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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딸

등록일 2013-02-15 00:01 게재일 2013-02-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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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화 정치부장

민족의 최고 큰 명절인 설을 지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고 세찬을 나눠 먹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이다.

그런 설 명절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 않은 것 같다. 명절을 보낸 뒤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통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있다. 이번 설을 지나고 얼마나 많은 가정이 이혼으로 깨어질지 걱정스럽다.

신종 바이러스인 명절증후군에 심하게 감염됐거나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기는 후유증이다. 주로 며느리에게서 발병해 남편, 시부모 등으로 전염시킨다. 명절을 앞두고 부인이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자주 내는 증상을 보이면 감염된 것으로 보면 된다. 명절을 보내고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부모나 시누, 시동생 간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중증으로 악화된다. 사이에 끼인 남편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아내 편을 들면 불효막심한 놈이 되고 시댁편을 들자니 아내가 폭발한다. 자칫 남자 행세라도 한답시고 아내를 호통쳤다간 거의 이혼을 각오해야 한다. 남자들의 명절증후군 증세도 결코 여자들보다 가볍지 않다.

가정파탄으로 몰아가는 명절증후군은 악성 바이러스임에 분명하고 마땅히 치료를 해야한다. 며느리들의 시댁 식구 간 갈등, 명절 음식장만을 위한 과도한 가사노동 등이 주범으로 꼽힌다. 각 가정이 처한 여건과 가족구성원들의 성격 등 발병 유형이 다양해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백신 개발도 어렵다. 전통적인 명절 풍습이 바뀌지 않는 한 잠복형 바이러스로 계속 남아 심각한 사회문제를 더 양산하게 된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된다.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명절증후군도 이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

명절은 혈연이나 부락 단위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했던 농경시대 풍습이다. 또한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가부장적 가족주의 사회에서 며느리들의 시집살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이제 시대가 변했고 풍습도 바뀌어야 한다. 산업화와 핵가족화, 양성평등의 시대를 넘어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해 있다. 요즘 며느리들은 시댁을 위한 일방적인 복종이나 강요를 당당하게 거부한다. 며느리는 혼인이라는 사회적 계약관계로 형성된 가족이다. 계약 관계의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들보다 가족의 친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댁 가족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보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의 불만이 내재해 있다.

명절 풍습의 주체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꿔보는 것도 명절증후군 치료법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며느리의 입장을 딸의 입장으로 바꿔놓으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명절에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딸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명절에 며느리를 시댁이 아닌 친정집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며느리가 아닌 딸의 입장이 되면 명절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내 가족과 친척들을 위한 일이니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적다. 친정에서 혈연들과 함께 명절 차례를 지낸 뒤 다음날 시댁으로 인사를 가면 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시누들이 만들어 놓은 명절 음식을 편안하게 맛보는 입장이 되면 그만큼 불만도 적어진다.

문화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나 행동양식이다. 이혼가정을 양산하는 명절풍속은 더 이상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가정파탄의 고통을 수반하는 악습일 뿐이다. 악습을 더 이상 되물림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지켜나가기 위해 세대간 이해와 양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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