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개되는 정국 현상은 마치 온 국민이 어지러운 불량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형국이다. 허점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 대한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일인 만큼 ‘시급성’ 못지않게 ‘신뢰성’에도 무게를 두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일 진행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변론기일을 통지했다. 헌재가 발표한 변론기일은 오는 14일부터 2월 4일까지 5차례다. 일정대로라면 주당 2회꼴로 재판이 진행되는 셈이다. 변론준비기일을 마친 후 국회 측 대리인단은 “예상대로 변론기일을 진행하게 돼 다행”이라고 밝혔지만, 윤 대통령 측은 “방어권을 제한하고 신중한 심리를 저해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큰 논란이 된 것은 국회 탄핵소추단이 이날 탄핵 사유에 적시된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일이다. 국회가 지난달 14일 통과시킨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형법의 내란죄, 직권남용죄 등 중대 범죄’가 탄핵 핵심 사유로 명시돼 있다. 이를 제외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탄핵을 주도한 야당이 재판 속도를 앞당기려는 전략이라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윤 대통령 측은 “이번 탄핵 심판은 내란죄 성립을 토대로 한 것인데, 내란죄를 뺀다면 탄핵소추 의결 자체가 무효 아니냐”며 반발했다. 헌재는 국회 측에 추가 서면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내란죄’ 포함 여부는 오는 14일부터 진행되는 정식 변론기일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학계에선 “탄핵소추 의결서에 담긴 내란죄를 임의로 배제한다면, 심판 절차의 적법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소추 사기’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학장은 ‘내란죄’를 소추 사유에서 빼려면 국회의 예비 심판인 탄핵소추안을 다시 의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학장은 “헌재는 이번 탄핵을 즉시 각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의 정국에서 헌법재판소의 존재감이나 역할은 다른 기관을 압도한다. 마치 이 나라의 운명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통째로 맡겨진 듯한 상황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변동을 주도하는 주체는 소수의 정치지도자에서 사법부로 넘어가는 추세다.‘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시점에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사법부가 극단적인 정치분위기에 휩싸여 흔들리는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대통령 탄핵소추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 이후 얼마나 뒷말과 혼돈이 깊었는지를 반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닉슨 대통령을 탄핵할 때 조사를 2년간이나 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1년 이상 조사를 진행했다. 최소한 국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와 법리를 확보한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여야갈등을 겪는 국가 주요현안마다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절차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정치의 사법화가 크게 우려스럽다. 하루빨리 극단적 진영정치가 청산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