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따른데다 내용은 방대하고 문체 또한 산만하다. 고만고만한 등장인물이 수시로 드나드는데다 문장은 접속사와 반점의 향연일 정도로 부담스럽다. 고전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신념으로 열심히 정복하려 하지만 십여 권이 넘는 이 대하소설을 아직도 1, 2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다 읽은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아마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 나오는, 마들렌느 과자를 홍차에 적셔 먹는 장면에서 독자로서의 호기심을 충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마들렌느가 어떤 과자일까, 하는 소설 외적인 호기심이 생긴 적이 있었다. 마침 만화로 된 책도 나왔기에 얼른 샀었다. 완간 소식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마들렌느 과자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작은 기쁨이었다. 평범한 조개 모양 과자 하나로도 우리는 잊고 지냈던 기억을 복원할 수 있다. 홍차에 찍은 마들렌느 과자, 그 향과 촉감에 주인공 마르셀은 불현듯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일요일 아침, 이모가 권하던 그 마들렌느 맛이 겹치면서 마르셀은 완전무결하게 제 어린 시절을 글로 복원하게 된다. 마들렌느라는 소박한 촉매제 하나가 위대한 소설을 탄생시킨 셈이다.“머나먼 과거로부터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이 죽고 사물들이 부서지고 흩어진 후에도 맛과 냄새만이,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실체가 없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충실하게, 오랫동안 남아 떠돈다”는 작가의 감각이 놀랍기만 하다. 홍차 적신 마들렌느의 맛과 냄새와 촉감은 마르셀을 감미로운 행복감으로 몰아넣는다. 고립감을 느낄 정도의 극도의 희열감을 맛보게 해준다. “내가 도달하려는 본질은 과자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홍차에 적신 과자가 뭔가를 일깨”웠다고 프루스트는 말한다. 이런 섬세한 감각의 영혼이라니.저마다의 감각에 겨운 봄꽃은 저리도 앞 다퉈 피고 지는데, 내 온몸과 마음에 숨어 있는 오감은 여전히 무디기만 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