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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일단상(春日斷想)

등록일 2015-05-04 02:01 게재일 2015-05-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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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서봉화군 봉성면장
올해도 어김없이 온 산천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가 계절을 밝혀주고 있다. 진달래는 봄이 시작되면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어 꽃을 따서 먹기도 하고 화전을 부치거나 두견주라 하여 술을 빚기도 했으며 신라 헌화가에서 소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안주로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

이렇게 진달래의 계절이 돌아오면 필자는 해마다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아주 오래전 몹시 무덥던 6월 전봇대 붙들고 울어주는 여인 하나 없이 안동 훈련소를 거쳐 보병 25사단에 배치되어 군에서 맞은 첫봄의 가슴 쓰린 기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북한은 땅굴을 남쪽으로 여러개 팠는데 우리 소대는 대대본부에서 떨어져 나와 임진강변에 자리를 잡고 야간에 적이 착암기 같은 것으로 땅굴을 파는 소리를 찾아내는 일이 주 임무였다.

첫 휴가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봄날 여느 때와 같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초소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전북 익산이 고향인 선임하사가 큰 나무 한 그루 없고 온통 진달래뿐인 125 고지를 가리키며 `저 산 위에 진달래가 저렇게 빨간 것은 6·25 때 우리 국군이 흘린 피`며 `중공군과 싸우느라 아군 군번(인식표) 한 트럭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선임하사의 말은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긴 하겠지만, 우리 국군이 많은 희생을 치르고 고지를 지켰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125 고지뿐만 아니라 임진강변의 모든 능선이 핏빛 진달래다. 얼마나 많은 청춘이 여기서 꿈을 접었을까? 핏빛 진달래는 우리 국군이 흘린 피로 더욱 붉다는 선임하사의 말은 육군 일병의 새파란 가슴에 대못이 되어 그날 저녁 근무시간에는 졸지도 못하고 새벽이 올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젠 제대한지 30년도 넘어 당연하게 군에서의 일은 잊어야겠지만 이맘때 진달래를 보면 목젖이 아려오고 콧등이 시큰하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으로 여기저기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이들의 값진 희생으로 오늘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린 지난 70년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또한 앞으로 달리기만 할뿐 어떻게 달려왔는지 돌아보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바둑에서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복기(復碁)를 기본으로 하는데 말이다. 지난 세월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남북으로 나눠져 피를 흘렸고 산업화를 위해 땀을, 민주화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 피와 땀과 눈물을 밑거름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시킨 나라,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한 IT 강국으로 국제무대에서 어깨를 펼 수 있는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지난 겨울 영화 `국제시장`에 관객이 많이 몰렸다. 그 덕분에 세대간의 갈등도 좁혀졌다고 한다. 우리의 아버지와 형과 누나는 서독의 탄광과 병원에서 베트남의 밀림에서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힘든 세월에 태어나 온갖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것이 다행`이라는 `덕수`처럼 살아왔다. 이제 신산스런 세월을 견뎌 조금은 안온하게 살고 있지만 이 행복을 오래 누리려면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창업(創業) 보다 수성(守成)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덕수`의 모진 세월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선 황사 바람이 몰려오고 태평양의 물결도 여전히 높다. 내부의 모순 때문에 어렵고 힘든 때가 많았지 외적(外敵)이 강하여 위태로웠던 경우는 드물다. 피땀 흘려 지키고 가꿔온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라가 비록 태평하다고 어려운 때를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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