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항공의 여객기가 그리스 아테네 공항 상공을 빙빙 돌 때만 해도 마음은 수학여행 온 소년처럼 마냥 설레었다. 여객기 안에서 내려다 본 그리스 아테네 시가지는 고층건물이 즐비한 관광도시라기보다는 고즈넉한 유적지처럼 포근해 보였다. 여객기가 착륙한 뒤 아테네공항 로비에 들어서자 눈을 의심하게 했다. 아테네 시민들의 느긋한 걸음걸이하며, 식당에서 한가롭게 식사하는 가족들, 바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나라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부도`난 국가인지 궁금했다.
취재단 일행을 태운 버스가 아테네 공항을 빠져나와 올리브 나무로 뒤덮여 있는 아테네 시내로 들어서자 도로 옆 건물과 담벼락은 온통 무질서한 낙서로 도배질 돼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흉물 같은 건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곳 시간으로 오후 2시(한국시간 오후 8시)를 약간 넘긴 대낮인데도 시내를 오가는 시민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뜸했다.
그리스는 지난 2010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 등으로 이뤄진 국제채권단으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천억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대가로 그리스 정부는 세금을 인상하고, 지출을 줄이기로 국제채권단과 약속했다. 그 약속이 현재 어느 정도 이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한 그리스의 경제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희박해 보인다. 빚을 갚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도 사라져버린, 활기 잃은 `죽은 도시`처럼 느껴진다.
그리스는 관광이 주요산업이다. 이곳 가이드 김휘향(49·여)씨에 따르면 그리스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7천여만명에 달한다는 것. 관광수입이 국가 재정 대부분을 차지한다. 초중고, 대학 모두 무상교육에 주택과 식사까지 제공되는 복지국가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공무원과 직장인들은 오전 8시반에 출근해 오후 2시반이면 모두 퇴근한다는 것. 야근과 잔업은 아예 없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없고, 저축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벌어서 가족과 함께 즐기는데 모두 지출한다고 한다. 아테네 근교의 전망좋은 해변가에는 별장들이 즐비하다. 또 해안가마다 정박중인 고가의 요트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평일에도 오후 3시가 넘으면 가족들이 시내 집을 빠져나와 이곳 별장에서 즐긴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산층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26%가 넘어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경제위기로 일자리가 다소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게으르고 낙천적인 국민성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요즘 그리스 젊은이들의 탈 그리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테살로니키 대학 람브리아니데스 경제학 교수는 “그리스 내 젊은 과학자들의 이민이 10%대에 달한다”고 했다. 그리스의 경제회복이 갈수록 쉽지 않고, 어둡다는 전망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오는 2015년까지 공무원 등 공공부문 인력 15만명을 감원하는 조건으로 국제채권단으로부터 분기별 구제금융 28억 유로와 유로안정기구(ESM)에서 72억 유로를 추가로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7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2년만에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이 있다. 그리스의 앞날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진다.
`서양문명의 배꼽`이자 `유럽의 별`로 화려한 옛 영화를 누렸던 그리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나. 그리스의 암울한 경제현실을 보면서 문득 한국경제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바쁘게, 숨가쁘게 달려왔는지….
그리스의 경제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에는 환한 불빛이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