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딱 한 달되는 날이었다. 수치적으로 30일인 그 한 달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만한 기간이면 발생가능한 시행착오를 딛고 새 정부의 국정운영이 속도를 내야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었던 그날 아침, 청와대 춘추관 기자들은 웅성댔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전격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날 조간은 그가 국외에서 수년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해왔다는 기사를 1면 머리로 내보냈다. 기사는 그의 국외 비자금 규모가 최소 20~30억원, 많게는 그 두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경제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국외에서 수년간 수십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탈세를 했다는 점은 그 의혹만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엄정한 수사를 통해 실체를 파헤쳐야 하는 문제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낙마는 이번이 6번째다. 인수위 시절인 지난 1월29일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부동산투기·아들 병역면제의혹)를 시작으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3월4일),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3월18일), 김학의 법무부 차관(3월21일), 김병관 국방부 장관(3월22일) 후보자, 한만수 공정위원장(3월25일) 내정자 등등.
국민들로서는 낙마의 대상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낙마의 이유가 국민정서와는 너무나 배치되는 파렴치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국가와 공직에 대한 국민신뢰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문제는 후보자 스스로가 자신의 허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내정자의 경우만 보자. 그의 재산규모는 109억원, 대형 로펌 장기 근무, 대기업 이해관계 대변 등등. 스스로가 경제검찰격인 공정위원장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나아가 해외 비자금 운용, 탈세의 문제에 대해 그의 양심은 없었던 것일까?
양심의 문제를 넘어 죄의식 조차 없는 이들의 뻔뻔스러움은 차치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 구멍뚫린 인사검증시스템의 개선도 시급하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박 대통령의 디테일(detail) 리더십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않다. 하지만 인사를 포함한 권한과 책임이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되면서 벌써부터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 온 책임 장관제에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 또한 대통령 1인 중심의 하향식 인선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 내부에 인사 추천과 검증을 위한 인사위원회가 구성됐으나 박 대통령이 직접 낙점한 인사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고, 노(No)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최고권자인 내가 다 챙기겠다”는 의욕은 실패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골 욕심 때문에 혼자 수비수와 공격수 역할을 다하면 실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갤럽의 최근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44%였다. 1990년 이후 역대 대통령 취임 한 달 지지도와 비교할 때 가장 낮은 것이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김영삼 대통령(1993년)과 김대중 대통령(1998년) 지지도는 71%였다. 노무현 대통령(2003년)은 60%였고, 이명박 대통령(2008년)은 52%였다.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응답자에게 이유를 물은 결과`인사 잘못`이 29%로 가장 많았다. 인사가 `망사(亡事)` 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교훈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부분이다.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인사와 관련해`낙마 축구팀`이니 `인사참사`란 혹평이 더이상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