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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멜무지로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9-18 02:01 게재일 2014-09-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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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자주 카톡 문자를 보내온다. 길고 지루한 출퇴근 지하철 안, 책을 읽다 발견한 의문 사항들을 보내온다. 안부를 대신하는 질문형 문자의 대부분은 순우리말에 관한 거다. `곁섬 털다` 가 뭐야? `듬쑥하니`는? `타울거리다`는 또 무슨 뜻이야? 나는 즉각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내 어휘 깜냥으론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매번 스마트폰 검색으로 답을 보낸다. 언니가 질문을 해오는 것은 답이 궁해서가 아니다. 문학적 긴장감을 놓치지 말라는 언니 나름의 배려이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바쁘거나 귀찮을 땐 `검색의 생활화도 모르나. 언니가 그냥 찾아 봐`라며 퉁을 내기도 한다.

오늘도 예의 질문형 문자가 왔다. `에멜무지로`가 뭐야? 나로선 처음 보는 말이다. 스페인어 쯤 되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순우리말이다. `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이나 `결과를 바라지 아니하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하는 모양`을 일컫는단다. `거리가 가까우니 그냥 에멜무지로 안고 가라`라거나 `에멜무지로 한 일이 그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라는 쓰임새로 활용할 수 있다.

검색해서 알게 된 모범 답을 전송한다. 이어지는 언니 말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쓰던 말 중에 `이말무지로`가 있었단다. `이말무지로 논두렁에 심은 팥이 실하게 영글었다`라거나 `이말무지로 산 닭인데 달걀을 많이 낳더라`는 식의 화법을 엄마가 즐겨 썼다나. 검색해보니 `이말무지로`는 `에멜무지로`의 방언이다. `에멜무지로`만 표준어로 삼는다고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얻은 결론 하나. 보수적 언어 습관을 지닌 엄마 세대의 언어도 어김없이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 언어의 소멸과 생성 및 변화 속도는 생각이상으로 빠르다. `이말무지로`냐, `에멜무지로`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숱한 순우리말의 생명력 자체가 약해진다는 게 문제이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고이 쓰이던 낱말들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안타까움. 에멜무지로 쓰던 우리말이 다시 피는 꽃처럼 살아나기를 바라는 건 역시 무리일까.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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