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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맹모상(群盲摸象)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9-25 02:01 게재일 2014-09-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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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경면왕이 신하들과 진리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몰고 오게 하더니 맹인 여섯 명을 궁으로 들였다. 각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 보게 했다.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모두 코끼리를 만져보았는가? 코끼리는 무엇과 닮았던고?” “코끼리는 무와 같습니다.” 상아를 만진 맹인이 먼저 말했다. “아닙니다. 코끼리는 돌과 같습니다.” 머리를 만져본 장님이 반박했다. “곡식을 까부는 키와 같습니다.” 이번엔 귀를 만진 맹인이 큰소리를 냈다. “절구통 같습니다.” 다리를 만진 장님이 맞받아쳤다. “들마루 같았습니다.” 등을 만진 맹인도 지지 않았다. 이어 배를 만진 맹인은 큰항아리 같다고 언성을 높였고, 꼬리를 만진 맹인은 굵은 동아줄 같았다고 우겼다. 여섯 명의 말을 끝까지 들은 왕이 말했다. “진리는 하나이다. 하지만 맹인마다 다르게 느끼고 자기 식대로 말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도 않는다. 진리를 밝히는 일도 이와 같다.”

불교 경전 `열반경`에 나오는`군맹모상` 대목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것으로`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란 속담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상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만물의 영장인 똑똑한 인간은 그것이 내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우선 따진다. 내게 손해이고 내 억울함을 위무해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라 해도 선뜻 발 벗고 나서지 못한다. 코끼리라는 하나의 진리는 너도 알고 나도 안다. 하지만 여섯 맹인이 느낀 그 실체에 대한 감도는 다 다르다.

아는 만큼 본다고 했다. 아니 아는 만큼만 보려고 하는 게 사람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둘러 싼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개혁 자체에 대한 국민적 공감은 얻었으되,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좀처럼 합의점을 이루기 힘들다. 경면왕이 아무리 진실은 하나라고 외쳐도 다 같이 맹인인 우리는 매양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을 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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