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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중성리신라비 국보 승격`에 부쳐

등록일 2015-04-27 02:01 게재일 2015-04-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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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용일포항문화원장
문화재청이 2015년 4월 22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추정되는 `포항 중성리 신라비를 보물에서 국보로 지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3년전 2012년 2월 22일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천758호로 지정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로의 승격이 예고돼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식은 바로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국보 승격이었다.

포항중성리신라비는 시 승격 60주년이었던 2009년 발견됐다. 1면 12행에 걸쳐 모두 203자를 새긴 것으로 냉수리신라비(국보 264호)처럼 `지역에서 분쟁이 생겨 중앙에서 귀족들이 현장을 방문해 이를 해결한 후 다시 분쟁이 있을 경우 중죄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긴 포고문이다.

그동안 정확한 제작 건립 시점을 둘러싸고 논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국보로 지정된, 지증왕 4년(503)에 작성된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법흥왕 11년(524)에 작성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보다 앞선 지증왕 2년(501)에 세운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해 포항중성리신라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자리매김 되었다.

한 지역에서 2기의 비석이 발견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두 비가 세워진 포항의 흥해·신광지역은 신라 왕경의 정치·경제·군사의 요충지, 즉 왕궁과 6부 등 귀족세력의 경제력 근간인 토지소유와 주민지배를 가능케한 왕경의 근기 수취지역이며 1급 직할 배후지로서 국가 운영의 기반이 되었던 곳임을 밝혀주고 있다.

포항중성리비의 발견으로 포항 역사·문화의 새로운 조명이 시작돼 포항이 신라문화의 중추적 요람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9월 3일 경주에서 열린 `포항 중성리신라비`학술심포지엄에 이어 2009년 10월 7~8일 포항시가 주최하고 포항정신문화발전연구위원회와 한국고대사학회가 주관한 `신발견 포항 중성리신라비에 대한 역사학적 고찰 ` 학술대회가 연이어 개최됐다.

시 승격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자칫 그냥 묻힐 뻔 했던, 포항과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역사적 문화유산의 발견은 5월 11일 흥해 중성리 도시계획도로 공사현장에서 인근 주민 김헌도씨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가로 45㎝, 세로 105㎝, 두께 10㎝ 가량 크기의 비석을 발견하고 바로 13일 오후 경북매일신문사에 근무하는 친구 이창형 국장에게 제보했다.

신문사는 향토사학자들에게 알려 배용일 포항시사집필위원장과 이희특·이상준 시사집필위원들이 13일 오후 현장에서 비문을 1차 판독한 결과, 이 비석의 제작 시기는 5~6세기초이며 국보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했다. 이튿날 5월 14일 아침 처음으로 경북매일신문의 특종기사가 `국보급 추정 신라비석 발견`의 제목으로 보도되자 포항시민, 한국고대사학회 교수 및 문화재청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날 아침 8시경 필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정배 원장,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 및 한국고대사학회 교수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포항시청 문화관광과에서 문화재청으로 매장문화재 신고를 하도록 했다. 곧 산하기관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각 방송국과 전국적인 일간지 및 지방신문에 보도됨으로써 학계와 일반 국민들에게 비 발견 사실이 널리 전파됐다.

포항중성리신라비의 발견 이후 학술대회가 2년 사이에 몇 차례가 열리고 24편의 논문이 작성돼 비의 역사적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밝혀주고 있다.

포항중성리신라비의 발견으로 포항지역은 고대 신라문화의 요람으로 발돋움하게 됐으며, 이를 계기로 환동해 국립박물관(가칭) 건립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인 포항중성리신라비와 다른 지역에 보관된 포항의 귀중한 문화재를 우리 고장에서 보존토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와 문화가 어우러진 21세기 선진 해양관광문화도시로 함께 하는 변화, 도약하는 창조도시 포항의 새 시대 창출에 지혜와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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