꾼 김훈이 씨와 같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들을 하는 과감한 선택과 결단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201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