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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호국보훈의 달 6월

▲ 서인교 대구본부장이제 가정의 달을 뒤로하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는다. 호국보훈이란 일본강점기 때 독립운동,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생각하고, 그 분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것을 말한다. 나라와 겨레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고자 귀한 목숨을 초개처럼 바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삶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일부 사람들은 현충일을 `조기(弔旗) 다는 날`정도로 치부하면서 그 뜻과 의의를 제대로 새기지 않는 것 같다. 6월 한달만이라도 전쟁의 참화에 시달렸던 우리 역사를 더듬어 보고, 국가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넋을 기리고, 호국정신과 국가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달이 돼야 한다.특히 올해는 6·25전쟁 63주년이자 여성이 국가 원수로 뽑힌 역사적인 해여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심상찮게 급변하고 있다. 중국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진핑의 인도 방문, 미국 방문,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 등 범 외교적 행보를 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를 맞아 대남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분명하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조성하는 위기에 대해서는 어떤 양보나 지원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자세다. 여기에는 국민과의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대통령의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는 분명히 국민의 힘을 얻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혹여 있을 지 모를외세의 침입과 제2의 6·25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경북도는 영양 호국공원에서 보훈단체장, 기관단체, 유족, 학생 등 1천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8회 현충일 추념식을 갖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나라 사랑의 뜻을 되새길 예정이다. 6.25전쟁 63주년 기념식은 6월25일 칠곡 호국평화공원에서 열리며, 경산, 청도, 안동, 문경 등지는 보훈단체 회원 및 전적지 순례, 포항과 영주는 청소년 안보의식 및 나라 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안보교육, 청도와 칠곡은 국가유공자 가족 등이 참여하는 위안 및 문화행사를 펼친다.경북 도내에 6·25전쟁 기간 중 벌어진 주요 전투는 20여건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동해안 지역은 영덕, 기계, 안강, 포항, 장사동 상륙작전, 형산강전투, 문경-상주-안동 지역엔 화령장, 이화령(문경), 유곡, 함창, 안동, 청송, 보현산 전투, 군위-칠곡-영천 지역엔 의성, 효령, 신녕, 화산, 영천, 왜관, 다부동 전투 등이 있다.특히 다부동전투가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중의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km에 있는 다부동은 대구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로서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아군은 10km 남쪽으로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2만1천500명의 병력과 T-34전차 20대 및 각종 화기 670문으로 공격을 해왔다. 이에 대응해 지역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명을 포함, 7천600여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 열세한 전투력을 극복하면서 공산군의 이른바 `8월 총공세`를 저지해 대구를 고수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유학산 기슭에는 국군 제1사단의 전공을 기린 다부동 전적비가 서있다. 55일간의 전투로 아군은 1만여명, 적군은 1만7천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다부리의 중요한 고지였던 유학산 839고지 등 많은 고지에 올라가면 아직도 그 당시 전사한 분들의 유골들이 흔하게 발견된다고 한다.동족상잔의 비극.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나와 너를 지키는 것이 호국이요, 보훈이기 때문이다.

2013-05-31

인문학이 필요한 곳

▲ 정상호 편집부국장인문학 바람이 기업을 비롯, 사회 곳곳에서 거세게 불고있다. 의사, 교수, 기업체 사장 등 우리 사회의 성공한 유명 인사들이 인문학 모임에 더 열심이다. 인문학 강좌에 참여한 이들은 한결 같이 성공하고 정상에 올라섰지만 그동안 뭔가 허전했었는데, 인문학으로 힐링할 수 있게 됐다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 걸음을 멈추고 인문학을 접하면서 진정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인생에 있어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제부터 진짜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밝히는 등 인문학 체험을 통한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인문학 바람은 개인을 넘어 일선 시·군에까지 불어 닥쳤다. 칠곡군은 인문학 도시 조성에 나섰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인문학적 역사와 전통에 기반을 둔 도시 정체성과 특성을 구축하여 도시발전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것이다.지역의 다양한 인문학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주민이 인문학을 통해 행복과 자부심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요지다. 지역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하는 인문학 여행도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칠곡군은 총 사업비 20억원으로 올해까지 인문학 도시조성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칠곡군이 이 사업의 결실을 맺어 인문학 도시로 우뚝서기를 기대해 본다.지금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떼놓을 수 없다. 아이패드와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 제품이 나온 것은 바로 공학에 인문학의 접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두 학문의 결합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문학이 기업에서 새로운 대접을 받게 됐다.애플의 성공을 통해 이제 기업이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학문간 벽을 허물고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추세다.그동안 인문학은 소위 돈 안되는 학문으로 대학캠퍼스에서 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심지어 학과가 폐지되고 통합됐다는 이야기마저 들렸다. 그런 인문학이 시쳇말로 뜨고 있다.그럼 인문학은 뭔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학문이 아닐까. 그래서 당장은 돈이 되지 않고 현실에 바로 써먹을 수 없을지 몰라도 건강한 사회를 지탱해주는 튼튼한 인프라가 인문학이라 생각된다.인문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필수 영양소다. 그런데 이런 인문학이 정작 필요한 곳은 인문학 무풍지대인 것 같아 안타깝다.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감명 깊게 읽은 문학작품이나 인문학 서적은 평생 가슴 속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지금처럼 입시교육에 올인 하는 우리 교육풍토에서 청소년들이 이런 체험을 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게 아쉽다.그러나 인문학 공부는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안 서가에 꽂혀있는 문학작품이나 역사서, 철학서적 등 인문학 서적 한 권을 뽑아서 정독해 보는 것이 바로 인문학을 접하는 출발점이다.교육당국도 입시에 찌든 청소년들이 잠시나마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의 꿈과 포부를 활짝 펼 수 있도록 다양한 인문학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2013-05-24

한 목소리가 필요한 시대

▲ 윤종현 편집부국장민주주의 특징 중에 하나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 기업, 노조, 가정 등 각 집단에서`열린 소리`가 가감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은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는 자기 주장이 강해진 사회적 분위기 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목소리` 즉 `주장`이 정제되지 않고 표현될 경우 혼란과 갈등으로 연결될 우려마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등 기관은 공식 발표에 있어 문구 하나하나를 면밀히 점검함과 함께 창구를 일원화시키고 있다.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안 1순위로 꼽는다면 `대북 문제`다. 북(北)은 김정은 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고 있다. 북한 중앙방송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은 남한에 대한 협박성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동화`늑대 소년`에 비유하면 적절할 것 같다.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이제 그들의 행위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식상한 것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좌파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톤의`목소리`가 대통령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응 태세도 좌파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국민들은 평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는 신중하고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박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전에도 말의 엄중함과 신중함을 잘 알고 있고 이 원칙을 지키려는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지금은 대변인을 통해 의중을 전달하지만 국회의원 시절엔 기자들의 질문에 아주 간략하게 답변하는 것이 몸에 뱄다. 이는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사족(蛇足) 등은 오해를 일으킬 요소로 본 자신만의 `언어 철학`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참모들도 박 대통령의 언어 구사법처럼 해야 한다는데 신중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박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경제정책 등 민감한 사안에서 `한 목소리(One-Voice)`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국민에게 `혼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인데 참모들은 최근 대북 관련 메시지에 있어 그녀의 심중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혼선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라인 참모에게 “아직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이해 못 하세요” 라며 질책했다. 앞서 조원동 경제수석과 류길재 장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부적합한 목소리를 내 대통령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이는 참모들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정확히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경주지역 지도자들의 목소리도 가관이다. 지역국회의원이면 지역 문제에 대해 옹호하고 덕으로 감싸야 한다. 그런데 최근 경주가 지역구인 정수성 의원의 목소리는 지역 사랑이 아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경주예술의전당 운영과 관련해 정 의원은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대한변협을 통해 예술의전당 건립 당시 관계 공무원과 용역사 등을 검찰에 고발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시설이 무리하게 건립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화관광도시에 변변찮은 공연시설 조차 없는 것도 지적사항 이었다.그래서 문화단체나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건립된 시설에 대해 지역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진정한 `선량`으로 볼 수 없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설사 지난 지자체장이 다소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하더라도 그 `수혜` 대상은 시민이데 이를 굳이 꺼집어내 논란의 불씨로 만드는 것은 점잖치 못한 자세다. 이를 `경종`차원에서 거쳐야지 이를 언론에 배포하고 확산시키는 의도는 현 지자체장과 한수원 본사 이전과 관련된 구원(舊怨) 일 수 있다.시민들의 목소리는 따갑다. “도대체 정 의원의 지역구가 어딘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이 시정에 왈가왈부하면서 참여 공무원들을 검찰에 고발한다는 것은 공무원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래서`목소리`를 잘못낼 경우 지역내 갈등 발생은 물론 위험한 상황까지 초래한다는 것을 그는 망각한 것 같다. 적어도 지도자의 목소리는 박 대통령처럼 함축적이고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2013-05-10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의 경제논리

▲ 김명득 경제부장터키항공의 여객기가 그리스 아테네 공항 상공을 빙빙 돌 때만 해도 마음은 수학여행 온 소년처럼 마냥 설레었다. 여객기 안에서 내려다 본 그리스 아테네 시가지는 고층건물이 즐비한 관광도시라기보다는 고즈넉한 유적지처럼 포근해 보였다. 여객기가 착륙한 뒤 아테네공항 로비에 들어서자 눈을 의심하게 했다. 아테네 시민들의 느긋한 걸음걸이하며, 식당에서 한가롭게 식사하는 가족들, 바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나라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부도`난 국가인지 궁금했다. 취재단 일행을 태운 버스가 아테네 공항을 빠져나와 올리브 나무로 뒤덮여 있는 아테네 시내로 들어서자 도로 옆 건물과 담벼락은 온통 무질서한 낙서로 도배질 돼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흉물 같은 건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곳 시간으로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8시)를 약간 넘긴 대낮인데도 시내를 오가는 시민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뜸했다.그리스는 지난 2010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 등으로 이뤄진 국제채권단으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천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대가로 그리스 정부는 세금을 인상하고, 지출을 줄이기로 국제채권단과 약속했다. 그 약속이 현재 어느 정도 이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한 그리스의 경제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희박해 보인다. 빚을 갚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도 사라져버린, 활기 잃은 `죽은 도시`처럼 느껴진다.그리스는 관광이 주요산업이다. 이곳 가이드 김휘향(49·여)씨에 따르면 그리스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7천여만명에 달한다는 것. 관광수입이 국가 재정 대부분을 차지한다. 초중고, 대학 모두 무상교육에 주택과 식사까지 제공되는 복지국가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공무원과 직장인들은 오전 8시반에 출근해 오후 2시반이면 모두 퇴근한다는 것. 야근과 잔업은 아예 없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없고, 저축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벌어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데 모두 지출한다고 한다. 아테네 근교의 전망좋은 해변가에는 별장들이 즐비하다. 또 해안가마다 정박중인 고가의 요트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평일에도 오후 3시가 넘으면 가족들이 시내 집을 빠져나와 이곳 별장에서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산층에게는 꿈같은 얘기다.그리스의 실업률은 26%가 넘어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다소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게으르고 낙천적인 국민성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요즘 그리스 젊은이들의 탈 그리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테살로니키 대학 람브리아니데스 경제학 교수는 “그리스 내 젊은 과학자들의 이민이 10%대에 달한다”고 했다. 그리스의 경제회복이 갈수록 쉽지 않고, 어둡다는 전망 때문이다.그리스 정부는 오는 2015년까지 공무원 등 공공부문 인력 15만명을 감원하는 조건으로 국제채권단으로부터 분기별 구제금융 28억 유로와 유로안정기구(ESM)에서 72억 유로를 추가로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7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2년만에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이 있다. 그리스의 앞날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진다.`서양문명의 배꼽`이자 `유럽의 별`로 화려한 옛 영화를 누렸던 그리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나. 그리스의 암울한 경제현실을 보면서 문득 한국경제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바쁘게, 숨가쁘게 달려왔는지….그리스의 경제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에는 환한 불빛이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2013-05-03

포항스틸야드의 함성

▲ 정철화 정치·체육부장포항의 도시 이미지로 대부분 포스코를 떠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일만 갯벌에 연관제철소를 설립해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았고, 현재 세계 최고 철강기업으로 발전해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포스코 못지않게 포항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는 글로벌 도시 트랜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축구 도시 포항`이다. 포항은 프로축구단 포항스틸러스의 연고지이다. 인구 52만의 중소도시에 프로축구단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더욱이 포항스틸러스가 한국축구사에 남겨놓은 수많은 업적을 보면 더욱 놀랍다. 포항스틸러스는 축구와 관련된 국내 최초의 기록을 거의 모두 갖고 있다. 올해로 창단 40년의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국내 프로축구단 가운데 팀명과 연고지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포항스틸야드는 한국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으로 23년이 된 지금까지도 관전 편의가 가장 좋은 아름다운 축구장으로 평가받는다. 또 선수단 숙소인 클럽하우스와 우수한 축구 영재 발굴 및 육성 프로그램인 유소년축구클럽 운영 역시 국내 최초 기록이다. 최소 20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를 해온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포항에 뿌리를 내리고 40년간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오면서 선진 축구 모델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한국축구발전을 선도해 온 한국축구의 성지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니 포항시민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껴도 되고, 시민들의 힘으로 세계적인 도시 트랜드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최소 20년 앞을 내다본 장기 프로젝트는 마침내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포항이 올 시즌 외국 용병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파 선수들만으로 현재 K-리그 1위 자리를 질주하고 있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오랫동안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포항유소년 시스템은 포항스틸러스의 화수분 역할을 하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가고 있다.이런 포항의 모습은 세계 축구를 평정하고 있는 스페인 바로셀로나와 너무도 닮았다. 유소년출신 선수들로 팀을 구성, 어릴 때부터 정교하고 빠른 패스 축구를 몸에 익혔고, 이러한 튼튼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현재 세계 최고의 팀이 됐다. 바르셀로나식 축구는 아름다운 축구 예술로 표현되고 있다.포항 역시 올 시즌 무용병을 선언하고, 유소년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빠르고 정확한 패스 축구를 구사한다. 한국 축구의 고질병인 `뻥`축구나 의미 없는 백패스를 남발하지 않고 빠른 템포로 짧은 패스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공격과 수비를 반복한다. 수비가 밀집된 공간을 패스로 돌파해 나가는 모습은 가히 예술적 수준이다. 비록 골로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매끄럽게 진행되는 과정은 예술 축구의 진수를 보여준다.올 시즌 포항의 이런 경기력은 바르셀로나와 너무도 닮았다고 해서 축구팬들은 `포항셀로나`란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축구의 본고장 영국과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광적인 관중석 분위기다. 아름다운 축구전용구장의 훌륭한 시설과 선수들의 플레이는 분명히 바로셀로나의 경기를 연상시키지만 설렁한 관중석은 아직도 바로셀로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스틸야드가 만원 관중으로 넘쳐날 때 비로소 `포항셀로나`가 완성된다. 스틸야드의 우렁찬 관중들의 함성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발전시키면 어떨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포항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아닌 세계적인 `축구 명품 도시`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2013-04-26

불안 다스리기

▲ 윤희정 문화부장우리 삶은 왜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울까?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란 책에서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불안은 현대인에게 일상적인 것이랄 수 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지인은 아동과 여성을 상대로 한 추악한 범죄는 끊이지 않지만 우리를 지켜줄 공권력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 안전망 자체를 성토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정치적 사안들이 개인의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면이 없잖아 있다며 정치 지도자들의 국민 안위에 대한 정치력을 강하게 요구했다.`불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 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그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총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 바로 그것이다.저자는 이 책에서 2천여 년의 역사를 지탱해온 철학, 문학, 종교, 예술 등 방대한 자료를 훑으며 경제적 능력과 연관된 사회적 지위로 인한 불안이 삶의 처음과 끝을 파고든다고 말한다. 개개인은 모두 불안을 느끼며 산다. 그렇다고 공포증이나 강박증이 모두 병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불안에 대해 “개인마다 나름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경제·사회·정치적 불안이 개인 불안을 가중시킨다. 또 부자나 가난한 사람, 학력이 높거나 낮은 것과 상관없이 억울한 심리를 갖는데, 이 억울 심리가 불안과 맞물려 증폭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을 하고 있다.정부는 이런 사회적 불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전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개인도 나름대로 불안에 대한 해소책을 강구해야 한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작은 불안을 버려두었다가는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은 2005년 발간돼 지금까지 출판사를 바꿔가며 20만부 이상 팔렸다. 그만큼 불안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과거에는 가난을 고민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지만, 능력주의 시대가 되면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을 불안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불안을 달래는 해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안을 들었다. 불안의 실체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또 예술과 예술 작품을 통해 그러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내면의 호소에 더 구체적으로 귀 기울이고 불안 자체를 직시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즉 수학 공식처럼 해답을 명확히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걱정`을 뜻하는 `worry`의 어원은 `목을 조르다` 이다.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불행이나 역경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쓸 데 없는 걱정이다. 이럴 때 일수록 한 발 물러나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오는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명심보감에서 `지극한 즐거움 가운데 책을 읽는 것만 한 것이 없다(至 莫如讀書)`고 했다. 옛 선비들이 `서중자유천종록(書中自有千鍾祿)`,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문장들을 배우며 책을 읽는 일이 가장 가치있다고 믿고, 독서를 즐겼듯 독서에 심신을 기대어 볼 일이다. 그 시간만은 여전히 삶의 길과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값진 순간이리라. 나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죽을 때 까지 평화를 잃지 않게 할 것이다.

2013-04-19

계륵과 개성공단

▲ 이곤영 대구본부 부장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가 즉위한 당시 중국의 정국은 위, 오, 촉한의 형세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 때 조조는 위왕에 등극해 촉한의 유비가 평정한 한중(漢中)의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비가 일찌감치 한중을 평정해 곳곳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조는 한중을 빼앗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매번 허사가 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을 즈음, 어느날 저녁 암구호로 `계륵(鷄肋)`이란 단어가 정해졌다. 모두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는 가운데 주부 벼슬에 있는 양수가 갑자기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장수가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닭 갈비는 먹을 게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역시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철군을 결심하신 것이라오”라고 답했다. 그 말대로 조조는 며칠 후 한중으로부터 전군을 철수시키고 말았고, 유비는 한중 땅을 확보해 한중왕에 올랐다. 최근 한반도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직면해있지만 우리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북한이 도발 위협을 시작한지 한 달이 넘어갔고,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며 한반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는 의도이다. 북한은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 선언에 이어 최근 개성공단 폐쇄를 주장했고, 결국에는 북측 근로자 5만여 명을 출근시키지 않아 123개 입주업체의 공장들이 일제히 멈췄다. 지난 2003년 6월 개성공단 건설의 첫 삽을 뜬 지 9년 10개월 만에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에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전전긍긍하고 있고, 경제계에서는 북한의 도발위협으로 외국기업이 떠날 것이라는 등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하지만, 국민들이 북한의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은 개성공단 입주업체들과는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국민은 북한 도발행위에 무덤덤하게 대응하면서도 이번에 북한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북 간 경제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개성공단이 북한의 도발 때 마다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이제는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북한에 구걸하는 식의 정부의 애매모호한 대처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 국민들은 정부가 진퇴양난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곤혹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제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해 북한의 목을 옥죄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현재 개성공단에는 총 141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개성공단 가동으로 북한은 매달 약 700만 달러, 연간 8천6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돈은 대부분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이 아니라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되며, 핵과 미사일 개발 등 북한의 권력유지에 사용되고 있다.이 때문에 상당수 국민들이 볼모로 활용되고 있는 개성공단을 이번에 포기하지 않으면 또다시 이런 사태들이 반복된다며 선제적으로 우리 정부가 폐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매년 8천600만 달러의 돈맛에 길들여진 북한이 이 돈을 체제유지에 쓰는데, 자금줄이 막히면 오히려 북한이 답답하다는 얘기다.따라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로 입주기업들에 대해 전액 보상은 어렵지만, 경협보험으로 투자금 대비 80~90%를 보장받을 수 있고, 모자라면 경협자금을 이용해 손실을 보상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해 다시는 북한의 체제유지에 쓰이는 자금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근본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극단적 카드가 결코 남한 사회를 흔들 무기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북한 자신의 피해만 키울 뿐이라는 것을 이번에 반드시 깨닫게 해야 한다. 정부의 의연한 대응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2013-04-12

교육이 뭐길래?

▲ 이창훈 대구본부 부장“가족을 지키지 못한것에 대해 미안하다. 딸을 잘 부탁한다.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당신은 당신 편한대로 하기를 바란다”지난달 대구의 한 치과의원 원장이 이같은 내용의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부와 명예를 다 갖춰 남 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10년전에 아내와 딸을 유학 보내놓고 혼자 살았다. 소위 `기러기 아빠`였다. 수년간 외로움에 지친 그는 죽기 전날 병원직원에게 뭔가 암시를 던진후 병원을 나서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또 다른 사례도 있다. 필자의 친구는 보험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어 아이를 유학보냈다. 몇년 후 아이를 보러 현지에 갔다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자, 아이는 `YOU(당신)가 뭔데 나를 나무라냐`고 대들었다고 한다. 기가 찬 친구가 눈을 부릅뜨고 한 대 쥐어박을 태세를 보이자 아이는 폴리스(경찰)를 불렀다. 곧바로 달려온 경찰이 “아이를 때렸느냐”고 물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이는 때리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경찰은 “아이를 때리면 구속되니까 조심하라”고 말한 후 되돌아 갔다. 그 후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친구는 아이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귀국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유학을 시키고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이 친구는 현재 보험업이 잘 안돼 과거 불입한 보험을 다 해약한 상태고, 요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최근 들어 기러기아빠의 고독사를 비롯, 가족해체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아내가 현지에서 바람이 나 이혼을 당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러기 아빠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자신은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부쳐준다. 한때는 부러움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과연 `이 길이 현명한가`하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기러기아빠는 자식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켜 나중에 잘 먹고 잘 살라는 배려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배경에는 무너진 공교육과 치솟는 사교육비가 자리잡고있다.국내 교육이 후진적인 만큼 어릴때부터 선진국으로 유학보내 자식의 일생을 돌보겠다는, 원론적으로 따지면 지극한 자식사랑이다. 하지만 자식사랑의 이면에는 고독감과 경제적인 부담감에 시달려 가족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기러기 아빠는 현재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기러기 아빠의 죽음은 많이 들었지만 기러기 아빠의 자식이 잘 자라 기러기아빠를 잘 돌보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교육이 중요한 건 맞다. 어릴때부터 선진국에서 더 좋은 공부를 해 조국을 살찌우는 것도 좋다. 그러나 굳이 기러기아빠가 되면서까지 유학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경제적으로 뒷감당을 할 능력이 안 되다 보니 자기합리화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국내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사회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굳이 유학이 필요하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상황을 고려해 하면 된다. 자식교육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해체가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옛말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잘 난 자식은 도회지로 나가 부모를 내팽개치지만 공부못하고 덜떨어진 자식이 부모곁에 남아 봉양을 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퇴근후 고만고만한 자식들과 마주앉아 저녁을 같이하며 정담을 나누는 행복에 어찌 비유할 수 있겠는가.

2013-04-05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

▲ 이창형 서울지사장3월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딱 한 달되는 날이었다. 수치적으로 30일인 그 한 달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만한 기간이면 발생가능한 시행착오를 딛고 새 정부의 국정운영이 속도를 내야한다는 데 있다.하지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었던 그날 아침, 청와대 춘추관 기자들은 웅성댔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전격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이날 조간은 그가 국외에서 수년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해왔다는 기사를 1면 머리로 내보냈다. 기사는 그의 국외 비자금 규모가 최소 20~30억원, 많게는 그 두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경제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국외에서 수년간 수십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했다는 점은 그 의혹만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엄정한 수사를 통해 실체를 파헤쳐야 하는 문제다.박근혜 정부에서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낙마는 이번이 6번째다. 인수위 시절인 지난 1월29일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부동산투기·아들 병역면제의혹)를 시작으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3월4일),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3월18일), 김학의 법무부 차관(3월21일), 김병관 국방부 장관(3월22일) 후보자, 한만수 공정위원장(3월25일) 내정자 등등.국민들로서는 낙마의 대상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낙마의 이유가 국민정서와는 너무나 배치되는 파렴치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국가와 공직에 대한 국민신뢰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문제는 후보자 스스로가 자신의 허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한 내정자의 경우만 보자. 그의 재산규모는 109억원, 대형 로펌 장기 근무, 대기업 이해관계 대변 등등. 스스로가 경제검찰격인 공정위원장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나아가 해외 비자금 운용, 탈세의 문제에 대해 그의 양심은 없었던 것일까?양심의 문제를 넘어 죄의식 조차 없는 이들의 뻔뻔스러움은 차치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 구멍뚫린 인사검증시스템의 개선도 시급하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박 대통령의 디테일(detail) 리더십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않다. 하지만 인사를 포함한 권한과 책임이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되면서 벌써부터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 온 책임 장관제에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 또한 대통령 1인 중심의 하향식 인선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 내부에 인사 추천과 검증을 위한 인사위원회가 구성됐으나 박 대통령이 직접 낙점한 인사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고, 노(No)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최고권자인 내가 다 챙기겠다”는 의욕은 실패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골 욕심 때문에 혼자 수비수와 공격수 역할을 다하면 실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한국 갤럽의 최근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44%였다. 1990년 이후 역대 대통령 취임 한 달 지지도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것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김영삼 대통령(1993년)과 김대중 대통령(1998년) 지지도는 71%였다. 노무현 대통령(2003년)은 60%였고, 이명박 대통령(2008년)은 52%였다.`직무수행 부정 평가` 응답자에게 이유를 물은 결과`인사 잘못`이 29%로 가장 많았다. 인사가 `망사(亡事)` 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교훈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부분이다.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인사와 관련해`낙마 축구팀`이니 `인사참사`란 혹평이 더이상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13-03-29

귀농귀촌 1번지, 경북

▲ 서인교 대구본부장귀농 귀촌 행렬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아가는 형국인 것이다. 귀농의 사전적 의미는 도시에서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그 일을 그만두고 땅을 이용해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는 농사를 위해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며, 귀촌은 농촌에 내려와 농업 이외의 직업을 주업으로 하는 생활이다. 귀농·귀촌의 유형 또한 전업형, 자아실현형, 전원 주거형, 주말 전원생활형, 노후 생활형 등 여러가지다.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부처에 따르면 2005년까지 1천200가구 이하이던 귀농 귀촌가구는 2010년 4천67가구, 2011년 1만503가구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2년에는 2011년보다 곱절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지방정부 등의 인구증가 노력과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가 맞물리면서 2013년에도 훨씬 더 활성화 될 전망이다.이처럼 귀농·귀촌이 트렌드가 됨에 따라 중앙정부도 잇따라 귀농귀촌 정책을 내놓고 있고, 지방정부는 아예 유치전담반까지 꾸렸다. 모두들 도시로 떠나버려 곧 폐허가 될 것 같은 농촌 입장에선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특히 귀농 귀촌 움직임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경북지역으로의 U턴현상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도내 귀농 귀촌인은 2009년 1천118가구, 2010년 1천112가구, 2011년에는 1천755가구로 3년새 급증했다. 최근 3년간 귀농·귀촌한 1만 8천650가구의 21.4%나 된다. 자연스레 경북도는 대한민국 귀농·귀촌의 1번지로 떠올랐고, 타 광역자치단체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다. 귀농·귀촌자 또한 도내 23개 시·군에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2012년 기준으로 상주가 502명, 영주 279명, 영천 255명, 봉화 231명, 청도 173명, 안동 165명, 김천 160명, 의성 141명, 예천 101명, 청송 98명, 영양 96명 등 북부지방을 주로 선호하지만 포항 53명, 구미 27명, 경주 14명, 칠곡 51명 등 도시지역도 상당히 분포돼 있다. 울진과 울릉도도 각각 33명과 2명이 도시를 탈출, 농촌을 택했다.경북지역이 귀농 귀촌 최적지로 꼽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특히 상주시 등 도내 각 시군은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농업인 자녀 학자금 지원은 물론 귀농인 농어촌 진흥기금 융자지원사업, 농촌 인력 복지 지원사업 등 다양하며, 인허가 지원 등 혜택이 부지기수다.경북도내가 귀농 귀촌 1번지가 된 이면에는 경북도의 다양한 정책도 한 몫 했다. 귀농 초기 영농시설 구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귀농인 정착지원사업, 농촌 인구 감소에 따른 도시민 유치를 적극 희망하는 시군에 지원하는 도시민 유치 지원사업, 체류형 농업 창업 지원센터와 귀농 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사업의 창업 지원에다 농업인 자녀 학자금 지원, 귀농인 농어촌 진흥기금 융자지원, 농촌 인력 복지 지원 등 셀수 없을 정도다.특히 이 부분에 대한 김관용 경북지사의 관심은 각별하다. 사람과 돈이 모이는 활기찬 농어촌 건설을 비전으로 내건 경북도가 오는 2017년까지 귀농·귀촌 1만 5천 가구의 안정 정착 돕기에 들어간 것은 김 지사의 의지로 알려진다.그래선지 경북도는 수도권과 지역소재 대기업, 제대 군인 등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추진, 경상북도가 대한민국 귀농·귀촌 일 번지로 이름을 떨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흙이 살아야 인류가 살 듯 농업·농촌을 살려야 경북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루소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농업이 천하의 제일이듯 자연을 희망으로 삼자.

2013-03-22

포항 산불, 줄잇는 온정

▲ 정상호 편집부국장놀이터로 달려가던 어린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5~6세쯤 된 어린아이는 땅바닥에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운다.그때 뒤따라가던 친구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친구야, 괜찮아?” 하고 어깨를 톡톡치며 다독거려 준다. 울던 친구는 울음을 그치고 일어나 손을 턴 뒤 친구와 함께 놀이터로 웃으며 달려간다. 곤경에 처한 친구를 돕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남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 것은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물을 찾아 아프리카 초원을 이동하던 물소 떼 대열이 사자들의 습격을 받아 이리저리 흩어지고 사자의 표적이 된 물소는 여기저기 물려 꼼짝 못하고 주저 앉아 죽음만을 기다린다. 그때 도망간 줄 알았던 물소가 떼를 지어 나타나 뿔을 앞세워 사자를 공격한다.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 버티던 사자는 물었던 물소를 놓아주고 달아난다. 초원의 제왕 사자한테 달려드는 물소의 동료애가 놀랍다.포항은 지금 때 아닌 대형 산불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 중학생의 불장난으로 도심 인근 주택과 아파트 등 90여채가 화마에 잿더미로 변하고 수십명이 인명피해를 입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갑자기 닥친 불길에 몸만 빠져나온 이재민들은 불타버린 집과 몽땅 재로 변한 가재도구를 보며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며 오열하고 있다.특히 불탄 가옥중 무허가 집들은 보상이 쉽지 않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산불 피해 주민들은 말 그대로 동가식 서가숙 하는 상황이다. 언제 정든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갈지 기약도 없는 상태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모든 것을 잃고도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니 이보다 기막히고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그러나 포항시민들은 곤경에 빠진 이웃들을 보고만 있지 않는 모습이다.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산불피해 이재민들을 돕겠다는 기업체와 단체, 종교계,개인들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포항철강공단의 조선내화는 1억1천만원을 내놓았고 대아, 삼일 등 향토기업도 1억원이 넘는 돈을 시청에 기탁했다고 한다. 어렵기는 기업들도 마찬가지 일텐데 이렇게 선뜻 거액을 이재민들을 위해 내놓는 지역 기업들의 선행이 고맙기 그지없다.포항지역에 있는 유통업체와 한국공항공사와 같은 공기업, 사회단체, 병원들도 앞다퉈 성금을 내고 구호 물품을 기탁하는 등 구호 손길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포항시의 자매도시들도 쌀과 라면 등 긴급 구호물품을 보내오며 하루속히 피해가 회복되길 빈다.성금 기탁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다.이처럼 많은 기업과 사회단체, 개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는 예상 못했기에 더욱 놀랍고 반갑다. 밀려드는 온정이 잿더미로 변한 집을 보고 한숨을 짓는 이재민들에게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으면 한다.포항시도 피해주민들에게 자연재해에 준하는 지원을 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만드는 등 행정적 해결 방안을 찾느라 애쓰는 모습이다.지금 포항은 화마에 모든 것을 잃은 이웃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민관이 두 팔을 걷어 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2만 시민의 정성이 모아진다면 화마가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번 산불은 재앙이 아니라 포항의 저력을 확인한 재난 극복사례로 기억될지 모른다.

2013-03-15

대통령, 국민의 첫째 머슴이다

▲ 윤종현 편집부국장18세기 독일 연방국가였던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은 계몽주의 신봉자였다. 그리고 그는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에 열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국가에서는 모든 종교가 관용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나라에서는 각자의 멋에 따라 행복해 질 수 있다”며 통치권자로서 종교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유 사상가를 존경하고, 신앙있는 사람을 조소하는 등 종교를 경외시 하는 시각을 가졌다. 그가 이렇게 이면적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종교가 나라를 발전을 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판단과 통치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군비를 증강했지만 `산업`도 장려해 프로이센 국가의 지위를 향상시켰으며, 오늘의 독일을 있게끔 초석을 다졌다. 그는 통치철학을 이렇게 강조했다. “군주는 국가의 첫째 머슴이다”그런데 그가 싫어한 것은 `기적`을 믿는 일이었다.그와 대비되는 군주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 루이 14세다. 그는 국왕의 절대 전제적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십분 이용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전횡을 다했다. 국무를 처리할 때 왕의 `전단(傳單)`을 국가의 이름으로 간하는 자가 있을 때 그는 대답했다.“국가라니? 그것이 짐이야(L`Etat moi)”라는 말로 유명하다.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위치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권교체기에는 늘 그랬다. 하지만 권좌에 오른 이들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자신했지만, 매번 국민으로 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돼왔다.왜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는 걸까.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를 보는 국민의 시각도 따사롭지는 않다. 신명나야 할 새 정부가 확정되지 않은 조직개편안으로 `동거 정부`니,`공백 정부`니 하는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국민행복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고자 한다” 등의 국정철학을 내놨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적 환심을 사는 구호나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현재 국가 분위기는 지역갈등, 경기침체, 고물가, 이익만 찾는 정치구조 등으로 국민정서가 피폐해 있다. 개개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자랑스럽다`는 말을 한 지 오래 전 일이다.이런 정서가 만연하게 된 것은 국민을 대리한 통치권자의 책임이다. 이를 수정하고 변화시킬 책무는 대통령이 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자신 이익만 주장말고 힘을 모아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차라리 자신이 `성실한 머슴이 되겠다`고 했으면 국민적 찬사를 받지 않았을까.영국 최초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취임사에서 “불화가 있는 곳에서 일치를, 잘못이 있는 곳에 진실을,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말했다. 퇴임한 그녀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여성지도자로 기억되는 것은 `권력자`가 아닌 국민을 위한 성실한 `머슴`으로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는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직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머슴`으로 칭했고, 루이 14세는 자신을 머슴이 아니라 `짐`, 즉 `I am State`로 규정했다. 그 차이는 확연하다.통치권자가 권력을 행세하면 국가는 혼란에 빠지고, 피해는 국민들이 입는다. 그러나 통치자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머슴`이란 자세를 취할 때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도 희망 속에 살 수 있다. 그리고 비문에도 난 위대한 국민과 함께한 영원한 `머슴`이었다고 적을 수 있다.

2013-03-08

제조업 하는 사장은 모두가 애국자

▲ 김명득 경제부장포항철강공단이 요즘 너무 조용하다. 아니 적막감이 흐른다는 표현이 딱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고, 도로에는 철강제품을 실은 화물차량들이 분주하게 오가는데도 왜 이처럼 조용하게 느껴질까. 포항철강공단은 27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2만여명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삶의 터전이다. 포항 경제권의 중심이자 한국 철강산업의 메카다. 하지만 이곳에도 글로벌 불황의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활기가 넘치던 곳이다. 지난 IMF외환위기 때에도 다른 곳에서는 다 죽는다고 아우성쳐도 포항만큼은 예외였다. 오히려 울산과 더불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판이하게 달라졌다.업체마다 생존전략을 짜놓고 아침부터 시작된 임원단 비상대책회의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생산한 제품이 팔리지 않으니 재고량이 쌓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근로자들을 놀릴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구조조정 얘기는 아직 꺼내지도 못한다. 사장을 비롯한 임원 모두가 축 처져 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생존문제를 하나같이 화두로 꺼낸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날지도 모르겠다.지난주 공단내 J업체 이모 상무를 만났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잘 나가던 제품이 지난해 초부터 판매량이 서서히 줄더니 올들어서는 아예 멈췄다는 것. 제품이 팔리지 않으니 재고량이 쌓일 수밖에. 덩달아 사장 이하 임원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매일 아침 비상회의다. 급기야 관리담당인 이 상무도 영업직으로 임시 발령을 받아 전국을 누볐다. 그는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제품이 안 팔리니 사장 대하기가 두렵다”고 했다.또 다른 H사 윤모 이사도 요즘 바늘방석이다. 건설과 조선경기가 좋을 때 그렇게 잘 팔리던 제품이 지난해 초부터 판매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고량이다. 공장안팎에 쌓인 재고품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생산라인을 멈출 수도 없다. 그는 요즘 근로자 배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호황 때 벌어놓은 돈을 까먹는 형국이다. 지금 당장 생산라인 일부를 멈추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자금사정이 좋은 대기업들이야 어떡하든 이 위기를 버텨내겠지만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사실상 존폐기로에 서 있다. 지금 당장 회사문을 닫고 싶은 생각이 꿀떡같을 것이다. 특히 조선과 맞물려 있는 후판관련 업체 사장들의 고민은 더욱 깊다. 업종전환이나 대체 사업을 물색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조선경기가 1~2년내 살아나지 않으면 상당수 업체가 도산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얘기를 지난 1997년말 IMF 외환위기 때로 잠시 돌려보자. 당시 포항철강공단내 대다수 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자동차 부품생산업체인 S업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존폐기로에 선 이 회사 사장은 고민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명퇴 등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노조가 거세게 반발했으나 끈질기게 그 위기를 버텨냈다. 이 회사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IMF외환위기 3~4년후로 기억된다. 자동차경기가 살아나면서 이 회사도 덩달아 특수를 맞았다. 불과 4~5년만에 회사는 정상화됐고, 수백억이 넘는 흑자를 냈다. 그 때 사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조업을 하는 사장은 모두가 애국자다. 요즘 같은 이런 불황에 사장들의 고통을 누가 헤아려 주겠느냐”고 토로하던 그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불황의 긴 터널을 잘 견뎌내야 한다. 지금 비록 앞이 안보이고 캄캄하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 지금이 터널안이고 내리막이라고 생각하자, 언젠가는 터널 밖 정상에 설 날이 오지 않겠는가.

2013-02-22

며느리와 딸

▲ 정철화 정치부장민족의 최고 큰 명절인 설을 지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고 세찬을 나눠 먹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이다. 그런 설 명절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 않은 것 같다. 명절을 보낸 뒤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통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있다. 이번 설을 지나고 얼마나 많은 가정이 이혼으로 깨어질지 걱정스럽다.신종 바이러스인 명절증후군에 심하게 감염됐거나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기는 후유증이다. 주로 며느리에게서 발병해 남편, 시부모 등으로 전염시킨다. 명절을 앞두고 부인이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자주 내는 증상을 보이면 감염된 것으로 보면 된다. 명절을 보내고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부모나 시누, 시동생 간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중증으로 악화된다. 사이에 끼인 남편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아내 편을 들면 불효막심한 놈이 되고 시댁편을 들자니 아내가 폭발한다. 자칫 남자 행세라도 한답시고 아내를 호통쳤다간 거의 이혼을 각오해야 한다. 남자들의 명절증후군 증세도 결코 여자들보다 가볍지 않다.가정파탄으로 몰아가는 명절증후군은 악성 바이러스임에 분명하고 마땅히 치료를 해야한다. 며느리들의 시댁 식구 간 갈등, 명절 음식장만을 위한 과도한 가사노동 등이 주범으로 꼽힌다. 각 가정이 처한 여건과 가족구성원들의 성격 등 발병 유형이 다양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백신 개발도 어렵다. 전통적인 명절 풍습이 바뀌지 않는 한 잠복형 바이러스로 계속 남아 심각한 사회문제를 더 양산하게 된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된다.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명절증후군도 이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명절은 혈연이나 부락 단위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했던 농경시대 풍습이다. 또한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가부장적 가족주의 사회에서 며느리들의 시집살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이제 시대가 변했고 풍습도 바뀌어야 한다. 산업화와 핵가족화, 양성평등의 시대를 넘어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해 있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댁을 위한 일방적인 복종이나 강요를 당당하게 거부한다. 며느리는 혼인이라는 사회적 계약관계로 형성된 가족이다. 계약 관계의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들보다 가족의 친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댁 가족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보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의 불만이 내재해 있다.명절 풍습의 주체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꿔보는 것도 명절증후군 치료법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며느리의 입장을 딸의 입장으로 바꿔놓으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명절에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딸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명절에 며느리를 시댁이 아닌 친정집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며느리가 아닌 딸의 입장이 되면 명절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내 가족과 친척들을 위한 일이니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적다. 친정에서 혈연들과 함께 명절 차례를 지낸 뒤 다음날 시댁으로 인사를 가면 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시누들이 만들어 놓은 명절 음식을 편안하게 맛보는 입장이 되면 그만큼 불만도 적어진다.문화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나 행동양식이다. 이혼가정을 양산하는 명절풍속은 더 이상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가정파탄의 고통을 수반하는 악습일 뿐이다. 악습을 더 이상 되물림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지켜나가기 위해 세대간 이해와 양보가 절실하다.

2013-02-15

독도, 우리부터 제대로 알아야

▲ 이곤영 대구본부 부장올해도 2월에 접어들며 또 다시 독도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시마네현이 오는 22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제8회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초 일본은 집권당인 자민당이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중앙 정부 차원으로 승격시키겠다고 약속했으나 최근 이를 유보하고 정부 관계자의 출석도 자제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궐기대회를 여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는 방안은 자제하고, 예년과 같이 민간단체가 여는 토론회나 전시회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궐기대회 등의 대응책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외교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이런 가운데 지난 5일 일본이 독도문제 등을 다루는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내각관방에 설치키로 해 우리 국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이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발표한 것은 제국주의 침탈 역사를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국민 모두가 독도가 우리 땅임은 알고 있으나 독도의 역사와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 가수 김광태의 노래인 `독도는 우리 땅` 가사에 나오듯이 독도는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해 매년 공물을 받으면서 우리 영토에 편입됐다. 고려시대에는 930년(태조)과 1032년(덕종), 1346년(충목왕) 울릉도민에게 조공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1417년 태종 17년 왜구 침입으로 울릉도민이 본토로 이주하고, 3년에 한 번씩 순찰을 하는 공도 정책을 펼쳤다. 1692년 울릉도에서 양국 어민이 충돌해 이듬해 일본으로 납치된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했고, 1699년 조선과 일본 외교교섭으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로 인정됐다. 이후 1877년 일본 태정관지령에서 `울릉도, 독도는 조선땅`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41호로 울도군의 관할구역을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독도)로 했다.이처럼 고문헌과 역사에서 독도가 우리 땅임은 명백하다. 일본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 밝힌 어떠한 고문헌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다고 한 것은 1905년 1월 28일이고, 그로부터 4주 뒤인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40호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고,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한 것이 고작이다.일본의 독도 야욕이 이때부터 사실화됐고,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한다는 조례안을 3월 16일에 가결하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야욕이 본격화됐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해양자원의 이권 확보일 테지만, 한걸음 더 나가면 외세 확장을 통한 패권국가로서의 회귀를 꾀한다는 속셈을 읽을 수 있다.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들고 나올 때마다 정부는 임시방편책으로 항의하는 수준에 그치는 등 조용한 외교로 대응하고 있다. 독도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 세계인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등 계획적인고 실질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예산 중 독도 영토주권 강화예산 가운데 독도에 직접적인 투자 예산이 모두 배제된 것으로 드러나 우리 정부의 독도에 대한 정책은 문제가 많다.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정치적인 갈등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접근성을 높여 세계인이 독도를 빠르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이 독도에 들어가기 위해 4시간 이상 배를 타고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들어가야 한다. 독도 입도도 그나마 날씨가 좋아야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우리 영토인 독도를,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독도정책이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2013-02-08

담장 허물기는 계속돼야 한다

▲ 이창훈 대구본부 부장대구는 과거 우리나라 3대도시로서 섬유산업의 활황과 함께 대도시의 명성을 이어가며 시민의 자긍심을 높였다. 그러던 대구가 섬유산업 사양화와 위천국가단지 무산 등으로 퇴락하기 시작해 현재는 인천·울산에 이어 5대도시 수성도 벅찬 실정이다. GRDP는 수십년째 전국적으로 꼴찌를 이어가고 있으며, 인구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 한강이남 최고의 명문이었던 경북대는 대구가 쇠퇴하면서 이제 수도권 3류대학과 학생유치전을 벌여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 돼 버렸다. 사실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대구에서는 마땅한 취업자리가 없다. 갈만한 곳이라 해봐야 대구은행 정도다. 이외에 사립대 교직원이 있지만 몇 명 뽑지않아 하늘의 별따기가 돼 버린지 오래다.이렇듯 자존심이 상한 대구시민이지만 자긍심을 가질만 한게 하나 있다. 대구가 주도적이 돼 전국적인 랜드마크 사업으로 자리를 굳힌 담장허물기 사업이다. 이 사업은 시민단체 간부가 자신의 집 담장을 허문것이 시초가 됐고, 대구시가 이를 받아들여 대구의 대표사업으로 만들어 냈다. 개인의 물리적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열린 공간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이웃간에 벽으로 단절돼 있던 것을 터놓고 지내는 열린사회로 만들어 간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1996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추진되다가 1999년부터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에서 중점과제로 채택하면서 본격적인 시민운동으로 전개됐다.이 사업은 여러 지자체에서 대구를 본 떠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 등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대구시를 방문하는 등 대구의 대표 자랑거리가 됐다. 대구시도 역점을 기울여 현재까지 관공서 120곳, 주택 아파트 322곳, 상업시설 69곳, 의료시설 24곳, 보육 복지 종교시설 103곳, 학교 49곳, 기업체 16곳 등 총 709곳에서 28km의 담장을 뜯어냈다. 이로 인해 35만5천㎡의 녹지공간이 조성됐고, 투입된 예산만도 190억원에 이른다.이러한 담장허물기 사업이 최근 교육청과 한바탕 충돌이 일어났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안전한 학교만들기를 이유로 담장을 허물지 않고, 허문 담장을 다시 쌓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담장이 없는 학교에서 쓰레기 투기를 비롯해 교정에서 술과 음식을 먹는 등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청의 엇박자에 당황한 대구시는 교육청과 협의를 갖고 블라인드 담장대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투시형담장을 설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대구교육청의 담장쌓기에 대해서는 일면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학교폭력으로 전국적인 뉴스메이커가 된 대구교육청은 학교의 안전을 위해 담장을 설치, 학생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고육책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학교라는 특수성에 의거해 학교의 담장은 어느정도 고려의 대상이 돼야지만 거시적인 측면에서 담장허물기는 계속돼야 한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끊임없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가다 보면 하나의 큰 틀이 형성되는 것이다. 담장 뿐만 아니라 시민들 마음의 벽도 허물어야 한다. 대구는 보수성향이 커 국감장에서 의원으로부터 `보수 꼴통`이라는 막말도 듣곤 한다. 이에 대해 흥분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냉철히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수 년간 야당의원 한명 배출하지 못하고 타지사람을 배척하는 순혈주의에 목 매다는 성향이 도시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 아닌가. 대구는 국채보상운동, 2·28학생운동의 시발지로 시민들은 큰 긍지를 갖고 있다. 올곧으면서 뜨겁게 나라 사랑하는 이런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이에 더해 대구시민의 자랑이 된 대구의 담장허물기 운동도 계속 돼야 한다.

2013-02-01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 임재현 편집국 부국장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저 치열했던 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40대 중반의 이맛살을 팽팽하게 하는 이 명문에는 26살 복학생 운동권, 청년 유시민의 성성한 이성과 풋풋한 정의감, 비장한 역사의식이 콸콸 흐르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유화 국면을 조성한 1985년, 운동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목적으로 소위`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이에 엮여 징역 1년6월의 1심형을 선고받은 그가 손수 작성한 항소이유서는 소설가 누이 유시춘에 의해 신문기자에게 전달돼 큰 반향을 일으킨다. 열혈 청년은 장문의 끝을 짜르 말 러시아의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에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그대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를 인용하며 맺는다.힘 없는 이웃에 대한 슬픔과 오만한 권력의 횡포에 대한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인지상정이며 그래서 붉은 머리띠와 함께 운동권과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자 품성의 한 상징이었다. 하지만 동유럽의 몰락과 한국의 민주화로 `적`이 애매해진 국면에서 급기야 `슬픔과 노여움 없이`운동하자는 자성이 나오기까지 했다.허나 역사발전의 나선형 원리는 어김 없이 작동했다. 지난 20여년간 확대된 민주화의 공간에서 과거형의 노골적인 정경 유착은 한층 더 세련되게 탈바꿈한 채 글로벌 경제 위기감과 IT강국의 자부심이 대기업의 활약에 대한 대견함으로 연결되면서 자본이 권력을 추월하는 양상마저 연출되고 있다. 비정규직과 하우스에 워킹 까지 갖가지 푸어(poor)의 실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분노의 기제가 사회문제의 해결에 유효한 열쇠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특히 세계는 아직 테러와 학살, 종교적 맹목, 백주 대낮의 윤간과 아동학대와 인신매매가 난무하며 그 뉴스를 접하는 우리는 절망과 분노에 몸서리치고 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3.8선 이북에선 항일 빨치산 투쟁의 노정, 일군(日軍)에 추격당하는 절체절명의 강물 속에서 대오를 위해 무기 대신 등에 업은 젖먹이를 떠내려보냈다고 자부해온 혁명투사의 손자손녀뻘 인민들이 조·중(朝中) 국경의 얼어붙은 강어귀 어디선가 기아와 억압을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그렇다면 인류에게 슬픔과 노여움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불의와 비겁이 아무리 판치더라도 격한 감정을 당연시 한 채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평범한 생활의 발견으로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여야로 나뉘든, 진보와 보수로 나뉘든, 평등이나 경쟁의 어느 한 쪽에 서든,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떤 진영에 서서 분투하고 있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야만의 상태로 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다함께 평화를 누리고 화해와 관용이라는 한 단계 고양된 감정을 제도적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이를 전제로 한다면 최근 대선 결과를 추수하는 과정에서 편협한 진영 논리에 반성과 `오로지 한명만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어느 대선 후보의 `똘마니 근성`에 대한 비판은 합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와 비민주의 경계가 상당히 옅어진 지금의 한국에서 개발독재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주홍글씨를 낙인하는 무분별한 분노에 대해 유권자들은 등을 돌린 것이다.오는 2월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대한민국은 그동안 변모한 국격 속에서 역사적 대립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구체적 정책으로 구현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차기 권력이 이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한 만큼 약속 이행에 미적거린다면 여론의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특히 웰빙으로도 안 돼 힐링, 즉 치유를 해야 할 만큼 심신의 피로가 깊어진 한국에서 정치가 더 이상 국민의 슬픔과 노여움을 위로하도록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013-01-25

인수위, 지역공약 우선 챙겨야

▲ 이창형서울지사장“대구가 물산업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대구국가과학산업단지 안에 물산업 클러스터를 추진하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기간 동안 경북매일 등 한국지역언론인클럽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물포럼 대회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박 당선인은 또 경북도의 에너지클러스터 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동해안 지역은 원자력산업이 집적돼 있는 지역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입지를 활용, 관련 산업을 클러스터화하고 원자력 수출기반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대선 동안 새누리당이 발표한 지역공약 외에도 박 당선인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대구·경북은 물론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위한 다양한 지역발전 약속을 내놓았다.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 부처에 대한 업무보고 과정을 보면 지역공약의 100% 실천에는 의구심이 든다. 대규모 국비가 투입되는 지역공약이 대부분이어서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다. 따라서 `즉 실행`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정부 부처에서 적극적인 실천의지가 없고 인수위 또한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박 당선인이 대선 기간 약속한 `남부권 제2관문공항` 건설만 놓고 보자.국토해양부는 지난 13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신공항과 관련해 “올해 내로 신공항 건설 또는 기존 공항의 확장을 위한 공항 수요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신공항 건설 필요성에 대한 구체적인 찬반 의견보다 수요조사를 거쳐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신중하고 원론적인 입장만 전달한 것이다.`동남권`이니 `남부권`이니 하는 말도 피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살핀다는 대목이다.그러나 인수위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 듯 하다. 반응을 할래도 지역공약을 전담할 조직이 인수위 내에 없다.인수위는 △국정기획조정 △정무 △외교·국방·통일 △경제1 △경제2 △고용·복지 △법질서·사회·안전 △교육·과학 △여성·문화 등 9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있다.9개 분과위 중에서 성격에 따라 지역문제를 담당하겠지만 지역민들로서는 별도의 지역전담위원회가 설치되지않은 점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결국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지방의 요구를 전달하고 토론할 창구가 개설되지 않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대선공약 국책화 추진단을 구성해놓고 있는 대구·경북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인수위의 현 상황으로서는 지방정부의 절박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역균형발전을 촉구하는 4대 협의체(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는 대선기간 동안 차기 정부에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을 한 목소리로 촉구했고, 당시 박 당선인은 이에 공감하고 세부적인 요구사항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를 약속했다.하지만 이 역시 인수위 단계에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다. 천문학적인 재원 소요로 논란이 일고 있는 `박근혜표 복지공약`에 묻혀 수면위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이명박 정부는 많은 치적이 있었지만 소통부재로 정권초기부터 곤욕을 치뤘다 `소통`은 곧 박 당선인이 강조하고 있는 `국민과의 약속`을 실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약속은 지켜지느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했던 당사자에게 실천의지를 보이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인수위 대변인의 막말처럼 지역문제가 인수위에서 `기삿거리가 안되고, 영양가 없는` 사안이 아니길 바란다.

2013-01-18

경북도, 뒤돌아보지 않는 뱀처럼 가라

▲ 서인교대구본부장 경북도가 국가투자예산 9조원 시대를 열었다. 경북도는 지난해 말 정부예산에 반영된 지역투자 국비 예산으로 역대 최고인 9조 393억원을 확보했다. 이는 지난해 7조 7천434억원 보다 16.7% 증가한 규모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시장·군수, 지역 국회의원이 모두 한마음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국비투자사업을 발굴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온 결과다. 이에 따라 민선 5기 김관용 도지사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시책사업인 광역 SOC 인프라 구축, 미래형 첨단과학 산업육성 및 문화·생태관광 기반조성, 도청이전 신도시 조성 등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의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국가 산채 클러스터와 대구도시철도 하양 연장, 국립해양과학교육관, BLT 사업으로 포항시 하수관거 정비 등 5천565억원이 소요되는 4개 사업도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선정됐다. 이 가운데 경북 영양·청도·울릉, 강원도 양구 일원에 조성되는 국가산채클러스터 사업은 올해부터 2017년까지 국비 715억원, 지방비 135억원 등 850억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사업 역시 김관용 도지사가 지난 2010년 10월 산림에서 먹거리를 찾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2011년에는 서울에서 산채박람회를 개최, 산채류의 현황, 기능성 및 산업화 방안 등에 대해 기획재정부, 농림식품부 등을 오가며 긴밀한 업무협의를 해왔다. 2년 가까이 공을 들인 결과 이 사업도 지난 연말 마침내 예타 사업으로 선정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현지조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경북 울진군 일원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1천500억원을 들여 건립할 국립 해양과학교육관 사업도 수년간 공들인 사업이다. 지난 2008년부터 동해의 해양학적 학술가치를 활용하고 주권적 영토개념을 공고히 하고자 대국민 교육, 전시, 체험단지 조성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기본구상을 시작, 2009년 경북도 핵심사업 선정 추진, 2010년 동해안권발전종합계획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후 2011년·2012년 두차례 상반기 예타사업 신청을 했으나 고배를 마신 후 하반기 재신청에서 선정되는 곡절을 겪었다. 동해안에 국립 해양과학교육관이 건립되면 특성화된 해양교육 과학 문화 관광 중심지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대구도시철도 하양 연장(2천278억원), 포항시 하수도 관거 정비(937억원) 사업도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선정돼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오래도록 기다렸던 숙원사업들이 이제야 하나씩 해결되는 모양새다.경북도가 전쟁을 방불케하는 예산확보전에서 이처럼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치하할 만하다.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선봉에 서고, 부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국가지원예산전담 테스크포스팀을 구성·운영하는 것은 물론 경북도청 전 직원들이 선후배를 아우르는 인적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등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데 이설이 없다. 특히 광역 SOC 사업이 대폭 증액반영된 데는 지난해 9월 김관용 도지사와 이병석 국회 부의장(포항북), 장윤석 예산결산특별위원장(영주), 강석호 경북도당위원장(영양·영덕·봉화·울진)이 함께 기획재정부장관을 직접 방문, “경북지역에 이제 막 시작된 국가기간 도로·철도망이 계획연도내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면서 “사회간접자본(SOC)은 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며,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대동맥”이라며 호소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뱀띠해인 계사년 새해, 사상최대 규모인 9조원 예산으로 경북도가 의욕적인 도정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뱀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경북도 역시 국가 예산 9조원 확보에 만족할 게 아니라 10조원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기울여 주길 기대한다.

2013-01-11

작은 신고도 소중히 해야

▲ 정상호 제2사회부장강력사건이나 사회적 이목을 끄는 범죄를 척척 해결하는 경찰의 수사력을 접할 때마다 속으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못 잡을 것 같던, 달아난 범인을 붙잡고, 장기 미제사건이 되는 게 아닌 가 싶던 사건도 어느날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긴급뉴스로 전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최근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자매를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혀 조사를 받다 수갑을 찬 채 달아난 사건만 해도 그렇다. 수도권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게 했던 범인은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도주 6일만에 붙잡혔다. 검거당시 전과 9범인 범인은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격투 끝에 붙잡혔다고 한다. 다친 경찰관과 추가범죄 없이 사건이 마무리됐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수사업무 기피분위기와 범죄 발생이 갈수록 늘어나는 여건 속에서도 경찰의 범인 검거율과 사건해결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치안이 이 정도인 것은 경찰의 노고 덕분일 것이다.그러나 무슨 일이 생겨 경찰에 신고를 해본 경험이 있는 일반인들의 소위 민생 치안 만족도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도난 사건이나 피해액이 크지 않은 사건의 경우 경찰에 신고를 해본 경험이 있는 일반인들 사이엔 괜히 헛수고만 했다는, 안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얼마 전 회사주변에 있는 식당에 갔다가 장사가 끝난 새벽 시간대에 도둑이 들어 50인치 벽걸이 TV를 훔쳐갔다는 이야기를 주인에게서 들었다. 고개를 돌려 걸려있는 TV를 보니 전에 있던 TV는 사라지고, 크기가 훨씬 작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은 도둑이 리모컨은 물론 고정 볼트하나 빼놓지 않고 몽땅 챙겨갔다며 도둑의 간 큰 범행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인은 수년간 식당을 운영하면서 벽걸이 TV를 도난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식당의 벽걸이 TV 도난피해는 포항 지역만도 몇 군데가 된다고 한다.주인은 경찰의 사무적인 신고접수와 한 번 다녀 가고는 그걸로 의무를 다한 듯한 사건 처리과정에 속이 좀 상한 것 같았다. 주인은 “경찰이 아니라 경리 같았다”며 도난 신고를 대하는 경찰의 무심한 태도를 꼬집었다. 필자도 수년전 아침에 자고 일어나보니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산지 얼마 안된 차량 지붕이 아이들 발자국과 함께 군데군데 쑥 내려 앉아 있어 너무 황당하고 속상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피해사실을 확인한 뒤 돌아갔다. 경찰이 보고 갔으니 못된 짓을 한 아이들이 잡힐 것 같은 기대감도 마음속에 생겼다. 곧 이어 관할 파출소에 출두해 피해 진술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파출소를 찾아갔다. 며칠 뒤에는 피해견적서를 제출하라는 말에 정비소로부터 받은 견적서를 팩스로 보냈다. 회사일도 바쁜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차량을 훼손한 아이들을 못 잡으면 모든 게 헛수고 인데, 신고를 괜히 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됐다. 그 이후 경찰로부터 신고결과에 대해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경찰에 대해 안 좋은 추억만 갖게 됐다. 피해 금액이 적은 사건이라고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처리하는가 싶어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 대한 불신과 신고기피를 막기 위해서라도 민생과 관련된 작은 사건신고에 대해서도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사후 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가 아쉬웠다. 때마침 어려운 경제 여건속에서도 박근혜 당선인의 차기정부가 경찰인력을 2만명 증원한다고 한다. 작은 민생 사건도 꼼꼼히 챙기는 경찰도 그만큼 늘어났으면 좋겠다.

201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