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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뭐길래?

등록일 2013-04-05 00:04 게재일 2013-04-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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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 대구본부 부장

“가족을 지키지 못한것에 대해 미안하다. 딸을 잘 부탁한다.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당신은 당신 편한대로 하기를 바란다”

지난달 대구의 한 치과의원 원장이 이같은 내용의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부와 명예를 다 갖춰 남 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10년전에 아내와 딸을 유학 보내놓고 혼자 살았다. 소위 `기러기 아빠`였다. 수년간 외로움에 지친 그는 죽기 전날 병원직원에게 뭔가 암시를 던진후 병원을 나서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필자의 친구는 보험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어 아이를 유학보냈다. 몇년 후 아이를 보러 현지에 갔다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자, 아이는 `YOU(당신)가 뭔데 나를 나무라냐`고 대들었다고 한다. 기가 찬 친구가 눈을 부릅뜨고 한 대 쥐어박을 태세를 보이자 아이는 폴리스(경찰)를 불렀다. 곧바로 달려온 경찰이 “아이를 때렸느냐”고 물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이는 때리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경찰은 “아이를 때리면 구속되니까 조심하라”고 말한 후 되돌아 갔다. 그 후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친구는 아이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 엄마와 아이가 동시에 귀국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유학을 시키고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이 친구는 현재 보험업이 잘 안돼 과거 불입한 보험을 다 해약한 상태고, 요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들어 기러기아빠의 고독사를 비롯, 가족해체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아내가 현지에서 바람이 나 이혼을 당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러기 아빠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자신은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부쳐준다. 한때는 부러움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과연 `이 길이 현명한가`하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기러기아빠는 자식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켜 나중에 잘 먹고 잘 살라는 배려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배경에는 무너진 공교육과 치솟는 사교육비가 자리잡고있다.

국내 교육이 후진적인 만큼 어릴때부터 선진국으로 유학보내 자식의 일생을 돌보겠다는, 원론적으로 따지면 지극한 자식사랑이다. 하지만 자식사랑의 이면에는 고독감과 경제적인 부담감에 시달려 가족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는 현재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기러기 아빠의 죽음은 많이 들었지만 기러기 아빠의 자식이 잘 자라 기러기아빠를 잘 돌보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교육이 중요한 건 맞다. 어릴때부터 선진국에서 더 좋은 공부를 해 조국을 살찌우는 것도 좋다. 그러나 굳이 기러기아빠가 되면서까지 유학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경제적으로 뒷감당을 할 능력이 안 되다 보니 자기합리화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국내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사회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굳이 유학이 필요하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상황을 고려해 하면 된다. 자식교육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해체가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옛말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잘 난 자식은 도회지로 나가 부모를 내팽개치지만 공부못하고 덜떨어진 자식이 부모곁에 남아 봉양을 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퇴근후 고만고만한 자식들과 마주앉아 저녁을 같이하며 정담을 나누는 행복에 어찌 비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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